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76화 (76/522)

# 76

두 번째는 확실하게 (2)

“뭐라고?”

“혹시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금은보화를 상으로 내리려 하시는 거라면 부디 포상을 거두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포상은 순전히 아이젠의 호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말인즉슨 포상은 내려도 되고 안 내려도 되는 것.

그러나 그런 호의를 먼저 거절했으니 아이젠의 기분이 상할 만도 했다.

“네놈,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그따위 혓바닥을 놀리는 것이더냐?”

기분이 상한 정도가 아니었다.

아이젠은 헨리의 건방짐에 금방이라도 주먹을 내뻗을 것처럼 목소리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헨리가 서둘러 뒷말을 덧붙였다.

“존경하는 백작님, 죄송하지만 저에겐 이미 먹고살 만큼의 충분한 재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저에겐 재물보다 더욱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간절한 바람이라고? 그래,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과연 네놈이 얼마나 잘난 것을 바라고 있기에 감히 내 호의를 거절하는지 말이야!”

“그것은 바로 제 목숨입니다.”

“……뭐라?”

“좀 전까지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확실해졌습니다. 백작님, 저는 오베르 후작이 두렵습니다.”

헨리의 입에서 오베르 후작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그제야 비로소 아이젠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백작님, 제가 처음에 도적단을 베었던 것은 제 신분에 맞는 용병 일을 하기 위해 도적단을 벤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온 시체들은 이들이 황궁 기사들임을 알고서도 벤 것입니다.”

“그래서? 황궁 사람을 베었으니 잡혀가기라도 할까 봐 두렵다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제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오베르 후작입니다.”

“오베르를? 왜 네놈이 오베르 그놈을 두려워하는 것이더냐?”

“최근 들어 누군가가 저를 추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것은 필시 수습대를 전멸시킨 자를 보복하기 위해 오베르 후작이 보복령을 내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비록 백작님께 힘이 되어 드리고자 이런 일을 벌이긴 하였지만, 그 악명 높은 오베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저의 목숨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추적을 받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헨리의 예상이 맞는다면 머지않아 오베르의 추적이 시작될 것은 분명했다.

‘운이 나쁘면 놈이 보낸 자객들과도 싸워야겠지.’

하지만 헨리는 오베르의 자객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놈이 아무리 자객을 보내 봤자 베어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살이 실패하게 되면 분명히 헨리의 ‘주변’을 해하려 할 텐데, 그렇게 되면 헨리 혼자선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된다.

‘자객뿐만이 아니겠지. 벤트를 이용하는 건 물론이고 천만황금에 대한 압박까지 가해질 게 분명하다.’

상상만 해도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헨리는 오베르 후작조차도 쉽게 손대지 못할 만큼 꽤나 든든한 그늘막이 필요했다.

‘내 뒷배가 아이젠인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화살은 아이젠에게로 쏘아진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면 일이 커지게 된다.

하지만 어른 싸움으로 번지게 될 경우, 어른들은 더 이상 아이들의 잘잘못이 아닌 서로의 기 싸움으로 목적을 변질시킨다.

그리고 헨리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에 아이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확실히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 좋다! 그럼 그간의 정성을 생각하여 네놈의 목숨은 내가 확실하게 책임지고 보살펴 주도록 하겠다.”

아이젠은 대답과 함께 품속에서 금으로 된 배지 하나를 헨리에게 던져 주었다.

“백작님, 이건……?”

“우리 쇼난 가문을 상징하는 쇼난의 배지다. 게다가 금색으로 된 배지는 대가주인 나만이 지급할 수 있는 증표. 그 배지를 몸에 차고 있으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해코지를 당하진 못할 것이다.”

쇼난의 배지. 게다가 금으로 만들어진 배지는 그야말로 대가문주를 등에 업고 있다는 권력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헨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물건을 손에 넣게 되자 슬며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입꼬리를 내려 보인 후 아이젠에게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작님! 하지만 보복을 가한다면 분명히 자객을 보낼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대처하면 되겠습니까?”

