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기획과 상술 사이 (2)
홍보를 시작한 지 이틀째가 되던 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을 때, 헨리는 그제야 입단 테스트를 시작했다.
“시험장은 준비됐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도시의 뒤쪽 공터를 통째로 빌렸습니다.”
이틀이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시험장 앞에 마련된 거대한 공터에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순번표를 들고 거대한 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입단 테스트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테스트는 총 3단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시험 진행을 맡은 보조관이 목청껏 소리쳤다.
그러자 순번을 기다리던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봐! 정말로 테스트에서 떨어지더라도 ‘면접비’라는 것을 주는 건가?”
웅성, 웅성.
면접비, 듣도 보도 못한 단어였다.
하지만 헨리는 더 많은 인재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이번 테스트에서 ‘면접비’라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물론입니다. 1단계를 통과하신 분들에 한해서 ‘1실버’의 면접비를 지급해 드립니다.”
1실버라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룻밤의 숙박비를 해결한 다음 밥과 술을 양껏 먹어도 남는 돈이었다.
‘대체 얼마나 퍼 줄 작정인 건지.’
그리고 텐은 그런 헨리의 방침에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봐도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1단계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1단계 테스트는 간단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방을 지나 2단계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게 1차 시험의 전부입니다.”
웅성, 웅성.
“무슨 테스트가 저래?”
“저 안에 괴물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이거 우리를 너무 물로 보는구만.”
“크크크, 돈 벌기가 이렇게나 쉽다니.”
보조관의 말 그대로였다.
첫 번째 테스트는 헨리가 직접 준비한 ‘특수한 방’을 통과하는 게 전부였다.
“아, 참! 그리고 도저히 시험을 속행할 수 없을 것 같은 분들은 왼쪽에 난 출구로 나오시면 됩니다.”
보조관의 설명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지원자들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태도를 취했으나 헨리는 그런 지원자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얼마나 잘났는지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 보실까?’
이윽고 첫 번째 지원자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력을 보여 주지.”
2개의 쇼트 소드를 허리에 찬 날렵한 체형의 검사였다.
남자는 자신만만한 표정과 함께 첫 번째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가 이렇게 어두워?’
어두운 방이었다.
시험장은 좁고 긴 통로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통로의 끝자락에는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기권을 위한 출구 또한 매한가지였다.
‘고작 이런 게 시험이라니, 시시하잖아?’
비교적 쉬워 보이는 난이도에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 순간!
쿠웅!
‘읏! 뭐야, 이거?’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온몸을 짓누르는 무형의 기운과 마주하게 되었다.
엄청난 힘이었다.
마치 거인이 위에서 찍어 누르는 듯한 힘에, 지원자는 내뻗은 발을 다시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였지, 방금?’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자신을 짓누르던 기운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자는 첫 번째 시험이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그런 거였나.’
남자는 이곳이 지원자의 체력을 시험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의 속성 파악을 마친 남자는 다시금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쿠웅!
‘역시 그랬군! 하지만 겨우 이 정도 힘으로는 나, 실베스론 님을 막아서지 못한다!’
버틸 수 있을 만한 압력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힘을 믿고 재빨리 출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코앞의 출구에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볕을 향해.
* * *
“으음, 여긴…….”
눈부신 햇빛이 안구를 강타했다.
어두웠던 시험장을 지나 출구로 나오는 데 성공한 것일까?
남자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상체를 일으켰다.
물컹.
“음?”
남자는 상체를 일으키며 무심코 바닥을 짚었다.
그런데 손에 잡힌 것은 딱딱한 바닥이 아닌 물컹한 살결의 감촉이었다.
“이, 이게 뭐야?”
동공이 햇볕에 적응하자 남자는 그제야 주위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은 산이었다.
그것도 기절한 이들로 가득 찬 ‘사람들의 산’.
“거기, 정신 차렸으면 이제 내려와요.”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뭘 어떻게 돼요. 기억 안 나요? 1차 시험장에서 기절했잖아요. 그래서 이리로 옮겨진 겁니다.”
