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페브리지 (1)
‘오랜만이군.’
절벽을 건너 숲에 발을 내딛자 마물의 숲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목적지는 6급 구역이다.
거대한 마물의 숲에서 6급 구역까지는 생각보다 거리가 좀 되었기에 속도를 좀 낼 필요가 있었다.
‘시작해 볼까?’
퉁.
헨리가 오른쪽 발을 들어 가볍게 발 구름을 시전했다.
그러자 발아래에서부터 무형의 마나가 뿜어져 나와 특임대를 감싸 안았다.
‘군중 속의 고독.’
마법이 발동되었다.
사용된 마법의 이름은 군중 속의 고독.
말 그대로 수많은 인파 속에 있어도 관심을 잃게 만드는, 헨리가 개발한 조합 마법이었다.
물론 소대원들은 마법이 발동된 줄도 전혀 몰랐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리고 대규모의 마법을 부드럽게 가동시키는 것이 바로 헨리의 능력이었다.
“가자.”
특임대의 은밀한 이동이 시작됐다.
* * *
“오늘 무슨 날인가?”
“그러게, 어떻게 한 번도 트러블이 없을 수가 있지?”
“뭔가 예감이 좋다.”
드디어 6급 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6급 구역의 ‘세이프티 존’에 도착했을 때, 소대원들은 한 번의 트러블도 없음을 신기하게 여기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군중 속의 고독이 이런 곳에 쓰이고 있는 줄은 몰랐군.’
그리고 놀란 것은 헨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만든 조합 마법이 세이프티 존의 제작에 쓰이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군중 속의 고독’이 헨리의 독자적인 마법이긴 했지만, 애초에 그가 제국의 부흥을 위해 대가 없이 조합식을 공개했었기 때문이다.
“다들 주목.”
“주목!”
세이프티 존에 도착한 뒤,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본격적인 탐색을 위해 소대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오늘 우리의 목적은 ‘블랙’의 단서를 잡는 것이다. 나에게는 카터 소대장이 지난 5년 동안 기록한 블랙에 대한 관찰지가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헨리의 입에서 ‘블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소대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좋은 의욕이었다.
소대원들은 카터의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가벼운 단서부터 찾아보려고 한다. 관찰지에 의하면 녀석은 6급 마물인 주제에 대화를 할 수 있어 마족으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동급의 다른 마물들에 비해 제법 강한 마기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헨리는 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낸 후 소대원들에게 보여 주었다.
“우리는 먼저 이것을 찾도록 한다.”
꺼내 든 종이에는 처음 보는 형태의 버섯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에 알롱드가 물었다.
“소대장님, 이게 뭡니까?”
“여기 그려진 이 버섯의 이름은 킨 머시룸이다. 킨 머시룸은 마계 버섯의 일종으로, 5급 구역부터 자라나는 게 특징이지.”
“여긴 6급 구역이 아닙니까?”
“그래, 맞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녀석을 찾는 것이다. 이 녀석은 5급 구역의 마기 정도는 되어야 자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거든.”
“아! 블랙이 만약 6급 마물 이상의 마족이라면 놈의 거처에는 이 버섯이 자라고 있겠군요?”
“정답이다.”
정예 요원답게 다들 눈치가 괜찮은 편이었다.
헨리는 킨 머시룸이 그려진 종이를 소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킨 머시룸도 일단은 마계 버섯의 일종이니 숙주에게 기생하여 산다. 그러니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거무죽죽한 곳이 발견된다면 반드시 의심해 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효율을 위해 나와 부소대장을 주축으로 반씩 팀을 나누겠다. 그리고 소대가 나뉜 만큼 마물과의 마찰은 최대한 없어야 한다. 재집합은 6시간 뒤, 세이프티 존에서 모인다. 그리고 부소대장은 이걸 받도록.”
“소대장님, 이건?”
“지원받아 온 마법 물품이다. 위급 상황 시에 이 종이를 찢으면 너희들의 위치가 나에게로 전송되니 위급한 상황에 반드시 사용하도록.”
