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살게라의 쥐 (3)
“그, 그건……!”
헨리가 품속에서 아서스의 편지를 꺼내 들자 오베르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예상은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오베르는 헨리에게 두 장의 편지를 부탁했으니까.
이에 헨리가 꺼내 든 편지를 한 손으로 팔랑거리며 말했다.
“이게 뭔지는 잘 알겠지?”
“무, 물론이다……! 그건 내가 아서스 공작님에게 전해 달라고 한 편지다!”
“정확해.”
훌륭했다.
남은 궐련은 이제 다섯.
절반밖에 남지 않은 궐련은 오베르를 훨씬 더 절박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팔랑.
헨리는 집어 든 편지를 다시 한 번 팔랑거리며 말했다.
“그럼 설명해.”
“그, 그건…….”
대답을 내뱉기 전, 오베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꽤나 괴로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이제 저 편지의 내용까지 밝혀 버린다면, 그것은 유일하게 믿고 있던 희망을 고작 궐련 다섯 개비와 맞바꾼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나 금단현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결국 오베르는 자신의 마지막 희망을 다섯 개비의 궐련과 맞바꾸고 말았다.
“……아서스 공작이 나에게 제안한 것, 그것은 바로 ‘반란’이다.”
아서스를 부르는 호칭이 공작님에서 공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오베르의 대답을 들은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 설마 했더니 정말일 줄이야.’
반란.
잠시 잊고 있었던 단어의 등장에 헨리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오베르의 말대로 아서스가 정말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면 샤하트라에서 보여 주었던 행동들과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진다.
‘반란이라…….’
헨리는 입안에서 반란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곱씹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굉장히 불쾌했다.
황제에 버금가는 제국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작자가 고작해야 반란을 꿈꾸고 있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다.
그가 헨리의 사람들을 제거하고 대공작의 자리에 앉았을 때, 헨리는 그의 욕심이 거기서 끝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아흔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사람의 것을 탐낼 만큼 몹시 추악하고 무한한 것이었다.
이에 헨리가 한층 더 차가워진 눈빛으로 오베르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샤하트라에서 일어날 반란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있었겠군.”
“샤, 샤하트라에서 반란을?”
“모르는 척하기는.”
오베르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이에 헨리가 또 하나의 궐련을 부러뜨리려고 하자 기겁한 표정으로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자, 잠깐만! 난 정말로 진심이다! 난 정말로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샤하트라에서 반란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잠시 멈추는 손가락.
눈빛을 보아 하니 거짓은 아닌 듯했다.
이에 헨리가 집어 든 궐련을 조금 구부려 보이며 말했다.
“네가 몰랐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믿지?”
“그, 그건 정말로 나도 몰랐어! 아서스가 나에게 반란을 제안했을 땐 그저 준비가 거의 다 되어 가니 함께하자고만 했을 뿐이라고!”
“그래?”
“정말이다! 정말이고말고!”
오베르는 행여나 구부러진 궐련이 부러질세라 목소리에 열과 성을 다해 진심을 피력했다.
이에 헨리는 궐련을 집어 든 손가락을 잠시 멈춘 채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준비가 거의 다 되어 간다고?’
준비.
반란을 꾀하는 자가 준비할 것이라곤 반란을 일으킬 사병대 외에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 순간, 헨리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설마 베네딕이 아서스의 사병대였다는 건가?’
정황만을 놓고 보자면 이쪽도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었다.
실제로도 베네딕은 모드레드와 자주 접촉했고, 궁지에 몰린 베네딕을 위해 손수 칸 왕족까지 납치해 주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베네딕의 무력이 강하다고 한들, 굳이 번거롭게 이점도 없는 샤하트라에서 반란을 시작할 이유는 없었다.
자고로 반란이라 하면 빠른 시일 내에 궁을 점령하고 왕의 목을 베는 것이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때 모드레드가 베네딕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던 것 같은데…….’
클레버를 통해 엿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
헨리는 눈을 감고 가만히 모드레드와 베네딕이 나누었던 대화들을 한번 곱씹어 보았다.
-……아무튼, 어떤 경위가 됐든 간에 저희 하이랜더가는 베네딕 경을 전적으로 지원할 터이니 약속했던 물건만 저희에게 넘겨주시면 됩니다.
대륙 최고의 두뇌이자 대륙 제일의 기억력.
헨리는 결국 모드레드가 베네딕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 낼 수가 있었다.
‘그래, 모드레드는 분명히 베네딕에게 어떠한 물건을 요구했었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인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시금 장고에 빠지게 했다.
헨리는 여전히 손에 궐련을 쥐고서 샤하트라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당시의 상황들을 모두 복기해서 원하는 정보를 추려 내는 것은 도저히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제기랄…….’
찝찝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뚜렷한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 마치 뿌연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에 헨리는 답답함에 손에 쥐고 있던 궐련을 있는 힘껏 구부러뜨렸다.
뚜둑!
“아, 안 돼애액!”
이에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던 오베르는 끝끝내 두 동강 난 궐련을 보며 처절하게 절규했다.
그러나 헨리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화풀이를 하듯, 멀쩡히 남은 궐련들까지 모두 부러뜨린 뒤, 그것들을 발로 짓뭉개기 시작했다.
뚜둑! 뚜둑! 뚜드드득!
굵직한 궐련들이 신발에 뭉개질 때마다 관절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광경을 본 오베르는 헨리의 갑작스러운 횡포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그저 가만히 입만 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뭉개진 열 개의 궐련들.
