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22화 (22/522)

# 22

전설의 소대장 (1)

이튿날, 교육 장교가 예고했던 대로 성적에 따라 모두 각자 다른 부대를 배정받았다.

물론 헨리는 달랐다.

일대장의 비호를 받는 덕분에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직접 부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로난과 헨리는 짐을 모두 챙긴 뒤 배정받은 부대에서 보내올 마차들을 기다렸다.

로난이 말했다.

“어제 어디 갔었냐? 찾아도 안 보이더니.”

“일대장님이랑 술 마시러.”

“일대장님이라면 그 서열 3위의 이셀란 일대장님?”

“그래.”

“이야……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무슨 소문?”

“네가 일대장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소문 말이야.”

“오해하지 마라. 그냥 수석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관례 같은 거니까.”

“거짓말하고 있네. 정말 술만 마셨냐?”

로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을 종용하자 헨리가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물론 이것도 받았지.”

헨리는 그에게서 받은 선물들 중 사제의 축복을 받은 성검을 꺼내 보였다.

“웬 검?”

“선물로 주신 거야. 성검이래.”

“뭐, 뭐? 서, 성검?”

성검이라는 말에 로난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변했다.

그리고 즉시 검집에서 검을 뽑아 그 영롱한 빛깔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부럽냐?”

“당연히 부럽지! 아니다, 됐다. 남의 것 탐내서 뭐 하겠냐. 나중에 더 좋은 검이 생기겠지.”

“흐흐, 그래그래. 그보다 넌 어느 부대로 배치받았냐?”

“일대대 보병계.”

“오, 보병계면 나쁘지 않네.”

“승진하기엔 딱 좋은 곳이지. 게다가 2급 부대도 아니고 1급 부대로 배정받아서, 사고만 안 치면 금방 중급 장교로 진급할 수 있을 것 같아.”

언뜻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대화였지만 사실, 칼리번 요새에서의 보병계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군 중에 하나였다.

바로 다른 사선들에 비해 항상 마물들과 맞부딪쳐야 하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녀석, 안 그런 척하더니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군.’

보통 뛰어난 성적을 받은 생도들은 보병계 같은 위험한 직군이 아닌 보급계나 행정계를 희망했다.

아무리 출세가 좋다고 한들 목숨보다 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난은 좀 달랐다.

헨리에겐 점잖은 척했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가주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컸다.

그는 애매한 위치가 아닌, 수많은 양자들 중 가장 뛰어난 양자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보급계나 행정계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난은 출세를 위해 교육 장교들에게 강력히 보병계를 부탁했다.

“그러는 너는 어딘데?”

“나도 뭐, 굳이 따지자면 보병계지.”

“어딘데 그래?”

“독립 중대야. 혹시 칼리번의 바늘이라고 들어 봤냐?”

“칼리번의 바늘?”

“어, 그러니까…….”

* * *

지난밤.

결국 막거스의 불타는 위스키를 몽땅 비워 낸 이셀란은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식탁에 쓰러져 잠들었다.

그리고 간신히 정신 줄을 붙잡고 있던 헨리는 명상을 통해 빠르게 취기를 제거했고, 맨정신을 되찾자마자 대기 중이던 병사에게 말했다.

“혹시 티니 님께 지금 좀 만날 수 있냐고 물어봐 줄 수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전하고 오겠습니다.”

“부탁 좀 할 게. 아, 그리고 대장님은 어디로 옮기면 되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냐, 됐어. 척 봐도 무거워 보이는데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지. 방이나 안내해 줘.”

병사 한 명이 티니에게 말을 전달하러 간 사이, 헨리는 이셀란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여기야?”

“예, 이곳이 침실입니다.”

“부엌은 좀 더러울 테니 응접실에 다과를 좀 준비해 줘. 아, 그리고 식탁 옆에 있는 조직도도 옮겨 주고.”

“예, 알겠습니다.”

근무지에 대한 선택권을 받았을 때, 헨리는 그제야 왜 그녀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참 친절하단 말이야.’

