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93화 (93/522)

# 93

사막으로 (2)

“좀 늦었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이젠이 모습을 드러내자 자리에 앉아 있던 두 백작과 전령이 의자에서 일어나 아이젠을 맞아 주었다.

이는 같은 대백작에 대한 예의가 아닌 선배 대백작에 대한 깍듯한 예우였다.

“인사들 올려라. 각각 에이지가의 오스카 백작과 팔콘가의 테리온 백작이시다.”

아이젠의 권유에 헨리는 고개를 숙이며 두 백작에게 깍듯한 태도로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쇼난가의 가신이 된 헨리라고 합니다.”

‘가신이라고?’

이에 두 백작 모두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젠에게 마땅한 가신이나 권속이 없다는 것은 익히 들어 유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멀뚱한 표정의 두 백작을 보자 아이젠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러나? 꼭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말이야.”

“아, 아닙니다. 백작님께 가신이 있다는 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해 조금 당황해서 그랬습니다.”

“크크크, 언제까지 혼자서 독수공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번 기회에 똘똘한 놈으로다가 하나 들였지. 내 수족 같은 친구야.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 인사들 나누라고.”

헨리를 소개하는 아이젠의 표정은 마치 딸자식을 자랑하는 팔불출 같은 모양새였다.

그래서인지 두 백작들은 헨리의 얼굴을 더더욱 자세히 새겨 두었다.

‘이 녀석들이군, 새롭게 충원되었다는 놈들이.’

자신의 계파였던 대공작과 대후작이 억울하게 처형당하면서 대가문 두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이에 윗자리가 빈 만큼 기존의 가문들이 한 단계씩 승작하게 되었고, 오스카와 테리온은 남은 두 대백작 자리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다들 깍듯한 척은 하지만 눈빛의 야욕들은 숨기지 못하는군.’

이번 기회를 날리면 그들에겐 평생 대후작이 될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보통의 후작도 아닌, 무려 대후작의 자리였다. 그러니 아이젠을 잡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이번 토벌전에서 공을 세우겠다는 의지들이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물론 순순히 그 자리를 넘겨줄 헨리가 아니었다.

어렵게 만든 공석은 반드시 아이젠의 것이 되어야만 했다.

아이젠이 삼대가문의 한축을 담당하게 되는 순간, 헨리의 본격적인 복수극이 시작될 것이니까.

이윽고 아이젠이 말했다.

“그럼 슬슬 회의나 시작하지.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참인가?”

“죄송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반란군으로부터 피신해 있는 칸 왕조의 구출 작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은 간단했다.

샤하트라 왕국을 이끄는 칸 왕가와 그들을 보좌하는 신하들은 현재 서남쪽 오아시스 근처에 위치한 비밀 안전지대에서 제국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칸의 전령이 말했다.

“현재 비밀 안전지대라고 불리고 있는 이곳은 칸 왕족만이 알고 있는 ‘칸의 눈’이라는 곳입니다. 지금은 비람 대제사장님께서 환술 결계로 어떻게든 버티고 계시지만 환술이라는 것이 무한한 힘은 아닌지라 한시라도 빨리 구출에 서둘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칸의 눈이 정확히 어느 지점이지?”

“바로 이곳입니다.”

아이젠의 물음에, 전령은 지도의 한 지점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삼각 암벽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이 근처에만 가도 비람 대제사장님께서 결계를 해지해 주실 겁니다.”

“근처에 주둔해 있는 병력은?”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반란군의 수색대가 정찰을 돌고 있습니다.”

“왕만 잡으면 끝날 테니 아주 혈안들이 되어 있겠군.”

“그렇습니다.”

아이젠의 말에 전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진심으로 왕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싶었다.

이에 헨리가 물었다.

“반란군의 수장은 누구입니까?”

“베네딕 칼리프라는 이름을 가진 군부대신이었던 자입니다.”

베네딕 칼리프의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헨리의 미간이 일순간 찌푸려졌다.

‘쯧, 하필 그놈이 반란군의 수장이라니.’

베네딕 칼리프.

그는 군부대신이기 이전에 ‘사막의 무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막 최고 전사의 위치에 있는 남자였다.

제국의 것과 비교하자면 기사왕의 자리쯤에 있는 인물.

