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두 번째 각성 (3)
화염이 폭발하고 번개가 치며 얼음덩어리들이 부서졌다.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은 헨리가 설치한 수십 수백 개의 대형 살상 마법들로 끊임없이 번쩍였다.
그 공간 속에는 오로지 살육과 파괴, 그리고 허무하게 붙잡힌 베네딕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들이 클레버의 배 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살육의 현장 속에서도 클레버는 한없이 평온한 표정으로 베네딕의 죽음을 기다렸다.
타닥.
베네딕을 방심시키기 위해 허공으로 떠올랐던 헨리는 이내 곧 바닥에 착지하여 두 사람을 내려놓았다.
그후 클레버에게 물었다.
“아프냐?”
-전 괜찮아요, 주인님.
“그래, 베네딕이 죽으면 말해라.”
-네!
기이한 일이었다.
클레버의 배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재앙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정작 그 배 속의 주인인 클레버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클레버를 보며 헨리는 생각했다.
‘체스트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게 될 줄은 몰랐군.’
보통의 미믹이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클레버는 마물들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진짜 마계 출신’.
현재 클레버의 배 속이라고 일컬어지는 파괴의 장소는 다름 아닌 헨리가 아공간 대용으로 쓰고 있는 체스트 속이었다.
체스트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언뜻 보면 차원의 틈을 비집어 수납공간을 창조해 내는 아공간과 그 성질이 비슷해 보이기는 하나 엄밀히 말하자면 미믹이 가진 신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체의 일부라고 해서 체스트가 미믹의 살갗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체스트는 아공간처럼 차원의 틈을 비집고 생겨난 공간, 하지만 그 공간의 크기는 클레버가 가진 힘에 영향을 받았으므로 어느 정도 한계점을 지닌 실체가 있는 공간이었다.
헨리는 그 공간 속에 들어가 미리 함정을 파 두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살육 마법이 가득한 함정을 말이다.
고양이로 변신한 클레버는 바닥에 앉아 조용히 폭발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생각 외로 설치한 마법들이 너무 많았던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이윽고 폭발이 잦아들자, 눈을 감고 있던 클레버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주인님.
“그래, 결과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뭐?”
당연히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베네딕은 살아 있었다.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이었다. 헨리는 그 질긴 목숨에, 차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퀴벌레 같은 놈.’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베네딕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헨리가 클레버에게 말했다.
“직접 처리하겠다. 길을 열어라.”
-네, 주인님!
고양이의 형체가 일그러지면서 사람 크기만한 포탈이 생성되었다.
이윽고 헨리는 클레버가 안내하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긴가?’
걸음을 많이 옮길 필요도 없었다. 금방 베네딕이 있는 체스트 속에 도착하자 클레버는 베네딕을 집어삼켰을 때와는 달리 손수 배 속을 밝혔다.
빛이 환하게 드리워진 체스트.
그 중심에는 넝마가 된 옷과 온몸 곳곳이 상처로 가득한 베네딕이 사력을 다해 가물거리는 생명의 불씨를 유지하고 있었다.
헨리를 발견한 베네딕이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네노오옴……!”
“그 많은 마법 포격을 맞고도 살아남다니……. 역시 무신은 다르다는 건가?”
“절대로,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누가? 네가 나를?”
“검을 뽑아라!”
츠캉!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온 베네딕은 목소리에 노기를 잔뜩 띤 채 허리춤의 쌍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 가득히 타오르는 베네딕의 푸른 오러.
그것을 본 헨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뭐라고!”
“잠시 잊은 모양인데, 난 본업이 마법사인 사람이다.”
짝!
대답과 함께 손뼉을 치는 헨리.
그러자 헨리의 주위로 무수한 마법진들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살아남는다면 친히 검을 뽑아 주마.”
짝!
콰과과과과광!
헨리는 다시금 손뼉을 쳤다.
그러자 언제든지 발동을 대기하고 있던 무수한 마법진들이 보랏빛 광명을 번뜩이며 두 번째 마법 포격을 시작했다.
