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5화 (15/522)

# 15

입대 (1)

칼리번 요새의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성문.

이곳은 요새로 입장하기 위한 입구이기도 했지만 마물들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리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망루에서 수상한 사람을 감시하던 병사가 즉시 이 사실을 알렸다.

“누가?”

“어…… 검은색 말 한 필과 신원을 알 수 없는 놈입니다.”

“한 명?”

“예, 그렇습니다.”

“뭐지? 수도에서 보낸 놈인가?”

“깃발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부 준비해.”

보고를 받은 허번트 경비소장은 즉시 궁병들에게 대기를 명했다.

이곳은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구역들 중 하나인 만큼 이 정도 조심성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수상한 방문객이 성문 앞까지 접근했을 때였다.

“거기 스톱.”

목소리를 증폭시켜 주는 나팔에 대고 허번트가 명령했다.

말이 멈춰 섰다.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허번트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신원을 밝혀라.”

허번트의 요구에 로브를 쓴 남자는 품속에서 신분 패를 꺼내 들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있는 힘껏 성문 위로 집어 던졌다.

슈욱!

“어, 어?”

방문객이 던진 신분 패가 허번트를 지나 정확히 망루 안에까지 도달했다. 엄청난 힘이었다.

신분 패를 주워 든 병사는 즉시 망루에서 내려와 허번트에게 신분 패를 내밀었다.

“이, 이걸 여기까지 던졌다고?”

아무리 힘센 남자라 할지라도 지상에서 이곳까지, 그것도 정확히 망루 속으로 신분 패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저 남자는 해냈다.

그 놀라운 완력에 허번트는 서둘러 신분 패를 확인했다.

“준남작?”

신분 패는 준남작을 증명하는 은으로 된 것이었다. 게다가 무공훈장을 상징하는 푸른색 별 모양까지 새겨져 있었다.

명예를 상징하는 푸른 별 덕분에 허번트는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진짜군.”

신분 패를 확인한 허번트는 다시 한 번 나팔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얼마 뒤 성문 바로 옆에 위치한 벽돌들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관계자만 이용할 수 있는, 안에서만 열리는 쪽문이었다.

쪽문이 열린 후 허번트가 경비병 몇 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준남작이시라고요?”

“그렇습니다.”

“예를 갖추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인지라.”

“괜찮습니다. 이것은 저희 가문을 상징하는 가문 패입니다.”

헨리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즉시 가문 패를 내밀어 보였다.

가문 패를 받아 든 허번트가 그것을 확인한 후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성함이 헨리 모리스 씨군요.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허번트입니다. 이곳 칼리번 요새의 입구를 지키는 경비소장이죠.”

“헨리입니다.”

두 사람은 인사치레와 함께 가벼운 악수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 때문에 이곳까지 오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입대를 위해 왔습니다.”

“입대요?”

“예, 노블레스 오블리주 제도 말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면…… 아! 아니 근데 헨리 경께선 준남작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준남작은 제도에 대한 의무자가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맞습니다. 단순한 자원입대입니다.”

“이런, 제가 명예로운 분께 실례를 저질렀군요.”

“괜찮습니다. 이건 지원서와 추천서입니다.”

헨리는 빠른 진행을 위해 가진 서류들을 모두 허번트에게 넘겨주었다.

서류를 받은 허번트가 말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수속 절차를 밟기 위해 작성해 주셔야 할 서류들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참! 말은 저희가 잠시 데리고 있겠습니다.”

허번트가 턱짓으로 제이드를 가리키자 병사들이 즉시 제이드의 고삐를 쥐었다.

푸히히힝!

“어, 어!”

그런데 그때였다.

병사들이 제이드의 고삐를 쥐는 순간, 얌전하던 제이드가 앞발을 들어 올려 병사들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헨리는 그제야 제이드에게 다가가 그를 진정시켰다.

“죄송합니다. 워낙에 까다로운 놈인지라.”

“하하…… 생긴 것답게 한 성깔 하는 모양입니다.”

허번트는 제이드를 눈으로 훑으면서 자그마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기 드문 명마였기 때문이다.

헨리는 제이드에게 얌전히 대기할 것을 명령한 뒤에야 허번트를 따라나섰다.

* * *

도착한 곳은 성문 근처에 마련된 자그마한 행정실이었다.

그곳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행정 기사들 중 허번트는 안경을 쓴 오렌지색 머리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에게 헨리의 신분 패와 서류들을 넘겨주며 헨리를 소개했다.

“퍼밋, 여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제도를 통해 자원입대하러 오신 헨리 경이라고 하네.”

“반갑습니다. 퍼밋입니다.”

퍼밋은 서류를 받아 든 뒤 헨리와 악수를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퍼밋이 안내해 줄 겁니다. 그럼.”

임무를 마친 허번트는 헨리를 인계한 뒤 자신의 일터로 복귀했다.

서류를 받아 든 퍼밋이 말했다.

“칼리번 요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먼저 의무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국을 위해 봉사해 주신 것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퍼밋은 꽤나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그는 감사 인사를 올린 뒤 몇 가지 서류를 헨리에게 내밀었다.

헨리가 그것을 작성하는 동안 퍼밋은 추천서와 지원서를 개봉해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뒤의 일이었다.

“어…… 저기, 헨리 경?”

“예?”

“여기 추천서에 적힌 이름 말인데요. 혹시 이셀란이라는 이름이 저희 요새의 이셀란 일대장님의 그 이셀란입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셀란이라는 분이 저희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아버님의 성함이?”

