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18화 (118/522)

# 118

재림 (4)

섬뜩.

헨리는 순간, 자신의 몸이 세로로 갈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두 손으로 검날을 받쳐 방어 자제를 취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엄청난 기세로 떨어지던 헥터의 검이 만들어 낸 주마등 같은 착각 말이다.

꿀꺽.

헨리는 코앞에 드리워져 있는 거대한 투 핸디드 소드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손잡이를 쥐고 있던 오른손이 미약하게 떨고 있음을 뒤늦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씨익.

미소 짓는 붉은 안광.

이내 곧 헥터가 검을 거두었다.

“그동안 마냥 놀지만은 않았나 보군.”

가벼운 칭찬.

그러나 헨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 정도 격차란 말인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번 대련은 정식적인 대련이 아닌 단순한 실험용 대련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헨리는 헥터의 검날이 맞닿아 있던 자신의 칼날을 살핀 후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검날이 짓누른다는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건만 헨리의 칼날이 반쯤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러를 거두는 헥터.

이에 헥터가 말했다.

“많이 놀랐나 보군. 하긴, 정식으로 칼을 맞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놀랄 만도 하지.”

“……누가 놀랐다고 그래?”

“어린애 같은 변명은 집어치우는 게 어때? 그나저나 이 쇳덩어리로 된 몸, 죽기 전에 쓰던 살덩어리보다 훨씬 더 가볍고 좋은 것 같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죽었다가 부활할걸 그랬어, 큭큭.”

“더 가볍다고?”

“느낌이 그래. 적어도 이 몸에선 근육이나 신경 같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헥터는 진심으로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런 것이 인간이었던 시절에는 근육이나 신경 같은 육체의 한계를 고려하여 몸을 놀렸지만 영적인 상태가 된 지금, 헥터에게 있어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방금 전에 그 동작, 도저히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움직임이긴 했지.’

어쩌면 헥터는, 인간의 육체를 초월하는 새로운 육체를 얻었기에 또다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걸지도 몰랐다.

‘데스 나이트가 부럽긴 또 처음이군.’

그리고 헨리는 그런 헥터의 감상을 들으며 일순간이나마 부러움을 느꼈다.

이제는 헨리도 오러를 터득하였으니 더 강한 힘을 추구하는 어엿한 한 명의 검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헨리가 말했다.

“새로운 몸에 대한 감상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좀 어때? 아까 보니 전혀 방어를 하지 않던데. 그 정도로 내 오러가 형편이 없었나?”

가장 의뭉스러운 행동이었다.

아무리 헥터가 헨리에 비해 압도적이고 단단한 오러를 가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무런 방어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헨리로선 자존심이 상할 만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헥터가 대답했다.

“아니, 그 반대다.”

“뭐?”

“너무 신선하고 주제넘은 오러였기에 오히려 방어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검으로 너의 공격을 막아 냈다면 네 오러의 온전한 힘을 맛볼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온몸으로 맛본 내 오러에 대한 감상은?”

“훌륭했다.”

“훌륭하다니?”

“요리로 따지자면 질 좋은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리 솜씨가 엉망이었지.”

“조리 실력이야 요리사가 연습하면 될 일이고, 아무튼 재료는 좋다는 말이로군.”

“과분할 정도로 좋지. 보통의 오러가 닭고기라는 기준하에 쇠고기라는 등급을 매겨 준 거니까. 심지어 양은 닭고기보다도 훨씬 많은 게……. 나 참, 네놈의 오러를 보고 나니 배가 다 아플 지경이야. 이런 게 바로 타고난 재능이란 건가?”

헥터는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있었다.

무릇 모든 검사들이 가장 탐내는 것은 다름 아닌 힘.

그런 근본적인 힘에서부터 보통의 힘과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 주고 있었으니 당연히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중간부터 오러의 출력량이 엄청나게 늘어나던데, 역시 네놈의 오러는 네가 가진 마력에 영향을 받는 것이 분명해. 오러의 출력량이 늘어났을 때 네 심장의 서클이 빠르게 회전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거든.”

이 또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헥터에 의해 확증을 받자 한결 가벼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마력과 오러, 두 가지를 모두 단련해야겠군.”

“그 또한 여러 가지 실험이 필요하겠지. 순수하게 마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오러의 양이 늘어나는지, 오러가 단련될수록 네가 가진 마력 또한 단련이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야.”

