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04화 (104/522)

# 104

양동작전 (2)

뒤늦게 발견된 아이젠의 얼굴은 심지어 반갑기까지 했다.

이에 베네딕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쇼난군의 이동 경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저 방향은 분명히 술탄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고작해야 1천의 병력이라면 보나 마나 양동작전을 벌이려는 것이겠군.’

판단은 끝났다.

모드레드로부터 들었던 세 백작의 얼굴들을 모두 확인하였으니 이제 남은 일은 칼리프로 향하는 ‘본대’의 배후를 공격하는 것뿐.

‘아쉽지만 네놈은 다음번에 베어 주마.’

열 배가 넘는 병력의 차이.

게다가 고작해야 1천의 숫자로는 술탄의 공략은커녕, 술탄에 주둔하고 있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도리어 잡아먹힐 것이 뻔했다.

“모두 칼리프로 향한다!”

“예!”

먹잇감을 포착한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 *

공성 병기들의 효과는 굉장했다.

그렇잖아도 성벽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놈들이, 칼리프 성의 장벽보다 훨씬 더 높은 토성에서 전력을 쏟아 내고 있으니 그 파괴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게다가 팔콘군 특유의 궁병대 또한 장대비 같은 화살 세례들을 쏟아붓고 있으니 반란군에겐 그저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후후, 이거 함락은 당연히 따 놓은 당상이겠군.’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

게다가 모래로 지어졌다고는 하나 마법으로 뭉쳐진 토성은 생각보다 그 경도가 대단하여 훌륭히 반란군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이에 오스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래층의 병사 하나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장벽이 무너진다아아!”

벌써부터 장벽이 무너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곳만 집요하게 공격한 결과, 장벽은 균열을 일으키며 끝끝내 속살을 드러내 보였다.

이에 오스카가 더욱더 흥분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장벽이 무너졌다! 모두 돌격하라!”

“와아아아!”

압도적인 힘, 압도적인 토벌.

전 재산을 쏟아부은 보람이 있는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토벌군과 반란군이 무너진 장벽 사이로 격렬하게 격돌하려는 순간이었다.

“베네딕이 나타났다아!”

“뭐라고?”

그 순간, 두 백작군을 뒤쫓아 왔던 사막의 무신, 베네딕 칼리프가 사신처럼 웃으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베네딕이 벌써 나타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갑작스러운 무신의 등장에 오스카는 짐짓 당황한 목소리로 사태 파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헤라리온으로부터 무신이 가진 힘, 사막의 눈에 대해서 듣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뒤쫓아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 최고 지휘관인 본인이 병사들에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법.

게다가 이러한 사태를 대비하여 베네딕을 상대하기 위한 수 또한 얼마든지 준비해 오지 않았던가?

이에 오스카가 다시 한 번 오러를 담아 목청껏 소리쳤다.

“에이지군은 모두 공성 병기를 버리고 후방경계를 시작하라!”

오스카의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에이지군 모두가 공성 병기를 버리고 후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는 책임감에 의하여 베네딕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장벽을 무너뜨린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적을 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는 반란군의 수장인 베네딕의 목을 노리려는 것이었다.

존재를 드러낸 베네딕은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가만히 팔짱을 끼고서 토벌군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에이지군.

그리고…….

후웅!

토성의 꼭대기 층에 있던 오스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토성의 바깥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엄청난 도약력.

몸을 내던진 오스카의 몸뚱어리가 태양 빛이 가려져 자그마한 점이 되었다.

콰아앙!

유성처럼 떨어지는 오스카.

자욱하게 번지는 흙먼지 속에서 드디어 오스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작님이 선두에 서신다!”

최고 지휘권자가 선두에 선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오스카는 움푹 팬 착지점에서 걸어 나오며 등에 이고 있던 가문의 보주, ‘광창 기어핀’을 꺼내 들었다.

“흡!”

기어핀은 어른의 팔뚝만 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카가 그것을 양손으로 쥐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비틀어 보이자 그 속에 조립되어 있던 숨겨진 몸체들이 뻑뻑한 소리를 내며 여의봉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추주죽!

창신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리고 그 길이가 오스카의 키만큼 길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기어핀은 늘어나는 것을 멈추었다.

광창 기어핀.

창술을 연마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명창이었다.

“꽤나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다니는군.”

기어핀을 본 베네딕이 말했다.

“감히 네놈 따위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지.”

오스카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베네딕이 입꼬리를 당겨 올리며 한쪽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직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Altpajswl whtlagktpdy!”

베네딕이 주문을 외우자 그의 몸에 희미한 광명이 드리웠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광명이 사라지자마자 발을 딛고 있던 대지가 천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떨림이 느껴질 정도로 선명하게 울리는 진동. 그것은 흡사 지진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 진동은 실제로 지진처럼 지축을 뒤흔들어 놓기 시작했고 다닥다닥 붙어 있던 모래알들을 조금씩 움직이게 했다.

‘이건……!’

사막의 모래를 움직이게 하는 힘.

오스카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라의 권능임을 깨닫고 소리쳤다.

“모두들 바닥을 조심해라!”

라의 권능에 대한 교육은 이미 출정 전에 충분히 해 두었다.

그러나 이론과 실전 사이에 발생하는 경험의 격차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바닥을 주시하던 그때, 뒤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이 무너지고 있다!”

