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79화 (79/522)

# 79

두 번째는 확실하게 (5)

피프의 진격 명령에 열 명의 기사들이 일제히 헨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헨리는 놈들이 달려들기 전, 힐끗 눈길을 돌려 케일과 제자들의 동태부터 살폈다.

그리고 헨리는 목격했다.

피프가 진격 명령을 내리는 순간, 동시에 손을 모으는 네 명의 마법사들을 말이다.

‘헛똑똑이는 아니었네.’

정석적인 판단이었다.

기사들이 시간을 끌어 주고 뒤에서 마법사들이 서포트한다.

전쟁에서 익히 사용하는 기본적인 전술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십여 명의 소드 마스터와 네 명의 마법사를 동시에 상대해 줄 만큼 헨리의 힘은 무한한 것이 아니었다.

“클레버, 준비해.”

-넷, 주인님!

“블링크.”

슈슉!

순식간에 친위대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헨리.

헨리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마법을 준비 중이던 케일과 그 제자들의 코앞이었다.

츠캉!

그리고 헨리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마법사들은 헨리의 전술에서 가장 위험한 녀석들이자 약점이 되는 녀석들.

지금 마법사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바로 헨리였기 때문이다.

마력을 잔뜩 실은 헨리의 검이 케일의 목을 향해 뻗어졌다.

그리고 헨리의 검이 케일의 옷깃을 스치려던 순간.

깡!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

푸른색 오러가 덧씌워진 칼날이 헨리의 칼날을 굳건하게 막아 냈다.

칼날의 주인은 피프였다.

그리고 피프는 곧바로 헨리의 복부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커헉!”

고통은 굉장했다.

무려 중상급 소드 마스터의 오러가 실린 발 차기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헨리는 멀찍이 날아가 볼품없는 모양새로 흙바닥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이 건방진 새끼가 감히 내 앞에서 잔재주를 부려?”

헨리의 검과 맞부딪힌 순간 피프는 확신했다.

이놈은 단지 검사 흉내를 내는 어설픈 마법사 놈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증거로 검을 맞부딪쳤을 때 녀석의 검날에선 오러가 느껴지지 않았고, 배를 걷어찼을 땐 몸을 보호해 주는 단단한 오러의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끝이다, 이 빌어먹을 애송아!”

분노한 피프에게 자비란 없었다.

피프는 쓰러진 헨리에게 검격을 날리기 위해 치켜든 검날에 오러를 밀집시켰다.

그리고 검날에 오러가 한껏 충전되었을 무렵.

폭!

“음?”

쓰러진 헨리를 혐오스럽게 노려보고 있던 찰나였다.

마치 바늘에 찔린 듯한 통증이 뒷통수에서 느껴졌다.

이에 피프는 자신의 뒷통수로 손을 가져다 댔고 손바닥에 묻어 나오는 소량의 혈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피프는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돌려 따끔함의 원인을 찾았다.

피프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단검을 역수로 쥐고 있는 케일의 제자가 서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

풀썩.

그러나 무어라 따져 보기도 전에 피프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쓰러진 직후, 피프는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고 무지막지한 현기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데다가 말릴 틈도 없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케일이 제자를 밀어 넘어뜨렸지만 이미 피프의 피부는 거무죽죽하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이에 케일은 서둘러 제자가 떨어뜨린 단검의 날 부분을 확인했다.

‘독?’

소량이긴 했지만 칼날 끝에 무언가가 묻어져 있었다. 아마도 예상이 맞다면 이것의 정체는 맹독류가 분명할 것이다.

이에 케일은 서둘러 제자들에게 피프의 해독을 명령했다.

“독! 독이 확실하다! 뭣들 하고 있어! 얼른 해독해!”

“아, 알겠습니다! 포이즌 큐어!”

두 명의 일등 마법사가 사력을 다해 마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력을 쏟아부어도 피부의 변색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전신을 타고 퍼져 나갔다.

