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77화 (77/522)

# 77

두 번째는 확실하게 (3)

“편지는 다 보냈냐?”

“예, 이제 반응만 기다리면 됩니다.”

“뭐라고 적었냐?”

“정해진 날짜와 장소로 안 나오면 부하들 시체 전부를 돼지 먹이로 던져 준다고 했습니다.”

“설마 겨우 그 정도 가지고 경고라고 보낸 건 아니지?”

“그리고 그 돼지를 베이컨으로 만들어서 부하 놈들 가족에게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네가 인간이냐?”

“걱정하지 마세요, 살모라는 분명히 나올 테니까요.”

도발할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급이라면 점잖게 비꼬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급이 다를 경우엔 최대한 저급하게 도발하는 쪽이 효과가 확실한 법이다. 이에 헨리는 아이젠을 대신하여 오베르에겐 점잖은 도발을, 살모라에겐 저급한 도발을 선보였다.

역시 효과는 뛰어났다. 그 증거로 오베르는 재떨이를 집어 던졌고 그 재떨이에 살모라는 이마가 깨졌으니까.

그리고 지금쯤이면 살모라의 혈압이 머리끝까지 치솟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편지는 보냈고, 우린 뭘 준비하면 되는데?”

“판을 좀 키웠습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르니, 이참에 오베르의 수족 중 하나를 제대로 잘라 놓을 생각입니다.”

“어떻게?”

“우선 가능하다면 뱀부터 잡을 생각입니다.”

“살모라를 잡겠다고? 후폭풍이 만만찮을 텐데?”

“명분이 만들어졌을 때 뿌리를 뽑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아지기만 하니까요.”

“그래도 살모라 정도면 실력이 제법 될 텐데, 상대할 수 있겠어?”

“제가요? 저는 아직 살모라를 상대할 정도는 못됩니다.”

“그럼 누가 상대해?”

“당연히 형님이 상대하셔야죠.”

“내가?”

“이번 거사를 위해 성형까지 하셨는데 당연히 형님이 상대하셔야죠. 설마 자신 없으신 겁니까?”

“어쩐지 기세가 좋더라니……. 오냐, 살모라는 내가 상대해 주마.”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번 교전에서 살모라만 제거하면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머지 놈들은 단순한 떨거지에 불과할 테니까요.”

“그래도 자만하지는 마라. 아이젠한테 우리가 모든 걸 책임진다고 하긴 했지만 우리 전력은 기껏해야 나와 너, 그나마 덧붙이자면 헤글러 정도일 텐데 무슨 수로 그놈들을 다 감당하겠다는 것이냐?”

“할 수 있습니다.”

“뭐?”

“이번에는 마법을 사용할 예정이거든요.”

아이젠에게 큰소리를 쳐 놓았으니 당연히 이번 교전에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야만 했다.

‘어차피 목적은 섬멸이다. 그러니 굳이 힘을 숨기지 않아도 되겠지.’

목격자가 없다면 비밀이 새어 나갈 리도 없다. 헨리는 간만에 마법을 터뜨리며 칼을 휘두를 생각을 하니 온몸이 근질거리는 듯했다.

“그건 그렇고…… 장소는 어디냐?”

“쇼난 지방 옆에 붙어 있는 고웬 산맥입니다.”

“시간은?”

“저녁쯤으로 잡았습니다. 고웬 산맥은 워낙에 산세가 험하고 산짐승들이 많아 해가 조금만 저물어도 인적이 드물거든요.”

“괜찮네. 간만에 마음껏 날뛰어도 되겠어.”

“그럼 지금부터 작전 설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헨리는 더욱더 완벽한 승리를 위하여 치밀하게 짜 둔 작전을 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편지를 받은 살모라는 좀처럼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흥분이 잦아들었고 뒤늦게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남은 기한은 하루. 지금 당장 고웬 산맥으로 출발한다고 해도 늦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결국 텔레포트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편지에는 내일 저녁까지 고웬 산맥의 특정 좌표로 오라는 통보만이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수도에서 고웬 산맥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사흘.

게다가 병력을 개인적으로 운용해야 했기 때문에 제국군의 공식 텔레포트가 아닌 개인 마법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것도 입이 아주 무거운 놈으로다가 말이지.’

살모라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자신의 일을 유일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한 명의 마법사에게 도움을 요청키로 했다.