헨리는 그녀가 왜 자신에게 이토록 친절하게 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도움을 준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헨리는 티니를 기다리는 동안 게시판에 나열된 조직도를 살펴보았다.

‘역시 군단급 요새라 그런지 부대가 많군.’

부대가 많다고 해도 하나같이 모두 정예들만 모인 곳이었다. 이곳은 무려 ‘최악의 사선’이었으니까.

게다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제도의 의무 군역 기간은 최소 1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장기 근무가 가능하긴 했지만 헨리는 이곳에서 의무 기간 이상의 시간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고작해야 1년이다. 1년이면 첫 근무지가 마지막 근무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곳으로 가야만 한다.’

얼마 뒤, 연락을 받은 티니가 관사에 도착했다.

헨리는 티니를 보자마자 곧바로 머리부터 숙여 보였다.

“늦은 시각에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티니 님.”

“아냐. 그래도 꽤 똘똘한데? 간혹 눈치 못 채는 녀석도 있더라고.”

눈치 못 채는 녀석이란 말에 헨리는 그제야 그녀의 친절의 이유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그냥 의례적인 도움이었다.

수석이라면 누군에게나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 같은 것 말이다.

‘그런 거였나.’

꽤 허무한 결말이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했다.

“생각해 둔 부대는 있어?”

“딱히 없습니다만 원하는 조건은 있습니다.”

“한번 말해 봐.”

“활동이 자유롭고 본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을 원합니다. 그리고 즉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보병계이되 독립 중대 같은 곳을 원하는 거네?”

“그렇습니다.”

“원하는 곳이 이렇게나 뚜렷한데 생각해 둔 게 없다고? 겸손한 척하는 거였어?”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후후, 농담이야.”

방긋 웃어 보인 그녀는 이윽고 조직도 몇 군데에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이곳들이 네가 말한 곳들이야. 아, 참! 그리고 독립 중대는 대부분이 특수계야. 너 특수계가 뭔지는 알고 있어?”

“특수 임무를 맡아 처리하는 부대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 그리고 특수계는 대부분이 위험하지. 그래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

헨리의 단호한 태도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헨리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조건을 내밀었는지 얼추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진급이 목적이었군.’

신입 장교가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없었다.

경험이 부족한 신입 장교를 현장에 투입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했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어. 하지만 처음부터 독립 중대는 좀 어려워. 독립 중대 대부분이 상급 부대라 신입 장교가 들어가기엔 좀 무리가 있거든.”

“방법이 없겠습니까?”

“원래라면 힘들겠지. 하지만 너는 일대장님의 비호를 받고 있잖아?”

그녀가 다시 한 번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동그라미 친 곳들 중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로 가자.”

“여긴?”

“일대장님의 직속부대 중 하나인 특수 임무대야.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고 독립 중대이며, 일대장님의 직속이니만큼 본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

‘됐어.’

일대장이라는 배경을 잘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원하는 조건들을 모두 갖춘 곳이었다.

헨리는 티니를 불러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저기 마차 온다.”

헨리와 로난이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을 때쯤, 때마침 로난의 부대 마차가 교육대에 도착했다.

로난이 짐 보따리를 짊어진 뒤, 헨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간다.”

“로난.”

“응?”

“죽지 마라.”

“재수 없는 놈. 내가 어디 죽으러 가냐?”

“넌 나보다 약하잖아.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1년만 잘 버티면 내가 좋은 선물 하나 해 줄게.”

“웃기시네, 너나 잘해라.”

짧지만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로난이 떠나고 얼마 뒤, 마지막으로 헨리를 데리러 온 특임대의 마차가 도착했다.

조그마한 마차였다.

마차에서 내린 이는 인상이 날카로운 사내였는데, 무엇이 그리 불만스러운지 인상을 찌푸린 채 헨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너냐?”

“예, 제가 헨리 모리스입니다.”

“타라.”

“예.”

인사 한 줄 없는 쌀쌀맞은 태도였다.

