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6화 (26/522)

# 26

전설의 소대장 (5)

“그래. 하지만 이건 추측일 뿐이야. 보고에 따르면 놈은 말을 할 줄 안다고 했거든.”

마물과 마족의 구분을 짓는 경계는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이셀란이 블랙을 마족이라고 의심하는 이유는 블랙이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티니가 카터의 서류들을 가지고 왔다.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그동안 카터가 이셀란에게 올린 임무 직후의 보고서들이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봐.”

“카터 소대장은 왜 블랙을 쫓은 겁니까? 블랙이 요새에 큰 해라도 끼친 겁니까?”

“복수야.”

“예?”

“블랙을 처음 발견한 건 카터가 보병대에 있을 때였어. 당시의 카터는 보병 중대의 중대장으로 있었는데, 7급 구역으로 출정을 나갔다가 아끼던 부하들을 블랙에게 잃었거든.”

“부하들과 막역한 사이였나 봅니다? 고향 사람이었거나 하는?”

“아니, 그냥 보병대에서 만난 평범한 인연이었어.”

“그럼 굉장한 의리파였겠군요.”

“그렇지. 의리도 넘치고 정도 넘쳤지. 녀석은 그런 놈이었어.”

“그럼 설마 복수 때문에 특임대에 지원한 거였습니까?”

“맞아. 이 임무도 사실은 카터의 복수를 위해 내가 특별히 내려 준 임무야. 사실상 녀석의 개인 임무나 마찬가지였지.”

‘맙소사.’

그는 굉장한 의리파 사나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한 인연에 대한 복수를 위해 부대까지 옮기지는 않을 테니까.

“뭐, 마침 능력 있는 놈이 필요하기도 했고, 지원자들 중에 그놈이 제일 우수했던 것 또한 사실이야. 그리고 목표가 있는 놈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법이니까.”

‘어마어마한 바보였군.’

어마어마한 바보였긴 했어도 복수를 위한 선택만큼은 탁월했다.

놈을 쫓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니 카터는 일부러 상대적으로 간섭이 덜한 특임대에 지원한 것일 테고, 확실한 지원을 받기 위해 사적인 복수를 공식적인 임무로 전환시키기까지 했으니까.

그런 바보를 헨리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헨리 본인도 어렵게 얻은 두 번째 인생을 복수를 위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만한 바보였으니 소대원들이 목을 매는 것이었군.’

카터의 뛰어난 평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부하의 복수를 위해 부대를 옮길 정도라면 니들 중대에서도 그만한 애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무려 5년이나 동고동락한 사이였으니까.

헨리는 그제야 소대원들의 심정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유품은 빠르게 돌려줘야겠어.’

충격요법을 위해 유품을 태우는 척하며 극적인 쇼를 벌인 헨리다. 하지만 이제 그 속사정을 알았으니 채찍이 아닌 당근으로 회유할 때였다.

“하지만 공들인 시간이 비해 손에 넣은 정보는 극히 적었다. 녀석이 워낙에 신출귀몰한 것도 있지만, 활동 간격이 워낙에 뜸해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가 없었거든.”

“그 때문에 유희를 즐기는 마족이라고 추측하신 겁니까?”

“맹수는 배가 부르면 사냥하지 않아. 하지만 녀석은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요새 사람들을 죽이는 걸 즐겼다. 이게 유희가 아니라면 뭐겠냐?”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살인을 즐기는 놈이라면 단순한 쾌락 살인마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카터의 복수를 위해 부여된 임무였지만, 이제 블랙은 요새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요주의 인물이다. 언젠간 특임대에서 처리해야 할 놈, 네가 한번 맡아 봐.”

“알겠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서류에 나와 있으니 훑어보도록 하고, 활동은 오후부터 시작하도록. 오전에는 정보 수집을 위해 특별히 쉬게 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대장님.”

“감사는 무슨……. 그리고 너.”

“예?”

