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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54화 (54/522)

# 54

내 사람 (1)

열흘로 잡았던 기간은 생각보다 빨리 끝나 이틀 만에 처리되고 말았다.

볼일을 마친 헨리는 며칠 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반과 함께 앙켈만을 벗어났다.

말을 타고 가던 중, 헨리가 물었다.

“형님, 혹시 다른 분들에 대한 소식은 모르십니까?”

헨리는 혹시라도 반이 다른 이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다른 이들에 대한 소식은 나도 잘 모른다. 다들 그렇게 흩어진 후론 숨어 살기에 바빴으니까.”

“그렇군요.”

애석하게도 다들 제 목숨 유지하는 것조차 빠듯했던 것 같다.

“그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별다른 소식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지 않겠느냐.”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대공 덕분에 우리들이 산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공께서 우리들에게 흩어질 것을 명령하지 않으셨다면 미련스럽게 끝까지 황궁에 남아 비참한 말로를 겪었을 테지.”

헨리의 명령에 따라 황궁을 벗어나 몸을 숨긴 것이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로 잔존 세력 숙청을 당하고 말았을 테니까.

“그럼 측근분들은 그렇다 치고, 스승님께서 보호하고 계시던 분들의 행방에 대해서는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들은 모두 추방당했다.”

“예? 추방요?”

“대공께서 혼자 반역죄를 짊어지신 덕분에 죽음은 겨우 면했지만, 그래도 반역 가문이라는 오명은 벗지 못했거든.”

‘이게 무슨 소리야?’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황제는 분명히 자신의 목숨 하나로 식솔들의 목숨과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의 입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끝끝내 오명을 벗지 못한 그들은 결국엔 대륙 끄트머리로 추방됐다고 들었다. 듣기로는 북방의 ‘살게라’로 추방됐다고 하던데, 자세한 사정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살게라라면 그 설원의 살게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망할 놈들!’

설원의 살게라.

대륙에서 유일하게 1년 내내 눈이 내리는 곳이자, 잦은 한파와 끔찍한 기후변화 때문에 사람이 살 곳이 못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으로의 추방이라니.

대놓고 죽으라는 명령과도 같았다.

‘분명히 귀족 놈들이 건의했겠지, 빌어먹을 놈들…….’

약속을 지킬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의 처우는 죽이는 것만 못했다.

헨리는 비발디 타운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들의 행방부터 추적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여태껏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하기 힘들었지만, 만약 생존자가 남아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구출해 내야만 했다.

‘개만도 못한 놈들 같으니.’

이후 헨리는 비발디 타운으로 가는 내내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황제와 귀족 놈들의 행태도 열이 받았지만, 그 꼬라지를 알고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이 분노를 가열시켰기 때문이다.

반 또한 헨리의 심경을 눈치챈 것일까, 두 사람은 비발디 타운으로 향하는 내내 침묵을 유지했다.

* * *

“좋은 집에 사는구나.”

“제집은 아닙니다. 그냥 제집처럼 사용할 뿐이지요.”

두 사람이 텐의 저택 앞에 당도하자 반은 저택의 크기에 감탄했다.

집은 그 사람의 능력을 뜻하는데, 헨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발견한 하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헨리를 맞이했다.

이제는 하인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진짜 주인이 텐이 아닌 헨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루에서 한가롭게 햇볕을 쬐고 있던 텐은 헨리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황급히 옷매무새를 추슬렀다.

“벌써 오신 겁니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거든.”

“그렇다면 옆에 계신 분이 혹시?”

“그래, 이분이 바로 용병단의 부단장을 맡아 주실 반 경이시다.”

“반갑습니다, 반이라고 합니다.”

반은 선뜻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에 텐도 반의 손을 붙잡았으나, 왠지 모르게 낯이 익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반?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설마 황궁의 그 반 경은 아니겠지?’

“네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다.”

“네, 네, 네? 뭐, 뭐라굽쇼?”

“사정이 있어 내가 모시게 된 것이니 내색하지 마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긴가민가하는 텐에게 헨리는 속 시원히 반의 정체를 밝혀 주었다.

