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32화 (132/522)

# 132

아크 메이지 (3)

헨리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샤하트라의 수도 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어느 자그마한 동굴이었다.

물론 이 동굴 또한 헨리가 화이트 게이트의 임시 좌표로 쓰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둔 장소였다.

샤하트라에 도착한 헨리는 곧바로 칸의 왕궁으로 입성했다.

척!

왕궁 입구에 도착하자 헨리를 알아본 왕궁 근위병들이 절도 있는 자세로 경례를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플라이 마법으로 가볍게 넘어가고 싶었지만, 속국이기는 해도 이곳은 엄연히 한 나라의 왕궁이었다.

게다가 헤라리온 같은 친밀한 관계일수록 최소한의 예의는 더더욱 필수적이었다.

이에 헨리가 물었다.

“전하는 지금 어디에 계시지?”

“전하께선 지금 연무장에 계십니다. 바로 안내해 드릴 테니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근위병들은 헨리가 제국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별다른 적개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의 근위병들은 왕권을 강화한 헤라리온이 철저하게 교육한 상태였으니까.

도착한 곳은 왕족 전용 연무장이었다.

근위병은 헨리가 도착했음을 신하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연무장의 상황을 파악한 헨리는 곧바로 근위병의 행동을 저지했다.

“됐어. 인사는 내가 직접 드릴 테니 전하의 수련을 방해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그럼.”

근위병은 경례를 올리고 자신이 있던 위치로 다시 복귀했다.

이어서 헨리는 연무장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카앙! 카캉! 캉!

날카로운 금속 마찰 음. 진검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러나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이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참새?’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은 헤라리온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헤라리온을 상대로 대련을 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조그마한 ‘참새’였다.

헨리는 흥미롭다는 듯이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조류의 대련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헨리는 그 참새가 육체를 바꿔 착용한 ‘헥터’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 짓궂은 놈 같으니.’

참새의 전신에 둘려 있는 짙고 푸른 기운. 그것은 오러가 확실했다. 그리고 세상천지에 참새로 몸을 바꿔서 전신에 오러를 두를 수 있는 존재는 헥터뿐이었다.

“짹짹!”

슈아아아!

참새는 매처럼 비상하여 벌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참새를 향해 헤라리온은 비 오듯이 땀을 쏟아 내며 검을 휘둘렀다.

챙! 챙! 챙캉!

검날과 부리가 맞부딪히는 것이 아니었다. 검날과 참새 자체가 맞부딪히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참새가 높이 날아올랐을 때, 그 순간 헨리는 참새와 눈이 마주쳤다.

‘웃어?’

눈이 마주친 참새는 분명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도 꽤나 즐겁다는 듯이.

그 덕분에 헨리는 난생처음으로 참새가 웃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슈아아아!

높이 날아오른 참새는 순식간에 수직으로 낙하했다.

그 모습을 본 헤라리온은 황급히 검날을 들어 올려 낙하하는 참새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파캉!

오러도 두르지 못한 검날이 오러 덩어리 그 자체인 참새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검날은 부러졌다.

그리고 검날을 부러뜨린 뒤에도 끊임없이 낙하하던 참새는 헤라리온의 미간에 들이박기 직전,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빠악!

털썩!

일순간 오러의 양이 줄었다.

만약 참새가 오러를 줄이지 않았다면 헤라리온의 이마는 그대로 관통상을 당했을 것이다.

자리에 주저앉는 헤라리온.

완벽한 참새의 승리였다.

짝짝짝짝!

대련이 끝난 직후, 헨리는 손뼉을 치며 연무장 위로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본 헤라리온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설마 처음부터 보셨던 겁니까?”

“중간에 인사를 드리려고 하였으나 워낙에 진지하게 대련 중이시기에 그냥 잠자코 기다렸습니다.”

“그렇군요…….”

참새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 준다는 것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특히 본인이 왕족쯤 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이에 참새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짹짹!”

그 순간, 참새가 두어 번 크게 울더니 곧 사방에서 거대한 흑색 갑옷들이 참새를 중심으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절걱! 절걱! 철그럭!

흑색 갑옷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한 놀림으로 금세 본체를 완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흑색 투구의 텅 빈 눈동자로부터 붉은색 안광이 번뜩였다.

쿠궁!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며 연무장 위에 착지하는 헥터.

이윽고 헥터가 말했다.

“어때?”

“뭘?”

