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83화 (83/522)

# 83

준비된 역전극 (2)

아이젠의 고발령이 해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고발령이 소집되었다.

이는 심각한 일이었다.

개국공신 파가 숙청된 이후, 단 한 번도 소집된 적이 없었던 고발령이 벌써 며칠째 두 번이나 소집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심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소집자가 아이젠임을 알게 된 대가주들은 인상을 찌푸리는 것보다 오히려 호기심을 드러내 보였다.

물론 호기심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모두들 고발령이라는 차가운 이름에 걸맞은 차가운 눈빛들을 하고서 국좌에 빙 둘러앉아 근엄한 표정들을 유지했다.

단 한 명, 고발령을 소집한 아이젠만 빼고서 말이다.

‘아이젠 녀석, 이번엔 또 무슨 꿍꿍이냐?’

‘이번에는 제대로 한 건 잡았나 보군.’

‘오베르는 대체 뭘 한 거야?’

‘후후, 오베르 표정이 아주 볼만하군요.’

단순한 아이젠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덕분에 호기심이 더욱 증폭된 대가주들은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들을 펼쳤다.

걱정하는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개국공신 파를 몰아내고 따분했던 평화에 돌멩이를 던져 준 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비극은 남의 일일 때가 가장 재미있는 법이지.’

결국 가장 즐거운 이들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분쟁을 지켜보는 구경꾼들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동안 단 한 사람, 오베르만큼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해야만 했다.

‘아이젠 저놈이 설마……? 아냐……. 내가 아는 아이젠에겐 그럴 만한 무력이 없다.’

후작은 그답지 않게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리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상황이 나빴다.

책략가로 유명한 오베르였지만 그의 책략 대부분은 증명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확실한 승리를 쟁취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엔 저번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살모라의 부재’라는 거대한 압박감까지 함께 쥐고서 아이젠의 공격에 대비해야만 했다.

낭패였다.

일전에는 눈먼 칼에 한번 맞아 주고 적당한 연기로 무마할 수 있었으나 이번에도 같은 방법이 통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베르가 주먹을 꽉 쥐며 조용히 아이젠과 시선을 교환했다.

씨익.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아이젠의 눈. 일전에 자신이 보여 주었던 웃음과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이윽고 황제가 두 명의 궁녀들을 데리고 황좌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뭐야? 이번에도 고발령이야?”

정돈되지 않은 옷매무새가 조금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그는 어차피 어리석고 오만하며, 자기중심적인 폭군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알프레드 후작이 황제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이번에도 아이젠 백작이 고발령을 소집하였습니다.”

“저번에도 고발령을 소집하더니? 아이젠 백작, 네가 한번 말해 보거라. 이번엔 또 무슨 일이더냐?”

물음은 아이젠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황제의 물음이 시작됨과 동시에 오베르의 피 말리는 청문회와 아이젠의 흥겨운 칼춤이 드디어 판을 벌리게 되었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 제가 이번에도 고발령을 소집한 까닭은 다름 아닌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 거짓을 고하고, 국법을 어겼으며, 또다시 뒤에서 폐하를 희롱한 파렴치한 작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엔 파렴치한이 참 많군. 이번엔 누군가?”

“바로 오베르 후작입니다, 폐하.”

“뭐라?”

칼춤이 시작되었다.

이에 누군가는 마른침을 삼켰고, 누군가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아이젠의 칼춤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황제는 오베르의 이름이 거론되자 흥분보다는 의심을 택했다. 오베르는 이미 저번 청문회에서 충신이라고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이젠,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

“물론 이번에도 충분한 증거들을 준비하였습니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지금 당장 오베르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할 수 있는 마땅한 증거들을 폐하께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허가토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그럼 바깥의 병사들은 지금 즉시 증거들을 들여오라!”

증거를 대령하라는 아이젠의 명령에 수 명의 병사들이 제3 부대원들의 시체와, 제3 부대장인 카니에의 시체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는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적 처리를 거친 덕에 형태가 몹시 깔끔했다.

이에 아이젠이 시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이퍼 기사단의 제3 부대장 카니에와 그 부하들의 시신입니다.”