이에 심각함을 느낀 케일까지 뒤늦게 합류하였지만 끝끝내 피프의 죽음을 막아 낼 순 없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마법사의 해독 마법은 성직자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마도사급 정도 되는 마법사가 참여한다면 성직자의 것과 엇비슷한 수준의 해독 효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케일이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프는 끝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이는 마도사조차 제어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맹독이라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중상급 경지에 오른 소드 마스터가 이리도 쉽게 사망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평생 동안 육체를 단련해 왔고 몸속의 피만큼이나 많은 오러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바로 소드 마스터들이었다.

무인들은 이 정도 경지에 오르게 되면 대부분의 상태 이상에 대한 내성이 생기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독에 대한 내성은 더더욱 강력한 편에 속했다.

특히 조금만 더 있으면 상급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피프가 이리도 쉽게 죽을 정도라면 일반인들은 스치기만 해도 사망할 것이 분명했다.

케일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단검을 집어 들었다.

그런 다음 평평한 흙바닥에 칼날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칼날을 꽂아 넣은 부분을 기점으로 주변의 흙들이 거묵죽죽하게 오염되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은 정확했다.

하지만 자신의 제자가 대체 무슨 이유로?

그리고 기껏해야 일등 마법사 주제에 이런 귀한 독은 또 어디서 어떻게 구했단 말인가?

케일은 복잡한 심경을 억누르며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제자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자는 이미 아까 전부터 기절해 있는 상태였다.

‘기절했다고? 그렇게 세게 밀지도 않았는데?’

조금 힘을 주어 밀긴 하였으나 결코 기절할 만큼 세게 밀지는 않았다.

특히 지금 기절한 이놈은 세 명의 제자들 중에서도 그나마 체격이나 체력 상태가 좋은 놈이었기에 더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부대장님!”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피프의 부하들이 황급히 피프에게 달려와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변색된 피프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현실을 부정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렇게 되면 큰일인데.’

갑작스러운 피프의 죽음은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피프가 죽음으로써 남은 기사들을 통제해 줄 유일한 지휘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살모라가 실종되고 부대장이었던 피프까지 죽었다. 게다가 피프를 살해한 내 제자 놈은 의식까지 잃어버린 상태……. 설마 저놈이?’

불현듯, 이 부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생각의 끝에서 케일은 사악하게 웃고 있는 헨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쯤, 케일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헨리가 날아간 방향을 살폈다.

“으으…… 죽는 줄 알았네.”

그때였다. 피프의 발 차기에 멀찍이 나가떨어졌던 헨리가 신음과 함께 배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오열하는 병사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수고했다, 클레버.”

-감사합니다, 주인님!

헨리의 칭찬에, 허공에서 뿌옇게 흩어져 있던 안개가 순식간에 한 마리의 고양이로 둔갑하였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헨리와 클레버가 호흡을 맞춘 미리 계획된 작전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현재 수준에서 피프까지는 무리지.’

적을 아는 것도 중요했지만 자신의 수준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헨리가 비록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마검사이긴 했지만 저들처럼 앞에서 시간을 끌어 주는 이가 없다면 결코 저들을 감당해 낼 순 없었다.

그래서 헨리는 혹시라도 살모라의 강제 이동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의 피가 묻은 단검을 클레버에게 맡겨 두었다.

그리고 그 결과, 헨리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그려 낼 수 있었다.

‘솔직히 좀 도박이긴 했지. 그래도 참 다행이야, 머리에 두른 오러가 미미했으니. 하여튼 기사 놈들, 자존심 부리는 것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보통, 오러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병장기에 먼저 오러를 주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다음은 병장기의 오러를 안정화시키는 것에 주력하고, 그 경지를 달성하게 되면 그제야 신체에 오러를 두르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대다수의 검사들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오러를 두르면서도 이상하게 목 위로는 오러를 잘 두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역설적이게도 목이 가장 중요한 부위이긴 하지만 목 위로 오러를 두른다고 한들 대부분은 상대의 검기에 의해 손쉽게 잘려 나가는 부위가 바로 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검사들은 오러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목 위에 오러를 두르는 대신 자신의 검날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이른바, 최고의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헨리의 계획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애초에 헨리가 케일을 노린 이유는 케일을 쓰러뜨리기보다는 그를 지키는 상급 기사의 저지를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뭐, 굳이 나서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고 말이야.’

