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33화 (33/522)

# 33

마주치다 (4)

“보물?”

상당한 양의 보물이었다.

금화를 비롯하여, 그동안 병사들을 기습하여 모은 검과 갑옷 또한 가득했다.

“어떻게 한 거지?”

클레버는 분명 기체 상태였다.

마법이라도 부리지 않는 한 이만한 양의 물건을 숨길 수는 없을 터.

그러자 클레버가 절실함을 담아 자신의 능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가진 능력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동안 모아 온 제 보물들의 전부입니다. 부디 이것들을 받아 주시고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진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레버가 내놓은 양은 척 보기에도 상당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의아했다.

녀석의 관심사는 이까짓 금붙이가 아닌 카터의 육체와 같은 ‘강인한 숙주’.

무엇 때문에 자신에겐 쓸모도 없는 재물들을 모아 놓은 것일까?

“왜 보물들을 모아 둔 거지? 너한텐 쓸모도 없을 텐데.”

“단순한 전리품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저에겐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전리품을 수거하면 수집욕을 충족시킬 수가 있어서…….”

하잘것없는 이유였다.

더불어 이까짓 보물로는 헨리의 환심을 사기엔 한참이나 역부족이었다. 전생의 헨리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부유했었으니까.

대신 다른 것이 헨리의 흥미를 자극했다.

“재밌네.”

“……예?”

“살고 싶으냐?”

“예, 예! 정말 살고 싶습니다.”

“좋다. 살려 줄 테니, 그 대신 조건이 있다.”

“어떤 조건이든 달게 받들겠습니다!”

“나의 종속이 되어라.”

“……예?”

“싫으면 죽든가.”

“아, 아닙니다! 그러겠습니다!”

“좋다.”

종속, 완전한 주종 관계.

전생의 헨리는 수많은 존재들을 자신의 종속이나 권속으로 두었다. 오로지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서.

그리고 현재 클레버가 가진 물건을 보관하는 능력은 헨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들 중 하나였다.

‘그렇잖아도 아공간이 없어서 불편했는데 잘됐군.’

클레버가 가지고 있는 능력.

그것은 7서클부터 다룰 수 있는 고위급 공간 마법, ‘아공간’과 몹시 흡사한 능력이었다.

이외에도 클레버는 최면술이라든가 기생술 같은 다른 능력들도 가지고 있겠지만, 아공간 하나만으로도 목숨을 보장받기에 충분했다.

헨리는 클레버가 뱉어 놓은 보물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조그마한 반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사이징.”

츠즈즛.

헨리의 손가락에는 조금 큰 사이즈의 반지였으나 헨리는 마법을 통해 반지의 사이즈를 알맞게 조절했다.

반지는 백금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장신구였다.

‘백금은 기운을 감추기에 딱 좋은 금속이지. 그리고…….’

백금은 신전에서 애용하는 금속으로, 신성력의 활성화를 돕기도 하지만 특유의 기운을 감추는 성질도 갖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두드러지는 성질은 바로 탁한 기운의 ‘정화’였다.

“죽으면 어쩔 수 없고.”

“예?”

“클레버, 내 이름은 헨리 모리스다. 앞으로 나를 부를 땐 주인님이라고 부르도록 해라.”

“예, 주인님!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계약을 해 볼까?”

손가락에 반지를 착용한 헨리는 반지를 낀 손이 앞으로 가게 뻗은 다음 주문을 외웠다.

“약속의 신, 프로미스의 이름을 빌려 강력한 약속을 제안한다.”

우웅!

신의 이름을 빌리는 마법.

그것은 마법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으로, 마력을 매개체로 강력한 계약을 치르는 것이었다.

“마물, 클레버는 나에게 절대적인 복종의 맹세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내어 줄 수 있는가?”

심장을 담보로 맡긴다.

말인즉슨 명령 불복종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클레버는 헨리의 말을 알아듣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뺄 수도 없는 노릇. 이러나저러나 죽는 운명이라면 조금이라도 명을 늘리고 싶었다.

“……드리겠습니다.”

우우웅!

클레버가 복종을 맹세한 순간, 기체 상태의 클레버의 몸에서 엄지손톱만큼 작은 구슬 하나가 헨리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약속은 이루어졌다. 맹세의 증거는 이 반지에 새기도록 하겠다.”

