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살게라의 쥐 (1)
살게라로 돌아온 헨리는 곧바로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재료들을 끄집어냈다.
팅, 팅그르르…….
아공간 주머니를 개방하자 가장 먼저 산 채로 얼린 파레곤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각형 얼음 속에 갇힌 도둑 도마뱀 파레곤.
헨리는 녀석을 해동시키기 전에 서둘러 나머지 재료들부터 정리했다.
딱!
정리는 간단했다. 손가락을 한 번 튕겨서 정리 마법을 사용했으면 됐으니까.
정리를 마친 헨리는 이어서 책상 위에 꽁꽁 언 파레곤을 올려놓았다.
“캔슬.”
딱!
언 파레곤에게 명령어와 함께 손가락을 튕기자 그 두껍던 얼음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뀌륵, 뀌륵?
해동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빙결 상태에서 풀려난 파레곤은 다시금 세포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며 뒤바뀐 주위 환경을 파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홀드.”
딱!
그러나 바뀐 환경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파레곤은 눈앞에 서 있는 헨리에 의해 다시금 온몸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고정 마법, 홀드.
헨리는 겁에 잔뜩 질린 채 온몸이 얼어붙은 파레곤을 앞뒤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괜찮네. 이 정도면 오래 버티겠어.”
블랙 티어의 핵심 재료인 파레곤의 꼬리.
꽤 많은 양이 필요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파레곤을 한 마리만 잡아 온 이유는 파레곤의 꼬리가 무한하게 재생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커트.”
서걱서걱!
홀드로 몸이 꼿꼿이 고정된 파레곤의 몸뚱이로부터 다섯 개의 꼬리가 떨어져 나갔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출혈마저도 홀드 마법으로 억제당하고 있었으니까.
“힐.”
이어서 헨리는 파레곤에게 힐을 시전해 상처를 치료했다.
그런 다음 잘린 꼬리들을 조심스럽게 수거하여 본격적인 블랙 티어의 제조에 나섰다.
‘너무 오랜만이라 정확할진 모르겠지만…… 뭐, 대충 맞추다 보면 맞겠지.’
순전한 엄살이었다. 제국에서 가장 머리가 좋았던 남자가 바로 헨리였기에 헨리는 곧바로 블랙 티어 1회분을 제작해 낼 수 있었다.
“음.”
시커먼 액체.
그 거뭇함은 마치 짙은 어둠과도 같아서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마치 손가락이 잘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헨리는 플라스크 속에 담긴 블랙 티어를 유리컵에 옮겨 담았다.
찰랑.
시커먼 색채만큼이나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으윽, 역겨운 건 여전하네.’
말이 좋아 영약이었지 이건 사실 독극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헨리는 이것을 삼켜야만 했다.
‘마셔야만 한다. 마셔서 그 효과를 증명하고 견뎌 내야만 한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헨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긴장의 한숨을 한 번 내쉰 후,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
혓바닥을 기점으로 입안 전체에 퍼지는 알 수 없는 역겨움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구토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등골 전체에 알 수 없는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블랙 티어가 식도를 지나 위장에 도착하는 순간, 헨리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
“크윽!”
쨍그랑!
예고도 없이 찾아온 엄청난 고통에, 헨리는 그만 손에 쥐고 있던 약병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크으윽, 큭……!”
얼굴이 시뻘개졌다. 목구멍이 틀어막히는 듯 했다.
그리고 오한과 함께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시작됐다.
“크흡!”
털썩.
그 엄청난 고통에, 헨리는 그만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지났다.
헨리는 어떻게든 블랙 티어에게 잠식당하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고통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다시 몇 분이 지났다.
전신에 퍼졌던 블랙 티어의 독은 어느새 베놈의 심장에 의해 저지되어 차츰차츰 그 고통의 크기를 줄여 나갔다.
그리고 다시 수 분이 지나자 헨리는 그제야 간신히 폐부로 신선한 공기를 밀어 넣을 수가 있었다.
“프하!”
환희와 같은 날숨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고통이 완전히 잦아든 것을 보아 하니 부작용 억제에 성공한 듯싶었다.
진이 빠졌다.
블랙 티어의 섭취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되자 헨리는 깨진 유리병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1회분이 이 정도라고?”
