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기획과 상술 사이 (3)
헨리의 전략은 멋지게 먹혀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본 벤트와 텐은 그저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은 진짜다.’
모든 것이 헨리의 뜻대로 굴러가는 것을 보고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처음엔 사기꾼인 줄로만 알았던 헨리가 이제는 혁신적이면서도 대담한 전략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뒤. 테스트가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을 때였다.
애석하게도 여전히 1단계를 통과한 이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덕분에 좀처럼 1차 합격자가 나타나지 않자 이젠 내부자인 텐조차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저…… 헨리 경.”
“무슨 일이지?”
“1차 시험장 말입니다. 저거 정말로 통과는 할 수 있는 겁니까?”
이에 헨리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당연히 통과할 수 있지. 그건 갑자기 왜?”
“지원자들에게 슬슬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용병단은 사실 미끼에 불과하고, 진짜 목적은 검투장의 부흥이라는 소문이 말입니다.”
“부흥까진 아니지만 부가적인 수익을 노린 건 맞지. 아무튼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내가 한번 나서야겠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쇼맨십이 필요할 때란 말이야. 사람들은 의심만 해소시켜 주면 전부 다 쉽게 믿기 마련이거든.”
사람들은 아직 헨리가 2차 시험의 면접관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태껏 1차 합격자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위치에서 헨리는 꽤나 유명한 인사였다.
헨리는 그 점을 이용해 다시 한 번 도전자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기로 했다.
“자, 다들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헨리의 등장에 미리 교육받은 보조관이 지원자들의 이목을 끌며 말했다.
“항간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맞아! 대체 저 시험장은 통과할 수 있긴 한 거야?”
“저거 사실 미끼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한 명도 통과를 못 하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 대부분이 여러 번 시험에 도전한 장수생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중급 익스퍼트급 유저로, 출구를 코앞에 두고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자, 자! 다들 진정들 하시고. 그래서 특별히 모셨습니다. 저희 1차 시험장에 어떠한 속임수도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현 검치기 챔피언이신 헨리 선수를 어렵게 모셨습니다. 다들 박수!”
“뭐, 뭐? 헨리 선수라고?”
“하이 스코어에 기재된 그 헨리 선수 말이야?”
“세상에, 그 헨리가 저렇게 젊단 말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 사람, 오러도 익히지 못한 러너급 검사라는 말이 있어.”
“러너가 챔피언이라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하지만 데이터베이스에 그렇게 기재돼 있던걸!”
몸을 쓰는 용병 대부분이 검치기 선수로 등록되어 있다 보니 헨리는 이미 그들에게 있어 유명 인사나 다름없었다.
이 도시에 와서 하이 스코어 게시판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보조관의 설명이 계속됐다.
“아시다시피 헨리 선수는 아직 오러를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런 헨리 선수가 이곳 1차 시험장을 통과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그리고 오기가 생길 것이다.
오러 유저인 자신들이 러너급 검사보다 못하다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그러나 그 누구도 쉽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자신들이 해내지 못한 걸 헨리가 해낼 것만 같은 모종의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도전자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무능한 놈들.”
“뭐, 뭐라고?”
“왜? 내가 틀린 말을 했나? 그게 아니라면 왜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 물고 있지?”
“저, 저게 말이면 단 줄 아나!”
“야! 너는 얼마나 잘하나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자존심 때문에 우물쭈물하던 놈들에게 기름이 부어졌다.
지원자들은 즉시 타올랐고, 헨리의 테스트는 곧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시작되었다.
“그럼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문이 개방되고 장수생들의 입회하에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어떤 이는 혹시 모를 부정행위를 방지하겠다며 헨리의 바로 뒤에 붙어 함께 움직이겠다고 했다.
퉁.
헨리가 발을 굴러 마법 무장을 시전했다.
시전한 마법 무장 중에는 무거운 중력을 상쇄시키는 마법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윽고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헨리를 주시했다. 그리고…….
“비켜.”
“어어어?”
짧은 통로였다.
헨리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통로를 걸어와 출구 앞에서 구경하던 이들을 밀어냈다. 완벽한 횡단이었다.
“나, 난 못해…….”
