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01화 (101/522)
  • # 101

    샤하트라 산맥 (3)

    전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워낙에 가파르고 거대한 산맥이라 그런지 속도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산맥의 절반도 채 넘지 못하였다.

    “끝이 없군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됩니다. 산맥의 정상에 오른 순간부턴 내리막길이니 그나마 좀 수월할 것입니다.”

    “그래도 전하 덕분에 샤하트라 산맥도 올라 보고, 좋은 경험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하하, 저도 이런 식으로 산맥을 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헤글러, 힘들면 말해라. 내가 교대해 줄 터이니.”

    “아닙니다.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것도 체력 단련의 일환이다.”

    “예!”

    그러나 분위기만큼은 누구보다도 화기애애했다.

    다들 어디 가서 체력으로는 뒤지지 않는 사람들인 데다가 헨리의 마법적인 보조까지 곁들여지니 그야말로 가벼운 산책을 하듯이 산맥을 타 넘었기 때문이다.

    -다 먹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게다가 클레버 또한 틈틈이 사냥되는 마물들을 꾸준하게 섭취해 냈다.

    클레버가 섭취하는 마물들의 수가 늘수록, 헨리는 클레버의 힘이 묘하게 증가되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내 일이 바빠 클레버의 속성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군. 이 정도 성과라면 틈틈이 마물들을 먹여 둘 필요가 있겠어.’

    원래대로였다면 알비노 타우로스를 그릇 삼아 더 높은 존재로 진화했어야 할 클레버였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헨리를 만나 가진 힘을 모두 빼앗긴 것도 모자라 진했던 마기까지 정화되었으니 처음부터 다시 영양분을 쌓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지는 않았다.

    막상 마기를 정화당하고 헨리의 권속으로 살게 되자, 마계에서 살 때보다 훨씬 더 풍부한 마력들을 헨리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안개가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얼마나 달렸을까?

    건조한 샤하트라의 기후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안개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샤하트라에 안개라니, 대놓고 경고장을 내미는군.’

    환술의 파훼법은 기본적으로 현실과의 괴리감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주변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안개, 그러니까 괴리감 덩어리를 보여 준다는 것은 그만큼 환술의 깊이에 자신이 있다는 뜻.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위험하니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샤하트라 기후에 안개라니, 너무 대놓고 경고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하, 이 안개는 인간들에게만 경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맥의 마물들에게도 전하는 상징적인 경고장인 셈이죠.”

    “하긴, 마물들이 산맥을 타 넘어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일 테니까요.”

    나름대로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결계였다.

    안개와 맞닥뜨리게 되자 헤글러의 등에 업혀 있던 비람이 헤글러에게 말했다.

    “이제 내려 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헤글러의 등에 편안하게 업혀 온 덕에 비람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그는 곧 등에 메고 있던 자신의 지팡이를 손에 쥔 뒤 앞으로 걸어 나가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모두를 뒤로 물린 대제사장은 본격적으로 환술 결계의 해금을 준비했다.

    그가 아무리 환술계의 권위자라 할지라도 수십 명이 만들어낸 거대한 환술 결계를 단숨에 해제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헨리가 물었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저 안개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혹시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굶어 죽습니다.”

    “예?”

    “저희들은 저 안개를 ‘반성의 우물’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굶어 죽는다니, 별로 상상이 가진 않습니다.”

    “저 안개 속에 들어가는 순간, 침입자는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최악의 기억과 더불어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모든 죄책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도 최소 수십 배는 증폭된 상태로 말이죠.”

    “설마 반성의 우물이라는 뜻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기억과 죄책감들은 끊임없이 침입자의 감정을 옥죄이지만, 저 안에 들어간 이상 마음대로 바깥으로 나올 수도 없습니다. 그저 환술이 보여 주는 악몽 속에서 괴로움에 발버둥 치며 그렇게 천천히 말라 죽어 가는 겁니다.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에 빠져서 말이죠.”

    오싹.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참으로 끔찍한 형벌이었다.

    이에 헤라리온이 마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가 만든 가치관 내에서 선악을 저지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일 뿐, 반성의 우물 속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자신이 만든 가치관 속에 갇혀 절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님을 모셔 오길 잘했군요.”

    “그렇습니다. 라의 축복을 받은 이들에게는 소용없는 결계이니 말이지요.”

    “라께서 길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헤라리온이 반성의 우물에 대한 설명을 마쳐 갈 무렵, 비람 대제사장은 드디어 환술 결계에 대한 해금 준비를 모두 끝마칠 수 있었다.

    준비를 마친 비람이 두 손으로 잡은 지팡이를 머리 높이 들어 올려 보인 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wjdtls rjsrkddp whgdms rkfdkaksems wkrrksla!”

    ‘음?’

    잠자코 비람 대제사장의 주문을 경청하던 헨리는 그의 주문으로부터 익숙한 발음들을 들을 수 있었다.

    ‘흑마법?’

    그가 내뱉은 구절들은 분명히 흑마법을 사용할 때나 이용하는 언어들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환술이 흑마법의 일종이라는 건가?’