“한스 모리스입니다.”

“한스 모리스, 한스 모리스…… 잠시만요.”

퍼밋은 한스의 이름을 전해 듣고는 한동안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뒤 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어?”

“무슨 일이시죠?”

“자, 잠시만요.”

퍼밋은 놀란 눈동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추천서를 들고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더니 한참이 지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알아본 결과, 추천서에 적힌 이름과 저희 일대장님은 동일한 분이신 걸로 판명이 났습니다.”

“예?”

“그리고 방금 이셀란 일대장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헨리 경의 신분은 자신이 보증할 테니 깍듯이 모시라고. 그리고 곧 이곳으로 마차 한 대를 보낼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라고요.”

‘마차?’

그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헨리 경을 모시러 왔습니다.”

“마침 도착했네요. 헨리 경, 서류는 저에게 맡기시고 저분을 따라가시겠습니까?”

퍼밋의 말대로 바깥에는 정말 마차 한 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는 헨리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려 보인 뒤 헨리를 태우고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한스는 단순히 높은 지휘관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일대장이라고 한다면 사령관과 부사령관 다음으로 높은 직책이 아니었던가?

‘느낌이 좋아.’

군대만큼 배경이 중요한 곳도 없다.

헨리는 뜻밖의 횡재에 기분이 좋아졌다.

* * *

“헨리 경,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춰 선 직후, 마부의 역할을 하던 병사는 재빨리 마차에서 내려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극진한 대접이었다.

‘오호.’

개인 집무실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큰 건물이었다.

건물의 크기는 그 사람의 권위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헨리는 자신의 배경이 되어 줄 사람이 이만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점점 더 흡족해졌다.

이후, 병사는 헨리를 데리고 1층의 데스크를 지나 2층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

“들어오게.”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곧 널찍한 크기의 집무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병사는 집무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큰 목소리로 보고했다.

“대장님! 헨리 경을 모셔 왔습니다!”

“어, 수고했다. 이만 가 봐.”

“옙!”

병사가 나간 직후였다.

“어서 오게. 한스의 아들이라고? 이리 와서 앉지.”

“예, 감사합니다.”

넓은 집무실에는 짐승의 머리가 곳곳에 박제되어 있었다.

또한 한편에는 이셀란의 보좌관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기사가 책상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

헨리는 그의 권유대로 티 테이블 앞에 앉았다.

‘역시 기억에는 없는 얼굴이야.’

그를 본 짧은 소감이었다.

이곳의 일대장쯤 되는 인물이면 혹시 이름은 몰라도 얼굴쯤은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셀란의 얼굴은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그 한스가 벌써 자식을 낳아 이렇게 키웠을 줄 누가 알았겠나.”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큰 왕래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연관성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니까.

그가 말했다.

“그나저나 신기한 친구로군. 남들은 다 빼려고 안달인 군역을, 그것도 하필 왜 위험하기로 소문난 마물의 숲을 지원했을까?”

그렇게 말하는 이셀란은 거대한 덩치에, 은빛이 감도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군데군데 새치가 보였지만 그것마저 연륜으로 보일 만큼 카리스마가 넘치는 얼굴이었다.

예컨대 보통의 신병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지려 버렸을지도 모를 인상이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인상이었다. 카리스마라면 전생의 헨리가 더욱 위압적이었다.

그의 질문에 헨리가 짧게 대답했다.

“마물 때문입니다.”

“뭐?”

“마물만큼 위험한 존재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다 보면 오러를 빨리 터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곳에 지원했습니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동시에 헨리가 이곳에 온 수많은 이유들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크하하하, 솔직해서 좋구만! 한스 그놈이 그렇게 대답하라고 시키던?”

“아버지는 제가 이곳에 가려는 것을 말리셨습니다.”

대답을 들은 직후, 이셀란은 진심으로 크게 웃어 보였다.

“그렇겠지, 그놈은 안전이 가장 중요한 놈이니까. 티니, 서류 좀 그만 보고 물이나 두 잔 내어 와.”

헨리의 대답에서 어느 정도 만족을 얻었는지 이셀란은 그제야 마실 것을 대접했다.

“근데 여기는 패기만 넘친다고 해서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그래? 그 말 장담할 수 있나?”

“예.”

“그럼 자세 한번 잡아 봐.”

집무실은 넓고 천장이 높았다. 이셀란이 헨리를 시험해도 좋을 만큼 말이다.

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널찍한 곳으로 다가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것은 이셀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게 검이라고?’

검을 뽑으라고 했을 때 어느 정도 예감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뽑아 든 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이었다.

투핸디드 빅 소드.

기존의 투핸디드 소드보다도 검날이 훨씬 넓은 거대한 빅 소드였다.

이셀란은 그것을 한손 검처럼 사용했다.

“제국 검술은 누구나 연마할 수 있는 것이지.”

쿵- 쿵-.

검을 뽑아 든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났다.

“근데 알맹이는 딱 노력한 만큼 차이가 난단 말이야.”

그는 뽑아 든 검을 지휘봉처럼 휘둘러 헨리를 가리켰다.

“이곳은 그런 곳이야. 알맹이가 실하지 못하면 금방 죽는 곳. 딱 한 번이다. 딱 한 번만 휘두를 테니 재주껏 막아 보거라.”

이윽고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거대한 바람 소리와 함께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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