하마터면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블랙 티어가 주는 고통은 단순한 욕지거리 정도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종류의 고통이었다.
‘차라리 미라클 블루를 한 번 더 먹는 게 낫겠어.’
서클을 두 단계나 향상시켜 주었던 마탑 최고의 영약, 미라클 블루.
그 미라클 블루조차도 원액으로 집어삼켰던 헨리였건만 그에 비하자면 블랙 티어는 악몽과도 같았다.
그러나 고통이 잦아들고 불평불만 또한 줄어 갈 때쯤, 헨리는 심장 속에서 끓어오르는 기묘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고통 때문에 심장이 빨라진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두근거림은 좀 더 원초적인 느낌이었다.
‘마력이 늘었다!’
확실했다.
더욱 진해지고 마력이 팽창한 듯한 느낌.
명상을 통해 끌어모았던 마력 양의 두 배에 달하는, 그런 엄청난 충만함이 서클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망할 놈, 효과 하나는 끝내주네.’
그냥 느끼기에도 가진 마력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현재 가진 마력이 얼마 되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두 배로 불어난 마력은 확실히 어마어마한 효과였다.
그 엄청난 약효에, 헨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효과는 입증됐으니 나머지는 재료가 충분히 모였을 때 한꺼번에 섭취한다.’
현재로써는 고작해야 다섯 병이 한계였다.
그래서 헨리는 파레곤의 꼬리가 충분히 모이고 부가적인 재료들 또한 넉넉히 들여와졌을 때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슬슬 다른 걸 한번 만들어 보실까?”
블랙 티어의 효과에 대한 입증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러니 이제는 블랙 티어가 아닌 새롭게 만들어질 ‘샤하트라 궐련’에 들어갈 ‘새로운 마약’에 대한 개발을 시작하기로 했다.
‘실험용 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분류된 재료들을 집어 든 헨리의 눈빛에 묘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 * *
“대체 언제…….”
독방에 갇힌 죄수는 무척이나 야위어 있었다.
수염은 제멋대로 자라나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또한 보기 좋게 붙어 있던 살집은 어느새 가진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탄력 없는 살결로 뒤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찍힌 반역자의 낙인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듯싶었다.
오베르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굳게 닫힌 문짝에 뚫린 창틀에 시선을 두었다.
며칠이나 흘렀는지 모른다.
단지 하루에 두 번 지급되는 딱딱한 빵 쪼가리와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게 해 줄 뿐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이미 두 번의 식사 배급이 끝난 상태였다.
매질은 어제 끝났고, 원수가 된 가족들과의 합방은 그저께 끝났다.
오늘은 두 번의 식사가 지급된 걸 제외하면 온종일 딱딱한 독방에 갇혀 있었다.
“대체…… 언제쯤…….”
힘들고 괴로웠다.
주기적으로 가해지는 매질 때문에 전신이 피멍으로 뒤덮여 있어 이젠 바닥에 제대로 드러눕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베르는 이를 악물고 견뎠다.
간수에게 주었던 편지에 대한 화답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덜덜덜덜.
그런데 갑자기 오베르의 이가 떨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추위라면 충분히 적응되어 이제는 추운 것도 잘 모를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치아가 미친 듯이 떨릴 때가 있었다.
떨림은 손가락으로까지 전달되었다.
그리고 곧 온몸을 떨게 했다.
오베르는 둥글게 말았던 무릎을 펴고 어둠 속에 손을 휘저으며 바닥을 더듬었다.
“어, 어디 있어……? 어, 어디에……!”
무언가를 급하게 찾는 손길.
지푸라기처럼 마른 손가락은 손톱에 먼지가 끼든 말든 급하게 냉골을 더듬었다.
달칵.
어둠 속을 휘젓던 끝에 오베르는 자그마한 나무 상자 하나를 손끝에 쥘 수 있었다.
그리고 황급히 그것을 열어 속을 더듬었으나 절망스럽게도, 손끝에 잡히는 건 텅 빈 공허함뿐이었다.
“아, 안 돼……!”
악착같이 버텨 오던 오베르의 입에서 처음으로 절망 어린 탄식이 나왔다.
박박박박박!
“아, 안 돼! 안 된다고! 이럴 순 없어!”
