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8화 (18/522)

# 18

교육대 (1)

“여깁니다.”

이른 아침, 헨리는 이셀란의 마차를 타고 후방에 설치된 장교 교육대로 이동했다.

숙취는 없었다.

취기는 마력으로 분해시켰고, 밤새도록 술 시중을 돕느라 잠을 거의 못 잤지만 괜찮았다. 한동안 이셀란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셀란은 숙취 때문인지 여전히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그를 대신해서 티니가 동행 장교로 나섰다.

그녀가 말했다.

“잠을 못 주무셔서 어떡해요?”

아직은 훈련 생도가 아니었으므로 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티니는 예의를 지켜 가며 헨리의 안위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티니 경이야말로 고생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저야 뭐, 늘 그렇죠.”

“힘내십시오.”

“휘유.”

하룻밤이었지만 헨리는 이셀란의 수행 기사가 얼마나 극한 직업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이제 겨우 두어 번 본 사이였지만 막역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아, 참! 헨리 님, 이거 받으세요.”

그녀가 한 장의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이게 뭐죠?”

“헨리 님께선 교육 기간 중간에 입소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교육 내용들을 좀 정리해 봤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연 대장급 수행 기사는 다르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였다.

헨리는 그녀가 정리해 준 교육지를 한번 쭉 훑어보았다.

“이제 됐습니다.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예?”

“방금 다 외웠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좀 좋거든요.”

티니는 순간, 이 남자가 지금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핵심 내용만 간추린 교육지라지만 그래도 한 번만 보고 전부 암기하기에는 몹시 많은 양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2주 차에 접어들었다면 제식이나 배우고 있겠지. 첫 주에는 장교의 기본 덕목과 소양 교육이나 했을 테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장교의 교육과정이라고 해 봤자 보통의 아카데미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헨리는 이곳의 그 누구보다 더 오랜 시간을 전쟁터에서 지낸 몸이었다.

이까짓 교육지를 보지 않아도 웬만한 장교들보다는 기본 소양이 더 철저한 사람이 헨리였다.

“못 미더우시면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냥 좀 놀랐을 뿐입니다.”

태연한 표정의 헨리를 보며 티니는 그의 암기력이 진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이 사람, 천재가 분명하다.’

그녀의 선구안은 정확했다.

그렇잖아도 마탑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두뇌라고 평가받던 사람이 다시 한 번 군역을 지내는 것이니만큼 모든 것이 완벽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도착했습니다.”

일행은 교육대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티니에게 미리 연락을 받은 교육대 장교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고생 많으십니다.”

교육대 장교가 티니에게 간단한 묵례를 해 보였다.

티니는 인계에 필요한 서류들을 그에게 넘겨준 후 헨리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예.”

헨리 또한 간단한 묵례로 인사에 화답했다.

이윽고 교육대 장교가 헨리를 데리고 행정실로 이동했다.

처음 요새에 왔을 때 겪었던 것과 비슷한 절차를 위해서였다. 서류를 검토하고 정보를 확인하는 것.

교육대 장교가 말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호칭을 ‘장교님’으로 통일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 너는 훈련 생도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동기들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반말을 사용해선 안 된다.”

“예, 알겠습니다.”

“건물의 3층 복도 끝으로 가면 305호실이 있을 거다. 2인 1실이니 교육 기간 동안 그곳에서 지내도록 하고, 현재는 오전 수업을 진행 중이니 오후 수업 때부터 합류할 수 있도록 한다.”

“예, 알겠습니다.”

“혹시 가지고 온 물품들 중에 보고해야 할 것이 있나?”

“물건은 없지만 말을 한 필 데리고 왔습니다. 제 전용 말입니다.”

“알고 있다. 말은 대장님 관사에 있는 마구간에 둘 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보고 사항이 없으면 방에 가서 짐을 풀고 다시 내려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본격적인 군 생활의 시작이었다.

헨리는 장교가 알려 준 대로 305호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대와 관물대 그리고 책상이 2개씩 있는 소박한 구조의 방이었다.

헨리는 비어 있는 침대부터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한들, 수컷 냄새 풀풀 나는 남자 놈들이 사용했을 침대였다.

