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94화 (94/522)

# 94

사막으로 (3)

태양 빛이 끓어오르는 사막.

사막의 태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것보다 모래에 반사되어 오는 것이 더 뜨겁고 위협적이다.

그런 광명의 지옥 속에서 헨리는 아이젠 옆에 바짝 붙어 제이드를 몰았다.

마법 편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마법 편자를 단 말들을 모랫바닥을 흙길에서처럼 달리게 해 주었고, 뜨겁게 반사되어 오는 햇빛 또한 모조리 반사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말이 지치지 않도록 체온을 관리해 주며, 눈 속으로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끔 자잘하게 보호하는 역할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막의 말들을 위해 태어난 보물 중의 보물인 셈.

‘따로 마법 부여를 해 놓길 잘했군.’

물론 불카누스가 아무리 뛰어난 대장장이라고 한들 이렇게나 많은 마법들을 한꺼번에 편자에 담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니 마법 편자의 진정한 완성은 헨리의 마법 부여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학학학! 간만에 속 시원히 달려 보는구나!”

“그렇습니다.”

“이 마법 편자, 아주 물건이야! 토벌이 끝나는 대로 이 물건을 구해 온 너에게 아주 큰 상을 내리도록 하마!”

그렇게 이틀을 내리 내달렸다.

* * *

그리고 마침내 이틀째가 넘어가던 날에 쇼난군은 남쪽 오아시스에 위치한 수도 칸을 볼 수 있었다.

‘칸도 참 오랜만이군.’

샤하트라를 속국으로 편입시킨 후, 사막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헨리는 단 한 번도 샤하트라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밟는 칸의 땅은 새삼 그 감회가 새롭기 그지없었다.

“가자.”

“예.”

수도 외벽에 쳐진 하얗고 높은 장벽.

샤하트라와 속국의 관계를 맺었을 때 헨리가 선물로 지어 준 외벽이었다.

그리고 장벽의 중심에는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연상케 하는, 수도로 입장할 수 있는 하얗고 높은 계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름하여 ‘태양의 계단’.

왕이 사는 수도로 발을 들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었다.

이윽고 쇼난군이 태양의 계단으로 진입하려던 순간이었다.

척, 척, 척.

일사불란한게 맞추어지는 발소리.

베네딕의 병사들이었다.

‘역시나 보고 있었군.’

사막의 눈을 가지고 있으니 쇼난군의 접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에 헨리가 근처의 십장에게 턱짓해 보였다.

척!

헨리의 지시에, 십장이 앞으로 나아가 목청껏 소리쳤다.

“우리는 제국군이다! 베네딕 칼리프는 당장 나와서 제국군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

십장의 외침에, 계단 가득히 모여 있던 병사들이 홍해처럼 갈라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갈라짐의 끝, 계단의 가장 높은 곳에서 짧게 자른 하얀색 머리칼의 소유자, 베네딕 칼리프가 샤하트라 특유의 갑옷을 입고 나타나 쇼난군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쇼난군을 내려다보던 베네딕이 계단 아래를 향해 힘차게 뛰어올랐다.

후웅!

매가 비상하듯이 힘차게 허공으로 뛰어오른 베네딕.

베네딕의 인영이 태양에 가려져 잠시 동안 하나의 검은 점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더 확대되어 가는 검은 점은, 이윽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헨리와 아이젠 앞에 인간 유성이 되어 떨어졌다.

쿠웅!

엄청난 충격파.

그러나 신기하게도 베네딕이 떨어진 자리에는 조금의 흙먼지도 휘날리지 않았다. 이 또한 라의 권능들 중 일부였다.

운석처럼 나타난 베네딕.

그는 무신에 걸맞게 아이젠만큼이나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사내였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숙이며 아이젠에게 인사를 올렸다.

“대가문, 아이젠 대백작님을 뵙습니다.”

“이런 건방진 놈이.”

빡!

아이젠이 고개 숙인 베네딕의 뺨을 거칠게 올려붙였다.

그러나 소리가 이상했다, 마치 살이 아닌 돌덩이들끼리 부딪힌 것처럼.

아이젠의 돌발 행동에 그것을 지켜보던 모든 이가 숨을 죽였다.

전운이 감도는 침묵.

반란군의 수장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무신의 뺨을 때렸으니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서.

‘오호, 이놈 좀 보게?’

그것은 다름 아닌 헨리였다.

