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양동작전 (3)
슈아아아!
몸 전체가 오러로 범벅이 된 오스카가 광창 기어핀과 함께 순식간에 베네딕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베네딕과 적정 거리가 좁혀지자마자 순식간에 세 번이나 창날을 휘둘렀다.
머리, 가슴, 배.
에이지 창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삼 연격이었다.
더불어 분노로 인해 증진된 오러는 살모사처럼 베네딕의 급소를 파고들었고, 베네딕의 살갗에 공격이 닿는 듯했다.
그러나.
“쯧쯧쯧.”
분명히 코앞에 있는 베네딕을 보고 창을 내질렀다.
그런데 혀를 차는 소리를 인지했을 때쯤엔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눈앞의 베네딕이 그의 뒤를 점하고 있었다.
빠악!
베네딕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스카의 후위를 점하자마자 뒷짐을 진 그대로 오스카의 요추를 발꿈치로 내려찍었다.
“크헉!”
외마디의 짧은 비명.
분명히 분노로 인해 온몸이 오러로 범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카는 볼품없이 흙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슈팡!
쉭, 쉭, 쉭!
공기를 찢어발기는 세 발의 분쇄 음.
오스카가 바닥을 나뒹구는 순간, 베네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와 허리를 젖혀 뒤편에서 날아온 세 발의 화살을 모두 피했다.
“……!”
테리온의 저격을 피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마치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는 듯이, 베네딕은 가볍게 세 발의 화살을 모두 피해 낸 뒤 고개를 돌려 테리온과 시선을 마주쳤다.
“재롱은 그게 끝이더냐?”
검도 뽑지 않은 베네딕. 게다가 테리온은 일부러 시선이 흩어진 틈을 타 뒤통수를 노리고 저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베네딕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굴욕이었다.
제대로 된 합을 겨뤄 보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승패가 결정 난 듯한 치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에 베네딕이 말했다.
“너희 제국 놈들은 늘 그런 식이었지. 개개인이 덤벼들면 뼈도 못 추릴 것들이 항상 장난질이나 하고 말이야.”
콰직!
“크헉!”
훈수와 함께 쓰러진 오스카의 등을 지르밟는 베네딕.
마치 등 위로 천근짜리 바위가 떨어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습구나. 이런 놈들이 대백작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달고 있으니, 네놈들은 정녕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더냐”
“이 빌어먹을 놈이…… 크아악!”
콰드득!
억지로 상체를 들어 올리려던 순간, 기어코 오스카의 왼쪽 어깨가 부서지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두터운 오러가 둘렸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손쉽게 부서진 어깨.
베네딕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오스카의 머리를 짓밟았다.
“왱알왱알 시끄럽구나.”
양손을 사용해야 하는 창술사에게 왼쪽 어깨의 파괴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베네딕은 고통에 몸서리치는 오스카의 머리를 짓밟으며 에이지가의 보주인 기어핀을 빼앗아 들었다.
훙훙!
기어핀을 휘둘러 보는 베네딕.
“목동들이 쓰면 딱이겠군.”
에이지가의 보주가 목동들의 지팡이로 능멸당하는 순간이었다.
베네딕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을 치우듯이 쓰러진 오스카를 걷어차 저 멀리 날려 보냈다.
그리고 그제야 고개를 돌려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테리온을 바라보았다.
“네놈은 하루 종일 활시위만 붙잡고만 있을 셈인가?”
“……제기랄.”
나지막이 터져 나오는 욕설.
활시위를 붙잡고 있는 테리온의 이마에 두려움으로 인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벌써 몇 발째 빗맞혔는지 모른다.
그래도 궁술로 이름을 떨친 팔콘가의 가주였건만 명성이 무색하게끔 여태껏 단 한 발도 맞히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대단한 압박감이었다.
검 한 자루 뽑지 않은 속국의 반란군이 자신에게 이 정도 압박감을 주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지금은 시간을 끌어 줄 오스카도 참패한 상황.
어쩌면 이번 한 발이 테리온이 쏠 수 있는 최후의 화살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다.
“저런 놈을 활잡이 대장으로 쓰고 있다니, 쯧쯧.”
이에 베네딕이 시시하다는 듯이 다시금 창을 휘둘러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웅!
활시위처럼 당겨진 베네딕의 어깻죽지, 그리고 화살처럼 쏘아진 기어핀.
화살이 된 기어핀이 맹렬한 속도로 테리온에게로 쏘아졌다.
“젠장!”
쿠당탕!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 데다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터라 잽싸게 몸을 굴려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당겼던 화살은 바닥을 나뒹굴었고 테리온은 볼품없이 흙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쯧쯧.”
“이런……!”
테리온은 바닥을 뒹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안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그 찰나의 순간에 베네딕이 거리를 좁혀 온 것이었다.
콰직!
“크아아악!”
베네딕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료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 있었는데, 거리를 좁혀 오자마자 테리온의 손등을 발꿈치로 짓이기기 시작했다.
감히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무게였다.
테리온은 전신을 엄습하는 고통과 함께 기형적으로 꺾이는 자신의 손가락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단련이 엉망이로군.”
말도 안 되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감히 그 지적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쯧쯧쯧, 이런 놈들이 총사령관이라니.”
모드레드에게 전해 들은 백작들에 대한 정보를 곱씹을수록 그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더불어 이런 놈들이 최고참으로 있는 제국군이 더더욱 하찮게 느껴졌다.
베네딕은 테리온의 오른손을 완전히 박살 낸 후 테리온이 가지고 있던 릴시아를 집어 들었다.