비틀.
‘……이거, 한동안 마력 수집에만 힘을 쏟아야겠군.’
베네딕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막대한 양의 마력들이 소모됐다.
헨리는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마력량에 잠시 어지러움을 느껴 비틀거렸지만 이 정도 투자로 베네딕을 조용히 처리할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슈아악!
“……!”
마법 포격으로 인해 잿빛 연기가 체스트 안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이 연기가 걷힐 때쯤이면 당연히 베네딕 또한 죽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긴장이 조금 느슨해지려던 찰나, 헨리의 눈앞으로 주황빛 화염이 쏘아졌다.
“매직 실드!”
챙캉!
헨리는 가장 기본적이되 가장 캐스팅이 빠른 매직 실드를 시전했다.
튕겨 나간 것의 정체는 곡도였다. 그것도 라의 화염이 둘린 베네딕의 곡도.
헨리의 매직 실드에 곡도는 튕겨 나갔지만 검날에 붙은 라의 화염이 매직 실드 전체에 옮겨붙기 시작했다.
‘이런!’
매직 실드 덕분에 머리통에 구멍이 나는 불상사를 면할 순 있었지만 후폭풍으로 남은 화염의 파괴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에 헨리는 서둘러 매직 실드를 해제하며 불꽃이 태울 대상 자체를 없애 버렸다.
비틀.
‘젠장…….’
라의 불꽃을 견뎌 내기 위해 순식간에 막대한 양의 마력이 소모되었다.
헨리는 이에 다시 한 번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 포격 또한 중단되었다.
“내가 그리 쉽게 죽을 줄 알았더냐!”
부우웅!
자욱한 잿빛 연기 사이로, 이번에는 곡도가 아닌 베네딕이 튀어나왔다.
엄청난 생명력이었다.
그 정도 수준의 마법 포격이었다면 제아무리 강력하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즉사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베네딕은 끝끝내 살기를 띠고서 헨리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젠장, 하필이면 지금!’
헨리는 연기 사이로 튕겨 나오는 베네딕을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려던 찰나,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두통 때문에 몸을 제대로 틀어 내지 못했다.
촤아악!
화살처럼 쏘아진 베네딕은 아슬아슬하게 헨리의 옆구리를 베어 내고 저만치 멀어졌다.
피가 튀었다.
그리고 옆구리에 화끈한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제기랄…….”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다 잡은 줄로만 알았던 바퀴벌레가 최후의 최후까지 발악하여 자신의 몸에 상처를 냈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허억…….”
그러나 말 그대로 베네딕은 죽어 가고 있었다.
그는 한 자루뿐인 검을 손에 쥐고서 죽을힘을 다해 헨리를 노려보았다.
‘크윽, 이 이상의 마력 사용은 독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보통의 마법사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양의 마력들을 쏟아부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의 마력 소모는 오히려 헨리에게 있어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것뿐인가?’
스캉!
검을 뽑아 드는 헨리.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결국 남은 것은 검술뿐이었다.
“허억, 허억……. 흐흐흐, 마법사니 뭐니 하더니…… 크흐흐흐…….”
그리고 검을 뽑아 드는 헨리를 보며 베네딕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헨리가 검을 들게 했다고 생각하여 몹시 통쾌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는 너도 더 이상 한계인 것 같군.”
“허억…… 허억…… 네놈 따위……! 라의 힘이 없어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과연 사막의 무신다운 정신력이었다.
그는 더 이상 라의 권능은커녕 오러조차도 겨우 끄집어내고 있는 주제에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약하게 뿜어지는 베네딕의 오러. 그 양은 마치 익스퍼트 유저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헨리의 상태 또한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크윽, 상처가…….’
겨우 회피해 냈다고는 하지만 오러가 실린 일격이었다.
옆구리의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었기에 헨리는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남은 마력 전부를 옆구리에 쏟아부어야만 했다.
‘……시간이 얼마 없겠어.’