그래도 헨리는 좀처럼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딱!
오베르에게 걸려 있던 홀드를 해제시켰다.
그러나 오베르는 여전히 망부석처럼 입을 반쯤 벌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쾅!
볼일은 끝났다.
더 이상 얻을 정보가 없다고 생각된 헨리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은 뒤 유유히 독방을 빠져나갔다.
“아, 안 돼…….”
그러나 헨리가 방을 나가건 말건, 오베르에겐 이미 관심 밖의 일이었다.
말랐던 눈물자국에 다시 축축함이 번지며 오베르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오베르는 죽은 자식의 조각난 유해를 끌어모으듯이 먼지로 뒤범벅이 된 짓밟힌 궐련들을 손가락으로 끄집어 모으기 시작했다.
“아아…….”
손에 쥐어지는 한 움큼의 담배 가루들.
오베르의 손에 궐련의 내장들이 쥐였을 때, 그는 마침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서 그것들을 입안으로 가져다 넣었다.
그리고.
……우물우물.
그의 턱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덜컹!
며칠이 지났다. 문 위의 창문이 열리면서 여느 때와 같이 궐련이 가득 든 상자가 독방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토리안은 귀를 기울였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방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설마?’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에 토리안은 황급히 독방의 문을 열어 오베르의 안위를 확인했다.
“젠장…….”
그의 입에서 조그마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길게 뻗어진 혀와 뒤집어진 눈, 그리고 바지로부터 풍겨 나는 지독한 오물 냄새.
결국 오베르는 중독된 약물의 금단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그 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에 토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찌푸린 얼굴을 하고서 한 번 더 오베르의 죽음을 확인한 뒤,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부욱!
그것은 스크롤이었다.
그것도 전소 마법이 내장된 ‘이그니션’의 스크롤.
화르륵!
토리안이 그것을 찢어 오베르의 시체 위에 던져 놓자 곧 스크롤로부터 발동된 마법의 불이 오베르의 시체를 태워 나가기 시작했다.
자작, 자작…….
마력을 머금은 불꽃은 평범한 불꽃처럼 매연도, 그을음도 만들어 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시체를 소각시킬 뿐.
그리고 마침내 오베르가 한 줌의 재가 되었을 때, 토리안이 그것을 발로 흐트러뜨리며 말했다.
“약해 빠진 놈.”
동정심은 없었다.
도리어 생각보다 빨리 죽은 오베르에게 아쉬움이 잔뜩 남아 욕지거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물론 이러한 처리 방식은 사전에 헨리가 일러둔 것이었다.
이윽고 토리안은 다시 한 번 재만 남은 유해를 짓밟아 분풀이를 해 보인 뒤, 오베르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방을 벗어났다.
* * *
“……좀 더 살려 둘 걸 그랬나?”
오베르의 죽음을 전해 들은 헨리의 첫마디였다.
그 또한 토리안처럼 조금도 동정심을 가지지 않았다.
도리어 더 오랫동안 괴롭힐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뿐이었다.
물론 헨리에게 남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고약한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수를 단칼에 죽이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었기에, 비록 잔인해 보일 수는 있었으나 이는 매우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빨리 죽은 것치곤 제법 쓸 만했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원수였지만 그래도 덕분에 몇 가지 쓸 만한 것들을 건질 수 있었다.
‘진화의 알, 아서스의 목적, 그리고…….’
헨리는 책상 위에 놓인 진한 분홍빛을 띠는 토막 한 덩이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저것의 이름은 ‘핑크 스왐프’.
그동안 오베르에게 실험했던 약물들 중 가장 이상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을 고체화시킨 것이었다.
핑크 스왐프는 매력적인 약물이었다.
녀석은 불꽃을 만나는 순간 아름다운 분홍빛 연기를 뿜어냈다.
또한 마약 주제에 한두 번의 흡입으로는 인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데다가 가벼운 편두통까지 치유시켜 내는, 오히려 의료 약품에 가까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진가는 그 무해함에서 배어나는 강렬한 중독성에 있었다.
핑크 스왐프는 흡입하는 그 순간부터 적정량의 알코올을 섭취해야만 그 중독성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적정량의 알코올조차도 꽤나 높은 도수의 알코올만이 중독성을 제거해 주었다. 그러니 핑크 스왐프는 아름다운 늪인 셈이었다.
궐련을 끊기 위해선 독한 술을 마셔야 했고, 독한 술을 마신다 해도 입에는 여전히 핑크 스왐프 특유의 강렬한 중독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체에 무해하니 그 어떤 향초나 궐련보다도 인기가 많을 테지.’
분홍빛 늪.
그래서 헨리는 이 새로운 신종 마약에게 ‘핑크 스왐프’라는 앙증맞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신약의 개발을 마친 헨리는 책상 위에 꺼내 두었던 핑크 스왐프 한 덩이를 다시금 상자에 집어넣었다.
연구실 한편에 빼곡히 들어찬 핑크 스왐프 상자들.
헨리는 이윽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거기에는 꽤나 큼지막한 크기의 항아리가 배 속 가득히 시커먼 액체를 품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부글부글.
그동안 꽤나 오랫동안 모았다.
헨리는 신약을 개발함과 동시에 틈만 나면 칼리번을 방문해 모자란 재료들을 직접 수거해 왔고, 남는 시간에는 파레곤의 회복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그 결과, 헨리는 마침내 500회분의 블랙 티어를 거머쥘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