헨리는 베네딕의 뺨을 올려붙이는 아이젠의 행동을 보며 기특함에 미소 짓고 말았다.

‘녀석, 그래도 이런 쪽으로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군.’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행동이었으나 지금 아이젠이 벌인 행동은 지극히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군의 대백작이자 황제의 사신일지도 모를 아이젠 앞에서 베네딕이 건방지게도 힘자랑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제국을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 무지막지한 아이젠의 손찌검에도 불구하고 베네딕의 고개는 아주 살짝 돌아가는 것으로 그쳤다.

“죄송합니다.”

이변은 없었다.

모두가 긴장한 것과는 달리 베네딕은 곧바로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깔며 자신의 무례함을 사죄했다.

“제 행동이 무례하게 보였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백작님.”

‘저놈도 미친놈이군.’

입으로는 사과를 나불거리고 있었지만 팽팽하게 당겨지는 긴장감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에 아이젠이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노기가 감도는 눈빛은 여전했다.

아이젠이 말했다.

“네놈은 지금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기만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만 더 이따위 무례를 보이면, 그때는 철저하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무더운 땡볕 아래였음에도 불구하고 닭살이 돋을 정도로 살벌한 경고였다.

아이젠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쓸데없는 기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그럼 왕궁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거친 첫 만남이 끝나고 아이젠과 헨리는 드디어 왕궁으로 향할 수 있었다.

헨리는 왕궁으로 향하는 내내 곁눈질로 수도 내부의 분위기를 살폈다.

‘썰렁하군.’

사막 또한 사람이 사는 곳.

특히 오아시스에 터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일수록 다른 곳에 비해 활기로 가득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수도 내부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것처럼 몹시 썰렁했다.

모두들 새로 군림하려 드는 무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폭군의 싹이 보이는군.’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보며 헨리는 다시 한 번 베네딕을 제거할 필요성을 느꼈다.

도착한 왕궁 또한 사정은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아직 미처 지우지 못한 내란의 흔적들, 예컨대 왕국군의 핏물 같은 것들이 왕궁 곳곳에 노출되어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좌 앞에 놓인 왕좌.

둥그렇게 둘린 왕좌 앞에 베네딕과 아이젠이 마주 앉았다.

날카로운 표정으로 마주 앉은 두 사람.

아이젠은 베네딕 뒤편에 위치한 샤하트라의 왕좌를 한번 흘겨본 후 다시금 베네딕과 눈을 마주쳤다.

이윽고 아이젠이 말했다.

“반란인가?”

“단순한 집안싸움입니다.”

“그럼 내란에서 그치겠군.”

“그렇습니다.”

“내란을 일으킨 이유는 묻지 않겠다. 이유야 다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하지만 네놈의 목표는 왕권의 찬탈이었을 테니 기존에 집권해 있던 왕족들은 우리 측에서 데려가도 되겠지?”

“그건 좀 곤란합니다.”

“곤란하다?”

“샤하트라의 왕좌는 단순히 왕궁을 점령했다고 해서 차지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왕권을 계승하기 위해선 많은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수행해 내기 위해선 반드시 현재의 왕족이 필요합니다.”

베네딕의 자세는 결코 저자세가 아니었다. 마치 아이젠과 대등함을 이루려는 듯 말투만 경어를 사용했지, 의견의 조율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에 괘씸함을 느낀 아이젠이 말했다.

“그렇다면 무슨 과정인지 설명해라.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모두 말이야.”

“종교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굳이 설명을 드리자면 샤하트라의 왕임을 증명하는 증표들이 모두 칸에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증표가 뭐지?”

“라의 증표입니다.”

“라의 증표?”

샤하트라의 태양 아래에 군림하는 유일한 신인 라.

사막의 무신이 ‘라의 검’이라면, 사막의 통치자는 ‘라의 아들’에 해당한다.

그리고 새로운 라의 아들이 되기 위해선 꽤나 복잡한 과정들이 필요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라의 증표를 되찾는 것이었다.

베네딕의 말이 계속되었다.

“칸 왕족만 저희들에게 돌려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제가 통치자가 된 후부턴 매년 바쳐 오던 공물의 두 배에 달하는 공물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두 배라는 말에 아이젠의 눈동자가 아주 조금 커졌다.

