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8화 (28/522)

# 28

페브리지 (2)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을 줄이야.’

솔직히 놀랐다. 편법을 좋아하는 헨리였지만 이런 식의 발상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헥터가 망자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게.”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다녀와.

헥터의 말이 맞았다.

5년이나 블랙을 쫓을 정도로 집착이 강한 사내였다면 죽어서도 성불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설사 이승에 남아 있지 않고 헥터처럼 명계로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보고서에 작성하지 못한 새로운 정보들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헨리는 카터의 관사로 향했다.

유품의 대다수는 정리해서 알롱드에게 넘겨주었지만 말 그대로 대다수일 뿐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사는 며칠 전에 들렀을 때와 똑같았다.

헨리는 방에 불을 밝힌 후, 카터의 기운이 배어 있을 법한 물건들을 찾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카터의 관사는 깨끗했다.

‘이런…… 그새 쓸어 갔나?’

아마도 소대원들이 치운 듯싶었다.

‘큰일인데. 이 밤에 소대원들을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소대원들은 공동 막사에서 다 함께 공동생활을 한다. 게다가 시간마다 불침번이 있기 때문에 쉽게 막사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헨리는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얼마간 카터를 강령시킬 수 있을 만한 유품이 무엇일지 떠올렸다.

‘생전에 무엇보다도 애지중지했을 법한 물건이라면…… 어, 혹시?’

한참이나 고민하던 중, 순간 머릿속에 마땅한 존재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살아생전에 그가 직접 작성하던 ‘블랙에 대한 보고서’였다.

‘블랙에 대한 보고서라면 다른 어떤 물건보다도 소중하게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마침 그 보고서는 헨리가 보관하고 있던 중이었다.

헨리는 다시 자신의 관사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책상 위에 정리해 둔 보고서 중 한 장을 꺼내 서둘러 강령술을 준비했다.

-그런데 헨리.

마법진을 그리던 중, 그것을 지켜보던 헥터가 물었다.

“왜?”

-다른 놈을 소환하면 나는 어떻게 되지?

예상치 못한 질문.

이 부분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글쎄. 그건 나도 해 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설마 별문제야 있겠어?”

-그래, 뭐…….

확신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곧 마법진이 완성됐다.

헨리는 헥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마법진 위에 보고서 한 장을 올려 둔 뒤 주문을 외웠다.

“wkRn Ekfktj cu qhwl aktpdu ehrwkslaemf.”

우우웅!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마법진은 헥터를 소환했을 때처럼 선홍빛으로 번쩍였고 곧 명계의 틈을 벌리기 시작했다.

-나도 저런 식이었군.

헥터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신기한 눈초리로 구경했다.

‘멀쩡한가 보네.’

술식이 발동됐음에도 헥터는 멀쩡했다.

아무래도 새로이 소환되는 망령은 기존에 소환된 망령과는 별개로 취급되는 듯했다.

헨리는 이윽고 카터의 이름을 읊조렸다.

“카터.”

죽은 카터의 망령을 불러내기 위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름을 부른 지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음?”

이쯤 되면 슬슬 보여야 할 두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헨리는 의아함에 다시 한 번 더 카터의 이름을 불렀다.

“카터?”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후, 헨리는 몇 번이나 더 카터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헨리가 의아한 눈초리로 헥터와 시선을 교환하자 잠자코 지켜보던 헥터가 입을 열었다.

-내 노파심에 하는 얘기인데 말이야.

“음?”

-혹시 명계에 녀석의 영혼이 없는 게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야? 영혼이 없다니?”

-말 그대로야. 내 느낌으로는 저곳은 명계가 분명해. 하지만 저 틈 너머에서는 단 한 명의 영혼도 느껴지지 않아서 말이야.

“그럼 소환에 실패했다는 건가?”

-나야 모르지. 소환에 실패했거나, 제물이 잘못됐거나. 그런데 내가 봤을 땐 제물도 마법진도 완벽한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지?”

-명계가 열렸으니까.

“……갈수록 어려운 소리만 늘어놓는군.”

