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00화 (100/522)

# 100

샤하트라 산맥 (2)

동행을 허락받은 헨리는 칸과 비람을 데리고 곧바로 저택을 벗어났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공터에 도착했을 때쯤, 헤라리온이 말했다.

“헨리 공. 여기는 산이 없지 않습니까?”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오를 산은 샤하트라 산맥입니다.”

“샤하트라…… 음?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제부터 오를 산의 이름이 샤하트라 산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전하, 지금부터 보여 드릴 것은 이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샤하트라 산맥이라니, 그리고 또 무슨 비밀을 알려 주려고…….”

대답을 마친 헨리는 이윽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헨리의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나며 룬어와 함께 공명하기 시작했다.

“헨리 공! 이게 대체 무슨……!”

“놀라실 것 없습니다, 전하. 단순한 텔레포트일 뿐입니다.”

“그것은 마법이 아닙니까! 헨리 공, 설마 마법사이셨습니까?”

“자세한 대답은 이동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부웅!

벼락같은 광명.

광명이 사라졌을 때는 이미 마법진 위에 발을 붙이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함께 사라진 뒤였다.

* * *

다시 한 번의 광명과 함께, 일행은 낯선 곳으로 이동되었다.

이동이 이루어지자마자 칸과 대제사장은 처음 겪는 텔레포트에 눈앞이 핑핑 도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했다.

그것을 본 헨리가 말했다.

“헤글러, 두 분께 시원한 물 좀 챙겨 드려.”

“예, 알겠습니다.”

이동 마법 울렁증, 이동 마법을 처음 겪는 이들이라면 흔하게 겪는 현상들 중 하나였다.

이윽고 울렁증이 멎은 뒤, 간신히 숨을 돌린 헤라리온이 물었다.

“헨리 공, 혹시 마법사였습니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검도 다루지만 동시에 제국에 등록되지 않은, 제국 유일의 비공식 마법사이기도 합니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오베르와 같은 책략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가신임과 동시에 검과 마법을 동시에 다루는 엄청난 천재였다.

이에 반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이야? 너 설마 네가 뭐 하는 놈인지도 안 밝히고 무작정 모셔 온 거란 말이야?”

“경황이 없어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저분들은 괜찮습니다. 저분들은 저와 밀약을 맺은 사이거든요.”

“헨리 공, 이분들은……?”

“소개가 늦었습니다. 제가 쇼난가의 가신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운영해 오고 있던 제 개인 용병단의 단원들입니다.”

“용병단? 하하…… 헨리 공, 당신은 대체…….”

어찌 보면 다재다능했지만 보통의 귀족들은 이를 보고 근본이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헤라리온은 헨리의 내면에 깃든 거대한 영혼을 보았으니 결코 그의 과거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튼 모두 시간이 없으니 간략하게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도회처럼 느긋하게 사담이나 늘어놓을 시간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샤하트라 산맥을 넘기 전에 왜 이곳에 왔는지를 포함해 무슨 이유로 두 사람을 모시고 왔는지, 그리고 헨리와 헤라리온 사이에 어떠한 밀약이 오고 갔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헨리가 밀약에 대한 대가로 받은 것에 대해선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설명이 끝났을 무렵, 헤라리온이 감탄스럽다는 어투로 말했다.

“설마 비람을 이용해 산맥을 넘어가실 생각을 해낼 줄이야……. 역시 헨리 공입니다.”

“그래서 제가 등산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마물은 저희들이, 결계는 비람 대제사장님께서 해결해 주실 테니 이것보다 손쉬운 산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샤하트라의 주인 격인 자신들을 이용하여 산맥을 돌파한다.

그 누구도 떠올리지 못할 수법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마물들이야 힘으로 제압하면 되었지만 복잡한 환술 결계를 해체하기 위해선 고위 환술사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헤라리온이 비람에게 물었다.

“비람, 혼자서 괜찮겠어?”

“산맥의 결계를 해체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매년마다 산맥의 결계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저희들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산맥의 마물들인데…….”

“그 점이라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비람이 걱정할 만큼 약한 사람들 같아 보이진 않거든.”

