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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42화 (42/522)

# 42

기획과 상술 사이 (1)

텐의 수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헨리에게 1백만 골드를 지급한 텐은 아직 소액 투기꾼들의 몫을 정산하지 못했다.

물론 헨리에 비하자면 약소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헨리의 배당금에 ‘비교하자면’이었다.

아무리 약소해도 무려 112배나 되는 배당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환장하겠네, 진짜.”

뒤늦게 소액 배당주들에 대한 보고를 들은 텐이 이마를 짚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돈이 좀 빠듯한 모양이야?”

헨리는 원흉이 자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배당금을 정산해 드리고 나면 운영비도 빠듯합니다……. 이러다가 파산하게 생겼습니다.”

“그건 좀 곤란하지. 그러니 이걸 받도록.”

“……이게 뭡니까?”

헨리가 내민 것은 10만 골드가 든 자루였다.

돈 자루를 받아 든 텐이 의아한 눈초리로 헨리와 돈 자루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착각하지 마, 그냥 주는 거 아니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돈이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무너졌다.

“어차피 나한테 빚진 거, 더 빚져도 상관은 없잖아? 빚이 1천만 골드든 1천1십만 골드든 어차피 너한테는 똑같은 금액일 테니까.”

“거참, 위로가 되네요.”

“그렇지? 그러니 부지런하게 일해서 갚으라고.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해 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배당금이기 때문에 이자율이 붙지 않는다는 것 정도.

그래도 헨리가 얄밉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말인데 한동안 신세를 좀 지도록 하지.”

“또 무슨 신세 말입니까……?”

“너희 집 좋던데? 넓기도 하고. 한동안 머무를 곳이 필요했거든. 그럼 한동안 잘 부탁한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제 사유지에는…….”

“싫으면 돈 갚든가. 어차피 저택이랑 회사까지 처분해도 돈 다 못 갚는 거 알지?”

“하…….”

텐은 이것으로 비발디 타운의 최고 부자에서 최고 빚쟁이로 전락해 버렸다.

헨리는 영악한 미소와 함께 눈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렸다.

“텐.”

“왜요?”

“말이 짧다?”

“……왜 그러십니까.”

“너희 천만황금은 근본이 뭐야?”

“근본? 무슨 근본 말입니까?”

“설마 투기장 하나로 벌어먹고 산다, 뭐 이런 뻔한 구성은 아닐 거 아니야?”

거대한 장사 밑천과 더불어 안정적인 자금줄을 확보했으니 이제 다음 계획을 실행할 차례였다.

헨리의 두 번째 목표는 명성이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최고의 집단’이라는 명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헨리는 그 집단을 꾸리기 위해 첫 기반으로 천만황금을 택했다.

“정보업입니다.”

“정보업?”

“말씀하신 대로 투기장으로만 먹고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투기장이 수입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한테는 정보업이 중요합니다.”

“유행을 파악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인프라는? 규모는 얼마나 돼?”

“제국 전역에 걸쳐 있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거대도시들 한정입니다. 수도는 물론이고 속국으로 지정된 네 왕국과 교황이 다스리는 신성국 그리고 자유도시 몇 군데가 전부입니다.”

“그래도 꽤 알차게 구축해 놨네.”

“그래도 수도의 ‘회색달’과 비교하자면 하룻강아지나 다름없습니다.”

“회색달이 부럽나?”

“부럽냐니요. 저희 같은 소상인들은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집단이 바로 회색달입니다.”

회색달은 제국 수도에 뿌리를 내린 거대한 지하 길드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무력과 정보력 그리고 자금력까지 두루 갖춘 제국 유일의 무력 집단이었으며, 그 영향력 또한 어마어마했다.

동시에 헨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집단의 표본이기도 했다.

“못 쳐다볼 건 또 뭐야? 우리도 만들면 되지. 제2의 회색달 같은 집단을.”

“……예?”

“안 그래? 게네는 뭐 날 때부터 타고난 놈들이었을까. 자고로 한계를 스스로 정하게 되면 발전은 거기서 그치는 법이다.”

“진심이십니까?”

“그럼 장난치는 걸로 보여?”

“아,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즉흥적으로 막 정해도 되는 겁니까?”

“누가 즉흥적이래?”

“예?”

“내가 그냥 편하게 먹고살려고 천만황금을 차지한 줄 알아? 이제 기반이 마련됐으니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워야지. 천만황금은 장사 밑천에 불과하다.”

담담하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헨리를 보며 텐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헨리에게서 진정성과 함께 정말로 계획을 이뤄 낼 것 같은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뭐 하는 놈이야, 대체?’