헥터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선례가 없는 이상 섣불리 믿음을 가져선 안 됐다.

헨리는 결국 마법진을 지운 다음 몇 번이나 다시 소환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대체 뭐가 문제지?’

답답했다.

결국 소대원들이 거주하는 막사로 찾아가 몰래 다른 유품을 가져와 사용해 보기도 했고 고서를 보며 몇 번이나 재시도를 해 보았지만 그래도 결과는 똑같았다.

몇 시간 뒤, 진이 빠진 헨리는 의자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미치겠네…….”

흑마법은 난생처음이다 보니 헨리는 주먹구구식으로 마법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연이은 실패에 짜증이 솟구쳤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저기 혹시 말이야.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헥터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 카터라는 놈, 아직 살아 있는 게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야?”

-강령술은 망령을 대상으로 하는 마법이라며? 그럼 혹시…… 카터 그놈이 아직 살아 있어서 소환이 안 되는 거라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네 말대로 죽은 게 아니라 실종됐다 쳐도, 더욱 말이 안 돼. 그럼 카터가 실종된 지 며칠이나 지났다는 얘긴데, 그 정도 시간이면 굶어 죽어도 충분하다고.”

헛소리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에 헥터가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확인해 봐서 나쁠 건 없잖아? 그럼 산 자를 대상으로 한번 시도라도 해 보지 그래?

“그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언제는 편법이 좋다며?

“그건 그렇지만…….”

거리낌 없이 산 자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자는 헥터의 제안에 헨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아냐, 됐어. 대신 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마음 약한 놈. 다른 방법은 뭔데?

“블랙의 피해자는 카터뿐만이 아니야, 카터의 옛 부하들로 노선을 변경한다.”

-옛 부하? 그렇담 적어도 5년도 더 된 놈들일 텐데 그놈들 유품은 어디 가서 찾으려고?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칼리번 소속이라면 딱 한 군데 짐작 가는 곳이 있지.”

다른 방법을 떠올린 헨리가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 * *

헨리가 방문한 곳은 칼리번의 영웅들이 죽어 묻힌다는 ‘영웅의 요람’이었다.

보통은 요새 근처에 위치한 ‘영웅의 무덤’에 묻히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카터처럼 시체조차 찾지 못한 이들은 특별히 요새 안에 위치한 ‘영웅의 요람’이라는 위령관에 유품과 함께 안치된다.

그것이 칼리번의 추모 방식이었다.

헨리는 죽은 카터의 자료를 훑으면서 먼저 죽은 부하들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했다.

카터는 세심한 녀석이었다.

복수의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보고서 한편에 죽은 부하들의 이름을 써 놓았기 때문이다.

헨리는 그중에서 ‘홀터벨트’라는 이름을 가진 부하를 찾기로 했다.

수많은 이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경비 하나 없는 위령관으로 잠입하기는 쉽다. 헨리는 위령관에 몰래 잠입한 다음 홀터벨트란 이름을 찾았다.

‘찾았다……. 여기 있었군.’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홀터벨트를 기리는 위령패는 자그마한 개인 유리관 속에 안치된 상태로 수많은 위령패들과 함께 벽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헨리는 먼저 망자에 대한 예를 갖춘 후 마법으로 닫힌 유리관을 열어 그의 유품인 펜던트 하나를 챙겨 들고는 관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재빨리 강령술을 시전해 보았다.

“xhgofk wkrrktl rmfdmf soshk.”

위이잉!

선홍빛 섬광, 그리고 시린 명계의 틈. 붉은 두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했군.

“홀터벨트.”

그리고 헨리가 그의 이름을 되뇐 순간, 명계 안에 갇혀 있던 홀터벨트의 영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생각보다 훨씬 순박한 얼굴이었다.

그는 거대하고 둥근 몸을 가졌으나 덩치와는 달리 소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사내놈이 뭐가 저래?

“조용히 좀 해 봐.”

헥터와는 달리, 홀터벨트는 자신의 강림을 실감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에 헨리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홀터벨트 씨?”