두 사람의 문답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결국 토론의 끝은 마력과 오러, 두 가지를 모두 단련하는 쪽으로 굳혀졌다.

“이거, 평범한 오러였다면 정석대로 가르치면 되겠지만 너의 오러는 나도 난생처음 보는 것이니 함부로 손대기가 좀 그렇군.”

“그냥 가르치면 되지 않나?”

“허튼소리! 잘못된 교육법만큼이나 해로운 것도 없다. 어찌 됐든 한동안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너에게 맞는 수련법을 찾는 게 좋겠어.”

“그래? 그렇담 어쩔 수 없군. 따로 훈련법을 찾아보는 수밖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고. 또 부탁할 일이 있나?”

“없어. 이게 다야.”

“흠, 그렇다면 한동안은 탐구가 필요할 테니 수업은 좀 미루어야 되겠군. 헨리, 혹시 이 근처에 내가 마음껏 날뛸 수 있을 만한 곳을 알고 있나?”

“날뛸 만한 곳?”

“전생의 육체보다 훨씬 좋다고는 하나, 아직은 어색해서 말이야. 뻣뻣해진 몸도 좀 풀어 줄 겸, 간만에 마음껏 칼질을 좀 하고 싶기도 하고.”

“이봐,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너 정도 되는 검사가 마음껏 날뛸 곳이라니? 그런 곳이라면 칼리번의 마물의 숲 정도는 되야…….”

터무니없는 말에 헨리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런데 손을 내저으려던 찰나, 누군가가 헨리의 바짓가랑이를 끌어당겼다.

“음?”

그것은 클레버였다, 그것도 고양이로 변신한.

고양이로 변신한 새하얀 클레버가 자그마한 앞발로 헨리의 바짓가랑이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주인님! 제가 알고 있어요! 헥터 님께서 마음껏 날뛰어도 되는 곳을 말이에요!

“그런 곳이 대체 어디에…… 아!”

그 순간, 헨리의 머릿속에 클레버와 같은 장소가 떠올랐다.

“거기가 있었군.”

“거기? 그리고 이 고양이는 대체 뭐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헥터.

헨리는 그런 헥터에게 가볍게 미소 지으며 헥터와 함께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 * *

헨리는 헥터와 함께 칸에 인접한 샤하트라 산맥에 도착했다.

무더운 햇볕.

하지만 사막의 땡볕보다는 한결 나은 곳이 바로 샤하트라 산맥이었다.

헨리는 산림이 울창한 산맥에 도착하자마자 클레버를 소환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헥터가 말했다.

“여긴 어디지?”

“이곳의 이름은 샤하트라 산맥이다.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막 왕국 샤하트라는 이 거대한 산맥에 둘러싸인 곳이거든.”

“그거랑 내가 날뛸 곳이랑 무슨 상관이지?”

“이곳은 사람이 출입하지 않고 사막과 인접해 있어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그렇군. 무슨 이유로 날 여기로 데려온 건지 잘 알겠어.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 고양이는 대체 뭐야?”

“내 권속들 중 하나다. 클레버라는 이름을 가진 미믹이지.”

“미믹?”

“그래, 네가 이곳에서 난동을 피울 동안 네 뒤치다꺼리를 해 줄 녀석이기도 하지. 이를 테면 마물의 사체 같은 것들 말이야.”

“호오, 생각보다 편리한 녀석이었군?”

“그리고 미리 말해 두겠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정상 근처에 있는 안개에는 발을 들이지 마라. 그곳은 왕궁 제사장들이 일부러 결계를 쳐 놓은 곳이니까.”

“알겠다.”

“해가 질 때쯤에 다시 오도록 하지. 그때까지 난 낭비한 마력을 수급해야 돼서 말이야.”

과거에 산맥을 넘은 직후, 가끔씩 클레버는 산맥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치곤 했다.

그곳에서 흡수한 사체들의 맛을 잊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헨리는 토벌을 포함한 각종 준비로 여유가 없어 끝끝내 클레버를 산책시켜 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헥터 덕분에 미뤄 오던 산책을 해결할 수 있게 되어 헨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그럼 그동안 난 마력 수급이나 해 보실까?’

우연찮게 클레버의 산책과 헥터의 바람을 한 방에 해결하였다.

이에 헨리는 그동안 미뤄 두었던 마력 수집에 나서기로 했다.