그렇기 때문에 사막에서 무신은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토벌, 생각보다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어.’

사막 최강의 전사로 일컬어지는 무신의 또 다른 별명은 바로 ‘라의 검’이었다.

라는 샤하트라 국민들이 믿는 샤하트라의 수호신이자 유일한 태양신의 이름.

샤하트라는 자국만의 독특한 종교적인 색채를 가진 나라로, 제국의 교황처럼 ‘신의 사람’이 되는 순간부터 그 신의 권능을 일부 빌려 올 수 있었기 때문에 몹시 까다로운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엄청난 놈이었지. 사막 전체를 꿰뚫어 보는 사막의 눈과 검 위에 태양의 힘을 덧씌우는 태양 검, 그리고 모래바람과 모래사막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유사의 힘까지. 역시 그때 죽였어야 했어.’

사막 전체를 꿰뚫어 보는 사막의 눈.

시시각각으로 모래바람이 휘몰아치고 지형이 바뀌는 사막 속에서 자유롭게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었다.

과거의 통일 전쟁 시절, 베네딕은 그 힘을 이용하여 전세가 조금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곧바로 도망을 쳤고, 조금이라도 동떨어져 있는 군대가 있으면 귀신같이 찾아와 요절을 낸 기습의 달인이었다.

또 태양 검은 어떠한가?

완성된 오러의 검날 위에 씐 태양의 힘은 사막의 열기를 응축시켜 놓은 것처럼 시뻘겋게 이글거렸고, 검날에 닿는 모든 존재에 꺼뜨릴 수 없는 불꽃을 옮겨붙였다.

그밖에도 라의 검이 가지는 힘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헨리조차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고.

헨리는 과거에 겪었던 베네딕의 힘을 회상하며 현재 가진 세 백작이라는 장기짝들과 그를 비교해 보았다.

‘사막에 대한 경험도 없는 놈들을 데려다가 사막의 무신과 사막에서 맞붙는다……? 이거 완전히 미친 짓이 되겠군.’

세 명의 대백작은 분명히 그 어느 전력에도 뒤처지지 않는 훌륭한 사병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국의 땅에서나 통하던 놈들.

이곳은 다름 아닌 사막이었다.

그리고 경험이 미숙한 군대만큼 부서지기 쉬운 놈들도 없었다.

이에 아이젠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제 보니 반란이 아니라 단순한 내란 문제였군.”

날카로운 비판, 이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이에 전령이 힘겹게 대답을 내놓았다.

“그렇……습니다.”

“그럼 단순한 내란 문제라면 굳이 우리들이 나서야 할 필요가 있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의미심장한 아이젠의 말에 전령이 사뭇 긴장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왕좌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왕 따위, 어차피 우리 제국 입장에선 누가 왕이 되든 간에 속국 관계만 잘 유지하면 되잖아?”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었다.

제국 입장에선 그저 속국의 도리만 잘 수행해 낸다면 그까짓 내란 문제 따위, 단순한 집안싸움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전령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만히 두었다간 정말로 아이젠의 말대로 흘러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백작님.”

“뭐라고?”

“이미 한 번 주인을 물었던 개입니다. 그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다음에 제국을 물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흐음, 그것도 그렇겠군.”

좋은 사냥개는 사냥을 잘하는 개가 아니다. 주인을 물지 않고 충성스러운 개가 정말로 좋은 개다.

헨리의 말에 아이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다.

그 덕분에 전령의 얼굴에 다시금 혈색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칸 왕조를 도와주고 매년 받아 오던 공물의 양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사료됩니다.”

“하긴,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그렇습니다. 말 안 듣는 사냥개의 목을 치는 것은 물론이고, 황제 폐하께 드릴 선물까지 양손에 잔뜩 들고 온다면 폐하께서도 분명히 기뻐하실 겁니다.”

“네 말이 맞다. 그럼 지금부턴 토벌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어떻게 하면 베네딕 그놈의 목을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 먼저 회의해야겠군.”

아이젠이 멋대로 회의 방향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백작은 별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적을 쌓기 위해선 평화적인 협상보다는 화려한 전쟁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베네딕을 토벌하자는 쪽으로 흘러갔다.

‘불안의 싹은 잘라 둘 수 있을 때 잘라 둬야지.’

헨리로선 잘된 일이었다.