-다, 당신은 누구죠? 누구신데 제 펜던트를 갖고 계신 거죠?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칼리번 요새의 이셀란 일대장 직속 특수 임무 중대 소속 특수 임무 소대, 소대장 헨리 모리스라고 합니다.”

-칼리번……? 설마 제가 복무하던 부대의……?

“맞습니다. 동시에 카터 소대장님의 뒤를 이은 후임 소대장입니다.”

-카터? 설마 카터 중대장님요?

“그때는 중대장이셨지만 지금은,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가 몸담고 있는 특임대의 소대장이셨습니다.”

헨리의 소개에 홀터벨트는 비로소 현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현실을 깨닫자마자 그는 어미 새를 찾는 아기 새처럼 애타게 카터를 부르짖었다.

-저, 저! 카터 중대장님은, 아, 아니 소대장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죠? 혹시 지금 만나 뵐 수 있나요? 만나 뵐 수 있다면 제발 그분을 만나게 해 주세요!

-마음이 여린 친구로군.

“조용히 해.”

헨리는 그런 홀터벨트를 진정시키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홀터벨트 씨, 갑자기 명계에서 소환되셔서 몹시 당황스럽겠지만 저도 지금 카터 소대장님 때문에 홀터벨트 씨를 소환한 겁니다.”

-네? 설마 소대장님께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예, 현재 카터 소대장님은 당신을 죽음에 몰아넣은 ‘블랙’에 의해 행방불명된 상태입니다.”

죽은 지 몇 년이나 된 망자에게 미래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 자신이 죽은 이후의 사실로 인해 다시 한 번 더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쯤,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망자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기괴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헨리와 헥터만큼은 그가 모든 슬픔을 게워 낼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한참 뒤, 그가 어느 정도 진정을 되찾았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그만…….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의 고통은 죽어서도 참기 힘든 법이니까요.”

-그래도 소대장님께서 5년이나 혼자서 외롭게 사투를 벌이셨을 생각을 하니…… 으흐흐흑…….

그는 다시 울었다.

그러나 헨리는 이번에도 참을성 있게 그의 슬픔을 기다려 주었다.

“혹시 블랙의 인상착의나 다른 특징들을 기억하십니까?”

그의 울음이 멎어 갈 때쯤, 헨리는 조심스럽게 본론을 언급했다.

-물론입니다. 그것 때문에 카터 소대장님을 뵙게 해 달라고 한 것이고요.

목소리에 진이 빠진 그의 입에서 반가운 소식이 등장했다.

슬픔을 기다려 준 보람이 있었다.

-아까 전에 알려 주신 정보들 중에 잘못 알려진 점이 있습니다.

“어떤 점 말입니까?”

-예, 그놈은 변신술의 귀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마족도 아니고요.

5년 치 보고서에 기록된 귀중한 자료들이 틀렸다는 말에 헨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시에 카터 소대장님은 자리에 없으셔서 못 보셨겠지만, 희생자들 중에 제가 제일 마지막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놈은 변신술이 뛰어난 게 아니라 남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놈일 뿐입니다.

“껍데기 말입니까?”

-예. 마치 악령을 연상케 했습니다. 처음엔 7급 구역의 블랙 게헨나인 줄로만 알았던 녀석이, 제 동료와 거리를 좁히는 순간 순식간에 입에서 입으로 몸체를 옮겨 가더군요.

‘몸체를 옮긴다고?’

그가 말해 준 단서를 통해 몇 종류의 마물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마족이 아닌지는 어떻게 아십니까?”

-스스로 밝혔습니다. 자기는 곧 마족이 될 몸이라고……. 그리고 그게 제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마족이 될 몸?’

‘마족이 될 몸’이라는 말에서 헨리는 순간 ‘진화종’을 떠올렸다.

진화종은 마기가 꽉 차 마족으로 진화하기 위해 갖은 준비를 다 하는 시기를 거치는 마물을 일컫는다.

그가 말해 준 단서들이 수많은 시나리오들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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