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양동작전 (1)
“먼저, 저희 군은 아직 베네딕에게 협상이 결렬되었음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반란군은 기본적인 경계 태세만 갖추고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 여전히 남쪽 오아시스에 대부분의 반란군 병력들이 주둔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주어진 정보들을 바탕으로 뼈대가 될 계획부터 우선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헨리가 보기에 이것은 서로의 정보를 감추기 위한 단순한 연막작전, 즉 쓸데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황궁에 도착한 서신을 아서스가 보았을 테니 분명히 베네딕은 협상이 결렬되었음을 아서스에게 통보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수도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병력을 분산시켜 두었을 터.’
더불어 베네딕은 이번 토벌에서 제국군이 아닌 백작들의 사병들만 투입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부담감은 적겠어.’
그러므로 제국군이 개입될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온전히 사병대의 격파에만 힘을 쏟으면 되었기에 반란군은 심적 부담 또한 받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뒷일은 아서스가 모두 알아서 처리해 주기로 하였으니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같은 회의는 계속해서, 아주 조금씩 서로가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의 의견이 조율된 첫 번째 계획이 선포되었다.
“그럼 첫 번째 진격은 양동작전으로, 동쪽 오아시스의 도시인 술탄과 북쪽 오아시스의 도시인 칼리프를 동시에 공격하되, 술탄에는 눈속임을 위한 약간의 병력만 보내도록 하고 나머지는 모두 칼리프를 공격하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한 정리였다.
베네딕이 아무리 병력을 분산시켰다 하더라도 안쪽의 수도는 거리 때문에라도 섣불리 공격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동쪽 오아시스인 술탄 또한 수도와 거리가 가까워 첫 공격지로 삼기엔 훗날의 역습에 대비하기가 어려울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남은 지역은 북쪽 오아시스인 칼리프뿐.
토벌군은 칼리프와 술탄을 공격하는 양동작전을 사용키로 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술탄에서 시간을 끌어 줄 병력들을 정해야 하는 것인데…….”
양동작전의 묘미는 한쪽 지역에 확실한 눈속임을 주어 적들에게 혼란을 주는 것.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끼’역할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공격을 감행하는 정규군과는 그 공적의 깊이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미끼 역할을 맡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아이젠이 턱을 슬쩍 들어 올리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가지.”
“……!”
당연히 정규군을 택할 줄 알았던 아이젠이 스스로 미끼가 되겠다고 나섰다.
생각지도 못한 자원에 두 백작이 커다랗게 눈을 뜨며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멍청한 놈들.’
그리고 그런 두 백작의 시선 교환을 보며 헨리가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회의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됐던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됐다.
그 덕분에 별다른 마찰 없이 회의 또한 금방 끝낼 수가 있었다.
수뇌부 회의가 끝나고 쇼난군 막사로 돌아온 헨리는 막사로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아이젠에 대한 칭찬부터 늘어놓았다.
“백작님, 정말 잘하셨습니다. 백작님께서 먼저 아량을 베풀어 주신 덕분에 별다른 의심 없이 일찍 회의를 끝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흠흠, 난 그저 네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아닙니다. 신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또한 군자로서의 미덕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백작님께선 참된 군자의 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흐흐흐, 당연하지! 충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지도자로서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니더냐?”
역할이 나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점검을 끝마친 뒤 진격에 나서는 것이었다.
“진격하라!”
부우우우!
그때였다.
바깥에서 힘찬 뿔나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출발하는 모양이로군.”
정체는 팔콘군과 에이지군이었다.
술탄보다 칼리프 쪽이 거리상으로는 좀 더 가까웠지만 움직여야 할 군사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 보니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먼저 출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헨리는 느긋한 걸음으로 막사 밖에 나가 두 백작군이 협곡으로 진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백작군들이 협곡 사이를 지나갔을 때였다.
‘슬슬 움직여야겠군.’
헨리는 백작군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아이젠에게 다가가 말했다.
