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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74화 (74/522)

# 74

덤 (5)

“지금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한참 동안 묵묵히 드라칸을 따라가던 히람이 물었다. 그럴 때마다 드라칸은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대답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 드라칸이 향하는 곳은 마탑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이 자식, 무슨 생각이지?’

수상한 냄새가 가득했지만 단장의 추천이니 섣불리 발을 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말없이 드라칸을 따라가길 한참, 드라칸은 황궁과 마탑 사이쯤에 위치한 평범한 성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도착했습니다.”

“여긴…… 그냥 성벽이 아닙니까?”

그러나 드라칸은 히람의 질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성벽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위병소에서 보았던 포털과 비슷한 형태의 포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다?’

그런데 새하얗던 위병소의 포털과는 달리 눈앞의 것은 새카맣기 그지없었다.

꺼림칙했다.

검정색이 주는 특유의 불길한 느낌 때문인지, 히람은 왠지 모르게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가시지요.”

그러나 드라칸은 이번에도 제안을 가장한 통보를 선언했다.

이에 히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드라칸 님, 지금 저를 대체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히람 님의 팔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러니까 거기가 대체 어딥니까? 지금 가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아야 저는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탁하러 온 입장은 분명히 히람이었다. 그러나 왠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히람이 경계하는 눈초리로 드라칸을 바라보자 이에 그도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서 히람을 쳐다보았다.

사백안.

드라칸의 눈동자는 중앙에 검은자위가 놓여 있고 사방에 흰자가 드러난 전형적인 사백안이었다. 섬뜩하기 그지없는 눈빛이었다.

드라칸은 사백안을 번뜩이며 히람을 쳐다보았지만 이내 전에 지어 보였던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걸쳐 보이며 말했다.

“역탑입니다.”

“역탑? 역탑이 대체 어딥니까? 저는 황궁에 역탑이란 장소가 존재한다는 걸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역탑이라면 살모라가 실수로 언급한 적이 있기에 단어 자체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면서 황궁에 역탑이라는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에 역탑에 대한 의구심을 늘어놓으려던 찰나, 드라칸이 사백안을 더욱 번뜩이며 말했다.

“히람 님.”

소름 끼칠 만큼 섬뜩한 눈빛이었다, 소드 마스터인 히람이 당황할 정도로.

이에 히람이 약간의 머뭇거림과 함께 대답했다.

“예! 말씀하세요.”

“그 팔, 고치고 싶지 않은 겁니까?”

“당연히 고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드라칸은 히람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저 말을 끝으로 먼저 검은 포털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이윽고 성벽 앞에는 히람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제기랄.”

기분이 나빠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단장인 살모라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부를 정도라면 마탑 내에서도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놈일 거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히람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두려움 때문에 도망치는 것은 그때 한 번이면 충분했다.

히람은 어쩔 수 없이 굳게 마음을 먹고 검은 포털 속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지잉.

현관문을 넘어가듯 포털 안쪽으로 몸을 들이자 자연스럽게 포털이 닫혔다.

찰박!

그리고 포털 안쪽으로 발을 들였을 때였다. 히람은 포털 안쪽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물웅덩이를 밟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가 이렇게 어두워?’

게다가 사방은 한 치 앞이 안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고 공기가 매우 습한 곳이었다.

똑.

움찔!

히람의 얼굴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낯선 환경에, 더군다나 앞도 보이지 않은 상황이기에 신경이 몹시 예민해졌다.

‘물?’

히람은 얼굴 위로 떨어진 물을 손으로 닦아 냈다. 그런 다음 습관처럼 그것을 코로 가져다 댔다.

그런데 손끝에 묻어난 냄새는 물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코를 찌르는 익숙한 비린내.

냄새의 정체가 머릿속에 떠오르려던 순간이었다.

“라이트.”

파앗!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드라칸은 광명의 주문을 외웠다.

갑작스러운 광명에, 히람은 두 눈을 찌푸리고 고개를 살짝이 숙여 보였다.

그리고 점점 시야가 광명에 익숙해지면서 앞이 선명해질 때쯤 히람은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히람이 제일 먼저 목격한 것은 자신이 가장 먼저 밟았던 바닥의 ‘물웅덩이’였다.