“똑똑한 놈이니까 잘 처신하리라 생각하지만 절대 무리는 하지 마라. 여기서 개죽음당하면 시체도 못 찾는다.”

경고처럼 들렸지만 애정이 담긴 충고였다.

벌써 몇 명의 지휘관이 죽은 탓도 있지만, 이셀란 스스로가 헨리라는 천재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친놈, 그럴 거면 맡기지나 말든가.’

서류를 챙긴 헨리는 묵례를 해 보인 뒤 관사로 복귀했다.

* * *

‘마족이라.’

마족이라면 헨리도 꽤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마왕을 토벌하러 가던 당시 마왕의 밑에서 마물들을 지휘하던 놈들이 바로 마족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상했다.

헨리가 아는 마족들이란 최소 3급 구역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말을 할 수 있지만 6급 마물로 지정되어 있다, 마족이라는 의혹은 있지만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그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놈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로 마족이라면 이거 골치 아파지는데.’

마족에도 급이 있다.

마족이 된 지 얼마 안 된 초짜 놈들은 마도사 수준에서 충분히 제압이 가능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마기를 쌓아 온 놈들은 가진 마기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현재의 헨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그만큼 마족은 위험한 존재였다.

헨리는 티니에게서 받아 온 서류를 훑어보며 블랙이란 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라고?’

그러나 자그마치 5년이나 축적된 보고서들치고는 정보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서류에 나와 있는 블랙의 특징들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블랙은 변신술에 능하다.

-블랙은 6급 마물이지만 간혹 7급과 8급 구역에도 출몰한다.

-블랙은 인간의 말을 구사할 줄 안다.

-블랙은 응축된 마기를 가지고 있다.

-블랙의 본체는 일정하지 않다.

-블랙은 머리 쓰기를 좋아하며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진 게 확실하다.

‘이러면 곤란한데.’

이 정도는 한 번만 마주쳐도 알 수 있을 법한 정보들이었다.

결국 이번 임무는 헨리의 방식대로 풀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한번 가 보자.”

탁자에 앉아 망상으로 계획을 짜는 건 무능한 공무원들이나 하는 짓이다.

무언가를 하려면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나가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계획을 짜야 조금이라도 이상향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결심을 내린 헨리는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알롱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다른 대원들에 비해 경력과 나이가 좀 더 많은 그는 특임대의 부소대장직을 맡고 있었다.

부소대장은 소대장을 대신해 잡다한 업무와 병사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임무가 떨어졌다. 오후에는 6급 구역으로 순찰을 나간다.”

“6급 구역에 말입니까?”

퍽 퉁명스럽던 그의 표정에 호기심이 솟았다.

“블랙이란 놈, 부소대장도 잘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전임 소대장을 죽인 원수인데 모를 리가 없었다.

헨리의 입에서 블랙의 이름이 나오자 알롱드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카터 소대장의 임무를 내가 이어받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잡아들이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쉬워야지, 안 그래?”

“맞습니다.”

“카터 소대장이 기록한 5년의 정보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놈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려 한다. 오늘은 첫 임무이니만큼 가볍게 정찰만 하고 올 생각이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전달해 두도록.”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예?”

“이것들 가지고 가.”

대답을 마친 알롱드가 관사를 빠져나가기 전, 헨리는 침대 밑에 감추어 둔 커다란 박스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전 소대장 유품.”

“……예?”

“설마 내가 진짜로 태웠을까 봐? 어차피 나에게는 의미 없는 물건이니 너희들끼리 알아서 처리해. 게보 그놈은 멀쩡하지?”

“아…….”

순간, 알롱드의 표정에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뭐 해, 어서 가서 전달 안 하고?”

“아, 아, 넵! 알겠습니다!”

멍한 표정의 그를, 헨리는 재촉하여 관사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그는 관사 밖으로 발을 내딛기 전, 돌연 등을 돌려 헨리를 바라보았다.

“소대장님.”

“뭐야, 아직도 안 갔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됐어, 대신 이번에도 얼빠진 모습 보이면 그땐 정말로 각오들 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충성!”

