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살게라의 쥐 (2)
며칠이 지났다.
헨리는 그동안 살게라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새로운 마약의 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결과.
“이히히히…….”
“이젠 문을 열어 놔도 나올 생각을 안 하는군.”
수십 가지의 약물에 중독되어 가던 오베르는 끝끝내 정신을 반쯤 놓은 폐인이 되어 버렸다.
상태는 심각했다.
오베르는 이제 혼자서 사용하던 독방의 문을 열어 놓아도 탈출은커녕, 주기적으로 던져지는 약을 받아먹기 위해 도리어 독방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토리안은 그런 오베르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혐오에 대한 시선은 인간을 볼 때 느끼는 혐오가 아니었다.
가령, 배가 터져 죽은 동물의 사체나 징그러운 벌레를 볼 때 느끼는 그런 종류의 혐오스러움이었다.
그만큼 오베르의 위엄은 이미 지하 바닥을 뚫고 저 멀리 추락해 버린 지 오래였던 것이다.
이윽고 헨리가 독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태는 좀 어떤가요?”
“여전하죠, 뭐. 정신은 반쯤 놨고 약에 대한 금단증세는 더더욱 심해져 가고 있고…… 지금은 방금 전에 약을 해서 그런지 좀 잠잠한 편이에요.”
“그렇군요. 이대로 죽어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좀 곤란한데…… 슬슬 손을 좀 써야겠네요. 토리안 씨, 잠시 자릴 좀 비켜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혹시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면 꼭 불러 주세요.”
헨리의 부탁에 토리안은 익숙한 모양새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윽고 열린 독방에는 폐인이 된 오베르와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는 헨리만이 남게 되었다.
“흐헤헤헤…….”
머리카락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빠져 있었고, 검버섯과 주름은 얼굴의 절반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노쇠하고 영양이 부족함에 따라 치아의 일부가 헐거워졌으며, 반쯤 벌어진 입에서는 맑은 침이 거미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헨리는 그런 오베르를 얼마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너도 나도…… 참 지독한 놈들이야. 이쯤 되면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들 줄 알았는데 말이지…….”
헨리는 말끝을 흐렸다. 말끝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오베르를 보면서도 그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정심, 그리고 인간성.
헨리는 복수를 다짐하면서 전생에 넘치도록 가졌던 ‘사랑’과 같은 따뜻한 감정들을 포기했다.
아니, 포기가 아니라 당연히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어쭙잖게 가슴속에 남겨 두었다간 또다시 전생의 실수를 반복하게 될 테니까.
‘이젠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어쭙잖은 감정들 때문에, 그 말도 안 되는 양심의 저울질과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정의로움 때문에, 수많은 동료들을 허무하게 잃고 말았다.
그렇기에 헨리는 8서클이라는 엄청난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손수 맹독을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는 멍청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철걱.
헨리는 품속에서 한 뼘 정도 되는 크기의 자그마한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오베르의 허벅지에 꽂아 넣었다.
푹!
“…….”
꽤나 힘을 주어 칼을 꽂았다.
그러나 오베르는 조금도 미동하지 않았다.
빙글빙글.
헨리는 오베르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찔러 넣은 칼을 빙글빙글 휘저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베르는 조금도 고통스러워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맛이 갔군.’
약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전에는 움찔거리기라도 했다.
그러나 이젠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곪아 버리고 말았다.
푸슉! 떨그렁!
확인을 마친 헨리는 단검을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런 다음.
“홀드.”
핏물이 솟는 상처 부위에 홀드를 시전해 임시로 지혈했다.
그런 다음 품속에서 분홍빛으로 빛나는 자그마한 물약 하나를 꺼내 그것을 오베르의 입안에 털어 넣었다.
꿀꺽꿀꺽.
울대가 두 번 움직였다.
그러자 마력으로 억지로 지혈되고 있던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어, 어……?”
또한 약으로 이지를 잃었던 오베르의 눈동자에 다시금 생기가 되돌아왔다.
헨리가 오베르에게 먹인 것.
그것은 중급 힐링 포션에 해독제를 섞은 것이었다.
그러나 고작해야 두 개의 포션으로는 뿌리 깊게 박힌 오베르의 약물 중독을 치료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헨리가 원하던 바였다.
“너, 넌……!”
머릿속을 뒤흔드는 약기운이 가시자 오베르는 다시금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헨리가 보였다.
“네, 네놈은 누구냐……!”
오베르는 헨리의 얼굴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직접적으로 오베르를 몰아붙였던 것은 고작해야 아이젠이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편지를 전달받았을 때도 일부러 빛을 등지게 해 얼굴을 볼 수 없게 했다.
그러니 오베르가 직접적으로 헨리의 얼굴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꿀꺽.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칼, 그리고 녹색 눈동자.
척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모가 그의 출신을 예상케 했지만, 오베르 또한 삼대가문 출신이었다.
해독제로 정신이 든 그는, 다시금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악을 끌어 올려 눈빛에 지독한 독기를 띄웠다.
피식.
그러나 헨리는 그저 웃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눈에 힘줘 봤자 궁지에 몰린 생쥐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이마에 선명하게 찍힌 낙인은 더더욱 그를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다.
“누구냐고 묻지 않느냐……!”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오베르는 다시 한 번 쇳소리를 내질렀다.
이에 헨리는 대답 대신 품속에서 조그마한 나무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
익숙한 모양새의 나무 상자.
그것은 궐련이 보급될 때마다 담겨 오던 나무 상자였다.
꿀꺽.
파블로프의 개가 그러하듯 교육된 습관은 무서운 것이었다.
오베르는 잠시 잊고 있었던 나무 상자를 인식하자마자 다시금 온몸이 떨리는 듯했다.