비서를 통해 그에게 전갈을 넣자 얼마 후 머리카락이 노란 사내가 살모라의 집무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웬일이냐? 네가 먼저 나를 보고 싶어 하고?”

“노크 좀 하고 들어오는 게 어때?”

“우리 사이에 무슨 놈의 노크야?”

케일.

그는 살모라와 같은 고향에서 나고 자란 고향 친구이며, 마법사를 믿지 않는 살모라가 황궁에서 유일하게 믿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일하다고 해서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무려 5서클 마스터에 달하는 ‘마도사’의 경지를 이룩하고 ‘4대 기초 원소학’을 마스터한 것도 모자라 그보다 좀 더 높은 경지인 ‘순수 원소학’을 전공하고 있는 엘리트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순수 원소학으로 바람 속성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바람 속성 중에서도 특히나 다루기 어렵다는 ‘번개’를 주 전공으로 삼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네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도 꽤 많이.”

“어쩐지…… 원하는 게 있구먼?”

“심각한 일이다. 다른 급한 일이 있어도 모두 미루고 날 도와줬으면 한다.”

“네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인가 보네. 알겠어, 일단 사정이나 한번 들어 보자.”

유일하게 믿는 마법사인 만큼 살모라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케일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사연에 대한 설명이 끝날 때쯤, 케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네 부하들의 시체를 되찾지 못하면 너도, 후작님도 곤란해진다?”

“그래.”

“이야…… 그나저나 아이젠 그 양반도 참 대단한 양반이었네. 순 멍청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런 식으로 칼을 갈고 있었단 말이야?”

“텔레포트, 준비해 줄 수 있지?”

“준비해 줄 순 있는데 혼자서는 좀 벅차. 그러니 인원을 좀 더 늘려야겠는데?”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곤란하다.”

“내 제자들은 괜찮아. 그러니까 일등 마법사 세 명만 더 데려가자. 어차피 목적은 텔레포트를 포함한 각종 서포트잖아?”

“알겠다. 원한다면 서포트뿐만이 아니라 직접 참전해도 좋다.”

“우리까지 참전하면 일이 꽤 커질 텐데? 아시다시피 내 제자들도 모두 나처럼 번개를 다루는 놈들이거든.”

“상관없다. 일만 잘 풀리면 후작님 선에서 모든 걸 처리할 수 있으니까.”

“좋아, 안 그래도 이번에 새로운 마법을 개발했는데 마침 잘됐네. 그렇잖아도 사람한테 한번 써 보고 싶었거든. 그것도 아주 튼튼한 사람한테 말이야.”

번개를 다루는 그에게 있어 마탑의 동료들이 지어 준 별명은 다름 아닌 ‘벼락의 케일’.

케일은 별명만큼이나 폭력적인 남자였다. 적으로 만난다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시간대를 보니 내일 저녁쯤에 움직이면 되겠네. 비서한테 말해 놓을 테니까 연락하면 늦지 말고 바로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해 둬.”

“알겠다.”

텔레포트를 지원해 줄 개인 마법사를 구했다.

이로써 급한 불은 모두 해결한 살모라는 혹시 모를 변수들을 대비하기 위해 다른 준비들을 시작했다.

‘반드시 죽인다……!’

살모라의 눈빛 속에 분노로 가득 찬 독기들이 이글거렸다.

* * *

다음 날.

살모라는 케일이 통보한 장소로 제1 부대장인 피프와 그 휘하에 있는 10인의 친위대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케일이 살모라에게 말했다.

“기세 흉흉한 것 좀 봐라. 얘네가 네가 말한 첫 번째 제자와 일등 병사들이야?”

“그래, 전원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는 놈들이지.”

제1 부대장 피프.

그는 세 명밖에 되지 않는 정식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실력을 가진 제자였다.

그리고 동시에 살모라가 기사단장으로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부대장으로 임명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경지는 ‘중상급 소드 마스터’.

또한 열다섯 명이나 스무 명으로 이루어진 다른 부대원들에 비해 제1 부대원은 총 열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의 정식 명칭은 ‘일등 병사’였지만, 그 실상은 ‘차기 부대장 후보생들’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바이퍼 기사단의 최고 전력들인 셈.

이윽고 대강의 소개를 마친 살모라가 고개를 돌려 피프에게 물었다.