이윽고 마차가 출발했으나 마차가 출발한 직후부터 부대에 도착하기까지 동행 장교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렇게 노골적일 줄은 몰랐는데?’

칼리번의 바늘.

정식 명칭은 일대장 직속 특수 임무 중대.

대대 이름 앞에 붙은 숫자가 적을수록 대대의 힘이 컸고 거기서 또 독립 중대나 직속부대일수록 그 힘은 곱절로 커졌다.

예컨대 일대대의 특임대인 니들 중대는 그중에서도 힘이 가장 막강한 부대라는 말.

헨리는 티니가 해 준 말들을 떠올렸다.

-때마침 특임대의 소대장 자리가 비어 있긴 해. 하지만 이곳은 신입 장교를 받지 않는 곳이 보통이야. 대부분이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거든.

그런 곳에 신입 장교인 헨리가 덜컥 부임했으니 자신을 충분히 싫어할 만도 했다.

군대 안에서 퍼지는 소문은 빠른 법이니까.

하지만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인지를 해 둔 상황.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다.

이윽고 마차가 멈추었고 마차에서 내린 남자가 헨리에게 말했다.

“따라와.”

쌀쌀맞은 태도.

그러나 헨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윽고 행정실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중대장이 자리에 앉아 헨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대장이 턱짓으로 헨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야?”

“그렇습니다.”

“수고했어. 나가서 일 봐.”

“수고하십시오.”

동행 장교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행정실에는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이름이 살로몬인가 보군.’

자리에 놓인 명패에는 ‘살로몬’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름은?”

“헨리 모리스입니다.”

“그래. 서류를 보니까 교육대 역대급 수석 생도라면서?”

“아닙니다.”

“아니야? 그럼 교육 장교들이 거짓 보고서라도 작성했다는 거야?”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뛰어난 인재가 아닙니다.”

“뛰어나지도 않은데 일대장님께서 너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그럼 여긴 동네 놀이턴가?”

“아닙니다.”

말꼬리를 잡는 걸 보니 중대장 또한 헨리에게 불만이 많은 듯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관인 일대장이 직접 명령한 것인데.

중대장은 한동안 지루한 말꼬리 잡기 끝에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어 보였다.

“잘 들어. 대장님께서 무슨 이유로 너를 이곳에 보내신 건지는 몰라도 우리는 아직 너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 알아들어?”

“예.”

“그러니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할 거야. 그러지 않으면 언제든지 쫓아내 버릴 테니까.”

살벌한 경고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잘만 하면 된다는 뜻.

살벌한 경고가 끝난 뒤 중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헨리에게 말했다.

“따라와. 관사를 내주지.”

헨리에 대한 혐오가 잔뜩 느껴졌지만 헨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윽고 그는 헨리를 데리고 부대 뒤편에 마련된 오래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우리 니들 중대에는 신입 장교에게 오래된 집을 수리해서 쓰게 하는 전통이 있다. 설마 불평하진 않겠지?”

“아닙니다.”

“청소 도구와 수리 도구들은 저 앞에 있으니 대충 갖다 쓰도록 하고, 일과 시간이 끝날 때까지 정비를 끝내 놓도록.”

그가 가리킨 곳에는 낡은 마대 자루와 털이 듬성듬성 빠진 빗자루, 그리고 시커먼 때가 잔뜩 묻은 걸레 몇 조각이 전부였다.

“할 수 있겠지?”

“예.”

“그럼 수고.”

이윽고 그가 자리에서 벗어났다.

보일 듯 말 듯 한 조소와 함께.

중대장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 헨리는 배정받은 관사의 문을 열어 보았다.

끼이익.

“이런…….”

관사인지 창고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몹시 더러운 곳이었다.

게다가 보통의 관사보다 훨씬 커다란 것이, 하루 종일 청소해도 제시간 안에 다 못 끝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평범한 놈이었다면 말이지.”

척 보기에도 유치한 텃세였다.

감상을 마친 헨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클린.”

주문과 함께 헨리의 손안에서 눈부신 광채가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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