“클린.”

그 때문에 헨리는 개인 가구들을 말끔히 소독한 뒤에야 짐을 풀었다.

그리고 헨리가 다시 행정실로 내려왔을 때, 장교는 헨리가 교육대에서 사용할 보급품들을 넘겨주었다.

“작성한 사이즈대로 준비했다. 혹시라도 다른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즉각 말하도록 하고, 혹시 롱 소드 이외의 무기를 사용한다면 그것 또한 즉각 보고하도록 한다. 물론 기본적인 검술 교육은 받아야겠지만.”

보급된 물품들 중에는 철검과 같은 무게로 제작된 목검이 있었다.

“롱 소드면 충분합니다.”

“식사는 했나?”

“예, 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밤새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입맛이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 생도는 일과가 끝난 후 조금씩 시간을 할애하여 앞서 받지 못한 교육들을 받도록 하겠다. 비록 교육 기간 중에 입소했지만 편의는 있을 수 없다.”

“장교님, 질문 있습니다.”

“말해라.”

“1주 차 때 못 받은 교육이 혹시 소양 교육입니까?”

“그렇다. 우리 교육대에서는 한 주가 끝날 때마다 그 주에 받았던 교육들을 토대로 시험을 본다. 생도 또한 교육을 충분히 이수한 뒤 2주 차 주말에 시험을 보도록 한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생도는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도 지금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훈련 생도, 건방진 발언은 하지 마라. 어떻게 교육도 안 받고 시험을 본다는 건가? 교육대가 우습나?”

“아닙니다. 대장님께 교육을 좀 받고 온 터라 혹시 지금 시험에 통과하면 추가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는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오만한 발언이긴 했지만 대장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다는 말에 장교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시험을 허락했다.

“좋다. 하지만 지금 생도의 발언은 교육대의 교육과정을 가볍게 여기는 발언이므로 만약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 그에 따른 합당한 벌을 내리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장교님.”

장교는 괘씸하게 생각했다.

서류에 따르면 겨우 어제 요새에 도착한 주제에 고작 하룻밤 교육받은 것으로 잘난 척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특별 시험지로 주지.’

티니의 연락에 따르면 헨리는 일대장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호를 받고 있다 해도 룰은 룰이었다.

장교는 이 룰을 이용해 헨리의 오만한 태도를 바로잡으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 * *

시험은 행정실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치러졌다.

문제는 총 1백 문제, 커트라인은 80점이었다.

비교적 빡빡해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단 한 명의 낙제생도 나오지 않은 이유는 문제가 비교적 쉬운 난이도로 출제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초보 장교용 입문 시험지.

그러나 교육 장교는 중급 간부들이나 사용한다는 중급 지휘관용 시험지를 헨리에게 배부해 주었다.

‘어디 한번 볼까?’

소양 시험에는 다양한 것들이 나온다. 이를 테면 장교의 덕목이라든가 위급 상황 발생 시에 장교가 해야 할 행동, 칼리번 요새의 역사, 마물의 숲의 역사 등등 지휘관이라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최상급 지휘관으로 지낸 헨리에겐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시험이 시작된 직후, 헨리는 펜을 들었다. 그런 다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듯이 문제를 읽자마자 곧바로 답들을 체크해 나갔다.

‘흐음, 요즘은 교육대에서도 꽤나 양질의 문제들을 내는구만.’

헨리의 눈에 시험지는 분명히 중급 지휘관 전용이었다. 예를 들어 소대장이나 중대장 같은 직책들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이도가 비교적 어려웠음에도 헨리는 문제의 난이도를 확인하자마자 ‘그래도 군내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구나!’라고 감탄할 뿐이었다.

사각사각.

펜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뒤 헨리가 1백 개 문항을 모두 풀었을 때였다.

“장교님.”

“무슨 일인가?”

“다 풀었습니다.”

“뭐?”

시험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장교는 책상 옆에 올려 둔 모래시계를 한번 쳐다본 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다 풀었다고?”

“그렇습니다.”

‘아직 모래가 절반도 안 떨어졌는데?’