“자객? 자객이라……. 흐음.”

아이젠이 다시 한 번 멍청함을 뽐내기 시작했다.

이에 헨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백작님, 이러실 게 아니라 이참에 아예 백작님의 힘을 오베르 후작에게 과시해 보이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과시? 어떻게 말이냐?”

과시라는 말에 아이젠의 귀가 번뜩였다.

“도발을 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백작님께선 이젠 한 번 더 고발령을 소집하실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고발령을 소집하시기 전에 일부러 후작에게 정보를 흘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정보를 입수한 후작은 백작님의 고발령을 막기 위해서라도 모든 수를 동원할 게 분명합니다. 그때 백작님께서 떡하니 제안하시는 겁니다. 자신 있으면 힘으로 빼앗아 보라고 말입니다.”

“나더러 지금 영지전이라도 하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영지전을 하면 오히려 대가문주들끼리의 싸움이 드러나게 될 테니 다른 가주들의 비웃음만 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은밀하게 제안해야겠지요.”

“그럼 뭐, 뒤에서 싸우기라도 하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정말 만에 하나라도 백작님께서 패하셔도 곧바로 고발령을 소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사실…… 오베르 후작은 책략가로 유명한 집안이지, 힘 자체는 별 볼 일 없는 집안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참에 백작님의 힘을 똑똑히 보여 주는 겁니다.”

헨리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젠은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가장 자신 있는 분야로 맞붙는다. 게다가 변수가 생기면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와일드카드까지 쥐고 있다.

그야말로 멍청한 아이젠에겐 힘을 과시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그리고 헨리의 뛰어난 계책이 마음에 들었던지 아이젠의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흐흐흐, 오베르 그 자식. 그동안 재수 없는 얼굴로 항상 나를 무시해 왔었지. 이참에 그동안 쌓였던 한을 한꺼번에 풀어낼 수 있겠어.”

“맞습니다! 이 기회에 누가 우위인지 확실하게 보여 주시는 겁니다.”

“너 이 자식, 이름이 헨리라고 했던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과 이름이 똑같아서 정이 안 갔는데 하마터면 보석을 못 알아 볼 뻔했구나!”

“과찬이십니다, 백작님.”

“과찬은 무슨! 나, 아이젠 쇼난! 이런 칭찬은 아무에게나 내리지 않는다고!”

아이젠의 기분이 최고조로 치닫는 걸 본 헨리는 만족스러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헨리는 아이젠이 괄괄하게 웃는 걸 좀 더 지켜본 뒤, 준비해 두었던 다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백작님,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이번 일을 저에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호오, 너에게 맡겨 달라고?”

“그렇습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정보를 흘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얼마 후에 있을 오베르 후작가와의 교전까지 확실하게 승리하여 보이겠습니다.”

“흠, 뱀 대가리를 두 번이나 잘라 왔으니 실력은 의심치 않는다만……. 정말로 자신 있느냐?”

“기회만 주신다면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백작님의 위엄을 드높여 보이겠습니다.”

“좋다! 내 모든 걸 너에게 위임할 테니 어디 한번 시원하게 놀아 보거라!”

“감사합니다, 백작님!”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이제 헨리는 며칠 후에 있을 오베르와의 교전만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다면 확실하게 아이젠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며칠 뒤, 살모라는 오베르의 급한 호출을 받고 황급히 오베르의 저택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지?’

불안했다.

아직 아이젠 암살을 위한 준비도 채 끝내지 못했는데 갑자기 자신을 부른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살모라가 조심스럽게 집무실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였다. 살모라는 문을 열자마자 날아오는 재떨이에 그만 안면을 적중당하고 말았다.

“큭!”

이마를 정확히 내려친 탓에 두개골이 흔들릴 정도로 아팠다.

오베르가 던진 것은 다름 아닌 저번에 살모라가 술을 받아 마셨던 옥으로 된 재떨이였다. 그 덕분에 이마부터 미간까지 살이 찢어진 살모라는 꽤 많은 양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픈 내색을 보일 순 없었다.