“백작님, 그럼 지금부터 ‘진짜 쇼난군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헨리가 아이젠에게 행한 전체적인 교육은 수뇌부 회의에서 그가 어떻게 대응하면 되는지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다른 두 백작군들이 떠난 지금, 헨리는 여태껏 절제해 온 정보들을 풀어내며 쇼난군만의 ‘독자적인’ 계획들을 실행키로 했다.
‘후작이 되는 것도, 베네딕의 목을 베는 것도, 전부 아이젠의 몫이 되어야만 한다.’
지금부터가 헨리에겐 ‘진짜 토벌’의 시작이었다.
* * *
마법 편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불카누스와 헨리의 합작으로 탄생한 마법 편자는 과거의 불편함을 가볍게 비웃을 정도로 엄청난 효용성을 보여 주었다.
그 증거로 두 백작군은 사흘이 넘게 걸릴 거리를 단 이틀만에 도착해 내었기 때문이다.
부우우우!
토벌군이 칼리프 성 앞에 도착한 직후, 토벌군의 존재를 확인한 반란군이 비상 태세를 울리는 뿔피리를 높이 불어 올렸다.
‘시작됐군.’
1만여 명에 달하는 토벌군의 위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세가 흉흉했다.
하지만 그 기세가 아무리 흉흉하다고 한들 함락시켜야 할 상대는 웬만한 영지 하나를 넘어서는 크기의 거대한 ‘성’이었다.
이에 오스카가 말했다.
“다들 물러서라!”
오러를 담아 외치는 쩌렁쩌렁한 외침.
성 앞에 도착한 그가 병사들을 물린 뒤 품속에서 큼지막한 스크롤 한 장을 꺼냈다.
스크롤에 담긴 마법의 이름은 ‘라이징 캐슬’.
과거에 헨리가 개발한 ‘라이징 그랜드 맨션’이 응용된, 공성용 토성을 만들어 내는 고위 등급의 건축 마법이었다.
꿀꺽.
스크롤을 꺼내 든 오스카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징 캐슬 스크롤은 거대한 토성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마법.
그렇기 때문에 대백작인 오스카조차도 큰 부담을 느낄 만큼 몹시 비싼 가격이었다.
‘이것 한 장을 구입하는 데에만 엄청난 금액을 투자했다. 그러니 다른 곳은 몰라도 칼리프만큼은 반드시 내 공적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지독한 다짐이었다.
특히나 오스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더욱 필사적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아서스 대공작이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스카는 이번 토벌에서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가문의 모든 재산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욱!
심호흡을 마친 그가 마법사들에게 들었던 대로 스크롤을 큼지막하게 찢어 냈다.
그러자 그 안에 저장되어 있던 무지막지한 양의 마력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눈앞에 생겨나는 거대한 마법진.
라이징 캐슬의 마법진이었다.
스크롤에 의해 발동된 마법은 헨리가 시전했던 라이징 그랜드 맨션처럼 폭발하는 마력들을 바탕으로 주변의 자연환경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오오오……!”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라가는 토성은 그 끝을 모르고 점점 더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마치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바벨탑처럼, 오스카의 토성은 상상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며 끊임없이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토성이 완공되자, 보는 것만으로도 몹시 든든함이 느껴지는 아주 훌륭한 공성 탑이 탄생했다.
씨익.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규모에 오스카는 본능적으로 승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토성만큼이나 솟아오른 자존감과 함께, 오스카는 다시 한 번 에이지군에게 소리쳤다.
“가자!”
“예!”
오스카에 의해 병사들의 사기 또한 덩달아 상승했다.
슬쩍 테리온의 표정을 살피는 오스카. 테리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뒤처진 놈, 준비란 이런 걸 보고 준비라고 하는 것이다.’
테리온의 속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됐든 오스카가 우위를 점하고 있음은 확실해 보였다.
이에 테리온이 말했다.
“……우리도 움직이자.”
“팔콘군도 에이지군을 뒤따라 움직여라!”
테리온의 명령에 천부장들이 명령을 전파했다.
병사들은 개미처럼 순식간에 토성을 채워 나갔다.
