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마주치다 (1)
탈취제를 획득한 헨리는 그길로 관사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소대원들을 집합시킨 후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다들 주목. 저번에 내가 나눠 준 유품들은 잘 가지고 있나?”
“예.”
“혹시 나눠 준 유품 중에 이렇게 생긴 탈취제가 있었나?”
헨리가 티니에게서 받아 온 탈취제를 들어 올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모였다.
그러나 모두들 서로의 시선만 교환할 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의아했다.
카터의 소지품은 소대원들이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누군가는 같은 탈취제를 가지고 있을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 혹시 버리거나 태웠나?”
저번에 연극을 벌였을 때 유리병을 태운 기억은 없었다.
“아닙니다. 카터 소대장님의 물품은 제가 모두 확인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소대장님 물건 중에 그런 물건은 없었습니다.”
“그래?”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탈취제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카터는 왜 죽임을 당한 것일까? 설마 홀터벨트의 증언이 잘못된 것일까?
수많은 가설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하지만 어차피 이번 출정 또한 그의 증언을 시험하기 위해 떠나는 것. 만약 그의 증언이 틀렸다고 해도 그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없으면 어쩔 수 없고. 그럼 이제 출발하도록 하지.”
소대원들이 탈취제에 대해 질문했지만 헨리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진실을 알게 되면 서로 뿌리겠다고 난리 칠 게 뻔했으니까.
‘위험을 분산시켰다가 괜히 위험해지면 곤란해.’
현재로썬 블랙의 정확한 전력을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군중 속의 고독.’
퉁!
헨리가 발을 구르자 다시 한 번 마법이 시전되었다.
마법은 이번에도 소대원들을 안전하게 이동시켜 주었고 소대원들은 또 한 번 마찰이 없었다며 기뻐했다.
* * *
“오늘도 어제와 같은 목적을 두고 움직인다. 지루한 작업이겠지만 작은 실마리라도 잡히면 일의 진척도를 높일 수 있으니 모두들 참을성 있게 임무에 임해 주길 바란다.”
“예!”
“그럼 수색을 시작하도록.”
이번에도 역시 두 팀으로 나뉘어 움직였다.
방향 또한 어제처럼 등고선을 따라 반대 방향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슬슬 시작해 볼까?’
헨리는 이만큼 거리를 벌렸으니 적어도 다른 팀원들이 휘말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자신과 한 팀이 된 네 명만큼은 어떻게든 책임질 각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실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실험이 가미된 수색이었으므로 방법을 바꾸기로 한 헨리는 먼저 자신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에게 마법을 시전했다.
‘군중 속의 고독.’
퉁!
그런 다음 받아 온 탈취제를 꺼내 일정량을 손목 위에 분사시켰다.
치익.
탈취제를 뿌리는 곳은 향수와 같다. 중요한 건 기존의 냄새를 잡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손목과 발목 그리고 목의 뒷덜미까지, 탈취제를 꽤나 꼼꼼하게 뿌렸다.
페브리지 특유의 산뜻한 향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이내 곧 사라질 향이었다.
그러나 헨리의 준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무리 헨리 혼자 뿌린 데다가 향이 미약하다고 해도 팀원들에게 그 향이 옮겨 붙어 버리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팀 스킨.’
퉁!
헨리가 다시 한 번 발을 구르자 헨리의 전신에 미약한 증기막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뿜어 나온 증기는 자연스럽게 전신을 타고 정수리 위로 피어올라 허공으로 분사되었다.
푸쉬쉬쉬!
‘이 마법을 여기서 쓰게 될 줄이야.’
스팀 스킨은 탑에서 개발해 낸 일종의 사교용 마법이었다.
향수 내음으로 가득한 사교장에서 자신의 향기를 가장 넓게 퍼뜨리기 위해 어느 귀부인이 탑에 의뢰한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개발된 직후에는 한동안 열풍이 불어닥쳤지만 너도나도 이 마법을 사용하게 되는 바람에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게 된 비운의 마법이기도 했다.