어차피 계속해서 같이 지내야 될 사이인데 정체를 숨겨 봤자 번거롭기만 했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대공을 몰라뵙고 이런 실수를……!”

“대공이라니요, 말씀이 과하십니다. 그냥 편하게 불러 주십시오.”

“그, 그래도 어떻게 황궁 출신의 거물급 기사분을 제가 감히…….”

“보기 추하니까 호들갑 좀 떨지 마라. 그건 그렇고, 입단 시험은 어떻게 됐냐?”

“그게…… 헤글러 이후론 아직도 1차 시험을 통과한 이가 없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모아 보라고 했던 소문은?”

“각 지방의 뜬소문들은 죄다 샅샅이 뒤져 보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헛소문이었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급한 건 아니니까 쉬엄쉬엄 알아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텐으로부터 그동안의 성과를 보고받던 중 흘러나온 입단 테스트라는 말이 반의 흥미를 자극했다.

“헨리, 입단 시험이라니 그게 뭔가?”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 용병단에 입단하기 위해선 반드시 입단 테스트를 치러야 합니다. 아무리 신생 용병단이라고 해도, 어중간한 떨거지들을 단원으로 받아 줄 순 없지 않겠습니까?”

“재밌겠군. 그거 나도 한번 받아 볼 수 있나?”

“형님이요? 형님한텐 엄청 시시하실 텐데요.”

“가벼운 여흥 정도로 생각하지. 마침 여독을 풀 만한 오락거리도 필요했고 말이야.”

반에게는 요깃거리도 안 될 시험이겠지만 헨리는 그냥 허락해 주기로 했다.

“그럼 저는 그동안 벤트 시장을 만나 보고 오겠습니다. 텐, 너는 형님을 1차 시험장까지 안내해 드리도록 하고, 앞으로 머무르실 방도 하나 준비해 드리도록.”

“알겠습니다.”

명령을 마친 헨리는 옷을 갈아입은 뒤 저택을 벗어났다.

* * *

저택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헨리는 길거리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 놀러라도 갔다 오는 모양이지?”

그들은 헤글러네 가족이었다. 헤글러를 발견한 헨리가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엇, 단장님 아니십니까? 벌써 돌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뒤늦게 헨리를 발견한 헤글러가 서둘러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자 옆에서 딸기 꼬치를 들고 있던 니아도 헤글러를 따라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내 딸기!”

그런데 니아가 허리를 굽힌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꼬치의 딸기가 그만 쏙 하고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흐으응…… 내 딸기…….”

바닥에 떨어진 딸기에는 니아의 조그마한 잇자국이 나 있었다. 제법 아껴 먹고 있었던 모양이다.

헨리는 울상이 된 니아를 달래기 위해, 제이드에서 내려 니아를 번쩍 들어 올린 다음 품에 안았다.

“니아야, 아빠 말씀 잘 듣고 있었어?”

“네…… 근데 제 딸기가…….”

“아저씨가 딸기보다 더 좋은 걸 선물로 줄까?”

“선물요?”

“짠.”

선물로 꺼내 든 것은 위스퍼링이었다.

한쪽밖에 없던 위스퍼링은 앙켈만에서 구매한 은줄에 꿰여 예쁘장한 목걸이로 재탄생되었다.

“가, 감사합니다, 단장님! 이런 거 굳이 안 챙겨 주셔도 되는데…….”

“내 사람의 딸인데 어떻게 안 챙겨 줄 수가 있겠냐? 부담 갖지 마. 얼마 안 하는 거니까.”

헨리는 니아의 목에 걸린 위스퍼링을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위스퍼링에 박힌 푸른 보석이 생기를 되찾은 것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나이가 어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니아를 위해 헨리가 손수 마력을 주입시켜 준 것이었다.

헨리는 이어서 니아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니아야, 자기 전에 목걸이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으면 요정들의 말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요정요?”

