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양동작전 (4)
콰과과과!
번개처럼 번쩍인 푸른색 검기는 이윽고 거대한 채찍처럼 베네딕에게로 휘둘렸다.
“이런!”
그리고 반의 검기가 베네딕의 코앞에 닥쳤을 무렵, 베네딕은 그제야 무엇인가가 잘못됐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쾅!
베네딕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춤의 쌍검을 들어 몸을 보호했다.
간발의 차이였지만 그 덕분에 반의 검기에 휩쓸리는 꼴사나운 불상사는 면할 수가 있었다.
‘이 무슨……!’
놀라운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들어 올린 쌍검을 내리자마자 분노와 놀라움, 그리고 부끄러움이 동시에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위험했다.’
게다가 꼴이 우습든 말든 만약 검을 뽑지 않고 끝까지 여유를 과시했더라면 분명히 큰 부상을 입었을 게 분명했다.
피식.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반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헐레벌떡 쌍검을 들어 몸을 보호하려는 베네딕의 모양새가 몹시 우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에 베네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놈이구나.”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이에 반이 말했다.
“계속 재미만 찾다간 또 망신당할 텐데.”
“장난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이것 하나는 인정해 주마. 네놈이 저기에 쓰러져 있는 두 놈들보다 낫다는 것.”
“당연한 말씀을.”
“그럼 나도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줘야겠지.”
검을 바로 잡는 베네딕.
여태껏 방어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검을 사용한 적이 없었던 베네딕이었기에 그가 검을 쥐자마자 공기가 뒤바뀌는 듯했다.
‘그럼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번 볼까?’
과거에는 분명히 반의 실력이 한 단계 더 위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단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두 사람이기에 그 결과는 섣불리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에 반 또한 겨눔세를 취했다.
격돌하는 두 개의 살기.
두 사람의 어마어마한 살기 덕분에 이글거리던 주변의 공기가 조금은 식는 듯했다.
“간다.”
먼저 움직이는 베네딕.
선공을 양보하던 그가 먼저 움직였다는 뜻은 그가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베네딕은 모랫바닥에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이동 기술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반과의 거리를 좁혀 냈다.
자세를 취하는 반.
기초적인 제국 검술의 초식이었다.
반은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원을 바닥에 그려 냈다.
서클 스텝이었다.
‘쌍검술은 방어보다는 공격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되 거리를 넓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녀석을 상대하기엔 더 편리하다.’
이미 몇 번이나 검을 섞어 본 사이였다.
물론 베네딕은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데다가 젊은 자신의 외견을 보고 방심할 것이 분명했다.
반은 그 점을 노리기로 했다.
이윽고 베네딕이 반의 원 안으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슈캉!
사위를 가로지르는 반의 검.
베네딕이 원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반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검은 횡축을 그음과 동시에 주특기인 검신 늘리기를 선보였다.
‘……!’
최선의 공격은 최고의 방어라고 했다. 그것이 쌍검술의 맹점이기도 했고.
그런데 자신보다 한 박자 더 빠르게 공격이 들어오자 베네딕은 황급히 신체의 궤도를 틀어 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자신보다 먼저 공격해 들어오는 것. 그것이 바로 쌍검술과의 교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베네딕은 몸을 비틀어 내자마자 바닥에 손을 짚은 뒤 뒤편으로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그러나 반은 베네딕에게 여유를 줄 생각이 없었다.
슈캉!
가까스로 균형은 잡았지만 쉴새없이 쏟아지는 속공에 연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뒤로 이동하는 내내 반은 계속해서 원을 그려 내며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서걱!
간발의 차이로 회피해 내던 베네딕. 그러나 마침내 반은 베네딕의 살갗을 베어 내는 데 성공했다.
‘크윽!’
베네딕은 살갗을 베이자마자 오른발을 들어 반을 걷어차려고 했다.
이에 반 또한 왼발을 들어 베네딕의 앞 차기에 똑같이 응수했다.
맞부딪치는 두 개의 발.
콰앙!
오러가 둘둘 뭉친, 그 거대한 충돌에 두 사람은 불가항력으로 거리가 벌려질 수밖에 없었다.
“후우…….”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는 동안 조금이라도 여유를 주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반은 턱선을 따라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쳐 낸 뒤 다시금 자세를 취하며 베네딕에게로 칼끝을 겨누었다.
베네딕이 베인 곳은 다름 아닌 팔뚝이었다.
이에 팔뚝과 함께 찢어진 옷깃을 보며 베네딕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제법이구나, 애송이.”
“과찬의 말씀을.”
분노하였다고는 하나,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수준을 맞추어 준다고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정을 봐줄 생각은 아니었다.
더불어 쌍검술에 대해 이렇게 안정적이고 수준급으로 대처해 낼 줄도 몰랐다.
‘내가 완전히 잘못 보고 있었던 모양이로군.’
이쯤 되자 베네딕은 자신의 안일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입 밖으로 복잡한 심경들이 날숨이 되어 토해졌다.
‘여흥은 여기까지 즐겨야겠어.’
몇 번의 이변은 도리어 흥미를 식게 했다.
이에 베네딕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결심을 마친 베네딕은 쌍검을 들어 올려 진정한 라의 힘을 발현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아아악!”
“진열을 맞춰라!”
멀찍이 떨어져 있는 전장에서 들려져 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것은 슐라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분명히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할 슐라의 목소리에서 짙은 다급함이 느껴졌다.
‘이 무슨?’