구슬을 닮은 클레버의 심장은 헨리의 백금 반지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순간, 클레버는 온몸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크아아악!”

마기로 가득한 클레버의 심장이 백금 반지에 의해 정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버텨라. 버텨 내면 살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죽음이다.”

어차피 종속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이대로 요새로 돌아가면 발각되기 십상이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오해의 싹을 제거하는 게 좋았다.

고작 마물 한 놈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가질 수 없다면 없애 버리는 게 낫지.’

한동안 비명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커멓기 그지없던 클레버의 몸체가 안개처럼 하얗게 물들어 갔고 결국 그 크기가 엄지손톱만큼 작아졌을 무렵, 고통 또한 사라지고 말았다.

“잘 버텼다.”

확실히 등급 이상의 재능을 가진 놈은 달랐다.

클레버는 몹시 지친 기색이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클레버의 마기를 모두 흡수한 백금 반지는 탁한 묵빛이 되었다.

“클레버, 보물을 모두 챙겨라. 그리고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

“……예, 알겠습니다.”

몸뚱이가 작아졌어도 기능은 여전했다.

눈앞의 보물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클레버 또한 반지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럼 이제 가 볼까?”

뜻밖의 전리품을 건진 헨리는 그제야 쓰러진 카터를 들어 올린 뒤 소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서걱!

마침내 마지막 남은 타우로스가 쓰러졌다.

놈을 쓰러뜨린 이는 게보였다.

게보는 순간 안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표정을 굳힌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대장님은?”

“어, 그러게? 소대장님은?”

두 배가 넘는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소대원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게보가 전한 헨리의 부활 소식 덕분이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헨리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의 사기가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사투를 끝낸 후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부활한 헨리 대신 죽은 알비노 타우로스뿐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전투가 끝나 갈 때쯤, 헨리가 타이밍 좋게 모습을 드러냈다.

“어, 어? 저기 저 사람, 소대장님 아니야?”

“어, 정말이네? 잠깐만, 근데 한 명이 아닌데?”

대원들은 헨리의 품에 누군가가 들려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모두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 어?”

“저분은?”

“오, 맙소사…….”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카터 소대장이 돌아온 것이다.

전신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헨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도 쉽게 믿을 수 없었는데 부활한 소대장이 전임 소대장을 데리고 나타나다니!

대원들의 온몸에 전율이 끼쳤다.

“우와아아아!”

전율은 곧 함성이 되었다.

그리고 모두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헨리는 소대원들과 함께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다.

* * *

요새로 복귀한 헨리는 영웅이 되었다.

굳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헨리가 데리고 온 카터에 의해 헨리는 중대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지?”

“저도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란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처음 대원들이 중대로 복귀했을 때 가장 놀란 이는 간부진이었다.

특히 살로몬 중대장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현실을 깨닫고 혈색이 돌아온 그는 그 누구보다도 헨리를 칭송하기에 바빴다.

무능한 줄로만 알았던 부하가 둘도 없는 영웅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보그나 휴고 또한 헨리를 무시했던 스스로를 책망하며 헨리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의무실부터 들렀으면 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마차라도 준비할까?”

“아뇨, 괜찮습니다. 그보다 카터 소대장과 소대원들의 상태부터 살핀 뒤에 정식으로 보고를 올려도 되겠습니까?”

“아, 그럼 물론이지! 물론이고말고! 지금 보고 따위가 중요하겠냐?”

하지만 들뜬 분위기에 비해 헨리는 약간의 미소를 지어 보일 뿐 생각보다 밋밋한 반응을 보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특유의 담백한 성격 탓도 있긴 했다.

하지만 헨리에겐 이 임무가 그저 이셀란이 내린 수많은 임무들 중에 하나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한 일도 많았는데 겨우 이 정도로 호들갑은.’

치료 수속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사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소대원 대부분이 중상을 입은 탓에 침대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침대에 드러누운 그 누구도 자신의 상처에 침울해하지 않았다.

“크흐흐, 흐흐흐흐…….”

“그렇게 좋냐, 멍청아?”

“넌 안 좋냐? 난 좋아 죽을 것 같은데, 크흐흐흐.”