지혈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용되는 마력의 양 또한 점점 더 늘어만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칼을 채 뻗기도 전에 먼저 기절하는 쪽은 헨리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절체절명의 상황.
두 사람 다 칼날 위에서 위태롭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먼저 끝낸다!’
그래도 베네딕보다는 상황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에 헨리는 먼저 헥터 스텝을 사용하여 순식간에 베네딕과의 거리를 좁혔다.
챙캉!
두 개의 검이 맞부딪혔다.
하지만 압도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러가 없는 헨리의 검은 미약하게 실린 베네딕의 검을 압도적으로 밀어내지 못했다.
‘이런!’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압도적으로 밀어낼 줄로만 알았던 헨리의 검은 오히려 종이가 갈라지듯이 오러가 실린 베네딕의 곡도 끝에 한 뼘 정도 크기로 갈라지고 말았다.
분했다.
고작해야 익스퍼트 수준의 양인데도 불구하고 오러를 터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검을 맞겨룰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흥!”
흐르는 핏물에 한쪽 눈을 감은 베네딕은 이어서 몸체를 회전시켜 검을 휘둘렀다.
부웅!
곡도의 끝이 아슬아슬하게 헨리의 머리칼을 잘라 냈다.
두 사람은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거리를 벌릴수록 격렬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그럴수록 생명의 불씨가 더더욱 빨리 타들어 감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원이 자연스럽게 포개졌다.
헨리와 베네딕은 어떻게든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 살기를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눈앞이 희미해질수록 살기는 더더욱 또렷해졌다.
‘개 같은 놈!’
쓰러질 듯하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베네딕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얄미웠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칼날을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는 걸 헨리는 알고 있었다.
‘한 번,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하지만 강철조차 잘라 내는 오러에 대항하기 위해선 자신 또한 칼끝에 마력을 응집시켜 내야만 했다.
헨리는 옆구리에 두르고 있던 마력을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울컥!
억지로 틀어막고 있던 옆구리의 마력을 거두어 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를 한 움큼 울컥 토해 냈다.
눈앞이 아찔했다. 하지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헨리는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도 어떻게든 검날에 마력을 응집시켜 내야만 했다.
쉬이이이……!
몸 곳곳에 연기가 났다.
몸에 과부하가 일어날 정도로 마력을 소모한 탓에 신체가 버텨 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유지해야만 했다.
그 필살의 정신력에, 베네딕 또한 본능적으로 최후의 수를 예감했다.
“받아 주마, 네노옴……!”
촛불은 꺼지기 전이 가장 밝게 타오른다.
베네딕의 오러가 그랬다.
베네딕은 목숨을 좀먹고 있던 푸른 불꽃을 더욱더 화려하게 피우기 위해 간신히 두 발을 지탱하고 있는 생명력까지 끌어모아 더더욱 크게 오러의 크기를 늘렸다.
그리고.
콰아아앙!
두 개의 검이 격돌했다.
그러자 거대한 충돌 음이 체스트 전체를 가득히 메웠다.
“흐아아아아!”
“으아아아아!”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것들이 체스트 가득히 울려 퍼졌다.
누구 하나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격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마력을 끌어모아 응집시켰다고 한들, 무신의 오러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힘이었다.
‘제길! 제길! 제길!’
봇물처럼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온몸에 연기가 나고 눈알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검날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하였다.
‘절대로,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절대로 여기서 죽을 수 없단 말이다!’
인정하기 싫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검날을 가르는 베네딕의 곡도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두 동강 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코앞에 보이는 듯했다.
더 이상 마력도 무엇도 끌어낼 수 없는 이 처절한 상황 속에서, 헨리는 맹독을 집어삼키고 처형장 앞에 무릎 꿇었던 과거의 비참한 말로가 떠올랐다.
“흐아아아아!”
목구멍에서 핏물이 끓어오르면서 최후의 취후까지, 젖 먹었던 힘까지 쥐어짜 냈다.
그리고 그 순간, 헨리의 눈앞이 새하얗게 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