“피프, 어제 말한 준비는?”

“부대원 전원이 몸에 새겨진 심벌을 포함하여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모든 흔적들을 지웠습니다.”

패배할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심벌을 포함한 각종 소속 마크를 지웠다.

지금 이 사달이 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히람과 그의 부대원들의 몸에 새겨져 있던 더블 스네이크 마크 때문이었으니까.

그 덕분에 팔뚝에 심벌을 새겼던 1부대원들은 전원이 인두로 팔뚝을 지지거나 살갗을 도려내는 등의 방법으로 심벌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살모라의 소개가 끝나자 이번엔 케일이 자신의 제자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도 소개할게. 이 아이들은 전부 4서클 마스터로, 현재 마탑에서의 위치는 일등 마법사. 그리고 셋 다 순수 원소학 전공 마법사들이지만 나를 따라서 4대 기초 원소학을 마스터한 수재들이지.”

“전에는 천재들이라며?”

“생각해 보니까 마탑에는 천재들이 너무 많더라고. 그러니까 스승인 나만 천재로 하고 그 제자들은 수재라고 부르기로 했어.”

뻔뻔한 스승이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보통은 4개의 기초 원소학들 중 하나만 선택해서 배우면 되기 때문에 굳이 4개나 마스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개의 기초 원소학을 습득한 이들은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케일의 소개에, 살모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든든하군.”

“그럼, 당연하지! 다른 놈들도 아니고 무려 내 제자들인데. 아무튼 준비는 끝났으니 거기 마법진 위로 정렬해 봐.”

마력을 아끼기 위해 케일은 미리 마정석 가루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그려 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 네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주문을 시전하자 짧은 섬광과 함께 모두가 사라졌다.

* * *

고웬 산맥의 어딘가.

허공에서 전류가 터져 나오며 십수 명의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모라와 일행이었다.

그들이 흙먼지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지정된 좌표에서 기다리고 있던 헨리가 미소와 함께 그들을 맞아 주었다.

“늦지 않고 잘 왔네?”

낯선 목소리에 살모라의 친위대 전원이 검을 뽑아 들어 날카로운 경계 태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내 살모라가 팔을 들어 올리며 친위대를 저지했다.

그리고 친위대를 대신하여 살모라가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넌 누구냐?”

“누구기는? 편지 보낸 사람이겠지.”

“뭐라고?”

“백작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들 전부를 상대하는 데 두 명의 기사와 한 명의 마법사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마법사?”

마법사라는 말에 케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법사는 제국의 자원이자 마탑의 인재. 그러므로 제국의 마탑에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는 이 땅에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케일의 눈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케일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살모라에게 말했다.

“살모라, 아무래도 마법사는 다른 곳에 숨어 있는 것 같아. 그러니 조심할 필요가 있겠어.”

‘아이젠 이 개자식이……!’

평소에 그토록 마법사들을 천시하던 인물이 바로 아이젠이었다.

그런 아이젠이 자기 몰래 마법사를 초빙하다니? 살모라는 겉과 속이 다른 그의 비열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한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었다.

살모라가 이를 갈며 물었다.

“내 부하들은? 내 부하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설마 내게 거짓말을 한 건 아니겠지?”

“거짓말이라니, 설마. 네 부하들이라면 저기에 있잖아.”

헨리가 살모라의 말을 부정해 보이며 턱짓으로 한쪽 끝을 가리켜 보이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거대한 크기의 빙하가 마치 절벽을 연상케 하듯 우뚝 솟아 있었다.

우뚝 솟은 빙하.

그리고 그 안에는 반에 의해 두 동강 난 시체들이 얼음 속에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이쪽 지방이 살게라와는 다르게 좀 덥더라고. 그래서 시체가 상할까 봐 일부러 좀 얼려놨지.”

헨리는 죽은 부하들을 모욕하는 것도 모자라 저급한 말장난으로 살모라의 기분을 더럽혔다.

츠캉!

말없이 검을 뽑아 드는 살모라.

그는 진정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이에 헨리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무섭네. 하지만 아쉽게도 네 상대는 내가 아니야.”

“뭐라고?”

“마침 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그럼 좀 이따가 보자고.”

짝!

대답을 마친 헨리가 큰 소리가 나도록 손바닥을 쳤다.

그러자.

번쩍!

박수와 함께 살모라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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