“환자분, 그만 웃으세요. 자꾸 상처가 벌어지잖아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크흐흐, 자꾸만 웃음이 나는걸요. 크흐흐흐…….”

한편 헨리를 진찰하던 의무장교가 말했다.

“어라, 소대장님은 멀쩡하시네요? 듣기로는 번개도 맞으셨다면서요?”

“요행으로 피해를 줄였습니다.”

“그래도 참 대단하세요. 아직 러너급 유저이신데 이 정도 힘이라니.”

헨리를 진찰하던 의무장교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소대원들의 활약상만 들으면 전신 화상에 팔 한 쪽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을진대 생각보다 너무 멀쩡했기 때문이다.

“상처가 적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저는 먼저 부대로 복귀해도 되겠습니까?”

“아, 예, 뭐…… 이 정도면 사실 저희가 손볼 곳도 없겠네요. 카터 소대장님은 깨어나는 즉시 중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참! 혹시 소대원들 말인데요.”

“예! 뭐 따로 부탁하실 거라도?”

“될 수 있으면 모두 입원시켜 주시고, 한동안은 절대 부대로 복귀시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네? 굳이 그러실 이유가 있나요?”

“그냥 좀 귀찮아서요.”

헨리의 대답에 의무장교가 지그시 웃어 보였다.

헨리가 무슨 이유로 저런 부탁을 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다들 들뜬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그때쯤 적당히 퇴원시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확답을 받은 헨리는 홀로 의무대를 벗어나 중대로 복귀했다.

그러자 행정실에 있던 중대장이 버선발로 뛰쳐나오며 헨리를 맞이했다.

“아이고, 우리 헨리 소대장!”

“무슨 일이십니까?”

“왜 벌써 복귀했어? 면밀하게 치료받지 않고서?”

“다친 곳이 없어서 복귀했습니다.”

“역시 우리 헨리 소대장은 뭐가 달라도 한참 달라. 그보다 손님이 와 계시는데 마침 잘됐네!”

“손님이요?”

그때였다.

쾅!

“헨리! 몸은 좀 괜찮냐?”

“……이셀란 일대장님?”

“소식은 들었다! 몸은 멀쩡하지?”

“멀쩡해서 퇴원하긴 했습니다만……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이긴! 부하가 공적을 세웠으니 상관으로서 그 공로를 치하하러 왔지. 시간 괜찮지? 관사로 가자!”

의무대에 갔다 온 사이 그새를 못 참고 살로몬이 보고를 올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셀란의 옆에는 티니가 방긋 웃어 보이며 손짓하고 있었다.

‘젠장…….’

결국 이셀란의 축하주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 * *

“그래! 그럼 어디 우리 영웅님의 활약상부터 한번 들어 보실까?”

분명히 정식으로 보고해야 할 사안이었으나 이셀란은 술자리에서나 써먹을 법한 안주처럼 영웅담을 요구했다.

헨리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지만 어쩌면 보고 내용을 조작하는 데에는 이런 자리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고 아닌 보고를 시작했다.

덕분에 헨리는 잠깐 동안 유능한 소설가가 되었다.

보고 과정에서 숨기고 싶은 것은 숨기고 필요에 의한 부분은 살을 붙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클레버는 당연히 죽은 존재가 되었다.

보고가 끝났을 무렵, 들떠 있던 이셀란이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거 아깝군.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좋은 실험체가 됐을 텐데 말이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 우리 영웅님이 그렇다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권력자의 기분이 좋을 때 만찬은 생각보다 더욱 화려해진다. 그리고 이셀란의 관사에 차려진 만찬이 그러했다.

“이거 이렇게 빨리 블랙을 잡을 줄은 몰라서 말이야. 오늘은 아쉽게도 막거스의 술이 없어.”

“괜찮습니다.”

다행이었다.

악명 높은 막거스의 위스키라면 이셀란 때문에 질리도록 먹어 봤으니까.

“하지만 그에 준하는 놈들을 준비했지. 어이! 가지고 와!”

이셀란이 명령을 내리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차례대로 술이 든 드럼통들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하하하! 이번엔 젤나의 폭발하는 위스키 시리즈다!”

쌓여 가는 드럼통들을 보며 헨리는 다시 한 번 마른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