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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84화 (84/522)

# 84

준비된 역전극 (3)

‘저, 저자는……!’

“마탑의 마도사, 벼락의 케일이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병사들을 따라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케일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예를 갖추었다.

두 구의 시체와 함께 등장한 마법사.

케일이 회장 안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오베르와 아이젠의 얼굴에 다시 한 번 희비가 엇갈렸다.

이에 아이젠이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폐하, 이것이 바로 제가 준비한 두 번째 증거들입니다.”

“저, 저, 저기 누워 있는 이는 십검의 살모라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폐하. 바이퍼 기사단의 단장인 십검의 살모라와 같은 기사단의 제1 부대장인 피프의 시체입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더냐! 다른 이도 아니고 제국 십검이 죽다니!”

살모라의 죽음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제국 십검은 황제가 직접 인정한 제국 제일의 무력 단체.

그런 십검이 죽었다는 것은 곧 제국의 국방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당황한 것은 황제뿐만이 아니었다.

국좌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다른 대가주들 또한 살모라의 죽음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에 아이젠이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모든 게 그놈이 말한 대로 흘러가고 있군.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야.’

모든 것이 헨리가 말한 대로였다.

처음부터 황제가 화를 내지 않았던 것도, 오베르가 자신을 모함하며 어서 빨리 고발령을 종료시키려는 것도, 모든 것이 다 헨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헨리가 미리 손써 두었다는 케일이라는 마법사와 입을 맞추는 것뿐이었다.

케일과 아이젠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러자 케일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아이젠이 다시금 입을 열어 좌중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폐하, 먼저 두 번째 증거들에 대한 사연을 말씀드리기 전에 저는 폐하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라니?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여기 누워 있는 살모라와 피프, 그리고 지금은 모두 죽고 없어진 제1 부대원들 전부를 제 손으로 죽였기 때문입니다.”

“뭐라? 이 모든 게 아이젠 자네 짓이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하지만 제가 만약 살모라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바로 제가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검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은 설마, 살모라가 자네를 죽이기 위해 기사단을 이끌고 암살이라도 시도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저 말은 거짓입니다, 폐하!”

아이젠의 고발에, 결국 참지 못한 오베르가 목소리를 드높여 아이젠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살모라의 시체라는 거대한 충격에 의해 황제의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시끄럽다! 지금부터 한 번만 더 멋대로 지껄이는 놈이 있다면 내 그놈을 엄벌에 처할 터이니 모두 그리 알라!”

“예, 폐하.”

서서히 끓어오르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황제의 서슬 퍼런 경고에, 오베르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어야 했고 침묵을 지키던 대가주들 역시 더더욱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젠만큼은 날개 달린 호랑이처럼 마음껏 입을 놀릴 수가 있었다.

“폐하, 저는 며칠 전에 첫 번째 증거로 제시했던 제3 부대원들의 시체들을 입수하자마자 오베르와 살모라에게 편지를 부쳤습니다.”

“고발령을 소집하기 전에 말인가?”

“그렇습니다. 시체를 입수한 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죄를 자수하고 폐하의 명예를 더럽힌 것에 대한 속죄를 하라고 오베르에게 권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베르는 저에게 살모라와 정예부대, 그리고 마탑의 마법사를 보내는 것으로 답장을 대신하였습니다.”

“저기 있는 마법사가 그 마법사인가?”

“그렇습니다. 저자가 바로 저를 암살하기 위해 왔던 마법사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저에게 미리 귀띔을 해 주었고, 그 덕분에 저는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젠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남은 것은 케일의 몫이었다.

이윽고 황제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옮겨졌다.

“케일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폐하.”

“아이젠의 말이 모두 사실인가?”

“예, 모두 사실이옵니다. 폐하, 오베르 후작은 또 한 번 고발령을 당할까 무서워 살모라에게 백작의 암살을 명령했고, 살모라는 그 과정에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자기들끼리 가도 됐을 텐데 왜 하필 자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

“수도에서 백작이 있는 쇼난 지방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몰래 이동 마법을 사용해 줄 마법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법사가 하필 자네였던 이유는?”

“그것은 제가 살모라와 같은 고향에서 나고 자란 오랜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황제는 케일에게 많은 것들을 물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케일은 헨리가 미리 일러 준 대로 착실하게 대답을 내놓았다.

“하아…….”

진실이 쌓여 갈수록 황제의 근심도 함께 쌓여만 갔다.

황제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오베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아이젠의 얼굴엔 생기가 가득했다.

이외에도 케일은 황제가 묻지 않은 것들까지 상세하고 면밀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들을 보고했다.

“그만.”

그리고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황제가 케일의 말을 중지시켰다.

침묵이 감도는 회의장.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황제가 말했다.

“오베르.”

“……예, 폐하.”

“이견이 있는가?”

“…….”

모든 증거들이 오베르를 가리키고 있었다.

황제의 물음에, 오베르는 대답 대신 가만히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뜬 뒤 주위에 앉아 있는 아서스 공작과 알프레드 후작을 바라보았다.

오베르를 똑바로 쳐다보는 두 사람.

그러나 그들의 눈빛에 담긴 것은 ‘응원’이나 ‘격려’가 아닌 떠나가는 이에 대한 ‘작별의 인사’였다.

‘다 허물없는 짓이었구나.’

중앙귀족파에서 시작하여 삼대가문이라는 절대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삼대 귀족만큼은 그래도 다른 귀족들에 비해선 끈끈한 연대감이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한 착각이었다.

두 사람은 오베르가 권력을 잃어버릴 것 같자, 곧바로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권력의 세계란 그런 것이었다.

이윽고 자리에 앉아 있던 황제가 황좌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끓던 냄비가 드디어 폭발한 것이었다.