“……처음 보는 물품인데 이런 건 어떻게 지원받으셨습니까?”
“일대장님께서 특별히 주셨다. 비싼 물품이니 잘 간수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이것은 헨리가 임시로 제작한, ‘위치 전송 마법’이 부여된 ‘비상 종이’라는 이름의 마법 스크롤이었다.
보통 마법 스크롤은 값비싼 가격 때문에 보급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마도사인 헨리에게 이 정도 스크롤 제작은 매우 간단한 일.
그 때문인지 이셀란이 직접 하사했다는 말에 소대원들이 사뭇 감동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지금부터 조를 편성한다.”
조는 금방 편성되었고, 두 팀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출발했다.
어차피 등고선을 따라 돌게 되면 반드시 맞은편에서 마주치게 되어 있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본격적인 단서 추적이 시작됐다.
그리고 추적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이었다.
“저…… 소대장님.”
“무슨 일이야?”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팀원 중 한 명이 갑작스레 질문을 건네 왔다.
과거였다면 임무에나 집중하라고 타박을 줬을 테지만 유대감이 회복된 지 얼마 안 된 직후라 헨리는 흔쾌히 질문을 허락했다.
“물어봐.”
“감사합니다. 소대장님께선 분명히 신입 장교이실 텐데 킨 머시룸을 활용한다거나 하는 이런 기발한 방법은 어떻게 떠올리신 겁니까?”
“겨우 그게 궁금했냐?”
“예. 제 입장에선 좀 신기해서 말입니다.”
“책에서 봤다. 마물의 숲, 식물도감이란 책에서.”
“식물도감이라면 그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마물의 숲의 역사는 생각보다 꽤나 깊다.
제국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해 오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그만큼 관련된 서적 또한 매우 많았는데, ‘도감’같은 종류의 전문 서적은 두께만 봐도 혀가 내둘릴 정도였다.
“참고로 나는 그 책을 전부 암기했다.”
“예, 예? 정독하신 것만 해도 대단한데 암기를 하셨다고요?”
“나한테는 쉬워. 뭣하면 확인해 보든가.”
“아, 아닙니다! 와, 그걸 어떻게 암기할 수가 있지?”
암기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무리 헨리라 할지라도 특정 식물의 개화 시기나 떡잎의 개수까지 모두 외우는 것은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외형이나 쓰임새, 주의해야 할 점과 같은 주요 정보들은 대부분 외워 두었다.
마물의 숲에서 나는 동식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귀한 마법 재료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찾는 킨 머시룸도 사실은 내가 뿌려 놓은 놈이니까.’
그렇다.
블랙의 단서를 핑계 삼아 추적하고 있는 킨 머시룸은 사실, 헨리가 수십 년 전에 보물을 지키기 위해 뿌려 놓은 일종의 문지기를 겸한 이정표였다.
‘애초에 말이 안 되지, 5급짜리 생태종이 6급에 서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계의 식물은 서열 구분이 확실한 마물들과 성질이 비슷해서 구역에 따른 생태종이 뚜렷했다.
예를 들어 킨 머시룸이 5급 구역에서만 자라는 이유는 5급 구역에만 존재하는 지독한 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우 블랙이 내뿜는 마기의 영향 정도로는 6급에서 자랄 수 없는 게 보통인데, 드물게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다른 구역에서도 군락지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렵게 그 특정 조건을 충족시켜 가며 6급 구역에 5급 생태종을 심어 놓은 사람이 바로 헨리였다.
5급 생태종을 6급에 심어 놓으면 적어도 잡아먹히지는 않을 테니까.
‘거짓말한 건 미안하지만 나한테도 우선순위란 게 있으니까.’
애초에 6급 구역의 순찰을 제안한 건 이곳에 숨겨 두었던 자신의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카터의 임무를 떠맡게 된 차에 임무지까지 겹치다 보니, 헨리는 소대원들의 노동력을 빌려다 쓰기로 했다.