이윽고 오베르는 희미해진 눈동자에 악을 번뜩이며 상자 밑바닥을 손톱으로 긁어 대기 시작했다.
박박박박!
“이럴 순 없다고!”
떨그렁!
급기야 상자를 벽면에 집어 던지는 오베르.
덜덜덜덜덜…….
오베르의 떨림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이에 오베르는 곤죽이 된 몸뚱어리를 이끌고 자그마한 창틀이 난 철문으로 다가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이, 이봐!”
쾅쾅쾅쾅!
“떨어졌어! 여기 궐련이 떨어졌다고오!”
쾅쾅쾅쾅!
흡사 광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베르는 맹수에게 쫓기는 절박한 사람처럼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빛 한 점 허용치 않던 창틀이 열리더니 자그마한 나무 상자 하나가 방 안으로 던져졌다.
덜그럭!
빈 상자와는 다르게 묵직함이 느껴지는 상자였다.
상자가 방 안으로 던져지자마자, 오베르는 굶주린 짐승처럼 상자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상자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담긴 집게손가락만 한 궐련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부, 불……!”
마른 입술에 궐련이 찐득하게 달라붙었지만 오베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냥을 찾았다.
그리고 오베르는 마침내 어둠 속을 더듬어 방 안 한구석에 던져진 성냥갑을 주워 불씨를 피워 올렸다.
치이익!
“쓰으으읍……!”
깊숙이 삼켜지는 궐련.
그리고.
“파흐아아아…….”
오베르의 입에서 궐련의 연기가 내뿜어지자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던 몸뚱어리가 거짓말처럼 안정을 되찾았다.
“스으읍…….”
빠르게 흡입되는 두 번째 연기.
두 번째 연기가 폐부를 한 번 훑고 나왔을 때가 되어서야 오베르는 자신의 손톱이 깨지고 피가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알 게 뭐야…….”
그러나 그까짓 상처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나른했다. 그리고 점점 더 졸음이 몰려왔다.
“스으으읍…….”
그렇게 몇 번의 흡연을 반복한 끝에, 오베르는 자리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 * *
그리고 얼마 뒤의 일이었다.
끼이이익, 철컥!
굳게 닫혀 있던 독방의 문이 열렸다.
환하게 터져 나오는 빛.
그리고 빛을 등지고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다름 아닌 헨리와 토리안이었다.
이에 토리안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와 쓰러져 잠든 오베르의 상태를 살폈다.
“잠들었네요.”
“이번엔 얼마 만에 잠들었죠?”
“최단기간이었습니다.”
“그래요? 이번에 만든 건 약발이 좀 엉뚱하네요. 환각 증세도 안 보이는 것 같고. 영 쓸모없는 게 비율을 조정해서 다시 한 번 만들어 봐야겠어요.”
“남은 궐련은 어떡할까요?”
“가지고 온 걸로 바꿔 놓으세요.”
헨리와 토리안은 익숙하게 궐련을 수거했다.
어차피 궐련이 바뀌어도 오베르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녀석은 이미 헨리가 만든 수십 가지 종류의 마약에 찌든 하잘것없는 ‘약쟁이’에 불과했으니까.
오베르는 실험용 쥐였다.
헨리의 개발품을 테스트 할 실험용 쥐, 모르모트.
죄책감은 없었다.
고작해야 마약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느꼈다면 애초에 복수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을 테니까.
물론 그것은 토리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거, 녀석의 더러운 욕심 때문에 그의 혈육을 포함한 사랑하는 이들을 얼마나 많이도 떠나보냈던가?
* * *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빛에, 오베르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나른함이 온몸을 지배했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빛이야말로 오베르에게 있어 가장 절실하고 그리워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오베르가 말라붙은 입술을 달싹거리기 위해 조그맣게 입을 벌렸다.
그러자.
“음? 아직 안 쓰러졌었네?”
우연찮게 궐련을 수거하던 토리안과 눈이 마주쳤다.
부러진 손톱과 죽어 가는 얼굴, 그리고 분명하게 살려 달라고 움직일 것 같은 입술.
그러나 토리안은 그런 오베르의 얼굴을 보자마자 여느 때와 같이 행동했다.
“카악, 퉤!”
오베르의 미간에 흐르는 가래침.
그것이 토리안이 오베르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