“예?”
분명 남자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 압력을 견뎌 내며 앞으로 질주했다.
그러나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수록 압력은 점점 더 거세져만 갔고, 무리하게 이동하던 끝에 그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말해 뭣합니까, 아무튼 2차 테스트까지는 재도전이 가능하니까 다시 도전하려면 줄 서든가 하세요.”
보조관은 재도전을 설명하며 뒤편에 늘어진 줄들을 가리켜 보였다.
줄은 여전히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한편, 헨리는 두 번째 시험장에서 1차 테스트에 통과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헨리는 첫 번째 시험장을 ‘거름망’이라고 불렀다.
그곳에는 출구와 가까워질수록 중력이 강해지는 ‘단계별 중력 마법’이 펼쳐져 있었는데, 출구 직전에는 보통 중력의 수십 배에 달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 정도도 통과 못하는 얼뜨기는 필요 없지.’
거름망을 준비한 까닭은 간단했다.
몸을 쓰는 이라면 그 정도 힘쯤은 가볍게 견딜 것이고 마법을 다루는 이라면 트랩을 눈치채고 방어 마법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하지만 테스트를 진행한 지 벌써 수 시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2차 시험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무능한 놈들.’
테스트는 계속됐다.
점심 무렵부터 시작된 테스트는 결국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아무도 거름망을 통과하지 못했다.
“헨리 경, 정말 이대로 계속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온종일 테스트했는데 1차 통과자가 한 명도 없었다면서요?”
생각보다 가혹한 난이도에 헨리의 옆에 서 있던 벤트가 걱정스레 질문했다.
“괜찮습니다. 하루만 더 지켜봅시다.”
어차피 헨리는 참가자 모두를 다 받아 줄 생각은 없었다.
이번 테스트의 목적은 진흙 속의 진주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1차 테스트에 실패한 이들은 모두 다 어려운 시험 내용에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파격적인 대우에 걸맞은 테스트라며 어려운 난이도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밀리언 입단 테스트의 첫째 날이 끝나면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도시를 누비기 시작했다.
* * *
“시작됐네요.”
시험이 종료된 직후, 헨리는 비발디 타워에서 벤트와 함께 지원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넉넉잡아 한 달 동안 진행할 예정이니 한 달 동안 최대한 이윤을 남겨 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모종의 협약이 체결된 직후, 투기장을 포함하여 듣도 보도 못한 세금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물론 선수들을 제외한 기존의 주민들은 전혀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번 세금 협약이 겨냥하는 대상은 온전히 ‘신규 선수’들이었으니까.
“비발디까지 왔는데 투기장에나 한번 도전해 볼까?”
“나는 돈을 거는 것보단 내가 직접 뛰는 게 나을 것 같아.”
“숙소는 잡았나?”
“겨우 잡긴 했지, 지원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방 잡기가 얼마나 치열하던지.”
“술집은 어떻고, 뭔 놈의 도시가 엉덩이 한번 붙이기가 이리도 힘든지, 원.”
“자네도 F등급이지? 어때, 누가 먼저 D등급이 되는지 내기하지 않겠나?”
“좋지. 지는 사람이 오늘 술값 내기 어때?”
“좋지!”
때아닌 성수기에 비발디 타운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순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벤트가 예상했던 대로 갑작스럽게 생겨난 투기장의 특별 수수료 때문에 기존 선수들이 하나둘씩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원래 매칭은 무료였잖아! 근데 매칭 수수료라니?”
“그게…… 갑작스럽게 신규 선수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인력이 부족해져서요.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분간만 특별 수수료를 적용시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기존 선수들이 불만을 제기할 때마다 창구 직원들은 미리 교육받은 대로 응대를 했다.
물론 이것은 임시방편이었다.
동시에 더 큰 폭발을 위한 밑 작업이기도 했다.
