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전설의 소대장 (3)
‘어리석은 놈.’
소대원의 주먹이 활처럼 쏘아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헨리의 주문이 한층 더 빨랐다.
우웅!
무장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몸놀림이 한결 가벼워졌다.
헨리는 소대원의 주먹을 가볍게 피해 낸 다음 팔꿈치로 녀석의 콧잔등을 내려찍었다.
콰직!
꽤나 위험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래 봤자 콧잔등이다. 기껏해야 뼈가 내려앉거나 코피가 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윽고 헨리의 예상대로 소대원의 코는 두 줄기의 혈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쌍코피가 났다고 해서 싸움을 멈추는 짓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헨리는 소대원이 피를 흘리든 말든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녀석의 복부에 발 차기를 내질렀다.
퍼억!
마력으로 근력을 강화시킨 만큼 고통 또한 두 배일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저만치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노에 찬 눈빛으로 헨리를 노려보았다.
독기 어린 눈빛이었다.
헨리는 녀석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이름.”
“…….”
“말 안 해?”
“게보……입니다.”
어떻게든 자존심을 굽히지 않기 위해 경어를 늘이는 게 참 애처롭게 느껴졌다.
이럴 때 보면 남자는 다 커도 애라는 말이 맞다.
‘아직 덜 맞았나 보네.’
가족애가 강했던 소대장의 유품을 태웠으니 분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거란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노조차 휘어잡아야만 하는 게 지금 헨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헨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게보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후 더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침묵하고 있는 나머지 놈들에게 말했다.
“정신머리 빠진 새끼들.”
시작은 욕설이었다.
“네놈들이 그러고도 정예라고?”
분명히 부끄러울 것이다.
나름대로 전 부대에서 한가락 하던 인물들일진대 일개 신입 장교에게 탈탈 털려 버렸으니까.
그것도 오러도 다룰 줄 모르는 러너급 검사에게 말이다.
“다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네놈들이 이런다고 죽은 소대장이 기뻐할 것 같아?”
헨리의 따끔한 일침은 계속됐다.
그리고 그 일침의 대상에는 잠자코 지켜보는 중대장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유품은 없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카터 소대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나에 대한 항명으로 알고 그 즉시 엄벌로 다스리겠다. 알겠나?”
“……예.”
소대원들이 힘겹게 대답을 내놓았다.
억지로 대답하긴 했지만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경고를 마친 헨리는 그 즉시 몸을 돌려 관사로 들어갔다.
이를 본 중대장이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관두고 소대원들을 해산시켰다.
‘멍청한 놈들.’
관사로 돌아온 헨리는 의자에 앉아 차갑게 식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소대원들의 상태가 훨씬 더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손볼 곳이 많겠어.’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정신머리가 썩어 빠진 놈들이라면 싹 다 뜯어고치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 * *
소대원들을 해산시킨 후 관사로 돌아온 살로몬은 예상치 못한 헨리의 돌발 행동에 골머리를 썩였다.
“하…… 빌어먹을.”
헨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친놈이었다.
엿 먹으라고 던져 준 관사를 말끔히 청소해 놓질 않나, 소대원들 때문에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있던 유품까지 깨끗하게 불살라 버렸다.
그 때문에 꼬투리를 잡아 발령을 거부하려고 했던 계획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정말로 그놈을 떠안게 될 텐데…….’
헨리가 본격적으로 임무를 맡고 부대에 적응해 나가면 그때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령을 취소시켜야만 했다.
‘대장님은 대체 오러도 없는 놈을 왜 여기로 발령하신 거야?’
살로몬이 헨리를 거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헨리가 신입 장교라는 점 때문이었다.
신입 장교는 대부분 무능하다.
아무리 싹싹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해도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다양한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능한 부하가 저지른 실수는 상사가 책임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게 쌓인 책임은 반드시 진급에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중요한 직책에는 대부분 경력직을 데려다 써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는 절대 안 되지.’
살로몬, 그는 출중한 실력을 가졌지만 실력만큼이나 출세욕 역시 강한 인물이었다.
그렇잖아도 전임 소대장이 임무 중에 순직하는 바람에 중대장인 자신이 책임의 일부를 지게 되었던 차다.
그런데 마물에 대한 경험도, 오러도 없는 후임자가 나타났으니 살로몬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결국 그 수밖에는 없나.’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살로몬은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결심을 마친 살로몬은 다른 두 소대장을 자신의 관사로 은밀하게 불러들였다.
* * *
다음 날 아침.
헨리는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아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행정실로 향했다.
행정실에는 이미 헨리를 제외한 다른 간부들 모두가 도착해 있었다.
헨리는 선배 간부들을 보자마자 고개 숙여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특임대의 새로운 소대장으로 발령받은 헨리 모리스라고 합니다.”
헨리가 인사를 마치자 중대장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다른 간부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소개하지. 이 친구는 대장님의 개인 임무를 맡아 처리하는 개임대 소대장, 휴고. 그리고 그 옆에는 중대의 행정과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지원대의 보그다.”
“반가워. 휴고라고 해.”
“나는 보그.”
소개가 끝나자 선배 소대장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헨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나눈 직후, 휴고가 말했다.
“내가 선배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물론입니다.”
“고마워. 근데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예, 편하게 물어보십시오.”
헨리가 쉬이 허락하자 휴고의 얼굴에 미소가 떴다.