“피?”

짙고 붉은색으로 뭉쳐져 있는 웅덩이, 그리고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

그것은 혈액이 확실했다.

이에 놀란 나머지, 히람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했다.

“지, 지금 이게 무슨……!”

붉은 조명, 사방에 박제되어 있는 시체, 그리고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솥단지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약품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두 눈 가득히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십 구의 ‘시체’들이었다.

이에 드라칸이 양손을 벌려 보임과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히람 님.”

드라칸의 환영 인사가 끝나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들이 히람을 덮쳤다.

* * *

며칠 뒤, 길이 엇갈렸던 반이 드디어 저택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마중을 나가 그를 반겼으며 별다른 이상은 없는 듯했다.

이에 헨리 또한 반을 반겨 주며 안부를 물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그나저나 길이 엇갈렸더군.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는 번트 경에게 들어 알고 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구태의연한 설명은 필요 없겠네요.”

“설명은 내가 해야겠지. 헨리, 잠시 귀 좀 빌려주겠나?”

반은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빠르게 인사를 돌린 뒤 곧바로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헨리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야기가 끝나 갈 때쯤, 헨리가 눈꺼풀을 찌푸려 보이며 말했다.

“……도시 바깥에 말입니까?”

“마차 가득히 시체를 싣고 왔는데 도시 안으로 들여올 순 없잖아?”

“벌써 수습대를 보낼 줄은 몰랐는데……. 하아, 그럼 일단 시체부터 수습하러 가시죠.”

크고 작은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반은 시체를 싣고 온 마차를 도시 바깥에 주차시켜 두었다.

이에 헨리는 벤트 시장에게 ‘특별 출입 허가증’을 발급받은 다음 서둘러 시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체는 며칠의 시간이 지난 탓에 벌써 부패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이에 헨리는 마법으로 시체를 코팅하기 시작했다. 시체 썩은 내가 바깥으로 새어 나가선 안 됐으니까.

이를 본 반이 말했다.

“한결 낫군. 저것들을 싣고 오는 동안 냄새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죄송합니다. 추방민들 생각에 미처 수습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 대신 수습대를 막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운이 좋았던 게지. 어찌 됐든 막았으니 됐잖아?”

서둘러 추방민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에 미처 수습대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 덕분에 수습대를 막아 내고 다시 한 번 추방민들을 지켜 낼 수가 있었다.

이는 거대한 성과였다.

이윽고 반이 화제를 전환시켰다.

“듣기로는 아이젠 그놈한테 다녀왔다지?”

“그렇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고발령을 소집해서 한바탕 뒤흔들어 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글쎄,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오베르 그놈인데 아이젠 같은 돌대가리한테 쉽게 당할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오베르와 아이젠 사이를 더욱 악화시킬 수는 있겠지요.”

헨리는 대답과 함께 시체가 실린 마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형님 덕분에 한 번 더 오베르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좋은 명분이 생겨났고요.”

“그럼 이번에도 역시 아이젠에게 넘길 참이냐?”

“어차피 그럴 생각으로 저한테 가지고 오신 거잖아요? 그리고 벌써 바이퍼 기사단이 두 부대나 궤멸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베르가 멍청이가 아니라면 배후 조사에 나설 게 분명해요.”

“그게 큰 상관이 있나? 아이젠이 고발했으니 당연히 아이젠을 의심하지 않겠어?”

“아뇨, 오베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똑똑한 놈입니다. 그리고 그에 비해 아이젠은 한없이 멍청한 놈이고요. 아마 처음에는 아이젠을 의심하겠지만 수습대까지 막아 낸 걸 보면 아이젠 말고도 다른 놈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겁니다.”

“그럼 어떡해?”

“어쩌긴요, 이번에도 이 시체들을 아이젠에게 넘겨주고 아이젠한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워야지요. 그리고 어차피 오베르가 작정하고 나선다면 저의 존재는 반드시 발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네가 의뢰를 맡아서?”