“그래. 하지만 그 요정들은 부끄럼쟁이라서, 니아가 목걸이를 오래 쥐고 있으면 도망쳐 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몰래 엿들어야 해?”

헨리의 설명을 들은 니아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어린 만큼 순진했다. 니아는 아직 한창 동화책이나 읽을 나이였으니까.

헨리는 니아를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헤글러에게 말했다.

“저택에 가면 내가 모셔 온 분이 한 분 계실 거야. 그분이 아마도 부단장직을 맡게 될 테니까 먼저 인사들 나누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볼일이 있어서 이만.”

인사를 마친 헨리는 다시 제이드를 타고 비발디 타워로 이동했다.

* * *

“문 열어.”

시청의 문지기들은 헨리를 보자마자 빠르게 묵례를 했다. 그런 다음 재빨리 문을 열었다.

문지기들 또한 이제는 헨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무실에는 비서관과 함께 서류 작업이 한창인 벤트 시장이 있었다.

헨리를 발견한 벤트가 말했다.

“웬일이십니까, 열흘은 걸리신다더니?”

“오늘로 그 질문만 세 번쨉니다. 일이 잘 풀려서 일찍 돌아왔습니다. 그나저나 세금은 잘 거둬들이고 있습니까?”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벌어들이고 있긴 합니다.”

“누적 액수가 얼마나 되죠?”

“11만 골드가 조금 넘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이제 며칠 뒤면 모집 공고도 내리니까 그동안만 좀 바짝 고생합시다.”

“그거야 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뭐 하실 말씀이라도?”

딱히 잘못한 일도 보고할 만한 일도 없다. 그런데도 헨리가 방문했으니, 벤트는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협약 건 때문에 왔습니다.”

“협약요? 무슨 협약 말입니까?”

“그냥 도시끼리 맺는 간단한 연대 협약입니다. 그동안 자유도시들은 개인플레이 위주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도시끼리 교류도 좀 하고 연대도 좀 맺으면서 결속력을 강화하는, 뭐 그런 협약을 맺자는 겁니다.”

“예? 그런 거라면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저희 비발디 타운은 그런 협약 없이도 잘만 살아왔는데요.”

“당장은 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연대책임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제가 살아 있는 한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겁니다. 설마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겁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능력만큼은 확실히 입증된 헨리였다.

하지만 입증된 능력 하나로 협약 같은 거대한 일을 체결시키기엔 일의 규모가 너무 컸다.

“그럼 됐습니다. 조만간 협약 조항에 대해 의논하러 올 테니 미리 알고나 계시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선택권이 없는 벤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어쩌다가 내 신세가 이 꼴이 됐을까.’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그런 벤트의 얼굴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마저 수고해 주십시오.”

볼일을 마친 헨리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형식적인 묵례를 했다.

미팅은 이것으로 끝났다.

‘온 김에 시험장이나 한번 둘러봐야겠군.’

헨리는 저택이 아닌 도시 뒷편에 마련된 1차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수는 좀 줄었네.’

공고 날짜의 막바지에 달하다 보니 대기 중인 도전자의 수 또한 현저히 줄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알짜배기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입단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1차 합격자가 탄생했습니다아!”

‘합격자?’

제이드 위에서 장수생들을 바라보고 있던 차였다.

저 멀리서 시험 진행을 맡고 있던 직원이 새로운 합격자에 대한 소식을 알려 왔다.

“오오오!”

“두 번째 합격자인가?”

“크윽, 좋겠다!”

“그런데 좀 늙어 보이는데?”

장수생들의 부러움과 환호 속에서, 두 번째 합격자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합격자는 다름 아닌 반이었다.

1차 시험장을 통과한 반이 장수생들 앞에 서서 자신의 검을 뽑아 들며 합격자의 위용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무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반의 행동에 헨리는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헨리는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형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오, 동생 왔는가? 이렇게 하면 동생한테 도움이 된다고 해서 돕고 있는 중이라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헨리의 질문에 반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텐을 가리켰다.

그러자 헨리와 눈을 마주친 텐은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헨리에게 함박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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