어차피 천만 골드라는 금액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저당 잡혔다. 그러니 좋든 싫든 텐은 헨리의 계획에 무조건 동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정보력은 이 정도면 됐고 자금력도 차차 늘려 가면 되니까, 그럼 남은 건 무력뿐인가?”

“자, 잠깐만요. 이렇게 무작정 힘을 키울 게 아닙니다.”

“무슨 말이야?”

“회색달은 범죄에도 손을 대고 있습니다. 또한 용병 일을 비롯해 살인 청부까지 행하고 있기 때문에 무력이 필요한 것이지만, 저희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요.”

“우리도 하면 되잖아?”

“예?”

“그럼 내가 이깟 투기장이나 관리하려고 힘을 키우려는 건 줄 알아? 지금부터 우리 천만황금은 ‘용병단’을 개설하도록 한다.”

“용병……단 말입니까?”

평생토록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군림한 대주주 때문에 그 사업이 시작되려고 했다.

“용병만큼 쓰임새가 많은 집단도 적지, 돈이면 다 되니까. 그리고 새로운 돈벌이를 위해선 새로운 힘이 필요한 법. 뭐 해, 얼른 안 받아 적고?”

“아, 아, 네!”

헨리의 지적에 황급히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대우는 업계 최고, 우리가 요구하는 건 오로지 실력뿐. 출신이 어떻든 생긴 게 어떻든 전혀 상관없으니까, 자신 있는 놈들만 모이라고 해.”

“정말 이렇게 광고합니까? 근데 급여는 어떻게……?”

“A급 용병이 한 달에 얼마를 받지?”

“5골드 정도 받습니다.”

“그럼 우린 그 두 배인 10골드를 지급한다. 그리고 성과급은 물론이고 업계 최고의 복지와 기타 옵션들도 실력만 좋으면 싹 다 들어준다고 해. 아, 참! 자식이 있는 놈들은 학비까지 대 준다. 살 곳 없는 놈들은 숙소도 제공해 준다고 하고.”

“이거 너무 막 퍼 주는 거 아닙니까?”

“왜? 그럼 안 돼?”

“그렇게 퍼 주면 우린 남는 게 뭐가 있습니까? 게다가 신설 용병단이라 일거리도 없을 텐데요!”

쏟아지는 파격적인 조건들에 텐이 펄쩍 뛰며 반대했다.

이에 헨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론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조건에 신경 써야지. 신생 용병단이 내세울 수 있는 건 파격적인 조건밖에 없어. 너 같으면 쥐뿔도 없는 신생 용병단에 지원하고 싶겠냐?”

맞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의리와 충성을 바라는 건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리고 왜 남는 게 없어? 내가 지금 썩어 넘치는 게 돈인데. 모든 비용은 내가 지불한다. 그러니 걱정 말고 광고나 해. 아, 참! 그리고 면접은 내가 직접 본다.”

“알겠습니다……. 근데 용병단 이름은 뭐로 합니까? 천만황금입니까?”

“아니, 팀 이름은 ‘밀리언’으로 한다.”

“알겠습니다.”

요구 사항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명령을 받은 텐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 * *

밀리언에 대한 소문은 곧 대륙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용병 업계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파격적인 대우와 더불어 평균의 두 배가 넘는 급여는 모든 용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덕분에 홍보가 시작되고 바로 다음 날.

대륙 전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용병들이 밀리언의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 밀지 마쇼!”

“뭐라고? 지금 여기서 한판 해볼까?”

“어이, 거기! 싸우면 출입 금지니까 싸우고 싶으면 한번 싸워 봐!”

“쳇, 운 좋은 줄 알아라. 경비병만 아니었으면 넌 내 손에 죽었다.”

“누가 할 소리!”

* * *

그리고 한편.

똑똑-.

“시장님, 일전의 그분께서 또 접견을 요청하셨는데요.”

“그분이라면…… 설마?”

“예, 헨리 경께서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 또 온 거야!”

입으로는 버럭 성질을 내면서도 벤트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응접실로 내려갔다.

응접실에 도착한 벤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허억, 헉, 무슨 일이십니까, 또?”

“뛰어오셨습니까?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반면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헨리는 여유롭게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논의드릴 사항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앉으시죠.”

“……알겠습니다.”

방문자는 분명히 헨리였다. 하지만 행동거지는 마치 이곳의 주인 같았다.

“이번엔 또 무슨 일입니까?”

벤트가 약간의 겁을 담아 슬며시 질문했다.

“너무 겁먹으실 필요 없습니다. 이번엔 빼앗으러 온 게 아니니까요.”

“그럼요?”

“혹시 오늘 방문객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건 알고 계십니까?”

“그렇잖아도 듣긴 했습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천만황금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용병단을 만드는 것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천만황금에서 이번에 밀리언이라는 용병단을 창설했거든요. 그리고 그 용병단의 단장이 바로 접니다.”

