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두 번째는 확실하게 (1)
“드디어 끝났네.”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과물은 훌륭했다. 간만에 솜씨를 발휘한 것치곤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 헨리는 차오르는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윽고 헨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 내며 깊게 잠든 반을 깨워 냈다.
“으, 음…….”
반이 옅은 신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성형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기에 일부러 반을 재운 것이다.
반은 의식을 차리자마자 가장 먼저 수술 결과부터 물었다.
“어떻게 됐어?”
반의 목소리에 떨림이 가득했다.
목숨을 건 대결 이외에는 평생 동안 누군가에게 자신의 얼굴을 내밀어 본 적이 없었기에 그 긴장감은 배가되었다.
이에 헨리가 대답 대신 거울을 내밀었고, 반은 떨리는 마음으로 감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려 보였다. 그리고.
“이, 이럴 수가!”
거울을 직시한 반은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미남!
그것은 완벽한 미남이었다.
20대 시절의 외모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빛나는 외모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미남보다도 가장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이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정말…… 정말이지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군…….”
헨리는 반이 요구한 것들 이외에도 전형적인 미의 기준들을 서비스로 변형시켜 주었다.
그 결과, 반의 얼굴은 길거리를 지나다니기만 해도 모든 여성들이 한 번쯤은 되돌아 볼 만큼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이에 헨리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작품에게 현재의 심정을 물었다.
이에 반이 헨리의 두 손을 꽉 쥐어 보이며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헨리…….”
“하하, 굳이 감사하다는 말은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 모든 건 거사를 위해서니까요.”
“……그게 아니라 출발을 내일로 미뤘으면 해서 말이야.”
“예?”
“오늘 밤, 그러니까 딱 하룻밤이면 돼. 생각해 보니까 그동안 쌓인 여독이 만만치가 않아서 말이야. 그러니까 딱 하루만 쉬고 출발하자고.”
“……알겠습니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반이 이뤄 낸 성과가 있었으니 헨리는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출발을 연기시켜 주기로 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고!”
헨리의 허락을 받아 낸 반은 서둘러 옷을 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결국 출발은 다음 날로 미루어졌다.
그리고 반은 술을 얼마나 퍼마셔 댔는지 곁에 있기만 해도 지독한 술 냄새에 코를 틀어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속은 좀 괜찮으십니까?”
“흐흐흐, 어젯밤만큼 기분 좋았던 적이 없다. 난 멀쩡하니 어서 출발하자고!”
겉모습은 젊은 미남이었지만 말하는 폼이나 행동은 완전한 아저씨였다.
하지만 체력만큼은 젊은이 못지않았기에 반은 쌩쌩한 모습으로 말 위에 올랐다.
일부러 저택의 식구들에겐 반의 변화를 알리지 않았다.
헤글러와 반은 헨리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직 저택의 사람들은 헨리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쇼난 출장을 핑계로 어떻게든 반의 변화에 대해 둘러댈 생각이었다.
헨리는 체스트에 각종 시체들을 포함하여 마차까지 집어넣은 다음, 서둘러 쇼난 지방으로 떠났다.
솜씨 좋고 체력 좋은 기수 둘이 말을 몰았으니 쇼난은 처음에 방문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헨리는 쇼난에 도착하자마자 적당한 짐마차 하나를 매입한 뒤 그 안에 시체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이젠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택 앞에 도착한 헨리가 낯익은 얼굴들에게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
“너, 너, 너는!”
헨리의 신분 패를 확인하려다 된통 당한 녀석들이 여전히 저택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에 헨리가 피식 웃으며 용건을 밝혔다.
“오늘도 백작님을 만나 뵈러 왔다.”
“뭐, 뭐라고? 이 자식이 또!”
“왜? 그때 맞은 걸론 부족했나 보지?”
분한 마음에 병사들이 발끈했지만 헨리가 제대로 된 살기를 뿜어내자 모두들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시간 없으니까 베디칸한테 전해, 내가 왔다고.”
“크윽…… 알겠다.”
그래도 꼴에 자존심은 버리지 못하겠는지 병사는 끝끝내 말을 높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반이 말했다.
“기르는 개는 주인을 닮는다더니……. 저것들, 한번 호되게 혼내 줘야 하지 않겠어?”
“이미 충분히 두들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천성이 저런 것을?”
그래도 영 못마땅했는지 반은 다시 한 번 끌끌 혀를 차 보였다.
이윽고 경비단장 베디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헨리를 발견한 베디칸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또 뭐냐?”
“저번과 같은 용무.”
“제기랄!”
베디칸 또한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용무라고 하니 달리 막아설 명분이 없었다.
그 덕분에 헨리는 짐마차와 함께 손쉽게 저택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여기서 기다려라.”
베디칸은 이번에도 응접실 앞에 두 사람을 세워 놓고 아이젠을 데리러 모습을 감추었다.
베디칸이 사라지자 잠자코 있던 반이 말했다.
“아이젠 놈, 여전히 으리으리하게 펼쳐놓고 사는구먼.”
“부러우십니까?”
“난 허례허식 따윈 필요 없다.”
“그러신 분이 하루만 출발을 연기하자고 하셨습니까?”
“흠흠, 그건 어디까지나 성형이 잘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이든 확실하게 하는 게 좋잖아?”
반의 뻔뻔함에 헨리가 잠시 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면서 드렸던 말씀, 잘 기억하고 계시죠?”
“알고 있다.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가명을 사용하는 것과 너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 맞지?”
“가명은 정하셨습니까?”