“듣기로는 아직 오러도 습득하지 못했다던데, 그게 사실이야?”
초면에 꺼내기엔 다소 무례한 감이 없잖아 있는 질문이었다. 아니, 일부러 무례하게 들리라고 날린 질문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그런 무례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면서 선뜻 대답했다.
“예, 아직은요.”
“맙소사.”
그러자 휴고가 과장된 모습으로 놀라운 척, 대놓고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듣기로는 수석 생도들은 자신의 첫 근무지를 자기가 직접 고를 수 있다고 하던데?”
“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장난해?”
행정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로몬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실패한 꼬투리 잡기를 오늘은 소대장을 이용하여 하려는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휴고의 비난은 계속됐다.
“넌 양심도 없냐?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감히 신입 장교 나부랭이가 함부로 발을 디뎌, 디디긴?”
“대장님께서 선택지를 주셔서 골랐을 뿐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 여기 병사들은 최소가 소드 익스퍼트야. 근데 넌? 넌 뭔데?”
“오러는 때가 되면 차차 깨칠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급? 와, 이 새끼 이거 진짜 골 때리는 놈이네.”
휴고가 말하는 요점이 무엇인지 잘 안다.
하지만 그 요점이 헨리에겐 쓰잘데기없는 꼬투리 잡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 당장 나가. 난 오러도 없는 애송이한테 우리 중대원들 목숨 맡길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진 휴고가 당장이라도 주먹을 들어 올릴 것처럼 씩씩대며 말했다.
이에 헨리가 말했다.
“휴고 소대장님.”
“핑계라면 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혹시 일대장님의 안목을, 아니 제 실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뭐라고?”
살로몬과 보그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놀란 것은 휴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미친, 여태껏 네 실력이 의심돼서 이 난리를 피웠는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럼 한번 테스트해 보시죠. 중대에서 가장 중요한 보직인 특임대 소대장 자리에, 왜 일대장님께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입 장교인 저를 앉히셨겠습니까?”
뻔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쉽게 분노하는 상대일수록 도발에 더욱 잘 걸려들기 마련이다.
휴고가 이성을 잃고 주먹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그제야 살로몬이 나서서 상황을 중재했다.
“잠깐.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 실력이 의심된다면서요? 그럼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자존심을 챙기고 싶나? 네가 취할 수 있는 명예는 자진 사퇴밖에 없다.”
“왜 자진 사퇴밖에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제가 두려우신 겁니까?”
“뭐?”
“그렇잖습니까, 막말로 저보다 훨씬 뛰어난 휴고 소대장님도 계시는데 왜 하필 신입 장교인 저를 그 자리에 허락하셨겠습니까? 그건 제가 휴고 소대장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증거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야, 이 개새끼야! 해! 하자고! 너 이 개새끼, 그 잘난 혓바닥을 언제까지 놀릴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중대장님, 저렇게까지 원하는데 한번 시켜 주죠. 테스트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결국 인내심이 폭발한 휴고가 다시금 살로몬의 말을 가로챘다.
이제 남은 일은 꾸준하게 화약을 들이부은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뿐이었다.
* * *
테스트는 두 사람의 대련으로 이루어졌다.
끝끝내 진검으로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휴고가 길길이 날뛰었지만 신입 장교를 상대로, 그것도 화를 이기지 못한 채로 진검으로 화풀이를 했다는 게 알려져선 안 되었으므로 휴고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이윽고 살로몬 중대장의 명령하에 모든 중대원들이 행정실 앞에 집합했다.
‘무슨 꿍꿍이인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휴고는 상급 익스퍼트 유저다. 러너급 유저인 네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제대로 망신살을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구경꾼들을 모은 살로몬은 수많은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헨리의 인사 발령을 철회시킬 생각이었다.
중대원들이 둥글게 모여 간이 투기장을 형성했다.
개중에는 지난밤, 헨리에게 호되게 야단맞은 특임 대원들도 있었다.
모두의 눈빛에 기대가 서렸다.
이미 헨리에 대한 소문은 하룻밤 만에 퍼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는 건방진 신입 장교가 얼마나 크게 박살이 나는지 통쾌하게 구경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말 목검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새끼가 끝까지 혓바닥을……!”
“아!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단지 ‘특임대 소대장’ 자리를 테스트하는 자리이니만큼 테스트도 실전처럼 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드린 말씀입니다.”
헨리가 빙글거리며 여유를 과시했지만 모두가 그 여유를 비난했다.
어차피 불 보듯 뻔한 결과, 어설프게 폼 잡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살로몬 중대장이 말했다.
“두 사람 다 위치로.”
목검을 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진검이 아닌 목검이니만큼 두 사람 다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최선.
오러 유저에게 오러 사용을 허락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이에 헨리는 피식 웃으며 발바닥을 살짝 들어 발 구름을 시전했다.
퉁.
휘오오오!
마법 무장이 헨리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이번에 두른 마법 무장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둘러 본 적이 없는 ‘최대치 마력’의 마법 무장이었다.
“준비.”
마력으로 강화된 육체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꿈틀거렸다.
“시작!”
부웅!
대련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휴고의 팔이 휘둘렸다.
목검에는 푸른색 오러가 맺혀 있었고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헨리의 검에는 마도사의 마력이 가득했다.
서걱!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쳤다.
그러자 휴고의 목검이 깔끔하게 두 동강 나는 경악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