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56화 (56/522)

# 56

내 사람 (3)

천사의 품.

고리대금업 주제에 천사의 품이라는 이름을 쓴다는 게 우스웠지만, 달리 해석하자면 천사의 품에 안기기 위해선 죽는 수밖에 없기에 무시무시한 뜻을 가지기도 하는 이름이었다.

천사의 품은 비발디 타운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업장이었다.

바꿔서 말하자면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악명이 자자한 곳이라는 뜻.

업장은 척 보기에도 거대한 건물이었다.

1층에서는 직원으로 보이는 깡패들이 술집에라도 온 양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저들이 수금을 담당하는 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하이샤 있나?”

텐이 사장의 이름을 부르자 제법 점잖아 보이는 깡패가 다가와 텐에게 머리를 숙였다.

“어르신 아니십니까? 이곳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긴, 너네 사장 만나러 왔지. 하이샤 위에 있지?”

“계시긴 합니다만…… 혹시 돈을 빌리러 오신 겁니까?”

“내가 너한테 그런 것까지 말해야 되나?”

“돈을 빌리러 오신 거라면 저희 쪽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 저희 사장님께선 누굴 만나실 상태가 아니라서…….”

“왜, 하이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런 건 아니지만, 사장님께서 앞으로 아무나 들여보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뭐?”

자그마치 타운 내의 최고 부자라는 별칭을 가졌던 텐이다.

깡패 또한 텐이 어떤 남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하이샤와는 몇 번이나 술잔을 함께 나눈 사이.

그런 텐을 가리켜 ‘아무나’라고 했으니 텐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무엇을 말입니까?”

“몰라서 물어? 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알고 있습니다. 타운 내의 최고 부자였지만 이제는 빈털터리가 된 텐 어르신이 아니십니까?”

“뭐……?”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에 텐은 그만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어르신, 이미 소식은 들었습니다. 듣기로는 한 달 전쯤에 어르신께서 직접 개최하신 챔피언 방어전이 크게 망했다면서요? 그 때문에 엄청난 빚을 지셨다고 들었는데…… 제 말이 혹시 틀렸습니까?”

“큭큭큭, 천만황금도 결국 망하긴 망하네.”

“투기로 흥한 자 투기로 망한다더니.”

“그럼 저 영감은 뭐야, 담뱃값이라도 빌리러 온 거야?”

곳곳에서 텐을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나름대로 조용하게 뒤처리를 했다고 생각한 텐인지라 벌써 이런 소문이 퍼졌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그래서?”

“예?”

“누가 깡패 새끼 아니랄까 봐 말하는 게 어찌나 저급한지……. 내가 아무리 망했어도 네까짓 놈 하나 어떻게 못 할 줄 알고?”

“크크크, 어르신.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면 알 일이고. 비켜, 너 같은 놈이랑 말장난할 시간 없으니까.”

“어허, 저희 사장님께선 아무나 만나 주시지 않는다니까요?”

남자는 끝끝내 텐을 막아섰다.

이에 텐이 말했다.

“헨리 경.”

“응.”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우드득!

“크아아악!”

텐의 부탁이 떨어짐과 동시에 헨리는 남자의 팔을 순식간에 꺾어 버렸다.

기형적인 모양새였다.

헨리는 꺾인 팔을 한 번 더 뒤집은 다음 발끝으로 눌러 찍어 뼈마디까지 확실하게 부러뜨렸다.

“혀, 형님!”

“형님이 당하셨다!”

“뭐 해, 다들 저놈 잡아!”

“저 새끼가!”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한 놈의 팔을 부러뜨리니 나머지 놈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연장을 들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헨리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을 통째로 꺼내 들어 몽둥이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직!

콰드득!

우드득!

언뜻 보기엔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었으나,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피면 한 사람이 나머지를 압도하고 있었다.

헨리의 몸짓은 흐르는 강물 그 자체와도 같았다.

아무리 많은 수의 깡패들이 몰려와도, 일부러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놈들의 정신을 현혹시켰다.

“죽여 버려!”

“뭐 해, 저놈 안 잡고!”

싸움이 시작된 순간, 텐은 일부러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시야에서 사라졌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헨리가 어련히 알아서 보호해 주겠지만, 이는 좀 더 확실하게 날뛰라는 텐의 배려였다.

한참 뒤, 헨리는 마지막 남은 깡패의 경추를 부러뜨려 전신을 불구로 만들었다.

“히, 히익……!”

바닥에는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수십에 달하는 직원들을 쓰러뜨린 헨리를 보며 그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사람은 감히 자신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라는 사실을 말이다.

“끝나셨습니까?”

“어, 대충은.”

상황이 정리되자 그제야 텐이 뒷짐을 진 채로 나타났다.

이윽고 텐이 턱짓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이, 거기 너.”

“예, 예, 예! 마, 말씀만 하십시오!”

“가서 너네 사장 불러와.”

“아,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놈은 팔이 부러지고 어깨가 빠진 놈이었다.