제국의 모든 궁수들이 탐낸다는 요궁, 릴시아.
릴시아의 대표적인 특징은 활에 시위가 없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바로 사용자가 직접 오러를 다스려서 활시위처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흐음.”
흥미롭다는 듯이 릴시아를 살피는 베네딕.
그러나 얼마 뒤, 릴시아의 양쪽 끝으로부터 푸르고 선명한 한 줄기의 활시위가 생성되었다.
‘저, 저럴 수가……!’
보우 마스터의 경지에는 올라야 겨우 활시위의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릴시아였다.
그런데 베네딕은 릴시아를 처음 만져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능숙하게 시위를 만들어 냈다.
“네놈에겐 아까운 장난감이로군.”
전리품에 대한 독식은 승자만의 권리였다.
손가락이 부러진 패자는 아무 할 말이 없는 법.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베네딕은 릴시아를 왼손에 쥐고서 방금 전에 날려 보낸 기어핀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흠.”
릴시아의 활시위에 태연하게 기어핀을 걸어 보이는 베네딕.
“저, 저런……!”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도무지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이윽고 베네딕은 활머리를 멀찍이 걷어 찬 오스카를 향해 겨누었다.
“이, 이런……!”
이대로 가만히 두었다간 오스카는 명을 달리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부러진 손가락을 기점으로 온몸을 지배하는 공포가 감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였다.
사막을 가득히 메우는 서슬 퍼런 살기.
이 모든 것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베네딕의 표정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쑤아아아!
화살 대신 광창이 쏘아졌다.
마치 거포가 쏘아지듯, 일반적인 화살과는 공기를 찢는 파쇄 음 자체가 달랐다.
쏜살같이 눈앞을 지나가는 기어핀.
테리온은 쏘아지는 기어핀의 끝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달리 막을 방법이 없었다.
최고 무력자인 자신과 오스카가 당한 데다가 천부장들은 이미 반란군과 맞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대로 끝인 건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안일하게 생각했던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려던 찰나였다.
챙캉!
‘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차마 오스카의 최후를 지켜볼 면목이 없었기에.
그런데 테리온의 귓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거포가 쏘아졌는데 이런 소리가 나다니.
들릴 수가 없는 소리였다.
이에 테리온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처박았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오스카가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빛.
이글거리는 아지랑이 사이에서 오스카는 길고 푸른색 검기를 가진, 그리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검사를 보았다.
검사가 한쪽 무릎을 굽히며 쓰러진 오스카에게 물었다.
“백작님, 괜찮으십니까?”
쏟아지는 태양 빛 사이로 낯선 미남자가 오스카의 눈동자에 비추어졌다.
이에 오스카가 얼굴을 찡그리며 간신히 대답을 내놓았다.
“……너는?”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렌버. 쇼난군에 소속된 검사라고 합니다.”
검사의 정체는 반이었다.
그리고 반이 정체를 밝힌 순간, 오스카의 표정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피어올랐다.
“쇼난군이 여길 어떻게……?”
“일단 몸부터 추스르십시오. 자세한 이야기는 저놈을 해치우고 난 뒤에 해 드리겠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오스카를, 반은 제대로 눕힌 뒤 옷깃에 쌓인 모래먼지를 털어 주었다.
그런 다음 그의 무기인 기어핀을 가지고 와 그의 옆에 놓아 두었다.
베네딕은 그런 반의 행동을 팔짱을 끼고서 묵묵히 지켜보았다.
‘방금 전엔 뭐였지?’
무신이라 불리는 자신조차도 그가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더불어 저 녀석은 소리 소문 없이 접근한 것도 모자라 릴시아로 쏜 기어핀까지 가볍게 쳐 내는, 별것 아닌 듯하면서도 제법 쓸 만한 재주를 보여 주었다.
이에 베네딕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네놈도 제국군인가?”
“옛날에는 그랬지.”
“옛날이라니?”
“뭐, 자세한 사정은 알 필요 없고. 괜찮지? 우리 쪽 선수가 많이 다쳐서 선수 교체를 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뭐라? 크하하하핫!”
반의 뻔뻔한 대꾸에 베네딕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척 보기에도 젊어 보이는 남자가 지금 자신을 상대로 너스레를 떨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신기하기도 했다. 눈앞의 저 남자가 자신을 상대로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익숙하다.’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도리어 익숙하기까지 한, 기묘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신기했다.
자신의 기억 속에는 저런 익숙한 기운을 가진 젊은 미남자가 없었던 것이다.
‘혼란스럽겠지.’
그리고 그런 베네딕을 보며 반은 과거의 기억이 생각나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정복 전쟁 시절, 몇 번이고 사막에서 검을 맞부딪던 사이.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다시 전장에서 마주 서게 되었다.
“재미있구나.”
이에 베네딕은 젊은 검사의 장단에 한번 놀아나 주기로 했다.
비록 신성한 결투에 끼어든 것이 못마땅하긴 하였으나 어차피 언젠가는 자신의 손에 죽어 없어질 제국의 어린 검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 한번 재주를 부려 보거라.”
그러나 기운이 익숙하다고 한들,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었다.
자신이 인지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접근한, 낯선 검사에 대한 호기심.
이에 반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여유를 과시하는 베네딕에게 조소와 함께 말했다.
“그 재주, 한번 부려 주지.”
반은 다시금 검을 뽑았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머리 뒤로 활시위를 당기듯이 팔뚝을 당겨 보였다.
그리고.
번쩍!
푸르고 긴 광명이 번개처럼 뻗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