“또 황궁 기사단이란 말이더냐?”

“폐하, 이놈들은 제가 첫 번째 고발령을 선언하기 전에 오베르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황급히 살게라로 파견한 수습대원들이었습니다.”

“수습대라니? 무엇을 어떻게 수습하려 했단 말인가?”

“오베르는 첫 번째 고발령이 일어나기 전, 자신의 증거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 살게라의 추방민들은 물론이고 목격자인 검문소장과 병사들까지 모두 해하려 하였습니다.”

“백작의 말인즉슨, 오베르가 증거를 인멸키 위해 같은 제국군에게 칼을 겨누었다는 건가? 그것도 황궁 기사단을 이용해서?”

“그렇습니다, 폐하. 이는 저의 추측이 아닌 검문소장 번트가 직접 겪고 판단한 일이며 그에 따른 증언까지 이렇게 서책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젠은 마패를 들어 올리듯 당당한 모습으로 번트 소장의 추천서를 꺼내 국좌 위에 올려 두었다.

이는 분명히 저번 고발령과 똑같은 래퍼토리였지만 두 번이나 반복된 증거물이었기에 임기응변 따위로는 도저히 가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끝났군.’

‘멍청한 녀석, 일 처리를 할 거면 똑바로 했어야지.’

대가주들의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에 오베르의 얼굴이 국좌 앞에 놓인 시체들처럼 새하얀 백지장이 되었다.

황제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저번 고발령 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지 않았다.

대신 황제는 천천히 분노하고 있었다. 냄비에 담긴 물이 천천히 끓어오르듯, 이미 한번 겪은 래퍼토리였기에 쉽사리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젠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부족하군.’

침착하게 분노하는 황제를 본 아이젠은 헨리가 해 주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황제가 오베르의 이름을 불렀다.

“오베르.”

“……예, 폐하.”

“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지? 무슨 변명이라도 늘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천재라고 불리는 책략가였지만 천재도 결국엔 사람이었다. 그리고 천재였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 파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아이젠 놈, 무언가 더 있구나.’

단순 무식한 놈이었기에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멋진 척 순순히 죄를 인정해 봤자 고달파지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게다가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어쩌면 자신의 죽음으로 형벌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다고 했다. 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

이에 오베르는 대답 대신 국좌에 올려 둔 번트의 서신을 집어 들었다.

촤륵!

펼쳐지는 서신. 정보가 부족하니만큼 주어진 정보 내에서 빈틈을 찾아야만 했다.

이윽고 서신을 모두 읽어 낸 오베르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폐하, 아이젠 백작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사실입니다.”

“절반? 그게 무슨 말인가?”

“저의 지시로 바이퍼 기사단이 살게라로 간 것은 맞지만, 그것은 증거 따위를 인멸하기 위함이 아닌,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기 위함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계속 말해 보라.”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이미 첫 번째 고발령에서 제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저의 진심을 폐하께 고하였습니다. 물론 고발령이 소집되기도 전에 다른 기사들을 보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제 스스로의 잘못을 알았기에 그제서라도 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보낸 것이었지, 결코 증거인멸 따위를 하기 위해 보낸 것이 아닙니다, 폐하.”

“오베르, 네이놈!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폐하께 거짓을 고하느냐!”

과연 오베르였다.

오베르는 누가 봐도 의심될 만한 정황을 먼저 자신의 근거로 채택하여 교묘하게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 했다.

이에 아이젠이 소리를 질렀으나 오베르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젠 백작, 백작이야말로 참으로 이상하군. 첫 번째 고발령이야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치더라도 어떻게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기사단 시체와 번트의 증언서를 들고 나를 모함할 수가 있지?”

“뭐라고?”

“폐하, 저는 이미 제 잘못을 드러내고 제 진심을 폐하께 전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젠 백작이 같은 내용으로 고발령을 소집했다는 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충분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오베르 자네의 말은 지금 아이젠이 자네를 해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을 고하고 있다는 건가?”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폐하, 사실 이런 자리에서 말씀드리기엔 송구하오나, 사실 저와 아이젠 백작의 사이는 그리 좋지는 못하옵니다.”