집무실로 들어선 살모라가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후작님.”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는 오베르였기에 그 긴장감은 배가되었다.

살모라는 살벌하게 쏟아지는 오베르의 질책 속에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잘못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번에 청산한 잘못 이외에는 마땅한 잘못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에 오베르가 짧은 한숨을 토해 내며 구겨진 편지를 살모라 앞에 던져 보였다.

“읽어.”

바닥에는 살모라의 피와 더불어 재떨이에서 떨어져 나온 담뱃재와 수명이 다한 궐련들이 가득했다.

그로 인해 구겨진 편지가 더러워졌지만 살모라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겨진 편지를 주워 들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건……?”

내용물은 간단했다.

편지는 아이젠 백작이 보낸 것으로 수습대 전원의 시체가 자신에게 있으니 두 번째 고발령을 준비하라는 편지였다. 아니, 이것은 편지라기보다는 조롱이나 도발에 가까웠다.

살모라는 그제야 왜 자신의 주인이 이토록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 살모라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후작님.”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평생 동안 칼밥 처먹고 살아왔으면…… 적어도 아이젠 그놈한텐 안 당해야 될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네놈 따위가 아니라 다른 놈을 십검 자리에 앉히는 거였는데.”

저 말은 살모라가 가장 싫어하는 말들 중 하나였다.

자신이 비록 제국 십검의 마지막 자리를 꿰차긴 하였으나 이 자리 또한 순수한 실력으로만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여기서 욱하는 순간, 자신의 머리는 저기 바닥에 굴러다니는 재떨이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란 걸 살모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살모라는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사죄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후작님.”

“내가 네놈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나 듣자고 너를 부른 줄 알아?”

“아닙니다.”

“지금 당장 아이젠 그놈한테 가서 힘으로 빼앗든, 바짓가랑이를 붙잡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개 같은 시체들을 수거해 와. 그러지 않으면 너도…… 후우…….”

오베르는 마지막 말을 흐렸다. 그리고 긴 한숨과 함께 궐련 한 개비를 집어 든 후 불을 붙였다.

“스읍, 후우우…….”

오베르의 한숨이 허공에서 부서진다. 궐련을 한 모금 빨아들이니 그나마 분노가 진정되는 듯했다.

이윽고 목소리에 힘이 한풀 꺾인 오베르가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계획을 수정한다. 아이젠을 죽이는 건 니 아랫놈들의 시체를 수거한 그다음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땐 정말로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이번이 네놈의 마지막 기회거든.”

“반드시! 반드시 시체를 회수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꺼져.”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살벌한 경고에 살모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 수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오베르의 저택을 벗어난 살모라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근처의 건물에 주먹을 내질렀다.

쾅!

오러는 싣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면에는 주먹만큼의 크기를 가진 깊은 흔적이 패어 있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게 이런 기분인 듯싶었다.

살모라는 끊임없이 흐르는 이마의 피를 훔치며, 마침내 자신의 기사단 본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본부에 도착한 직후였다.

“단장님, 누가 편지를 전해 주고 갔습니다.”

“편지?”

본부에 도착하자 살모라의 비서가 편지 한 장을 그에게 내밀어 보였다.

비서가 말했다.

“그게…… 단장님 앞으로 온 건 맞는데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아서 누가 보낸 건진 잘 모르겠습니다.”

“갖다 준 놈은 이걸 어디서 주워 왔는데?”

“시종이었는데 시종도 본부 앞에서 주웠다고 합니다.”

“줘 봐. 그리고 넌 가서 붕대랑 지혈제 좀 가지고 오고.”

비서를 밖으로 내보낸 후, 살모라는 발신자 불명의 편지를 뜯어 보았다.

그리고 편지의 내용물을 확인한 직후, 살모라는 더욱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 이 개자식이 감히……!”

그 편지는 다름 아닌 헨리가 보낸 편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