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변수 (4)
“시, 시장요?”
“그래.”
평화협정을 통해 자유도시가 될 수 있었던 무슈는 제국에서 시장을 정해 주는 방식이 아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선출했다.
그것은 무슈가 왕국이었을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방식으로, 국황제를 뽑는 것과 동일한, 꽤나 전통 있는 것이었다.
“무슈는 3년마다 ‘마스터피스’라는 장인들의 축제를 열어. 그리고 그 축제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작품을 그 해의 마스터피스로 선정하는데, 그걸 만든 장인이 바로 다음 무슈의 시장이 돼.”
“헨리의 말이 맞다. 그리고 마스터피스로 선정된 장인에겐 ‘불카누스’라는 성이 주어지지.”
“와,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인데 저는 왜 처음 들어 본 걸까요……?”
“무슈를 이용하는 이들은 극히 한정적이니까. 그들이 만든 제품들은 대부분이 고가품으로 책정되니, 일반적인 제국민들이 모르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 기죽을 필요 없어. 지금이라도 알았잖아?”
고르바 불카누스.
그것이 이곳, 무슈 시장의 풀 네임이었다.
그는 올해로 벌써 5회 연속 마스터피스 수상자로, 햇수로만 벌써 15년째 시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고르바의 조상들 중에는 손재주가 뛰어난 이종족, ‘드워프’의 피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확인된 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이 돌 정도로 불카누스의 실력은 대륙 제일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근데 말이야, 듣기로는 불카누스 그 양반, 성격이 엄청 괴팍하다고 하던데.”
“괴팍해 봤자 결국엔 장인 정신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말이 그렇게 되나?”
“보통 한 분야의 정상에 올라선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긴 하죠.”
“흐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대공께서도 가끔은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을 보이곤 하셨으니까.”
“……스승님이요?”
“대공께선 훌륭한 분이셨지. 하지만 네 말대로 가끔씩은 이해 못 할 행동들을 보이곤 하셨거든.”
“그, 그렇군요…….”
생각지도 못한 구석에서 치고 나오자 헨리는 차마 어떠한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둘러 화제를 전환시켜 불카누스가 머무르고 있을 시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슈의 시청.
그것은 마치 거대한 대장간을 닮아 있었다.
그것을 본 헤글러는 눈빛을 반짝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반은 노인네 같은 감상을 늘어놓았다.
“누가 망치쟁이들 아니랄까 봐…… 꼭 이렇게 티를 내는구먼.”
“멋있지 않습니까? 이런 게 다 무슈의 전통적인 개성인 것 같습니다.”
이윽고 헨리는 반을 대신하여 시청의 문지기에게 배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불카누스 시장님을 만나 뵈러 왔는데 혹시 지금 자리에 계시나?”
“충성! 대가문 쇼난가를 뵙습니다! 현재 시장님께선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요양을 취하실 예정입니다.”
“건강상의 이유? 어디 편찮기라도 하시나?”
“자세한 내용은 저도 잘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튼튼하기로 유명한 무슈인들이었다.
특히 불카누스의 강철 체력은 무슈인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 그런 불카누스가 앓아누웠다고 하니 조금은 의아했다.
이에 반이 말했다.
“아프다고 하니 어쩔 수 없군. 이만 포기하고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게 어때? 시간도 부족하잖아.”
“정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참에 불카누스와 의논할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 볼 생각이었습니다.”
“무슨 의논?”
“도시 협약 건 말입니다.”
“굳이 이 시국에 그런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있나?”
“이런 시국이니 더더욱 협약을 서둘러야지요.”
헨리는 반의 말에 가볍게 대꾸한 뒤 다시금 병사에게 물었다.
“그럼 대리인이라도 만나야겠네. 현재 시장님의 대리인은 누군가?”
“비훔 비서관님이십니다.”
“안에 계시나?”
“그렇습니다.”
“그럼 그분이라도 만나야겠어. 가서 전해, 쇼난가의 가신이 왔다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곧 시장의 대리인으로 공무를 수행 중인 비훔 비서관과 마주할 수 있었다.
“대가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헨리라고 합니다.”