무형의 증기가 헨리의 머리 위로 모두 사라지자, 헨리는 이어서 다른 팀원들에게도 스팀 스킨을 시전해 주었다.
푸쉬쉬쉬!
물론 소대원들이 눈치챌 리는 없을 것이다.
스팀 스킨은 사교용으로 개발된 마법이기 때문에 사용자에게는 그저 산뜻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로써 서로의 냄새가 뒤섞일 일은 없게 되었다. 더불어 5개의 증기가 대류에 혼합되어 더욱 멀리 페브리지 향을 퍼뜨릴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여느 때처럼 킨 머시룸을 찾는 것뿐이었다.
헨리는 뒤쫓아 오는 팀원들과 두 걸음 정도 거리를 벌린 후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 * *
6급 구역 어딘가.
6급 구역에서만 서식하는 ‘타우로스’는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인간형 몸체를 가졌지만 ‘황소’의 머리를 가진 ‘반인반우’의 마물이었다.
놈들은 근육질의 몸체와 거친 성격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지어 다녔는데, 그 때문에 6급 구역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로 손꼽혔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무리에는 항상 돌연변이가 한 개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돌연변이는 어떤 무리에선 ‘미친놈’일 수도 있고 어떤 무리에선 ‘성격이 포악한 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타우로스 무리의 돌연변이는 드물게도 전신이 새하얗게 물든 알비노였다.
알비노. 보통은 색소가 부족한 개체를 뜻한다.
하지만 이 알비노 타우로스는 번개의 힘을 타고난 덕에 몸체가 하얀 것이었고, 그 번개의 힘 덕분에 손쉽게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막강한 놈이었다.
자유자재로 번개를 다루는 탓에 그 누구도 알비노 타우로스에게 덤빌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블랙은 이놈을 마지막 숙주로 정했다.
사실 블랙은 마계에서도 알아주는 우수한 능력의 일족이었다.
하지만 우수한 능력만큼 영양가가 뛰어나 수많은 마물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 도망친 곳이 바로 이곳 ‘마물의 숲’이었다.
처음에는 그 또한 다른 마물들을 피해 도망치던 중 틈이 보이기에 틈 속에 몸을 숨긴 것뿐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틈이 바로 인간계와 연결된 ‘마계의 문’이었던 것이다.
그 후 블랙은 ‘진짜 마계’에 비해 안전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블랙은 알비노 타우로스 안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마족으로 진화하기 위해선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진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한 달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침 얼마 전에는 뜻하지 않게 ‘좋은 그릇’을 손에 넣은 터였다.
블랙은 자신의 비밀 장소에 그릇을 옮겨 놓은 뒤 본격적으로 ‘진화 상태’에 돌입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몇 시간만 더 있으면 블랙은 완벽한 마족이 되어 ‘좋은 그릇’에 자신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
암세포처럼 숙주 속에 웅크려 있던 블랙은 지난 몇 년간 단 한 번도 맡지 못한 달콤한 냄새를 맡았다.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타우로스의 후각을 통해 스며들어 오는 냄새는 자신의 쾌락을 자극시키는 ‘그 냄새’가 분명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지난 몇 년 동안이나 없었던 냄새가 갑자기 날 리가 없어.’
혹시라도 허튼 수가 생길까 봐 일부러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깊은 곳에서 진화를 시작한 블랙이었으므로, 블랙은 이 냄새를 부정했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퍼지는 이 냄새는 몇 년 전에 자신을 폭주시켰던 ‘그 냄새’가 분명했다.
그 냄새.
이제는 거의 멸족하다시피 한 자신의 일족을 환장하게 하는 그 냄새는 바로 마계초, ‘Dhdl’의 냄새였다.
‘아, 안 돼…….’
보아선 안 되는 것은 눈을 감으면 해결될 문제다.