“……알겠습니다.”

비람이 마물에 대해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헨리가 아닌 헤라리온이 그를 안심시켰다.

‘저 사람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비람을 다독임과 동시에 헤라리온은 반을 흘깃 쳐다보았다.

현재 렌버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성형술로 외모를 바꾸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꿰뚫어 보는 라의 눈동자를 속일 수는 없었다.

‘이름이 ‘반’이었던가?’

헨리가 정복 전쟁을 걸어왔을 무렵, 샤하트라의 우두머리로서 군사들을 지휘했던 헤라리온은 도무지 인간이라고는 믿기 힘든 엄청난 존재들을 몇 명 목격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반이었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일부러 정체를 감추고 있는 것 같으니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헤라리온은 현명한 왕이었다.

목적을 이룸에 있어 굳이 불화의 씨앗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적당히 경계는 해야 하겠지만.’

이로써 서로의 이해관계에 대한 파악이 모두 끝나자 헨리가 출발을 제안했다.

“그럼 슬슬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곳은 샤하트라 산맥의 외부 경계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특히 여기서부터 일직선상으로 넘어가면 곧바로 동쪽 오아시스인 샤하가 나오도록 되어 있죠.”

“헨리 공, 다 좋은데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다 쳐도 비람은 나이가 있다 보니 산맥을 오를 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럼 대제사장님은 여기에 있는 헤글러가 업고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헤글러, 할 수 있지?”

“예, 단장님.”

“그럼 대충 정리된 것 같네요. 그럼 슬슬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헨리의 명령에 헤글러는 즉시 비람 앞으로 다가가 등을 내보였다.

그리고 헤글러가 비람을 들쳐 업은 직후 헨리가 발바닥을 굴려 일행 전체에게 마법 무장 마법을 시전했다.

퉁!

휘오오오!

전체적으로 산행에 도움이 될 만한 바람 정령의 힘과 근력 증가를 부여했다.

그리고 마주친다면 어쩔 수 없이 베어야 하겠지만 최대한 마물과의 마찰 없이 산맥을 타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타닷!

거의 직각에 가까운 경사의 절벽을, 네 사람은 신기에 가까운 묘술을 선보이며 산맥을 타 넘어가기 시작했다.

경계는 확실했다.

초목이 드리운 제국의 영토를 지나 샤하트라 산맥에 진입하는 순간, 산맥에 고여 있던 뜨거운 공기가 순식간에 일행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더 빠르게!’

시간이 금이었다.

여유라고 해 봤자 고작해야 사흘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동안 취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취해 둬야만 했다.

“대제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헤글러는 이동하는 내내 비람의 안위를 챙겼다.

그가 환술사로서는 드높은 권위자이긴 했지만 어찌 됐든 그 또한 힘없는 노인이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샤하트라 산맥을 넘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였으니만큼 최대한 그의 컨디션을 조절해 줄 필요가 있었다.

쿠구구구!

직각에 가까운 경사를 넘어 한참이나 산맥을 달리던 중, 갑작스레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에 헤라리온이 손을 들어 이동을 중지할 것을 표했다.

“물러나십시오. 갑각귀입니다.”

마치 상어 지느러미를 연상케 하는 갑각귀의 등뿔들이 갈라진 땅으로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길이만 10여 미터에 달하는 갑각귀는 타고난 껍데기가 너무나도 단단하여 어중간한 오러로는 벨 수도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갑각귀는 눈이 퇴화되어 먹잇감이 만들어 내는 진동으로 대상을 쫓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가만히 선 채로 어떻게 녀석을 잡습니까?”

“그건…….”

“그럼 결국 한 명이 미끼가 되어야 한단 말이로군. 내가 가지.”

헤라리온과 헨리가 녀석에 대한 포획 방법에 대해 논하려던 순간, 가만히 갑각귀의 특성을 듣고 있던 반이 허리춤에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금방 돌아오지.”

바람의 힘을 등에 업은 반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자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갑각귀의 신경이 곧바로 반에게로 몰렸다.

“지렁이처럼 사는 주제에 이름 한번 거창하구나.”