아무리 이정표가 있다 하더라도 이 넓은 숲에서 혼자 찾는 건 몹시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보물찾기를 겸해서 블랙의 단서도 추적할 생각이었다.
보물찾기와는 별개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블랙이란 놈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팀의 추적은 일과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결국 허탕인가.’
최대한 안전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추적을 진행했으나 블랙의 단서는커녕 킨 머시룸의 포자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소대원들 모두 첫날부터 운이 좋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헨리가 실망한 기색을 보이자 소대원들은 약간 감동한 듯 보였다.
‘카터 소대장님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으시면서 저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다니…….’
‘저렇게 좋으신 분을 여태 오해하고 있었다니, 나란 놈은 정말……!’
‘나는 바보같이 왜 그깟 버섯 하나 찾지 못한 걸까?’
‘신입이 무슨 상관이냐. 앞으로는 소대장님께 충성을 맹세하겠다!’
유대감 짙은 특임대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렇게 짙은 오해는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 * *
그날 밤.
모두가 잠든 늦은 밤에 헨리는 관사 뒤편에 만든 널찍한 공터로 향했다.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dks skdhaus cjemfdjrksek znd Wkfk znd Wkr.”
슈슈슉!
주문을 외우자 만월의 기운을 받은 헥터의 약혼반지가 차디찬 명계의 문을 소환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최근 들어 두 사람 사이의 최대 화제는 단연코 ‘오러’였다.
헥터는 한시라도 빨리 헨리가 성장하여 부활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를 ‘네크로맨서’를 찾아 주길 바랐다.
그래서 헥터는 그 누구보다도 헨리에 대한 교육열이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쯤이면 부대에 배정되지 않았나?
“배정됐지. 그리고 얼마 전에 나를 비웃던 놈들도 모조리 제압했고 말이야.”
-호오, 누가 감히 자네를 비웃는단 말인가?
“소드 익스퍼트 몇 놈이 내 실력을 의심했거든. 그래서 본때를 보여 줬더니 꼬리를 말더라고.”
-체면이 말이 아니겠군. 하긴 익스퍼트 놈들 입장에선 러너만큼 하찮아 보이는 존재도 없는 법이지. 아무튼 진전은 좀 있었나? 설마 벌써 오러를 터득한 건 아니겠지?
헥터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진전은 무슨, 갑자기 귀찮은 일을 떠맡는 바람에 수련도 못 하고 있는 판국에.”
-귀찮은 일?
“뭐,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그것 때문에 마물을 코앞에 두고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있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수련 상대를 눈앞에 두고도 참아야 한다는 건가? 그만큼 중요한 일인가?
“그냥 그런 일이 있어.”
-말 안 해 줄 참인가?
헥터의 눈빛에 서러운 기색이 드리워졌다.
자고로 망자는 산 자보다 훨씬 더 잘 서러워하는 법. 그렇기 때문에 악령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헨리는 순간, 아차 싶은 나머지 곧바로 속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실은 말이야…….”
얼마간 설명이 계속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끝나 갈 때쯤 헥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블랙이란 놈을 잡기 전까지는 수련에 지장이 생길 것 같다, 이 말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그렇겐 안 되지. 그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블랙이란 놈부터 붙잡아야 할 게 아닌가?
“그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야.”
-쯧쯧, 마법사란 놈이 이렇게나 멍청해서야 원.
“뭐?”
-쉬운 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려 하니 그러지. 왜 굳이 놈을 쫓으려고 하나? 목격자한테 물어보면 될 것을.
“목격자?”
-들어 보니 그 카터란 놈, 블랙을 5년이나 쫓을 정도로 집착이 심했다며? 그렇다면 죽어서도 똑같을 거야. 카터란 놈, 분명 죽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승을 떠돌고 있을 거라고.
“그거랑 목격자랑 대체 무슨 상관…… 아!”
-이제야 알겠나?
헥터가 말하는 목격자. 그는 바로 블랙에게 죽임을 당한 ‘카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