그리고 헨리 뒤에 바짝 붙어 오던 장수생은 출구 앞에서 그만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이윽고 거름망을 통과한 헨리가 말했다.
“한심한 놈들. 꼭 능력도 없는 것들이 의심만 많아 가지고선.”
쇼는 끝났다.
헨리의 간단한 쇼는 항간에 떠돌던 소문을 단숨에 잠재워 버렸고 동시에 장수생들을 다시 한 번 각성시키는 뜨거운 계기가 되었다.
‘멍청한 놈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열흘이 지났다.
* * *
‘이제 슬슬 끝물인가.’
헨리의 쇼는 도전자들을 각성시키는 뜨거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효과 또한 열흘을 채 가지 못했다.
아무리 큰 자극을 받는다고 한들 결국 넘지 못할 놈들은 넘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거름망이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비발디 타워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조건을 좀 더 후하게 책정했어야 됐나?”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스무 날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명의 합격자도 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에 벤트가 말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최상급 익스퍼트 유저씩이나 되는 자들은 이미 대형 기관에서 스카우트를 끝마친 상태입니다. 혹은 대부분이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거나요.”
“그래도 용병들은 돈을 제일 중요시하지 않나? 용병만큼 돈을 밝히는 작자들도 없는 걸로 아는데.”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한들 거물이 되면 다들 상도덕을 중요시하는 게 보통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유명한 실력자들이라면 이미 소속된 단체와 깊은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도 쉬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쯧, 조무래기들은 아직 필요 없는데 말이지.’
물론 아주 필요 없는 것도 아니었다.
용병단이 커지면 잡다한 의뢰를 처리해 줄 말단 직원들 또한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창립 멤버도 구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은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직접 나서는 수밖엔 없나.’
더 이상 기다려 봤자 시간 낭비만 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애초에 테스트 기간을 한 달로 정했으니 한 달은 모두 채우는 것이 좋았다.
“벤트 경, 앞으로 열흘입니다. 남은 열흘 동안 바짝 벌어들인 뒤에 다시 평소처럼 원상 복귀시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열흘 뒤에 뵙겠습니다.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긴다면 천만황금의 텐을 찾도록 하세요.”
“어디 떠나시기라도 합니까?”
“제가 한번 직접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돈만 벌고 끝날 것 같아서요.”
* * *
천만황금으로 돌아온 헨리는 즉시 텐을 호출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당분간 자리를 좀 비우려고 하는데 그동안 네가 해야 될 일이 있다.”
“무슨 일 말입니까?”
“소문을 좀 모아 줬으면 좋겠는데.”
“소문요?”
소문이란 말에 텐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원래는 지원자들 중에서 대충 뽑으려고 했는데 영 성에 안 차서 말이야. 그래서 그냥 내가 직접 찾으러 다니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각 지역마다 소문이 무성한 고수들이 있으면 한번 알아들 봐.”
“고수요? 설마 그자들을 직접 다 만나 보시려고요?”
“물론 너희가 어느 정도는 걸러 놔야지. 그동안 난 앙켈만에 좀 다녀오겠다.”
“앙켈만이라면 남쪽의 항구도시가 아닙니까? 앙켈만에는 왜 가시려는 겁니까?”
“데려올 사람이 하나 있거든. 아무튼 정보는 수집되는 대로 모아 놔. 열흘 내로 돌아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앙켈만’은 비발디 타운과 마찬가지로 귀족에게 소속되지 않은 자유도시들 중에 하나였다.
또한 항구도시인 만큼 무역이 발달되어 있어 세상 모든 물건들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디 앙켈만에 남아 있으면 좋을 텐데.’
헨리가 앙켈만으로 가려는 이유.
앙켈만에는 전생에 헨리를 끔찍이 따르던 ‘반’이라는 소드 마스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집불통이 내 말을 따라 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명령을 내린 헨리는 즉시 떠날 채비를 했다.
챙길 물건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잠자리는 마도사의 캠프로 해결할 생각이었으니 요기를 할 식료품만 챙기면 됐다.
떠날 준비를 마친 헨리가 저택을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헨리 경! 잠시만요!”
“왜 또?”
“방금 1차 합격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뭐?”