슬그렁.

차갑게 분노한 황제는 옆자리 병사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 다음 천천히 오베르 앞으로 다가가 다시 한 번 질문했다.

“오베르.”

오베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황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젠 변명조차 할 생각이 없는 것이더냐?”

“……죄송합니다, 폐하.”

“내 너를 그렇게 믿었건만…….”

단순한 편 가르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을 능멸하고 ‘자신’의 군대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람을 해하려 했다는 것이 오베르의 가장 큰 문제였다.

분노한 황제는 이윽고 손에 쥔 칼을 머리 높이 들어 올렸다.

그다음은 불 보듯 뻔한 결과일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모두들 고개를 돌려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멀리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젠이 입을 열었다.

“폐하.”

아이젠의 부름에, 황제는 여전히 오베르를 노려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무슨 일인가, 백작.”

“지금 당장의 분노로 오베르를 베어 넘기는 것은 성급한 결정이라 사료되옵니다.”

“성급하다고?”

“그렇사옵니다.”

아이젠의 만류에, 모두가 다시 한 번 놀란 기색을 띠었다.

그리고 그것은 황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에 황제는 들어 올렸던 검을 다시금 내려놓고 아이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백작의 생각을 한번 말해 보라.”

“오베르가 비록 폐하를 능멸하고 폐하의 군대를 해하려 한 것은 맞지만, 그간의 공로를 고려하여 당장의 죽임보다는 두고두고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폐하.”

“감옥에 가두자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그럼?”

“감옥에 가두기에는 그 죄질이 너무 크니 차라리 살게라로 추방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살게라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작위를 박탈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문 전체를 살게라로 추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되옵니다.”

살게라로의 추방.

그것은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더 나을 정도로 가혹한 형벌이었다.

게다가 오베르 혼자 죽고 끝낼 수 있는 일을, 아이젠은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크림슨가 전체를 끌어들였다.

아이젠의 조언에, 오베르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흐음, 살게라로의 추방이라…….”

게다가 그것은 황제의 흥미를 자극시키는 데 성공한 듯했다.

황제는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던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좋겠군. 자신의 잘못이 시작된 곳에서 속죄하는 것이 한낱 감옥보다야 훨씬 낫겠어. 그대의 의견을 수용토록 하겠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폐하.”

“여봐라, 오베르 후작을 포함한 크림슨가 전원의 이마에 역적의 낙인을 찍게 한 뒤 가문 전체를 살게라로 추방토록 하라. 이것은 황명이다.”

“예!”

챙그랑!

명령을 내린 황제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런 다음 아이젠에게 다가와 아이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여태껏 진짜 충신을 몰라봤군. 나의 무지함을 용서하게, 백작.”

“아닙니다, 폐하! 저는 신하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대는 정녕 충신이 맞는 것 같군. 그대에게 금 열 수레를 상으로 내리도록 하겠다. 그리고 혹시 다른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려워하지 말고 편히 말하도록 하라.”

“아닙니다, 폐하. 저는 폐하의 위신과 황실의 권위를 다시 한 번 바로 세울 수 있었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사옵니다. 더불어 여태껏 잘못 진행되고 있던 살게라에 대한 관리를 제가 맡아, 앞으로는 더욱더 투명하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자네는 끝까지 나를 감동시키는군. 알겠다, 그리하라.”

“감사합니다, 폐하.”

볼일을 마친 황제는 진이 빠진 나머지 서둘러 궁녀들과 함께 회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황명에 따라 오베르가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나가려던 순간, 오베르가 아이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세운 후 아이젠의 눈을 똑똑히 쳐다보며 말했다.

“제법 머리를 좀 굴렸구나, 아이젠……!”

분노와 원망, 그리고 독기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살게라를 아이젠이 관리하게 된 이상, 오베르가 다시 제국 영토를 밟는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이었다.

이에 아이젠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게 머리를 좀 굴리지 그랬나?”

“뭐, 뭐라고……?”

“쯧쯧, 허구한 날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니 바깥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지. 뭣들 하고 있어, 지금 당장 이 파렴치한 죄인을 끌어내지 않고서?”

“옛!”

아이젠의 지시에 병사들은 다시금 오베르를 회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윽고 국좌 앞에는 오베르와 황제가 사라진 다섯 명의 대가주만이 남게 되었다.

침묵이 감도는 국좌.

남은 가주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이젠에게로 쏠렸다.

이에 아이젠이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하실 말씀들이라도?”

대가주라도 다 같은 대가주가 아니었다.

아이젠의 물음에 가장 나중에 대가문주가 된 두 명의 백작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공작과 후작은 그렇지 않았다.

이에 알프레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이렇게까지라니? 우리는 대유라시아 제국의 번영을 위해 청렴하고 충성스럽게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곰인 줄 알았더니 못 본 새에 여우가 다 되었군. 그동안 오베르가 왜 살게라를 그렇게 관리해 왔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그래서? 그게 더 이상 나랑 무슨 상관이지?”

거듭되는 아이젠의 시치미에 마침내 알프레드의 눈빛에도 살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좋다. 그럼 여기서 확실하게 해 두도록 하지. 오베르가 이렇게 무너졌다고 해서 공석이 될 대후작 자리가 네 것이 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눈가에 떠오른 진한 살기. 그것은 진심이었다.

이에 아이젠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걱정도 팔자로군. 그럴 시간에 너도 네 목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 오베르처럼 한순간에 무너지지 말고.”

“뭐라고?”

“고발령은 이것으로 끝이네. 그럼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마쳤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도록 하지.”

저벅저벅.

아이젠이 회장을 벗어나자 숨죽이고 서 있던 케일이 황급히 아이젠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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