먹잇감을 포착한 갑각귀는 곧바로 지축을 뒤흔들며 반에게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런 갑각귀를 보며 반은 허리춤에서 뽑아 든 검을 머리 뒤로 젖힌 채 검날에 오러를 응축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헤라리온이 말했다.

“설마 갑각귀와 정면으로 맞서려는 것입니까?”

“아마도 그러려는 것 같습니다.”

“무모합니다. 갑각귀 특성상 분명히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형태로 공격해 올 텐데, 저렇게 정면으로 맞서다간……!”

“아까 렌버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미끼임을 자처하겠다고. 그리고 땅속에 숨어 있는 놈이기에 저렇게 정면으로 맞서려는 것입니다.”

“예?”

헤라리온은 반이 강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런 방식으로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반의 검날에 푸른색 광명이 밀집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밀집된 광명은 점점 더 푸른색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새하얗게 빛나는 창 자루처럼 점점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저건…….”

마치 성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빛.

그 눈부신 광채에 헤라리온이 넋을 놓고 보고 있을 때였다.

“키에에에에!”

그 순간, 땅속에서 등뿔과 함께 돌진해 오던 갑각귀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보이며 반의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흥.”

번쩍!

투석기처럼 당겨져 있던 팔뚝이 일순간 폭발하며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순간, 엄청난 광채가 번개처럼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

침묵에 휩싸인 산맥.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갑각귀는 흉악스러운 아가리를 벌린 채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린 듯했다.

그것을 본 헤라리온이 물었다.

“……저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분명히 검은 휘두른 것 같은데 갑각귀는 왜…….”

“슬슬 반응이 올 겁니다.”

“예?”

스르르르릉, 철컥!

단 한 번의 일격이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른 직후 검날에 맺혀 있던 오러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고, 반은 천천히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쩌적.

쩌저적.

파싯!

반이 검을 집어넣은 순간, 흉악스럽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갑각귀의 얼굴이 세로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쿠웅!

이윽고 두 갈래로 갈라진 갑각귀의 사체가 매가리 없이 양쪽으로 쓰러지더니 이내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윈드.”

헨리는 그런 흙먼지가 귀찮다는 듯이 바람을 일으켜 멀리 쏘아 냈다.

그리고 흙먼지가 사라진 직후, 헤라리온은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저게 대체……?”

세로로 쪼개진 것은 갑각귀의 몸체뿐만이 아니었다.

갑각귀의 아가리를 기점으로 길게 늘어져 있던 뱀 같던 놈의 몸뚱어리는 물론이고 놈의 몸뚱어리가 파묻혀 있는 땅속까지 깔끔하게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에 헤글러가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제 스승님은 이미 최상급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주특기는 ‘검기의 증가’. 그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엄청난 길이의 검기를 저런 식으로 다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대단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였을 줄이야…….’

샤하트라와 제국의 검술 구분법은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동안에도 수없이 그들의 힘을 보아 왔지만 자세히 연구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 막강한 반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헨리 또한 생각했다.

‘쯧, 얼른 나도 오러를 깨우쳐야 주특기든 뭐든 단련할 텐데 말이야.’

막강한 검사들의 위력을 볼 때마다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오러에 대한 질투심이 치솟았다.

그것은 헨리가, 이제는 완전히 한 명의 검사로서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주인님.

‘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클레버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이지?’

-혹시 주인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저 사체, 제가 먹어도 될까요?

‘네가?’

-넷! 이대로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욕심이 나서 감히 주인님께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음, 그래. 너는 그런 근본이 마물이었지, 참. 알겠다. 저놈은 네가 먹어도 좋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하지만 우리가 자리를 벗어난 뒤에 몰래 먹어 치워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물론입니다. 절대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알겠다.’

클레버의 근본은 마물이다.

그리고 마물은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를 잡아먹고 한층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존재들.

그런 의미에서 10여 미터가 넘는 갑각귀는 클레버에게 있어 한없이 탐나는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일행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완전히 벗어난 것을 확인한 클레버는 그제야 안개 같은 몸을 활짝 펼쳐 죽은 갑각귀의 사체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