1차 합격자가 등장했다는 말에, 헨리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 * *
생기가 죽어 있던 1차 시험장에 보기 드문 활력이 맴돌고 있었다. 이유는 드디어 ‘첫 1차 합격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헨리는 2차 시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향해 가볍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1차 합격을 축하합니다.”
우직한 덩치의 사내였다.
헨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으나 그는 몹시 지쳤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헤글러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에 새롭게 신설된 밀리언 용병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헨리 모리스라고 합니다.”
헨리가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헤글러는 헨리의 손을 붙잡기 전, 지친 기색이 가득한 눈동자로 헨리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 정말로 용병단에 입단하기만 하면 집도 주고 아이들 교육도 시켜 주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실력자는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헤글러는 헨리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헨리는 그와 마주 잡은 두 손에서 형용할 수 없는 절박한 감정을 느꼈다.
‘뭐지?’
초라한 행색의 사내였다.
거름망을 통과했을 정도라면 어디서든 꽤나 대접받고 살았을 텐데 남자가 입은 옷은 넝마를 방불케 했다.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든 헨리는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 그가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헤글러가 말했다.
“두 번째 테스트는 뭐죠?”
“혹시 검치기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아뇨…… 처음 들어 봅니다.”
“그렇군요. 두 번째 시험 종목은 바로 검치기입니다.”
헨리는 한동안 검치기에 대해 설명했다.
다행히 헤글러는 이해력이 빨랐고 룰을 완벽히 이해한 직후, 검치기에 쓸 철검을 지급받았다.
“그럼 2차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헤글러는 받아 든 철검에 오러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스스슷.
‘음?’
그런데 쓰인 오러의 크기가 상당했다. 마치 소드 마스터의 그것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오러를 눈으로 확인한 순간, 기분 좋은 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먼저 하시죠.”
“알겠습니다.”
퉁.
마법 무장이 시전되었다.
온몸에 마력을 두른 헨리는 즉시 수비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헤글러의 검이 헨리에게로 떨어졌다.
쾅!
마력과 오러가 부딪치자 굉장한 파쇄음이 시험장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헨리는 다시 한 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헤글러의 검에는 헨리의 손을 저릿하게 할 만큼 가공할 위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쾅! 쾅! 쾅!
공격은 계속됐다.
검을 휘두를수록 그의 오러는 강철처럼 더욱 단단해지는 듯했다.
‘휴고보다 훨씬 낫군.’
아니, 휴고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헨리는 그의 일격을 받아 낼 때마다, 검 안에 담긴 그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쾅!
몇 차례 더 수비를 진행하던 끝에 헨리가 그의 검을 밀어내며 말했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공수가 바뀌었다. 룰을 이해한 헤글러는 즉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서걱!
두 동강 나는 헤글러의 검.
부러진 그의 검날이 공중으로 치솟았을 때, 헤글러의 표정 또한 깊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 안 돼…….”
찰그랑!
검날이 바닥에 떨어지고 테스트는 종료되었다.
헤글러는 거무죽죽해진 얼굴로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 안 돼…… 내, 내 마지막 희망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그로부터 깊은 절망이 느껴졌다.
헨리는 그런 헤글러에게 나직이 말했다.
“합격입니다.”
“……예?”
“헤글러 씨, 저와 함께하시죠. 세 번째 테스트는 받아 볼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예, 예? 그, 그게 무슨…….”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이에 헨리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3차 시험은 그냥 간단한 인성 면접이 전부니까요. 그런데 헤글러 씨는 굳이 면접을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헤글러는 헨리가 말해 준 룰은 정확히 이해했다.
하지만 자신의 검날이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합격 판정을 받은 것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에 헨리가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헤글러에게 질문했다.
“헤글러 씨.”
“예, 예……?”
“혹시 이 도시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까?”
“예, 예! 저에겐 아내와 딸아이가 있습니다.”
“무슨 사연인진 모르겠지만 헤글러 씨 가족은 저희가 확실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마음 놓고 편하게 지내십시오.”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입단을 환영합니다, 헤글러 씨.”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속사정을 털어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헤글러의 가려운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 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긴장이 풀린 헤글러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헨리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