비훔은 끝이 뾰족한 안경을 쓴 전형적인 서류쟁이의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그러나 뾰족한 인상과는 달리 무슈인 특유의 땅딸막한 키와 터질 듯한 근육이 매치가 되지 않아 조금 우습게 보이기도 했다.
헨리가 말했다.
“듣기로는 시장님께서 편찮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잖아도 이번에 있을 마스터피스를 준비하시다가 벌어진 일이라 그만…….”
“아, 올해가 벌써 그때입니까?”
“예, 시장님의 임기도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하지만 지금 건강이 저 모양이신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비훔 비서관은 정이 많은 인물인 듯했다.
“증상이 어떻기에 그렇습니까? 혹시라도 저희 가문에서 도울 수 있는 문제라면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호의는 감사드리지만 이미 무슈의 의료인들과 사제분들께서도 포기하신 상황이라 별로 소용이 없을 겁니다.”
“그 정도로 심각합니까? 대체 증상이 어떻기에요?”
“중독입니다.”
“중독요?”
“그렇습니다. 시장님께선 이번 마스터피스 때 선보이실 작품으로 새로운 종류의 합금 개발에 착수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치명적인 맹독에 중독되어 버리셨습니다.”
“해독제는 없는 겁니까? 보통은 독을 다루기 전에 해독제부터 구해 놓는 것이 상식이잖습니까?”
“그게…… 합금을 만들기 위해 이 독, 저 독을 마음대로 섞어 쓰다 보니 그만 새로운 종류의 독이 탄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에 맞는 해독제를 찾지 못했습니다.”
“맹독이라…….”
해독제가 없는 맹독.
그리고 그 독에 죽어 가는 비참한 말로.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전생의 마지막이 떠올라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그 순간, 헨리의 머릿속에 불카누스를 치료할 수 있는 해결책 한 가지가 떠올랐다.
“비서관님, 혹시 지금 시장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예?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시장님은 누굴 만나실 만한 상태가 아니어서요.”
“단순한 접견 신청이 아닙니다. 그 독, 제가 치료해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예? 뭐라고요?”
뜬금없는 헨리의 제안에 비훔과 반, 그리고 헤글러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 * *
“해독제는 아직인가?”
“죄송합니다. 그것이 아직은…….”
“괜찮네. 재료도 모르는 합성 독인데 해독제가 빨리 발견되는 게 더 이상한 법이지.”
“죄송합니다.”
병원에 비훔이 나타나자, 각종 의료인들이 나타나 비훔을 맞이했다.
하나같이 안색들이 어두웠다.
그도 그런 것이 무슈의 의료인들은 ‘의학’에 목숨을 건 장인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명의들이었다.
그런 명의들이 시장을 치료해 내지 못하자 안타까운 것도 안타까움이었지만 분한 마음 또한 적지 않았다.
“그보다 외부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그분께서 시장님을 진찰해 주시기로 하셨네.”
“외부 손님이요? 대체 누구기에 진찰을 하신다는 겁니까?”
“아이젠 대백작님의 하나뿐인 가신이라고 하시더군.”
“예에? 그 쇼난 대가문에서요?”
“그렇다네. 물론 치료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셔 왔으니 진찰을 허락해 주었으면 하네만.”
“……알겠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저희들 또한 마찬가지니까요.”
“고맙네.”
접견 허가를 받은 비훔은 곧 헨리를 병실로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과연, 불카누스 시장은 그 명성에 걸맞게 최고급 병실을 혼자서 사용하고 있었다.
“시장님, 시장님을 진찰해 주실 새로운 분들을 모셔 왔습니다.”
“으으으…….”
꽤 연로한 불카누스는 하얀색 수염이 배꼽까지 자라 있는 중년의 남자였다.
하지만 그 또한 무슈인답게 키가 보통의 소년 정도밖에 되지 못했고 벌써 며칠째 침상 생활만 하다 보니 근육이 줄어 꽤나 야위어 있었다.
‘피부가 검구나.’
또한 맹독에 너무 오랫동안 중독되어 있던 탓인지 그의 전신은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었으며, 두 눈은 잔뜩 부어서 이젠 눈꺼풀도 들어 올리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벌써 열흘이 넘게 누워 계십니다. 게다가 고통도 극심하셔서 이젠 말씀조차 하시지 못할 지경입니다.”