“몸뚱어리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이 압도적인 강함. 첫 번째 제자로서 스승님에 대한 존경심이 좀 생기지 않냐?”

“존경심은 개뿔. 근데 참새일 때는 말을 할 수 없는 건가?”

“참새의 발성기관으로는 도저히 사람 말을 할 수 없더라고.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말을 할 땐 갑옷이나 코룬의 육체를 이용하고 있다.”

“웃기는군. 갑옷으로는 되는데 참새로는 말을 할 수 없다니? 그 말이 지금 논리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갑옷은 그저 고철에 지나지 않으니 내 영혼의 외침이 직접적으로 전달되지만, 참새 같은 살아있는 육체는 좀 다르다. 살아있는 육체를 빌려 쓸 땐 그 육체가 가진 특성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그렇군.”

열흘 만의 재회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 헤라리온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헨리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헨리 공은 어쩐 일이십니까? 설마 벌써 완성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시제품에 대한 검증도 완벽하게 끝냈으니 들어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심이 어떻겠습니까?”

“잘됐군요. 저희도 마침 새 궐련의 개발을 어제 막 마친 참이었는데, 물건을 주시면 사람을 시켜 두 가지를 금방 혼합해 오겠습니다.”

“아, 일 이야기라면 나는 이쯤에서 빠지겠어. 둘이서 실컷 나누라고. 나는 슬슬 배가 고파서 말이야.”

일 이야기에 헥터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사실 일 이야기를 진행함에 있어 헥터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기에 두 사람은 굳이 헥터를 붙잡지 않았다.

이어서 장소를 옮긴 두 사람은 아랫사람을 시켜 핑크 스왐프를 넣은 새로운 궐련을 가지고 오게 했다.

원탁 위에 놓인 새로운 궐련.

헨리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집어 든 후 마법으로 불씨를 붙여 궐련을 한 모금 빨아들였다.

“후우우…….”

핑크 스왐프의 영향으로 분홍색 연기가 입 밖으로 가득히 내뿜어졌다.

아름다운 색이었다. 그리고 머리가 맑아지며 기분이 차분해졌다.

헨리는 이어서 궐련을 한 모금 더 빨아들인 뒤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역시 샤하트라 궐련입니다. 제가 임시로 만든 궐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맛이군요.”

“기존의 공물과 비교하자면 맛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퀄리티를 포기하니 생산성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이 정도 퀄리티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거, 벌써부터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게 술 생각이 절로 나네요. 예상했던 부작용입니다.”

“술 생각이 나도록 하는 것이 핑크 스왐프의 특징입니까?”

“네, 핑크 스왐프의 중독성을 끊으려면 독한 술을 마셔야 하는데, 사실 독한 술을 마신다고 해서 그 중독성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습니다. 또한 당장은 두통을 없애 주지만, 장기적으로 흡입할 경우엔 오히려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 예민함을 잠재우기 위해선 다시 궐련을 피워야 하고 말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으음, 술과 담배의 악순환이라……. 말 그대로 최악의 마약이군요.”

“그래서 이름도 ‘핑크 스왐프’라고 지었습니다. 파리 떼를 잡기 위해선 파리지옥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물론 헨리에겐 그 중독성이 오래가지 않았다. 헨리는 베놈의 심장의 수호를 받는 몸이니까.

헨리는 아공간 속에 담아 온 핑크 스왐프 전부를 넘겨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양을 만드시고도 남을 것입니다. 물론 충분히 만드신다고 해도 순차적으로 조금씩 풀 것이지만요.”

“이거,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그럼 궐련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어떻게, 마법사로 육성하실 인재들은 좀 물색해 두셨습니까?”

“헨리 공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로 일단은 모아 두긴 했습니다만, 사실 좀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작은 문제요?”

“다들 재능은 타고났지만 아직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저의 명령이기에 소집에는 응했지만 외세의 힘을 배운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들 또한 샤하트라에서 나고 자랐으니 가치관이 그리 형성되어 있을 테니까요.”

윗선이 갑작스레 진보를 주장해도 국민들은 오랫동안 내면화한 삶의 양식을 더 익숙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윗선은 처음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국민들을 지도할 의무가 있다.

“특히 헨리 공께서 말씀하셨던 ‘최고 재능’을 가진 아이가 특히나 더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최고 재능? 소집된 인재들 중에 그런 아이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기준점으로만 놓고 보자면 소집된 인원들 중에 단연 최고입니다.”