녀석은 빠진 어깨를 대롱거리며 서둘러 2층에 있는 하이샤를 부르러 갔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얼마 뒤 짜증이 가득 섞인, 거기다 지방까지 잔뜩 낀 듯한 목소리가 위층에서 들려왔다.

“이,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야?”

그것은 하이샤의 목소리였다.

놈은 대낮부터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축 처진 가슴께가 드러난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1층에 널브러진 직원들을 보자마자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이샤와 눈이 마주친 텐이 말했다.

“하이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 * *

“제가 직원 교육을 잘못시키는 바람에 그만…….”

깡패 놈들과는 달리 그래도 직접 돈을 만지는 놈이라 그런지 하이샤는 상황 파악이 빨랐다.

놈은 텐의 요구대로 ‘악성 채무자’들을 가두어 놓은 지하 감옥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철컥!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곧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지하는 몹시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하이샤가 벽을 더듬어 어떠한 장치를 건드리자 곧 사방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자 곧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던 악성 채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다 채무자들이라고?’

채무자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다 초췌한 얼굴에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불을 밝히고 하이샤가 모습을 드러내자 감옥 안에 갇혀 있던 채무자들이 좀비처럼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하, 하이샤 님!”

“하이샤 님! 제발 저를 꺼내 주십시오!”

끔찍한 광경이었다.

헨리와 텐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동안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다 초점이 희미하고 생기를 잃은 얼굴들이었다.

어떤 이는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는데, 학대에 의한 상처가 아니라 도박에 대한 욕구를 분출하지 못해 자해한 상처들이었다.

이윽고 하이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쇠창살 앞으로 다가가 헨리가 요구한 사람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너, 너, 너 그리고 너. 나와.”

지목을 받은 이와 그러지 못한 이들 사이에 만감이 교차했다.

선택된 네 사람은 쇠사슬을 질질 끌며 쇠창살 밖으로 나왔다.

헨리는 그중에서 가장 젊어 보이는 남자를 가리키며 하이샤에게 물었다.

“얘는 어려 보이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이놈은 모든 경영 길드가 탐내던 천재 회계사였습니다.”

“그런데?”

“귀가 너무 얇았습니다. 회계사 주제에 사업가 흉내를 내려다 말아 먹은 사업이 1~2개가 아닙니다.”

“그래?”

남자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나자 수치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그만 고개를 푹 숙였다.

이에 헨리가 남자 앞으로 다가가 질문했다.

“너, 이름이 뭐지?”

“해, 해리스입니다…….”

“좋아, 해리스. 너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 없냐?”

“……예?”

“내 밑에서 일하라고. 내 밑에서 일하겠다고 하면 여기서 꺼내 줄게. 싫으면 말고.”

“하, 하겠습니다! 하게 해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좋은 판단이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헨리는 더 이상 송충이가 방황하지 않도록 자신이 솔잎이 되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해리스는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손길에 눈물을 쏟으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지하 감옥에 갇힌 채 평생을 여기서 썩거나 어느 오지의 탄광 노예 같은 것으로 팔려 갈 줄로만 알았던 해리스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구원이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머지 세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헨리는 그들 모두에게 일자리를 제안했고, 모두들 해리스처럼 그렇게 하겠다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헨리는 말을 마치려던 순간,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아, 참! 이중에 도박 빚으로 잡혀 온 사람 있나?”

헨리의 질문에, 고용된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올렸다.

“넌 고용 취소야.”

“예, 예? 대,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난 약쟁이랑 도박하는 놈 말은 안 믿거든.”

헨리는 저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저들에게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준다면,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마약과 도박은 그 성질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처음부터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비로소 고용을 마친 헨리가 하이샤에게 물었다.

“얼마야?”

“그, 그냥 데리고 가십시오. 이들은 제 성의입니다.”

“그래? 그럼 거절하지 않고 잘 받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하이샤는 소문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망한 줄로만 알았던 천만황금은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텐은 새로운 검 치기 챔피언을 호위로 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하이샤는 얼른 저 네 사람을 쥐여 주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눈앞에서 내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럼 이제 세탁비를 한번 정산받아 보실까?”

“세, 세탁비라니요?”

“이거 안 보여? 네 부하 놈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핏물이 튀었잖아. 이거 비싼 옷이라고, 이건 어떻게 변상할 건데?”

“다, 당연히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물론이고말고요!”

“필요 없어.”

“예, 예……?”

“돈은 필요 없다고. 대신 저기 감옥에 있는 채무자들을 전부 나한테 넘겨.”

“그, 그건 안 됩니다! 저들을 전부 풀어 주면 수지 타산이 전혀 안 맞습니다……!”

“난 네놈 부하들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럼 세탁비 받고 내 목숨값까지 변상받을까?”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

헨리는 자신만의 논리를 내세워 끝끝내 지하 감옥의 모든 이들을 꺼내 주었다.

이유는 같았다.

저들은 비록 헨리가 원하는 능력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 더 구원받을 자격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회계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들에게도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럼 다음 가게로 가지.”

“예, 알겠습니다.”

볼일을 마친 두 사람은 수십 명에 달하는 채무자들을 이끌고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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