교육 장교는 헨리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입문용 시험지도 그 방대한 문제의 양 때문에 시간이 빠듯한 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장교님.”

“으, 응?”

“41번 문제와 73번 문제, 그리고 93번 문제에 오타가 발견되어 수정했습니다.”

“뭐, 뭐라고?”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사실 이번에 헨리에게 내준 시험지는 이번 연도에 치러질 중급 지휘관용 시험지였다. 말인즉슨 아직 자세한 수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뜻.

헨리는 시험을 빨리 치른 것뿐만이 아니라 오탈자까지 잡아낸 것이었다.

“그, 그래. 아주 잘했다. 그럼 채점을 시작하도록 하지.”

아직은 몰랐다. 아직 채점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결과는 채점을 해 보아야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채점한 문제가 늘어날수록 교육 장교의 입은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 만점이라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두 번이나 재검토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무려 신입이 중급 지휘관용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 됐습니까?”

“추, 축하한다. 만점이다.”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문제가 쉬웠던 것 같습니다.”

“문제가 쉬웠다고?”

“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런 미친.’

교육직을 맡고 있는 교육 장교 또한 만점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인 시험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험을 보고 신입이 문제가 쉬웠다고 한다.

교육 장교는 그제야 왜 헨리가 일대장의 비호를 받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건드리면 주옥 된다!’

교육 장교는 그제야 주제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이 생도는 감히 자신이 심술을 부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란 걸 말이다.

채점 이후, 주제 파악을 마친 교육 장교가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웃음을 보이며 헨리에게 말했다.

“아주 잘해 주었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장교님.”

“오후부터는 무예 수업이 있을 예정이니 그때까지는 방에서 편히 쉬고 있어도 좋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행정실로 오도록.”

“예.”

교육 장교의 태도가 부쩍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헨리는 알지 못했다, 그가 훈련 생도들 사이에선 몹시 차갑기로 소문난, 얼음 장교라는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헨리가 막 행정실을 벗어나려던 찰나였다.

“헨리 생도?”

“예, 장교님?”

“이거 가져가서 먹어라.”

그가 내민 것은 자그마한 꾸러미에 든 쿠키였다.

* * *

“에이 그게 말이 돼?”

“사실이다. 행도 스스로가 대장님께 교육받고 왔으니 이른 시험을 요청했다.”

“그래서 너는 아직 수정도 덜 된 중급 지휘관용 시험지를 줬고?”

“그렇다. 그리고 생도는 거기서 만점을 받았다.”

오전 수업이 끝난 직후, 교육 장교는 수업이 끝난 다른 장교들에게 헨리와 있었던 일을 전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다들 좀처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찍기 실력이 좋은 거 아니야? 중급 지휘관용이면 우리도 만점은 장담 못 하잖아.”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놈 그거 일대장님 빽이라고 했지?”

“맞다. 티니 님이 말씀해 주셨다.”

“그럼 혹시 대장님께서 티니 님의 뒤를 이을 차기 수행 기사로 키우려고 그러시는 게 아닐까?”

“차기 수행 기사?”

“지금 수행 기사가 티니 님이잖아. 근데 아시다시피 티니 님 정도의 경력이면 슬슬 다른 부서 간부 자리 하나 할 때도 됐잖아. 그래서 일부러 유능한 놈 하나를 골라서 수행 기사로 키우시려는 거지.”

“일리가 있다. 대장님의 수행 기사는 몹시 뛰어나야만 하니까.”

“근데 그 자리, 머리만 좋다고 함부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나?”

“그렇다. 티니 님은 검술도 매우 뛰어나셨으니까.”

“오후에 누구 수업이지? 박투랑 검술 수업 있지 않나?”

“산체랑 베릭의 수업이다.”

“그럼 한 번만 더 시험해 볼까?”

“무엇을?”

“헨리라는 녀석, 이론만 빠삭한 행정 기사가 될지 아니면 티니 님처럼 수행 기사가 될지 말이야.”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나?”

“그거 한번 시켜 보자.”

“그거라면…….”

중급 지휘관용 시험의 만점.

그로 인해 헨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육대 최고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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