헨리는 헤라리온에게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판별하는 도구로 자그마한 수정구를 주었다.

그 수정구에 손을 올려 빛을 뿜는 데 성공한다면 재능이 있는 것이고, 재능이 없다면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점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이에게는…….

“수정구가 자색 빛을 띠었습니다.”

‘자색!’

자색 빛으로 물드는 수정구.

수정구가 자색 빛을 띠었다는 것은 마법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고 지금 당장 1등 마법사의 조수로 활동해도 좋을 정도의 재능이란 뜻이었다.

‘인재는 대륙 곳곳에 있다더니.’

탐나는 인재였다.

매년 쏟아지는 마법 아카데미 신입생들 중에서도 수정구를 자색으로 물들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혹시 그들에게 조건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마법사가 된다면 평생 모아도 이루지 못할 부를 약속하겠다고 말입니다.”

“당연히 알려 주었습니다만, 애석하게도 그 아이는 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혹시 그 아이, 지금 만나 볼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일부러 왕궁에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헨리가 요구한 인재들이었으므로 헤라리온은 특별히 왕궁에 인재들을 대기시켜 두었다.

그들은 왕궁 한쪽에 마련된 어느 호화로운 별장에서 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헤라리온이 등장하자 모두가 바닥에 이마를 붙이며 경배의 자세를 취했다.

“하울은 고개를 들라.”

녀석의 이름은 하울이었다.

헤라리온의 부름에, 바닥에 이마를 붙인 인파 사이에서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예, 전하.”

하울은 마른 체형에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샤하트라인들 중에서는 드물게도 새하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하울이 무릎을 굽히고 궁중 예절을 취해 보이자 헤라리온이 말했다.

“저 아이입니다.”

헤라리온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헨리는 가만히 하울을 응시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광대가 살짝 솟으며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보석이 맞구나!’

육안으로 보아도 그 재능이 출중해 보였다.

그러나 얼굴 가득히 반골의 성질이 엿보이는 것이, 고집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헨리는 그 아이를 코앞으로 불러들였다.

찌릿.

헤라리온이 앞에 있기에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헨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몹시 거칠었다.

이에 헨리는 다시 한 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기백이 좋군. 그래도 잘됐어, 거칠어야 가르칠 맛이 날 테니.’

그러나 채찍을 휘두르기 전에 당근부터 내밀어 보는 것이 올바른 훈련법이었다.

이에 헨리가 물었다.

“이름이 하울이라고? 올해로 몇 살이지?”

“열아홉입니다.”

“곧 성인이 되겠구나. 듣자 하니 재능은 출중한데 마법사가 되기 싫다고 들었다. 혹시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느냐?”

“저는 비람 대제사장님처럼 훌륭한 환술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왜 하필 환술사지? 네가 만약 마법사가 된다면 너는 물론이거니와 너희 가족들이 평생 놀고먹을 만큼의 부귀영화를 약속한다고 했을 텐데?”

“부귀영화는 필요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성실한 구두공이시고, 제 어머니는 뛰어난 제빵사이십니다. 제국의 마법 같은 걸 배우지 않아도 저희 가족은 충분히 먹고살 수 있습니다.”

“좋다. 네가 재물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왜 하필 환술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그 계기를 들어 보고 싶다.”

궁금했다. 그리고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다.

환술이 분명 독자적이고 뛰어난 힘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법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하울이 입을 열었다.

“마법사님은 혹시 ‘눈’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눈?”

“그렇습니다. 저 또한 책에서 보았는데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차갑고 새하얀 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샤하트라를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제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제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또한 절대로 샤하트라를 벗어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눈은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그랬습니다. 환술을 익히면 샤하트라를 벗어나지 않아도 세상 모든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반드시 훌륭한 환술사가 되어 제 오랜 꿈인 ‘눈’을 볼 것입니다.”

“그렇군.”

대답은 명료했다.

마법사가 되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간단했으니 대답도 명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헨리가 헤라리온에게 물었다.

“전하.”

“예?”

“혹시 전하께선 눈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도 아직은 책으로만 접해 보았습니다.”

“그렇군요.”

샤하트라의 왕조차도 아직 눈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좋은 기회였다. 이에 헨리는 바닥에 발을 두 번 굴렸다.

탁탁.

번쩍!

헨리가 발을 두 번 구른 순간, 광채가 잠시 번쩍였다.

그리고 광채가 사라진 순간,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