이에 헨리는 말없이 나무 상자를 열었다.
상자 가득히 들어 있는 궐련.
상자 속에는 총 열 개비의 궐련들이 담겨 있었다.
꿀꺽.
동공이 확장되고 가슴이 뛰었다.
코앞의 궐련을 지금이라도 당장 입술 안으로 욱여넣고 싶었다.
결국 금단 현상을 참지 못한 오베르가 헨리의 상자를 향해 본능적으로 몸을 내던졌다.
“……!”
아니,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성을 잃고 몸을 내던지려는 순간, 오베르는 그제야 자신의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이 무슨……!’
정체는 지혈용으로 걸어 두었던 홀드였다.
그러나 헨리는 포션으로 인해 상처가 지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드를 거두지 않았다.
‘대, 대체 어떻게……!’
그러나 오베르가 홀드의 작동 유무를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뜻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자 ‘자신의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뿐이었다.
침이 흘렀다.
근육은 뻣뻣하게 굳어 있는데 몸뚱어리는 궐련을 요구하니 침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헨리가 궐련 한 개비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걸 원하나?”
“어, 얼른! 얼른 나한테 그걸 줘! 얼르으은!”
약을 먹여야 했으니 목 위에는 홀드를 걸어 두지 않았다.
그래서 오베르는 뚫린 입을 마음대로 지껄였다.
이에 헨리는 말없이 손에 쥔 궐련을 손가락으로 부러뜨려 보였다.
“아, 안 돼애애애!”
마치 자신의 팔이 부러지듯, 오베르는 시뻘개진 얼굴을 하고서 목청껏 절규했다.
이에 헨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상자에 든 궐련이 네게 줄 수 있는 마지막 궐련이다.”
“뭐라고오……? 네, 네놈……! 지금 방금 무어라고 했느냐!”
뚝.
“안 돼에에에!”
오베르의 건방진 대꾸에 헨리는 또 한 개비의 궐련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이제부터 멋대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을 경우, 그때마다 궐련을 하나씩 더 부러뜨리도록 하겠다. 그럼 질문을 시작하도록 하지.”
눈알의 실핏줄이 터질 듯이 오베르는 헨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오베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이에 헨리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품속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이 편지, 여기서 알프레드가 너에게 탐내던 것이 뭐지?”
“그, 그건……!”
헨리가 꺼내 든 것은 오래전, 자신이 간수에게 남은 재산 전부와 맞바꾸어 보낸 최후의 편지였다.
이에 오베르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전신의 핏기가 싸악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헨리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궐련 한 개비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가 보는 눈앞에서 다시 한 번 가볍게 부러뜨렸다.
뚝!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차가운 경고였다.
이에 오베르의 두 눈에 가득 했던 실핏줄들이 단풍나무 물들듯이 일순간에 전부 다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빠른 속도로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궐련에 대한 욕구가 머릿속에 가득해지자 상황 파악과 주제 파악을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
잠깐의 침묵.
이에 헨리는 다시 한 번 침묵에 화답해 주었다.
뚝!
“자, 자, 자, 잠깐만!”
또 하나의 궐련이 두 동강 나자, 오베르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에서 침을 튀기며 중지를 요청했다.
이제 남은 궐련은 총 여섯 개비.
그 순간, 오베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알이다…….”
“알?”
“그, 그래……! 그것은 분명히 ‘진화의 알’이라고 불렸다.”
‘진화의 알?’
진화의 알이라니?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자세하게 설명해라.”
다시 한 번 오베르에게 쏘아지는 차가운 물음.
이에 오베르는 남은 궐련 여섯 개비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깟 궐련에 굴복한 스스로에게 분함을 느껴 뜨겁게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알을 얻게 된 것은 나도 우연이었다. 아랫놈들 중에 하나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보물과 함께 뇌물로 바친 것이었으니까.”
사연은 간단했다.
우연찮게 공물로 들어온 그 알은, 알고 보니 정령을 한 단계 더 높은 존재로 진화시키는 일종의 진화의 열쇠라고 했다.
이에 헨리가 물었다.
“하지만 그 알이 진화의 알이란 건 어떻게 알았지?”
“그때 마침 저택에 이더웨더가의 정령사가 있었다. 그 정령사의 정령이 금은보화 속에 파묻힌 알을 끄집어낸 것이다.”
‘그렇군.’
엘라곤과 같은 반응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알프레드의 사람이, 그것도 정령사의 귀에 들어갔다면 필히 정령학자의 감정 또한 거쳐졌을 것이었다.
“사용법은?”
“그것은 모른다.”
뚝.
부정적인 답변. 이에 헨리는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궐련 한 개비를 부러뜨려 보였다.
“저, 정말로 모른다! 그만! 그마아아안!”
예고도 없이 궐련을 부러뜨리는 헨리의 잔인함에 오베르는 미친 사람처럼 목 놓아 절규했다.
그러나 헨리는 그러한 반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정령사도 아닌 놈이니 사용법보다는 알에 대한 가치에 관심을 두었겠지.’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오베르는 원래 머리가 비상한 전략가 출신이었으니까.
‘진화의 알이라…….’
정령의 등급을 한 단계 더 올려 준다는 이계의 알.
흑요석같이 생긴 그것이 알프레드를 회유시킬 수 있을 만큼 큰 가치를 지녔을 줄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좋은 미끼가 되겠어.’
편지를 미리 전달하지 않길 잘했다.
만약 편지를 미리 전달했다면 진화의 알에 눈먼 알프레드가 정말로 살게라를 찾아왔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이제 남은 건…….’
두 장의 편지 중 한 장의 궁금함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이윽고 헨리는 오베르가 ‘아서스’에게 보내려 했던 마지막 편지를 품속에서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