가뜩이나 삼대가문과 황제의 목을 치기에도 바빴는데 베네딕 같은 귀찮은 날파리가 꼬이면 헛된 시간을 낭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할 일이 정해졌군요. 우선은 칸 왕족들의 구출이 시급합니다. 그리고 반란군의 수장인 베네딕을 만나고 오는 것이 현재 풀어야 할 숙제가 되겠군요.”

헨리가 간단명료하게 회의 내용을 정리하자 오스카 백작이 말했다.

“그럼 우선은 다 같이 베네딕 칼리프를 만나고 오는 것이 좋겠군.”

“아닙니다. 베네딕을 만나고 오는 것은 저희 쇼난군이 할 것입니다.”

“뭐라고?”

자신의 의견을 딱 잘라 말하자 오스카가 짐짓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에 헨리가 유순한 표정과 함께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해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실은 이곳에 오기 전에 바깥에 주둔해 있는 백작님들의 병력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두 백작님들의 병사들은 사막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지? 사막에 대한 준비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병사들이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갑옷들을 입고 있더군요. 거기에다가 사막의 햇빛을 막아 줄 수트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밤에 야영을 하게 될 경우에는 땔감들도 필요한데, 그런 것들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듯하더군요. 혹시 제가 모르고 말씀드린 것이라면 바로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설마 쇼난군의 숫자가 적은 이유가……?”

“그렇습니다. 어차피 한동안은 탐색전과 교섭이 주를 이룰 터, 벌써부터 힘을 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여 저희 쇼난군은 사막 기동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만을 준비한 것입니다.”

논리 정연한 헨리의 주장에 놀란 것은 세 백작뿐만이 아니었다.

사막 민족인 전령조차도 헨리의 통찰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에 테리온 백작이 전령에게 물었다.

“저 말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아주 완벽하게 사막의 사정을 꿰뚫고 계십니다.”

그러자 아이젠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헨리가 말했다.

“그러니 베네딕에겐 저희 쇼난군이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사이에 두 백작님께선 전령과 함께 안전지대에 있는 왕족들을 구해 주시겠습니까?”

효율적인 업무 분담에, 두 백작은 재빨리 펜대를 굴려 공적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보아도 베네딕을 만나고 오는 것보다 칸을 구하러 가는 쪽이 훨씬 더 남는 장사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왜?’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어차피 베네딕을 참수시키고 반란군을 토벌할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공적이 돋보이는 왕족의 구출을 욕심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헨리가 말했다.

“아 참, 그리고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현재 쇼난가의 가신으로 몸담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저에게 있어 최선의 순위는 제국의 안녕과 황제 폐하의 안위입니다.”

“……그래, 알겠다.”

스스로 애국심을 외치는데 더 이상 어떻게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까?

계산을 마친 두 백작은 더 이상 염려치 않기로 하고 흔쾌히 업무 분담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헨리가 생각했다.

‘왜 저러나 싶겠지, 멍청한 놈들.’

그들의 생각대로 공적을 저울질하기엔 왕족을 구하러 가는 쪽이 모양새가 더 좋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단순히 왕족을 데리고 오는 구출 임무보다는 반란군의 수장을 직접 보고 수도의 상황을 읽고 오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아이젠은 그런 헨리의 판단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럼 각 군의 정비 후 각자 임무 수행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쇼난군의 준비는 헨리의 세 치 혀와 체스트 안에 모두 담겨 있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출발하면 되었다.

하지만 사막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두 백작들은 인근의 마을에서 서둘러 물자들을 보급받아야 했다.

회의를 마친 두 사람은 쇼난군의 막사로 돌아왔다.

막사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젠이 걸걸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학학학! 역시 우리 군의 수석 참모야. 역시 자네만한 인재가 없다니까!”

“과찬이십니다, 백작님.”

“아휴, 예쁜 것. 나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어찌 이리 잘 알고 미리 준비했을꼬?”

헨리의 어깨를 두들겨 보이는 아이젠. 이번에도 역시 헨리에 대한 신뢰가 무한히 상승했다.

“자, 그럼 서둘러 출발하도록 하자꾸나! 십장들은 모여라!”

이윽고 십장 회의가 떨어졌고, 얼마 뒤 쇼난군은 샤하트라 사막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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