전장에서 아무리 많은 변수가 일어난다지만 지금 일어날 수 있는 변수는 고작해야 눈앞의 반이 등장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슐라의 다급한 목소리에, 베네딕은 황급히 사막의 눈을 시전하여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살폈다.
‘저건……!’
사막의 눈에 포착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포위군에 묶여 있어야 할 샤하의 군사들이었다.
* * *
샤하를 둘러싼 포위군의 전령 리샤는 여느 때와 같이 샤하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하여 칸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도 보고서의 내용은 별다를 게 없었다.
샤하의 수뇌부는 끈질기게 버티고 있긴 했지만 곧 있으면 알아서 항복할 것 같다는 그런 종류의 보고서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도에 보고서를 전달한 리샤는 곧바로 포위군으로 복귀했다.
반란군의 여러 부대들 중 자신이 속한 포위군만큼 근무가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복귀해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슬슬 보이는군.’
샤하와 가까워져 갈 무렵, 리샤는 여전히 부채꼴 형태로 진을 치고 있는 포위군의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달리는 낙타의 혹을 차며 한층 더 속도를 드높였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리샤는 드디어 포위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위군에 도착한 리샤는 제일 먼저 낙타를 대기시킨 후 포위군 대장의 막사로 찾아가 복귀 인사부터 올렸다.
“전령 리샤,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포위군 대장은 리샤를 짧게 치하했다.
그런 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대장님?”
“신경 쓰지 말거라. 이건 내가 주는 포상이니까.”
서걱!
단칼에 휘둘리는 검.
대장의 검이 횡축을 그어 내자 리샤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푸슈슉!
목이 잘린 리샤의 시체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핏물을 토해 냈다.
그러자.
스르륵.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포위군 막사였던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며 어느새 샤하의 왕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환술이군요. 설마 전령을 제 발로 찾아오게 할 줄이야……!”
바뀐 것은 풍경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포위군 대장이었던 줄 알았던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반이었다.
반이 검날에 묻은 리샤의 핏물을 털어 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이에 왕궁 제사장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전령이 죽었으니 이제 포위군은 정말로 전멸한 셈이로군요.”
“이변이 없다면 한동안 포위군이 전멸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들킬 일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베네딕의 눈을 속일 수 있을까요?”
“벌써 며칠이나 환술 결계로 전멸한 포위군을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증원군이 아닌 전령 혼자서 왔다는 것은 애초에 샤하는 베네딕의 관심 밖이라는 이야깁니다.”
반의 말대로였다.
산맥을 넘어 샤하에 도착한 헨리는 우선 샤하를 포위하고 있는 반란군을 제거했다.
그런 다음 환술 결계를 펼쳐 베네딕이 얼마나 샤하를 예의 주시하는지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헨리의 예상대로 샤하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릇 잡은 물고기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 법이지.’
완전히 허를 찌른 셈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토벌이 시작된 후, 헨리는 반과 헤글러, 그리고 비람으로 이루어진 별동대를 조직하여 샤하로 이동시켰고 타이밍 좋게 복귀한 전령까지 제거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변수까지 말끔하게 제거했다.
“그럼 제사장님들께선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계속해서 환술 결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칼리프를 함락시키고 오겠습니다.”
베네딕이 바보가 아니라면 반드시 1만의 정규군을 쫓아 칼리프를 방어하기 위해 나타날 것이었다.
헨리는 그 당연함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당연함들 중에는 두 백작이 이끄는 정규군이 반란군을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입니다. 이쪽 일은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전하의 샤하트라를 구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전에 합의했던 대로, 샤하의 제사장들은 반에게 샤하의 남은 군사들을 모두 넘겨주었다.
그래 봤자 반란군이나 토벌군에 비하면 약소한 숫자였지만 그래도 방심하고 있는 반란군의 뒤를 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윽고 샤하군이 샤하를 떠나게 되었고, 샤하에 남은 제사장들은 리샤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포위군이 건재해 보이는 환술 결계’를 시전했다.
혹시라도 샤하가 탈환되었다는 소식이 외부로 새어 나가선 안 되었기에.
* * *
샤하의 군사를 확인하자마자 베네딕은 순식간에 주변 일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런……!”
욕지거리가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포위군이 가로막고 있어야 할 샤하의 군사들이 칼리프 성의 후위로 잠입하여 자신의 병사들을 도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그리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대체 어떻게 샤하의 군사들이 자신의 눈을 피해 이동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에 반이 말했다.
“이제야 눈치챘는가 보지?”
“뭐라고?”
“너무 여유를 부리기에 혹시나 했더니 역시는 역시였군. 아 참, 그리고 이거.”
조롱을 이어 가던 반은 이윽고 등에 짊어지고 있던 조그마한 꾸러미 하나를 베네딕 앞에 내던져 보였다.
툭, 투둑, 툭
모래 위를 구르며 자연스럽게 내용물을 뱉어 내는 꾸러미.
꾸러미 안에는 전령 리샤의 머리가 담겨 있었다.
리샤의 잘린 목을 본 베네딕의 눈동자가 일순간 확장되었다. 그것을 본 반이 말했다.
“샤하는 이미 우리 수중에 떨어졌다. 그리고 곧 술탄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이제 그만 항복하는 게 어때? 아 참, 칸이 전해 주라고 하더군. 얌전히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고 말이야.”
서슬 퍼런 경고와 비릿한 조롱이 한데 어우러졌다.
이에 베네딕의 낯짝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