“괜찮습니다. 그건 그렇고 시장님이 중독되셨다는 그 독, 혹시 저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샘플로 조금 나누어 놓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감사합니다.”
비훔이 곧 합성 독을 가지고 나타나 헨리에게 내밀며 말했다.
“일단은 샘플로 나누어 놓은 것이라 필요하시면 더 가져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나저나 이 독, 합성 독이라고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독들이 쓰였는지 대략적으로도 알 수 없는 겁니까?”
“예, 아무래도 마스터피스에 출품할 물품이라 그런지 보안이 워낙에 철저해서……. 그것 때문에 저희도 지금 많이 곤란하던 차입니다.”
“근데 대체 어떤 합금을 만들려고 하셨기에 이런 합성 독까지 쓰시게 된 겁니까?”
“알아본 바로는 시장님께선 독금이라는 이름의 합금을 만들려고 하셨습니다.”
“독금요?”
“금속 자체에 독을 녹여 넣어 금속 겉면에 독을 바르지 않아도 저절로 맹독이 배어나게끔 하는 성질을 가진 합금이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독을 녹이는 과정에서 호흡기로 독을 흡입하셨을 가능성이 크군요.”
“그 경로를 가장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비훔 님, 실례지만 실험실을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실험실요? 진찰은 벌써 끝나신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니지만 진찰이 끝나면 곧바로 해독제 제조를 시도해 볼 요량입니다.”
“바로 옆방에 시장님 전용 해독실이 있긴 합니다만……. 헨리 님,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만약 해독제를 제조했다 하더라도 섣불리 시장님께 사용하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그럼 잠시만 자리를 좀 비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리는 왜……?”
“단순히 해독제에 대한 보안 때문입니다. 장담컨대 별일 없을 겁니다. 시장님의 안전은 저희 쇼난가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지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알겠습니다, 대신 딱 1시간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비훔이 자리를 비우자 곁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헨리, 정말 괜찮겠어? 그 유명한 무슈의 의사들도 아직 감도 잡지 못한 독이라잖아.”
“형님.”
“왜?”
“운이 좋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군요.”
“뭐라고?”
“일단은 해독실로 장소를 옮기도록 하시지요.”
세 사람은 이윽고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헨리가 말했다.
“형님은 혹시 이독제독이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이독제독이라면 그……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는?”
“맞습니다. 현재 불카누스 시장의 상태는 재료도 알 수 없는 지독한 합성 독에 중독된 상태. 하지만 그보다 더한 맹독이 몸을 지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긴, 바로 골로 가겠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기존의 독보다 더욱더 강한 맹독이 몸에 투여될 경우, 기존에 스며든 독은 차후에 침투된 맹독에 의해 흔적도 없이 잡아먹히고 맙니다.”
“그래서? 합성 독보다 더 강한 맹독을 쓰자고?”
“그렇습니다.”
“재료도 모르는 합성 독이라며. 그런 독보다 더 강한 독이 어디에 있……. 너, 설마?”
“얼마 전에 보셨지 않습니까? 베놈의 심장을 먹은 제 피. 제 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맹독입니다.”
베놈의 심장을 섭취한 직후, 헨리는 ‘만독불침’이라는 세상 모든 독에 대한 내성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속에 흐르는 피 전부가 맹독으로 변하고 말았다.
헨리의 몸속에 흐르는 피.
그 피가 가지는 강력한 독성은 이미 피프의 시체를 통해 충분히 위력을 증명하였다.
반이 얼굴을 굳혀 보이자 이에 헨리가 부드럽게 표정을 풀어 보이며 말했다.
“이 세상에 해독제 없는 맹독은 없습니다. 제 피가 아무리 지독하다지만, 결국 제 피에 걸맞은 해독제 또한 반드시 존재합니다.”
“해독제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짚신도 짝이 있듯이 세상의 모든 독에는 그에 걸맞은 해독제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
그리고 헨리는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맹독에 대한 해독제가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뭔데?”
“그건 바로 뜨겁게 끓인 제 혈액입니다.”
베놈의 심장에 대한 해독제는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맹독이 함유된 자신의 피를 끓여서 마시는 것.
대답을 마친 헨리는 해독실에 놓인 자그마한 칼을 집어 들어 주저 없이 오른쪽 팔뚝을 그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