“사이가 안 좋다니?”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아시다시피 과거에 대가문 후작직이 공석이 되었을 때, 아이젠은 저와 알프레드만 후작으로 승작이 된 것을 몹시 배 아파하며 여태껏 쭉 저희들을 증오해 왔습니다.”

이에 아이젠이 황급히 오베르의 말을 가로막았다.

“폐하! 지금 오베르 후작은 이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꺼내 논점을 흐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베르는 꿋꿋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갔다.

“게다가 현재 살게라의 검문소장의 이름은 번트. 폐하, 번트 소장은 과거에 개국공신 계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자와 저를 시기하는 아이젠이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같은 문건으로 고발한다는 것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를 후작 직에서 끌어내고 자신이 후작 직에 앉으려 하는 간계가 아닐까 염려되옵니다.”

오로지 있는 사실들을 나열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단순한 추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베르는 책략가답게 아이젠의 속마음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에 오베르의 말을 듣고 있던 알프레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베르가 자신의 이름을 들먹임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한층 더 진정성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이에 황제가 알프레드에게 물었다.

“알프레드.”

“예, 폐하.”

“방금 오베르가 한 말이 사실인가?”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옵니다, 폐하”

“폐하!”

“그대는 잠시 조용하라.”

분위기가 순식간에 역전되는 듯싶었다.

원래대로라면 턱도 없었을 변명이었지만 알프레드가 증언하고 번트의 과거가 사실인 만큼 오베르의 모함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말을 들은 황제가 손으로 이마를 짚어 보였다.

개국공신 계파.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 오는 이름들이었다. 그만큼 황제에게 있어 ‘개국공신’이라는 단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황제는 불현듯 처형장에서 자신을 향해 거친 일갈을 날리던 죽은 대마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놈…….’

그리고 그런 황제를 보며 오베르는 그제야 옅은 미소를 띠었다.

‘아직 살모라에 대한 소식이 확실치 않지만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얼른 여기서 끝내야만 한다.’

사용된 패가 한정적이니만큼 서둘러 연극의 막을 내려야만 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이에 오베르가 주장에 살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폐하, 저는 이번 사건 역시 어떠한 측면에서 보면 아이젠 백작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작이 이번 일을 계기로 저를 해하려 했다는 가능성 또한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니 좀 더 자세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선 저희 여섯 대가주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공들의 의견 또한 물어보아야 공정하다고 사료되옵니다.”

“다른 대공들이라…….”

누가 봐도 침착하고 당당한 쪽은 오베르였다.

이에 아이젠이 짐짓 흥분한 목소리로 따지기 시작했다.

“후작! 지금 그 말!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만약 백작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저는 국법에 따라 마땅히 죄를 물어도 백번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그때는 백작의 양심에 맡기도록 하지요.”

“저런 뻔뻔한……!”

“백작, 폐하 앞에서 지금 그게 무슨 무례입니까?”

여유를 되찾은 오베르는 이젠 도리어 아이젠의 기세를 꺾어 놓으려고까지 했다.

두 사람의 질긴 신경전에, 황제는 마침내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떼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아이젠. 오베르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폐하!”

“오베르의 말마따나 이 일은 사안이 몹시 중대한 것! 그러니 다른 대공들의 의견을 모아 정확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있다.”

‘됐다!’

오베르의 표정에 희열이, 그리고 다른 대가주들의 표정에 감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두 번째 고발령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다.

“폐하.”

끝날 줄로만 알았던 고발령 끝에서 갑작스레 아이젠이 평온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슨 할 말이 더 남았는가?”

“폐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 일은 사안이 몹시 중대하니 정확한 시시비비를 통해 엄벌에 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해 주니 고맙군.”

“하지만 저는 증거가 하나뿐이라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뭐라?”

“여봐라! 바깥에 내가 가지고 온 두 번째 증거들을 국좌 앞에 대령하라!”

“예!”

아이젠의 명령에, 다시 한 번 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병사들의 손에는 제3 부대원들과 같은 싸늘하게 굳은 살모라와 피프의 시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저벅, 저벅, 저벅.

병사들을 뒤따라 제일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는 한 사람.

그는 바로 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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