하지만 냄새의 경우엔 숙주의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다 보니 마음대로 막을 수가 없었다.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Dhdl은 블랙의 일족에게 있어 ‘마약’과도 같은 것.
더불어 마계에선 구하기 힘든 것이 Dhdl이었지만, 한입 베어 먹는 순간 그 어떤 쾌락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환락을 선사하는 것 또한 바로 Dhdl이었다.
‘안 돼!’
한 달여 동안 죽은 듯이 잠을 청하고 있던 알비노 타우로스가 눈을 떴다.
결국 블랙이 Dhdl의 냄새를 참지 못하고 숙주를 조종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드시 먹는다.’
진화의 순간이 불과 몇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약과도 같은 Dhdl 향은 이미 블랙의 이성을 확실하게 끊어 놓았다.
쿠어어어어!
알비노 타우로스가 깊은 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숲이 떠나가라 포효를 지르자 울음을 들은 타우로스들이 우두머리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몰려든 녀석들은 총 스무 마리.
처음에는 부하들이 백여 마리에 달했으나, 지난 한 달이라는 공백기 때문에 꽤나 많은 숫자가 무리를 떠나고 말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놈들은 다름 아닌 6급 구역의 포식자, ‘타우로스’들이었으니까.
* * *
“결과는?”
“죄송합니다.”
결국 맞은편 지점에서 두 팀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만나고 말았다.
진이 빠졌다.
이번 추적의 경우엔 두 가지 마법을 유지하며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신경까지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는 이제 거의 빈 병이 된 탈취제를 보며 실망을 금치 못했다.
꽤 아껴 가며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탈취제는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6급 구역이 상당히 넓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구역의 거의 반 바퀴를 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건, 홀터벨트의 주장이 틀렸다는 증거였다.
‘잘못된 증언이었나……. 다른 희생자들을 한번 소환해 봐야겠군.’
헨리는 거의 바닥을 보이는 탈취제의 뚜껑을 열어 얼마 남지 않은 원액을 목 뒷덜미에 끼얹었다.
‘역시 다음에 하나 사 줘야겠지?’
티니는 탈취제의 대가로 식사를 요구했다.
그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든의 나이에 8서클의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쯤 되면 재물이나 여색보단 평생을 다뤄 온 ‘본업’에 더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헨리는 그녀가 호감을 표시해도 적당히 둘러댈 생각이었다.
“그럼 지금부터는 다 함께 중앙을 가로질러 간다.”
“예.”
등고선을 따라 추적하는 방식을 끝냈으니 이제는 6급 구역의 중심부를 헤집어 볼 차례였다.
‘군중 속의 고독, 스팀 스킨.’
퉁!
부담되긴 했지만 외곽이 아닌 중심부이니만큼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헨리가 발을 구르자 시전된 마법들이 범위를 넓혀 나머지 소대원들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일행이 중심부로 발을 디디려던 순간이었다.
쿠어어어어!
성난 황소의 울음소리.
그 크기는 숲을 뒤흔들 만큼 몹시 거대한 것이었다.
“이 소리는…… 아마도 타우로스인 것 같습니다.”
“타우로스라면, 그 반인반우?”
“예, 맞습니다.”
‘허, 그놈들이랑 마주치면 골치 아픈데.’
식물도감까지 외우고 있는 헨리는 마물의 숲에 서식하는 마물에 대한 정보 또한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헨리는 놈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땅바닥에 손을 얹었다. 마법으로 위치를 파악해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헨리가 바닥에 손을 대기 위해 무릎을 굽힌 순간이었다.
쿠어어어어!
파지지지지직!
그 순간, 헨리의 정수리를 향해 통나무 크기만 한 하얀색 전류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소대장님!”
순식간에 벌어진 일.
대처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벼락은 정확히 헨리에게로 쏟아졌고, 주변에 있던 소대원들은 깜짝 놀란 나머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치직. 치지직.
벼락이 그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전신이 새카맣게 타 버린 헨리가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