왕궁에서 루미놀의 발찌를 되찾은 직후, 헨리는 최대한 시간을 활용하여 숨겨 둔 나머지 장신구들 또한 되찾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지.’

대지의 마력을 흡수하는 루미놀의 발찌.

바람의 마력을 흡수하는 실디아의 팔찌.

태양의 마력을 흡수하는 샤이널의 귀걸이.

달빛의 마력을 흡수하는 무니아의 귀걸이.

모두 한 쌍으로 이루어진 물품이었다. 또한 헨리가 전생에 반드시 착용하고 있던 물품들이기도 했다.

헨리는 다시 한 번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라의 탑으로 이동했다.

비틀.

탑 꼭대기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어지럼증이 도지는 헨리.

‘역시 너무 낭비했어.’

아이젠을 후작으로 올렸고 마력과 연동되는 오러의 힘을 터득하였으니 이젠 좋든 싫든 반드시 여유분의 마력들을 모아 두어야만 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뙤약볕.

헨리는 라의 탑 중앙에 주저앉은 뒤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휘오오오!

귓가를 스치는 높은 탑의 바람 소리.

정신 집중의 대가인 헨리는 금방 무아지경 상태에 이르렀다. 무아지경에 이르게 되면 정신이 마치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된다.

헨리는 자신이 구축한 자그마한 우주 속에 스스로를 밀어넣었다. 그러자 발목과 손목, 그리고 귀에 착용된 세 가지의 장신구들이 샤하트라의 태양과 바람, 그리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신성한 석탑의 기운과 공명하여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클을 만들어 냈다.

산뜻했다.

무더운 뙤약볕 아래에 있음에도 헨리는 전혀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높은 석탑 특성상 끊임없이 바람이 휘몰아치건만 헨리의 머리카락은 마치 애기풀이 손을 흔드는 것처럼 살짝 흔들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반나절이 흘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더웠던 태양이 지고 곧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운 밤이 찾아왔다.

그리고 헨리는 눈을 떴다.

스스로가 만든 우주 속에서 헤엄쳐 나와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후우우…….”

길게 내뿜는 날숨.

그 안에는 만족스러운 후련함이 녹아 있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고작해야 반나절이었다.

그런데 그 반나절 동안 회복된 마력의 양은 일전에 속삭임의 호수에서 수급했던 것보다 네 배나 더 많은 양이었다.

실로 엄청난 수확량이었다.

게다가 이젠 밤이 되었으니 태양 빛을 흡수하는 샤이널의 귀걸이 대신 달빛을 흡수하는 무니아의 귀걸이가 작동되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좋겠지만, 일단은 데리러 가야겠지.’

무려 반나절이나 산책을 맡겼다.

이에 헨리는 한결 가벼운 몸짓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해 헥터가 기다리고 있을 샤하트라 산맥으로 이동했다.

“헤, 헨리!”

“음?”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헥터가 먼저 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헥터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무슨 일이지?”

우왕좌왕하는 헥터.

이에 헥터는 비대한 두 손을 모아 보이며 헨리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음?”

헥터의 손바닥에는 사람 머리 크기 정도 되는 알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에 헥터가 사뭇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헨리, 너의 고양이가 알이 되었다.”

“알……이라고?”

그것의 정체는 클레버였다.

그런데 클레버가 알이 되었다니?

헨리 또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헥터가 허둥지둥 사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네가 떠난 직후 몇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마물들을 도륙하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클레버는 내 뒤를 줄곧 쫓아오며 마물들을 치워 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녀석의 몸이 밝게 빛나면서 이렇게 알이 되어 버렸다.”

조금의 거짓도 과장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나열이었다.

헥터의 말을 전해 들은 헨리는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알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난 또 뭐라고. 헥터, 너무 걱정하지 마라. 클레버는 지금 진화를 시작한 것뿐이니까.”

“진화……라고?”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벌써 진화를 시작할 줄은 몰랐군. 대체 마물들을 얼마나 잡은 거야?”

“마물들? 굳이 헤아려 보진 않았지만 대충 오백여 마리 정도?”

“……그렇군.”

반나절 동안 베어 낸 숫자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숫자.

하지만 그 정도 양이라면 충분히 클레버가 진화를 시작할 만도 했다.

이에 헨리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알을 살피는 헥터를 보며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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