알롱드가 인사와 함께 오른손을 쭉 펴더니 오른쪽 관자놀이에 손끝을 갖다 댔다. 팔은 절도 있게 각을 이루었으며 표정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할 때나 쓰는 제국군의 진짜 ‘경례’였다.

그러나 헨리는 손을 내저었다.

“경례는 무슨.”

제국의 군대에도 엄연히 경례가 존재했다.

하지만 경례는 말 그대로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수단으로 상급자 하급자를 따지지 않고, 쉽게 남발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경례를, 불편하게 여기던 소대장에게 해 보였다는 것은 헨리에게 가지고 있던 악감정을 털어 냈다는 뜻이었다.

‘싱거운 놈.’

헨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도 슬슬 준비해 볼까?’

소대는 곧 팀플레이다.

팀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이며, 팀워크가 잘 맞으려면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헨리는 방금 전에 유품을 돌려줌으로써 기본적인 믿음을 확보했다.

그 증거로 소대원들을 아우르는 알롱드가 경례를 올렸다.

헨리는 곧이어 팀원들의 신상명세서와 속이 깨끗이 빈 짧은 양피지들을 책상 가득히 올렸다.

명령받은 블랙에 대한 조사도 중요했지만 먼저 6급 구역의 순찰을 제안한 이유 또한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 * *

“다들 집합.”

“집합!”

점심 식사 이후, 헨리의 소집 명령에 특임 대원들이 집합했다.

“다들 식사는 맛있게 했나?”

“예!”

“지금부터 부소대장에게 통보했던 대로 6급 구역에 대한 정찰 임무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불만 가득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두들 알롱드로부터 전날의 진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카터 소대장의 죽음을 파헤치는 임무였기에 소대원들의 의욕은 넘치다 못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지.”

마물의 숲으로 입장하기 위해선 요새의 가장 후방에 위치한 방어선을 통과해야만 했다.

방어선은 성벽을 의미했다.

후방의 성벽은 다른 성벽들보다 유난히 높고 튼튼했는데, 요새에서 가장 위험한 곳임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항상 수많은 정예군과 사제 그리고 마법사가 팀을 이루어 경계를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임대가 성벽에 도착한 순간, 경계를 서던 경계병이 헨리에게 소속을 물었다.

“소속.”

“일대장 직속 특수 임무 중대 소속 특수 임무 소대, 소대장 헨리 모리스 외 아홉 명.”

“용무는?”

“임무.”

“……통과!”

하루에도 기백 명의 군인들이 이곳을 출입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출입 허가증을 제시하고 까다로운 보고 체계를 거쳐야만 이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이 과정에 실수가 생겨 마물이 요새 안으로 들어오는 불상사가 발생해선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임대는 달랐다.

특임대는 부대를 가진 지휘관들 중 가장 높은 지휘관인 이셀란 일대장의 직속부대였으므로, 허가증과 까다로운 보고 체계가 없어도 쉽게 성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끼기기기긱.

허가가 떨어지자 눈앞의 거대한 성문이 열렸다.

이것은 1차 성문이었다.

이윽고 특임 대원 전원이 성문을 통과하자 굉음과 함께 1차 성문이 닫히고 곧바로 2차 성문이 개방되었다.

‘보안은 확실하네.’

성문을 2개나 이용하는 까닭은 전과 같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끼기기기긱- 쿵!

도르래를 이용해 개방되는 2차 성문이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열린 성문은 마물의 숲과 성벽 사이에 난 거대한 절벽 사이를 잇는 튼튼한 다리가 되었다.

“가자.”

다리가 안전하게 내려앉자 특임대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언제 봐도 까마득하군.’

다리를 건너면서 헨리는 곁눈질로 천 길 낭떠러지를 구경했다.

이 낭떠러지는 헨리가 직접 지진을 일으켜 갈라놓은 것이었다.

‘옛날 생각나네.’

이로써 헨리는 몇십 년 만에 다시 한 번 마물의 숲에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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