“성이 기울어진다!”

“모두 도망쳐!”

몸의 균형이 한쪽으로 조금 치우쳤을 때, 병사들은 그제야 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변화를 알아차린 건 이미 한참이나 늦어 버린 뒤였다.

“이게 무슨……!”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토성은 분명하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토성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들 오스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기력하게 성이 무너지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는 노릇.

쿠구구구구!

칼리프 성만큼이나 높게 치솟은 토성의 함락은 그야말로 허무한 것이었다.

오스카는 반쯤 입을 벌린 채로, 하염없이 무너져 가는 토성을 보며 망부석처럼 제자리에 서 있었다.

“모두 피해!”

이에 토성 속에 있던 팔콘군이 개미 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토성이 너무 높았던 탓일까?

토성의 고층에 위치해 있던 병사들은 토성이 무너지는 동안에도 미처 토성을 탈출하지 못했고 끝끝내 토성 속의 공성 병기들과 함께 모래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

“…….”

흙먼지가 자욱했다.

자욱한 먼지 사이로 갑옷 가득히 모래가 쌓인 병사들이 힘겹게 토성의 잔해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더불어 막대한 금액을 지출하여 구매한 토성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훨씬 낫군.”

사기가 뒤바뀌었다.

한 번의 손짓으로 오스카의 와일드 카드를 박살 내 버린 베네딕은 흡족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슈아악!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분쇄 음.

빛처럼 빠른 화살이 베네딕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커헉!”

뺨을 스쳐 지나간 화살은 베네딕의 뒤편에 있던 병사의 목구멍에 정확히 명중했다.

“오호?”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베네딕은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머리통을 빗겨 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베네딕은 일부러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주륵.

대신 옅게 스쳐 지나간 탓에 뺨에 자그마한 생채기가 생겼고 그 사이로 피가 조금 흘러나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뒤편의 병사가 대신 쓰러지자 슐라가 뒤늦게 베네딕의 안위를 물었다.

이에 베네딕이 자신의 뺨을 훔치며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호들갑 떨 것 없다, 그냥 스친 것뿐이니.”

“그래도……!”

“그보다 이름이 테리온이라고 했던가? 이만한 거리에서도 나를 맞히지 못하다니, 제국 놈들은 활잡이마저 형편없기 그지없군.”

팔짱을 끼고서 가만히 토벌군을 지켜보던 베네딕에겐 어느덧 사막의 눈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베네딕은 사막의 눈을 통해 똑똑히 보았다.

토성이 무너지고 난 직후, 자욱한 흙먼지 사이에서 활시위를 당겨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 보낸 테리온의 존재를 말이다.

이윽고 흙먼지가 가라앉고, 토성의 잔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테리온이 오스카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백작, 정신차리시오!”

“테리온 공…….”

궁병대 총사령관 테리온 팔콘.

그의 손에는 팔콘가의 보주라고 불리는 ‘요궁, 릴시아’가 들려 있었다.

“우리 쪽 피해가 막심합니다. 그러니 백작과 내가 나서서 베네딕을 저지하지 않는다면 이번 전투의 승패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전 재산의 대부분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얻어 낸 전력을, 고작해야 손짓 한 번에 허무하게 잃었다는 충격에 잠시간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패닉 상태 속에서 테리온이 궁술사 특유의 침착함으로 그를 다독인 덕에 오스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것을 본 베네딕이 말했다.

“알아서 튀어나와 주니 나로선 고마울 따름이로군.”

토벌군을 이끄는 두 명의 백작.

저 둘의 목만 베어 낸다면 이번 토벌전은 사실상 실패하게 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베네딕이 슐라에게 말했다.

“슐라.”

“예, 전하.”

“저 두 놈은 내가 맡을 터이니, 너는 그동안 칼리프에 있는 병력과 합심하여 제국 놈들을 몰아내도록 하라.”

“예, 전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뿌우우우!

베네딕의 명령이 떨어진 직후, 반란군의 기수가 뿔피리를 드높게 불어 올렸다.

“가자!”

“예엣!”

반란군 부대장 슐라.

베네딕의 오른팔이기도 한 그가 선두에 서서 우측으로 선로를 우회하려는 순간, 오스카와 테리온이 각자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이에 말에서 내리는 베네딕.

그가 말했다.

“버릇이 없구나.”

쿵!

뒷짐을 진 채 오른발을 구르는 그.

그때였다.

피잉!

단순히 바닥에 발을 굴렸을 뿐인데 공기를 찢는 듯한 소리가 두 백작의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콰과과과과!

“……!”

거친 진동 소리와 함께 지축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갑각귀가 모습을 드러낼 때처럼 거칠게 땅을 찢어발겼으며, 찢어진 대지 사이로 사막의 모래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

지축의 갈라짐은 끝이 없었다.

지진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베네딕의 발끝을 기점으로 두 백작과 반란군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기에 반란군의 이동을 조금도 저지할 수가 없었다.

“이런……!”

작은 발 구름 한 번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것은 칸에게서조차 듣지 못했던 정보였다.

이에 베네딕이 거만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나직이 말했다.

“애들 장난에 어른이 끼면 쓰나.”

“네놈!”

베네딕의 도발에, 분노한 오스카가 오러를 내뿜으며 황소처럼 돌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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