“예?”

“어쩌다 보니 제가 맡게 됐습니다. 아무튼 홍보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방문객의 숫자가 이만큼이나 늘어난 걸 보면 앞으로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저번에 신세 좀 지겠다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십니까?”

불쾌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불쾌한 만큼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벤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기억합니다.”

“잘됐네요. 그럼 부탁 하나만 하겠습니다, 시장님.”

“부탁……요?”

부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부쩍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좀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세율을 좀 올립시다.”

“예?”

“아, 물론 일시적인 상승입니다. 제국 전역에서 용병 지망생들이 몰릴 테니 이번 기회에 한몫 잡자, 뭐 이런 제안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세율을 언급하는 헨리의 말에 벤트가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단칼에 거절했다.

“안 됩니다. 저는 한낱 시장일 뿐입니다. 세율의 조정은 제국에서 관리하는지라 저 같은 일개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도시 전체의 세율은 그렇겠죠. 하지만 시장은 부분적인 세율에 한해선 임시로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그걸 어떻게……?”

“그리고 그 부분적인 세율 또한 도시경제를 활성화시키고 확실한 수익만 올릴 수 있다면 탄력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도요. 그렇지 않습니까?”

오로지 시장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비밀을, 헨리는 식당 메뉴판을 읊듯이 가볍게 내뱉었다.

“그 수익, 저희가 올릴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저희라면 천만황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시청이 민간 업체 한 군데와 협약을 맺는다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연대’를 준비해 왔습니다.”

“연대요?”

“일단은 ‘투기장 연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물론 연대 안에는 비발디 타운의 모든 투기장들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비발디 타운을 방문하는 이들 모두가 오로지 입단 테스트 하나만을 바라보고 온 이들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지원자에 비해 면접을 보는 사람은 헨리 한 사람뿐이었다.

말인즉슨 면접을 보기 위해선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그동안 지원자들은 필연적으로 도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생활비가 필요해진 용병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라도 투기장에 발을 들일 것이 분명했다. 배운 것이 그런 것들뿐이었으니까.

“투기장 선수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특별세를 발행하면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원래는 무료로 매칭되던 경기에 중개 수수료가 붙는다든지, 혹은 선수 등록을 위해 등록 수수료를 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입니다. 아! 물론 승리 배당금에 대한 수수료도 붙여야겠지요.”

“그렇게 하면 기존에 활동하던 선수들이 분명히 반대할 텐데…… 그건 어떻게 해결할 작정입니까?”

“기존의 선수들도 똑같이 세금을 부과하면 됩니다.”

“예? 제가 방금 전에 그렇게 하면 분명히 반대가 일어난다고…….”

“처음부터 반발하진 않을 겁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시청의 지침이니까요. 그렇게 똑같이 세금을 부과하다가 기존의 선수들이 반발하는 순간, 그때부터 다시 기존 선수들에 한해서만 면세 혜택을 적용시키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기존 선수들과 신규 선수들끼리 싸움이 벌어질 겁니다.”

잘못을 감추기 위해 분란을 일으키는 것, 정치 귀족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치안이 어지러워질 텐데요?”

“그럼 모조리 잡아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면접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가둬 놓는다고 하면 신규 선수들은 면접을 보기 위해서라도 보석금을 낼 겁니다.”

치밀한 전략이었다.

보석금을 낸 선수들은 면접을 보기 위해서라도 화를 참을 것이니, 그렇게만 된다면 치안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헨리의 계획을 듣던 벤트는 그 치밀함에 감탄하다가 문득 이상한 사실을 떠올렸다.

“잠깐만요. 이렇게까지 해서 헨리 경이 얻는 게 뭡니까?”

“세금의 절반.”

“예?”

“특별세로 벌어들인 수익의 절반을 저희에게 넘겨주시면 됩니다. 이것 때문에 협약을 맺은 것이기도 하고요.”

협약 수수료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이었다.

이에 벤트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절반은 좀…….”

“찝찝하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방문객들은 성수기보다 훨씬 더 많이 몰려들 텐데 이런 대목에 그들을 그냥 놓치실 겁니까?”

이제 와서 모른 척하기엔 헨리의 계획은 너무나도 달콤한 것이었다.

결국 벤트는 헨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장님 몫은 제가 나중에 따로 챙겨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몫이라는 말에 벤트의 귀가 번쩍 뜨였다.

현재의 벤트는 텅 비어 버린 상금 때문에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헨리 경께서 이렇게까지 비발디 타운을 생각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같은 제국 시민으로서 돕고 살아야지요.”

가려웠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자 벤트의 태도가 빠른 속도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헨리가 생각한 첫 번째 계획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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