“그것도 그렇지만 문케가 증인으로 잡혀 왔는데도 물자 보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 문케 대신 의뢰를 진행한 놈을 찾을 게 분명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반드시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요.”

“하긴,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니 한 번쯤은 만나 보려고 하겠지. 근데 그래 봤자 한낱 용병인 걸 알 텐데 그렇게까지 의심하겠어?”

“오베르니까 더더욱 가만히 안 두겠지요. 찝찝함을 남겨 두는 것보단 없애 버리는 게 훨씬 더 나은 선택이니까.”

“흠, 그렇다면 더더욱 빨리 쇼난으로 떠나야겠군.”

“그래야겠죠. 그럼 이번엔 저 혼자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형님은 그동안 쌓인 여독이나 푸세요.”

“됐어. 한창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 둬야지. 그리고 이참에 아이젠 그놈 낯짝도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원수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만큼 좋은 동기부여는 없다.

이에 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동행을 허락했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얼굴로는 힘든 거 아시죠?”

“왜? 관계가 껄끄러울까 봐? 어차피 첫 번째 시체도 번트가 보냈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그렇긴 하지만 괜히 신경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젠이 제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집 밖으로 저를 내쫓은 적이 있거든요.”

“하여튼 누가 짐승 같은 놈 아니랄까 봐, 감 하나는 여전하구먼.”

“아무튼, 그런 연유로 얼굴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으면 좋겠는데요?”

“어떻게 말이냐?”

“글쎄요, 대가문의 저택이니만큼 마법 보안 장치는 어느 정도 적용되어 있을 텐데…….”

“변장을 하면 어떻겠냐?”

“여태껏 감 하나로 먹고 살아온 놈입니다. 어설픈 변장은 오히려 독이 될 뿐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이참에 아예 얼굴을 뜯어고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뜯어고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형님께선 혹시 ‘성형술’이라는 마법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성형술이라면…… 그 돈 많은 귀부인들이나 받는다는 미용 마법을 말하는 것이냐?”

“바로 그겁니다.”

성형술.

성형 혹은 성형 마법이라고도 불리며, 고위급 마법사가 마력으로 얼굴을 분해한 다음 취향에 맞춰 얼굴을 재조립하거나 변형시키는 최상위 미용 마법을 뜻하는 단어였다.

원래는 동물학을 전공하던 마법사들이 사고로 인해 겉모습이 상한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덜어 주기 위해 개발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안정화되고 성공률이 100퍼센트에 달하게 되자 인간학 마법사들이 관심을 보이게 되면서 현재의 성형술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난 됐다. 변장을 하면 변장을 했지, 내가 여자도 아니고 그런 걸 뭐 하려고 해?”

“미용은 옵션이죠. 중요한 건 외형을 바꾸는 게 아니겠습니까?”

“글쎄, 난 됐대도.”

“아쉽네요. 저 정도의 능력이면 형님의 얼굴을 거의 20대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뭐? 방금 20대라고?”

“그렇습니다.”

사실 성형술은 굉장히 위험한 마법이었다.

지속적인 마력 공급은 둘째 치고, 마법사가 직접 대상의 외형을 만져야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미적 감각이 부족한 마법사가 성형술을 시도하면 원본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결과물이 탄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는 초일류 성형술사였다.

지속적인 마력 공급은 물론이고 마력을 세밀하게 다루는 감각, 그리고 유행에 민감한 황궁에서조차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었을 만큼 타고난 미적 감각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한 미용이 아닌 ‘20대 시절’로 되돌릴 수 있다는 말에 반의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흠흠, 다른 모습도 아니고 20대 시절의 내 모습이라면야…….”

“그럼 허락하신 겁니다?”

“오해하진 마라, 이건 어디까지나 거사를 위해서니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아 참. 그건 그렇고 말이야, 혹시 이왕에 외형을 바꾼다면 이참에 코도 좀…….”

“하하, 알겠습니다. 코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쏙 드실 만큼 미남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니, 뭐 굳이 미남이 아니라 난 그저 20대 시절의 내 모습이면 된다마는…… 흠흠!”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다르게 반의 얼굴에는 강렬한 기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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