그러나 그 순간, 아이젠의 뒤편에서 이야기를 듣던 헨리가 아이젠의 귀를 손으로 가리며 귓속말을 전했다.

“백작님, 지금 당장 결정하시면 안 됩니다. 공물의 두 배를 바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라면 그 이상도 받아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현재 저자가 원하는 것은 라의 증표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옆에서 적절한 조언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신의 역할이었다.

이에 아이젠이 곧바로 확장된 눈동자를 수축하며 대답들을 늘어놓았다.

“그 의견,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지. 하지만 지금의 너는 단순한 반란군의 수장일 뿐,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그러니 아직은 샤하트라의 왕인 칸을 데리고 가서 그자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전령을 보내 제국의 뜻을 전하도록 하겠다.”

대강의 욕심을 알았으니 디테일한 것은 칸에게 들으면 될 일이었다.

이에 베네딕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억지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분하긴 해도 맞는 말이었다.

더불어 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무턱대고 아이젠을 죽였다간 그것은 제국으로부터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틀이 넘도록 달려온 것치고는 짤막하기 그지없는 대화였으나 그 덕분에 다른 두 백작들은 건지지 못할 아주 중요한 정보들을 먼저 입수하여 머리를 굴릴 수 있게 되었다.

‘라의 증표라…….’

라의 증표.

라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왕의 보물들 중 하나였다.

물론 헨리가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칸의 눈만큼이나 철저하게 비밀이 유지되어 오는 것들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단언컨대 고작해야 라의 증표 하나 때문에 왕족 전체를 내놓으라고 할 리는 없었다.

‘무얼 더 가지고 있는 것이냐, 헤라리온 칸 3세.’

헤라리온 칸 3세.

그것이 현재 샤하트라를 통치하는 통치자의 이름이었다.

목표를 완수한 쇼난군은 반란군으로부터 필요한 물자들을 보급받은 뒤 다시금 지휘 본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 * *

쾅!

그들이 왕궁을 벗어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화를 참고 있던 베네딕이 맨손으로 석벽을 후려쳤다.

쩌저적.

석벽이 움푹 패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기점으로 조그맣게 균열이 일어났다.

오러를 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실로 엄청난 완력이었다.

그때였다.

“후후, 그 아이젠이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뜻밖이군요.”

“보고 계셨습니까?”

“궁금해서 말이죠.”

분노하던 베네딕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곧바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공손함.

그것은 아이젠에게 내비치던 의무적인 공손함이 아닌 진심이 배어 있는 진짜 공손함이었다.

이에 남자가 물었다.

“뒤에 있던 놈은 못 보던 놈인데, 혹시 누군지 아십니까?”

“가신이라고 했습니다.”

“가신? 아이젠에게 가신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참 이상하군요.”

남자는 사막의 남자들과는 달리 피부도 새하얗고 머리색도 흑발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결은 비단실 같은 은빛을 띠고 있었으며 외모 또한 아름다운 머리칼에 걸맞게 수려했다.

“저…… 모드레드 경, 이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분명히 왕의 증표에 대한 이야기를 헤라리온 그놈에게도 할 텐데, 그렇게 되면 비밀이 탄로 나게 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잘됐습니다.”

“예?”

“어차피 아이젠 그놈과 맞붙을 만한 명분이 필요했는데 놈들이 알아서 싸움을 걸어와 준다면 우리로선 피할 이유가 없지요. 설마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사막 안에 발을 들인 이상, 놈들은 모두 다 제 먹이에 불과합니다.”

“후후, 공작님께서 아주 좋아하실 만한 각오로군요. 아무튼 어떤 경위가 됐든 간에 저희 하이랜더가는 베네딕 경을 전적으로 지원할 터이니 약속했던 물건만 저희에게 넘겨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모드레드 경.”

쉬시시시시.

두 사람이 인사를 주고받던 찰나, 왕궁 천장에 고여 있던 연기가 바람을 타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인위적인 연기였다.

그것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가는 들쥐 떼처럼 끊임없이 허공을 딛고 어디론가 흘러갔다.

연기가 닿은 곳에는 손이 있었다.

활짝 펴진 손바닥 위로, 연기가 하나둘씩 뭉쳐지더니 연기는 곧 조그마한 고양이의 형상을 띄워 냈다.

이윽고 손바닥의 주인이 말했다.

“수고했다, 클레버.”

-네, 주인님!

연기의 정체는 다름 아닌 클레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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