“렌버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렌버? 굳이 렌버인 이유가 있나요?”
“그날 같이 술 마셨던 놈 이름이 렌버였거든.”
반에게 가명을 권한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라도 감이 좋은 아이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존댓말은 직책상 반이 부단장이었으니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낯익은 마차가 두 사람 앞에 도착했다. 아이젠의 마차였다.
아이젠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대뜸 인상부터 찌푸려 보였다.
‘일이 잘 안 풀린 모양이로군.’
헨리를 보자마자 호탕하게 반겨 주었다면 필시 고발령이 잘 풀렸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젠의 표정이 좋지 못했으니 고발령 또한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뜻.
이에 헨리가 먼저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인사를 올렸다.
“백작님을 뵙습니다.”
“또 너냐?”
“그렇습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벌써부터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헨리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아이젠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경비단장에게 말한 그대로입니다. 이번에도 바이퍼 기사단의 시체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뭐라고?”
바이퍼 기사단의 또 다른 시체를 가지고 왔음을 밝히자 아이젠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이에 아이젠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불과 며칠 사이에 뱀 놈들의 시체를 또 가지고 나타났다고? 지금 감히 나를 우롱하는 것이더냐?”
확실히 믿기 힘든 사실이긴 했다.
처음은 그렇다 쳐도 두 번이나 황궁 기사단의 시체를 가지고 오는 건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이에 헨리가 차분하게 대꾸하기 시작했다.
“우연이었습니다. 살게라에 볼일이 있어 부단장에게 심부름을 보냈는데 공교롭게도 다시 한 번 바이퍼 기사단과 마주친 것입니다.”
“나더러 지금 그걸 믿으라고?”
“이번에도 역시 번트 검문소장의 추천서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헨리는 품에서 번트의 추천서를 꺼내 아이젠에게 내밀어 보였다. 아이젠은 그것을 낚아채서 빠른 속도로 내용물을 확인했다.
헨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추천서에는 번트의 도장과 함께 바이퍼 기사단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검문소를 습격하려 했다는 생생한 목격담까지 확실하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이젠은 추천서를 두어 번 연거푸 읽었음에도 불신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것을 본 헨리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놈, 그러니 네가 오베르 같은 놈한테 후작 자릴 빼앗기지.’
적어도 오베르였다면 아이젠처럼 무작정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확실한 사실들부터 확인했을 터였다. 그리고 정황을 되짚어 본 뒤, 또다시 증거들을 데리고 나타난 헨리에게 큰 상이라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무식한 근육 덩어리는 뇌까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포상은커녕 오히려 은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쏟아붓고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헨리가 설명에 나섰다.
“백작님, 지금 백작님께서 왜 저를 의심하고 계시는지는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예정된 수순?”
“그렇습니다. 도적 떼로 변장한 기사단을 궤멸시키고 난 후, 제가 그만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실수? 무슨 실수 말이냐?”
“혹시 제가 시체들과 함께 보여 드렸던 팔 한쪽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근데 그게 왜?”
“팔을 한쪽밖에 자르지 못했다는 말은 곧 한 놈을 놓쳤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놓친 놈은 당연히 오베르에게 계획이 틀어졌음을 알렸겠지요. 그리고 이번 일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엄연히 황명을 어기는 일, 오베르는 자신의 치부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습대를 보내 증거인멸을 시도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몰라 수습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 예상대로 수습대는 증거인멸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기에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수습대의 시체를 가지고, 저는 다시 한 번 백작님께 칼자루를 선물해 드리려고 이곳에 온 것입니다.”
멍청한 아이젠을 위해 헨리는 일일이 모든 상황들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일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헨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공로를 부각시켜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헨리의 설명을 들은 아이젠이 생각했다.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저놈을 의심하는 것도 고발령이 실패하는 바람에 저놈한테 화풀이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
아이젠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꽤나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무턱대고 헨리를 의심한 것도, 헨리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린 것도…… 솔직히 말하자면 전부 다 성공할 줄로만 알았던 고발령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아이젠은 그제야 헛기침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흠흠, 이거 내가 잠시 보여선 안 될 추태를 보였군그래.”
“아닙니다. 한데…… 백작님의 기분이 언짢으신 걸 보니 저번에 그 일은 잘 풀리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오베르 그놈이 워낙에 비열해서 말이지……. 황제 폐하도 참 멍청한 게 어떻게 그따위 연기를 보고 쉽게 속을 수가 있는지. 나 참……!”
듣고 보는 이가 이렇게나 많은데 대가문주라는 작자가 손쉽게 황제의 욕을 한다.
삼대가문도 아닌 주제에, 하물며 경쟁에서 밀려난 아이젠까지 이렇게나 쉽게 황제를 욕하는 걸 보니 황권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젠의 말을 들어 보니 실제로 보지 않았음에도 국좌 앞의 상황이 어땠을지 훤히 보였다.
‘멍청한 놈! 그러니 네가 평생 오베르를 이기지 못하는 거다.’
이에 헨리가 다시 한 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일단은 가진 말을 최대한 활용해야겠지.’
아이젠은 멍청하긴 했어도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헨리가 다시금 아이젠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오베르도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그건 그렇고 이번에도 당연히 상을 내려야겠지?”
등가교환.
무언가를 주었으면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다.
헨리는 아이젠의 뉘앙스에서 저번과 같은 금화를 지불하려는 조짐을 느꼈다. 그래서 서둘러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먼저 상을 거절했다.
“백작님. 상은 필요 없습니다.”
이에 백작의 눈살이 다시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