그리고 모두가 마땅한 자리를 잡았을 무렵, 오스카는 천부장에게 다시금 명령했다.
“공성 병기를 준비시켜라.”
“모두 공성 병기를 꺼내라!”
천부장의 명령은 곧 백부장을 통해 십부장에게로 하달되었다.
그러자 각 조에 배급되었던 ‘아공간 주머니’가 품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각종 공성 병기의 조립 장비들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팔콘군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병사들에게 값비싼 아공간 주머니를 지급한 것도 모자라 그 안에서 조립형 공성 장비들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에 에이지군은 더더욱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공성 병기, 예컨대 투석기 같은 것들을 조립한 뒤 투척물들까지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이번 칼리프전은 확실한 나의 승리다.’
점점 더 팔콘군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본 오스카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테리온이 보란 듯이 더더욱 크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오스카는 다시 한 번 성대에 오러를 모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모두 공격하라!”
투둥! 투둥!
콰과광!
칼리프 성 외곽에 세워진 굳건한 장벽, 수도 칸에서 보았던 헨리가 만들어 준 새하얀 장벽들이 오스카의 공격에 의해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 * *
‘역시.’
거대한 샤하트라 사막의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오아시스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광활한 사막의 중앙에는 네 개의 오아시스를 비롯한 사막의 모든 것을 살필 수 있는 ‘라의 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라의 탑 꼭대기에는 현재, 베네딕이 가부좌를 틀고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있었다.
‘왔군.’
사막의 눈.
사막을 수호하는 라의 검만이 가질 수 있는 힘으로, 모래 위에 발을 딛고 있는 모든 것들을 감시할 수 있는 위대한 라의 권능들 중 하나였다.
사막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야는 굉장히 광범위했다.
하지만 그 아무리 사막의 눈이라 할지라도 볼 수 있는 시야에는 한계가 있는 법.
하지만 라의 탑에서라면 그 한계를 극복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라의 탑은 사막의 무신들에게 있어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베네딕은 사막의 눈을 통해 칼리프로 이동하는 수많은 토벌군을 발견했다.
‘대충 1만 정도인가?’
두 눈을 굳게 감고 있었지만 베네딕에게는 똑똑히 보였다.
그렇기에 사막의 눈으로 적들의 수를 파악한 베네딕이 지긋이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모드레드의 말대로 정말 ‘정규 제국군’이 아닌 오합지졸이 뒤섞인 백작의 사병들이 칼리프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칼리프에 병력을 밀집시켜 두길 잘한 것 같군.’
모드레드가 말해 준 것과 거의 비슷한 수의 병력들이었다.
그리고 베네딕 또한 토벌이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칼리프부터 공격해 올 것이란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칼리프에 병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두었는데 정말로 칼리프부터 노리고 들어오니 희열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감히 나를 상대로 처음부터 무력으로 싸움을 걸어오려 하다니, 분수를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가소로웠다.
정규 제국군이라면 모를까, 한낱 사병들 따위로 자신에게 덤빌 생각을 하다니?
게다가 분명히 칸으로부터 자신의 능력에 대해 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뻔한 루트로 공격해 온다는 것은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가 분명했다.
‘아니다, 저것은 미끼일 수도 있다. 좀 더 동태를 지켜본 후에 움직여도 늦지 않겠지.’
그러나 베네딕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이번 반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해 온 것.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또한 베네딕은 오랜 시간에 걸쳐 분노를 응축해 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차가운 이성으로 이번 거사에 임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 뺨을 때린 그놈이 없다!’
사막의 눈을 열심히 굴려 보았지만 1만의 토벌군 사이에서 자신의 뺨을 후려갈겼던 아이젠의 모습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 그놈만큼은 반드시 직접 참수할 것이다.’
첫 번째 교섭이 있던 날, 베네딕은 아이젠에게 뺨을 맞은 수모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베네딕은 한참을 기다렸다.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기다린 결과, 베네딕은 샤하트라 협곡에서 또 다른 군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군의 선두에는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이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