“새로 온 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쓰불…… 저놈들 싹 다 죽여 버릴 수도 없고, 이거.”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헨리의 예상대로 세금 협약 첫째 날에는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 * *
끝끝내 방을 잡지 못한 이들은 술에 취한 채 길바닥에 널브러졌다.
하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이들은 음주를 절제한 후 아침 일찍부터 1차 시험장 앞에서 대기했다.
“오늘은 반드시 뚫는다.”
“비법이라도 있나?”
“밤새도록 연구를 좀 했지.”
“뭔데 그래?”
“성공하면 알려 주도록 하지.”
아침 일찍 모인 이들은 그나마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닌 노력파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노력한다고 한들, 미리 실력을 쌓아 놓지 않은 이상 헨리의 거름망을 통과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었다.
둘째 날의 시험은 아침 일찍부터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수많은 탈락자들이 생겨났고, 어떤 이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쏟은 경비를 회수하기 위해 일찍이 투기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험은 계속됐다.
그리고 시끄러운 오후가 지나갈 무렵쯤엔 사람들은 대략 네 분류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는 아직 시험에 도전하지 않은 새로운 도전자.
하나는 시험에 떨어지고 재도전을 기약하는 장수생.
하나는 일찌감치 시험을 포기하고 투기장 선수로 전향한 투기꾼.
마지막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자.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로 전향하는 도전자들이 늘어났지만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들 또한 적잖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값비싼 비발디 타운의 물가 때문이었다.
이곳에 모인 지원자들 대부분이 출세의 꿈을 안고 온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비발디 타운은 오래 머무르기엔 힘든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귀향자들이야말로 헨리에게 있어 가장 아까운 존재들이었다.
헨리가 진주 같은 인재를 원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장수생으로서 도시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투기장 선수로 전향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별세가 부과된 지 이틀째가 되었을 때, 마침내 기존 선수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말았다.
“에이, 씨발! 안 해! 수수료 이렇게 떼고 나면 뭐 먹고 살라고!”
“가뜩이나 선수들 늘어서 배당금도 떨어졌는데 이게 무슨 개짓거리야!”
“더럽다, 더러워! 카악, 퉤!”
불만이 극에 달한 선수들 중 일부는 비발디 타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시위는 헨리가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현상이었으니까.
“벤트 경, 날이 밝는 대로 제가 말씀드린 계획을 시작하세요.”
“기존 선수들에게만 면세 혜택을 주는 것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이번엔 신규 선수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헨리는 이 부분의 대비책으로 공포정치를 일러 주었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폭정이 시작되면 결국은 떠나 버릴 이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물론 그에 따른 대비책 또한 완벽하게 준비가 된 상태였다.
헨리는 불안해하는 벤트에게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으니까요.”
* * *
셋째 날이 밝았다.
이번에도 장수생들은 신입 도전자들과 뒤섞여 빠른 순번표를 받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몰려들었다.
장소는 역시나 도시의 뒤편에 위치한 널찍한 공터였다.
그런데 시험장에 도착한 지원자들은 1차 시험장 옆에 세워진 새로운 ‘거름망’을 발견했다.
“보조관, 저건 뭐야?”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장수생 하나가 대기하고 있던 보조관에게 물었다.
“아아, 오늘부터 룰이 추가되었습니다.”
“룰? 무슨 룰?”
“여기 이 시험장 또한 기존의 1차 시험장과 똑같은 시험장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특별한 자격을 갖춘 분들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 자격이 뭔데?”
“이 시험장은 투기장 선수 B등급 이상부터 이용하실 수 있는 특별 시험장입니다.”
“뭐라고?”
이른바, ‘선수 전용 시험장’이었다.
헨리는 선수 전용 시험장을 설치함으로써 장수생들에게 선수의 겸업을 상징적으로 권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모두들 선수 전용 시험장의 등장에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결국 긴 줄에 지친 장수생들은 생활비를 벌겠다는 핑계와 함께 투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