마도사를 쓰러뜨리거나 지휘관을 쓰러뜨리거나.

어떤 결과가 됐든 숫자가 적은 헨리에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만들어지는 셈이었다.

당황하는 마법사들과 울부짖는 소드 마스터들.

그리고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이 모든 것이 헨리의 계략임을 눈치챈 케일이 무심코 헨리와 눈을 마주쳤다.

씨익.

그리고 헨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마도사씩이나 되는 주제에 멍청하게 최고 지휘관을 잃어버린 케일을 향해, 헨리는 그를 기만하듯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네놈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오!”

마법사의 자존심은 그가 가진 경지와 비례한다.

헨리의 비웃음은 기어이 케일의 자존심에 처참한 흠집을 냄과 동시에, 잠들어 있던 그의 파괴 본능을 일깨워 냈다.

케일은 헨리의 웃음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자마자 시뻘게진 얼굴로 사방에 룬어들을 띄워 내기 시작했다.

‘메모라이즈?’

마탑에서 미리 준비해 온 마법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케일의 주위로 모여든 룬어들이 광명을 이루려던 순간!

“블링크.”

슈슉!

여전히 시큰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헨리는 다시금 적들이 뭉쳐져 있는 뱀의 아가리 속으로 블링크를 시전했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케일의 코앞.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케일과 헨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프리즈.”

쩌저적!

“읍읍!”

여전한 통증에, 헨리는 끝끝내 아랫배를 움켜쥔 채 남은 한 손으로 1서클 빙결 마법인 프리즈를 시전했다.

시전된 대상은 케일의 입.

헨리가 마법을 시전함과 동시에 케일의 하관을 움켜쥐자, 케일의 하관 전체가 서리라도 낀 듯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스승님!”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은 두 명의 제자들이 황급히 헨리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헨리의 눈에는 두 사람의 움직임이 한없이 느려 터진 거북이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랬었단 말이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자괴감.

과거의 자신도 다른 기사들의 눈에 이렇게 비쳤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듯했다.

“너넨 운동 좀 해라.”

이에 헨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놈을 가볍게 회피한 후 뒷덜미에 강력한 손날 치기를 선보였다.

빡! 빡!

털썩.

“나약한 놈들.”

고작해야 손날 치기였다.

그러나 두 놈은 그만 기절하고 말았고, 그제야 오열하던 소드 마스터들은 마법사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언 월!”

쿠구구구구구!

적진 속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기사들과 교전을 벌이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다.

헨리가 주문과 함께 바닥에 손을 대자 거대하고 두꺼운 강철 장벽이 두 사람을 감싸 안으며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장벽 사이에서 헨리가 말했다.

“벼락의 케일.”

“읍읍읍!”

“살모라를 택한 너의 무지함을 원망해라.”

“읍읍읍!”

“플라이.”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무리 두껍고 거대한 철의 장막이라지만 분노한 열 명의 소드 마스터들의 검격을 막아 내기엔 터무니없이 나약했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헨리는 하관이 얼어붙은 케일의 멱살을 붙잡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으으읍! 읍읍!”

케일이 어떻게든 헨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껏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케일도 나약하기 짝이 없는 허약한 체력을 가진 마법사에 불과했다.

슈우우웅!

그리고 두 사람은 곧 지상의 소드 마스터들이 개미처럼 보일 때까지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윽고 높디높은 하늘에 멈춰 선 헨리가 하관뿐만이 아니라 케일의 사지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케일의 멱살을 끌어당겨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잘 가라.”

마지막 인사와 함께, 헨리는 케일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나비처럼 활짝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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