    그 덕분에 여러 가지 가설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헤라리온이 야누스의 힘을 사용할 때도 비슷한 발음들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환술에서조차도 그와 비슷한 발음을 내뱉으니, 어쩌면 환술과 야누스, 그리고 흑마법은 모두 같은 뿌리에 기반을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토벌이 끝나고 기회가 된다면 그때 가서 제대로 한번 파헤쳐 봐야겠군.’

    흑마법에 대한 집착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마법사로서의 지적 호기심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번 생에선 힘을 얻는 것에 있어 선악을 두지 않기로 했으니 만에 하나 흑마법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흑마법을 배우고 이용할 용의가 있었다.

    통!

    비람이 주문을 외우고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지팡이가 찍어 내린 조그마한 구멍 속으로 자욱했던 안개들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휘오오오!

    거대한 허리케인이 일어나듯, 안개는 비람이 만든 조그마한 구멍 속으로 끝도 없이 빨려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산맥 전체에 넓게 퍼져 있던 안개가 구멍 속에 밀집된 직후였다.

    “끝났습니다.”

    해금이 끝난 직후, 비람은 자신이 파 놓은 구멍으로부터 새하얗고 조그마한 구슬 하나를 꺼내 들어 보였다.

    그것을 본 헨리가 물었다.

    “그것이 환술 결계입니까?”

    “잠시 동안 이 안에 가두어 둔 것입니다. 이제 여기를 지나가게 되면 다시 안개들을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텔레포트로 이동했을 텐데, 역시 샤하트라의 환술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사실 산맥 전체에 둘려 있는 환술 결계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좌표를 계산하여 텔레포트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구슬처럼 조그맣게 응축된 환술 결계를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그러나 그런 환술사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여태껏 외세의 침입 없이 샤하트라의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주인님,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알겠다.’

    결계가 사라진 직후, 자신들의 신경을 교란시키던 것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마물들이 빠른 속도로 정상을 향해 진입해 오기 시작했다.

    이에 헨리가 서두르기 시작했다.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시간도 아낄 겸, 지금부터는 마법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동 마법을 방해하던 결계가 사라졌으니 산맥을 내려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말을 마친 헨리는 곧바로 발을 굴려 일행 전체를 하늘 위로 부유시킨 뒤, 절벽을 내려갈 때처럼 허공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 * *

    샤하트라는 ‘샤하트라’라는 하나의 이름이 생겨나기 전에 모두 자신들의 민족성을 따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동쪽 오아시스에 있는 도시, 샤하.

    샤하에 사는 샤하민들은 샤하트라에 거주하는 네 개의 민족들 중 가장 평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라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덕분에 샤하는 다른 민족들에 비해 압도적인 수의 환술사들을 보유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가장 많은 제사장을 배출해 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도시들을 모두 점령한 베네딕조차도 라의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 함부로 샤하를 공격하지 못했다.

    왕궁에서 도망친 제사장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공성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하지만 아직까지 비람 대제사장님과 전하께서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 봅시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가다간 샤하에 있는 국민들이 모두 굶어 죽을 것입니다.”

    지독한 딜레마였다.

    원래대로라면 베네딕의 군사가 진작에 샤하를 뚫고 들어와 샤하의 궁을 점령하고도 남았어야 했다.

    하지만 성스러운 제사장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는 샤하였기에 베네딕은 그들 스스로가 굴복할 수 있도록 도시를 포위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더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아무리 점괘를 굴려 보고 제사를 지내 봐도 도망친 왕족과 비람 대제사장이 살아 있다고만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왕족과 대제사장과의 도의를 저버린다면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순수함이 오염됐다는 이유로 베네딕에게 항복하더라도 제사장의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 뻔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에 굶주려 가는 것은 고립된 샤하의 국민들뿐만이 아니었다.

    “후우…….”

    누군가 한숨을 내쉬자 다른 이들 또한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다른 제사장이 말했다.

    “다들 한 번 더 기도를 올립시다.”

    “……알겠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라에게 기대는 것뿐이었다.

    원탁에 둘러앉은 아홉 명의 왕실 제사장들.

    모두가 손을 모아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경건한 마음으로 태양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위대하신 태양의 아버지 라이시여, 부디 저희를 고난과 시련에 빠지게 하지 말고 바른길로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한 명이 선창하자 나머지 제사장들이 끝말을 복창하였다.

    매일같이 드리는 기도.

    그 누구보다도 절실함이 가득 담긴 제사장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제사장들이 모여 있는 원탁 위로 조용히 마법진 하나가 그려졌다.

    우웅.

    침묵 속에서 기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기도가 길어질수록 마법진 또한 점점 더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온전한 하나의 마법진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번쩍!

    잠깐의 광명.

    그리고 원탁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산맥에서 뛰어내린 헨리의 무리였다.

    “음?”

    산맥에서 뛰어내린 직후, 사막의 땅을 밟게 된 헨리는 비람이 알려 준 것들을 바탕으로 좌표를 계산하여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그런데 텔레포트가 시전되고 난 직후, 주위를 둘러보니 아홉 명의 제사장들이 자신들을 향해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헤라리온이 말했다.

    “내가 왔노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