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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클 마법사의 환생-14화 (14/522)

# 14

출가 (2)

저택으로 돌아온 베른은 헨리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한스에게 질문을 건넸다.

“영주님, 정말 도련님께 마물의 숲을 허락하셨습니까?”

점잖게 물음을 건넸지만 급하게 걸어온 탓에 베른의 목소리에는 거친 숨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이에 한스가 대수롭잖다는 듯이 대꾸했다.

“했었지. 하지만 자네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는데?”

“그 조건, 방금 전에 달성하고 오는 길입니다.”

“뭣?”

그 순간, 틈을 놓치지 않고 헨리가 베른을 대신하여 대답했다.

그러자 한스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뭐, 뭣? 그게 사실인가? 베른, 자네가 직접 대답해 보게!”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베른의 대답에 이번에는 한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무려 베른이었다. 자신과 함께 전쟁을 겪었던 베른이기에 그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한스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이제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아들이 베른을 이겼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복잡한 심경의 두 사람에게 헨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두 분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마물의 숲으로 입대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영주님, 결코 안 됩니다. 아무리 약속이라고는 하나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렇긴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한스는 베른과 헨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극명하게 상반되는 표정이었다.

“아버지.”

“그, 그래. 말해 보거라.”

“자격을 증명한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저에게는 더 큰 세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세상이 꼭 마물의 숲일 필요는 없지 않으냐? 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마물의 숲은…….”

“잘 알고 있습니다. 대륙의 끝이라고도 불리며, 마계로 통하는 문이 열린 곳이지 않습니까?”

마물의 숲.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한 그곳은, 과거 수많은 마왕이 나타난 제국 최고 위험 구역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헨리는 그곳에서 골든을 도와 마왕을 처치한 경험이 있었다.

“알면서도 굳이 그런 곳을 가겠다는 것이냐? 우리가 아무리 준남작에 불과하다지만 너는 가문의 적자다. 그런 위험한 곳에 너를 보낼 순 없다.”

한스의 단호한 태도에 베른은 한시름 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고작 그것이 이유였습니까?”

“뭣?”

“고작 그것이 이유라면 저는 적자이기를 포기하겠습니다. 가문에서조차 아무런 힘이 없는 제가 훗날 가문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그런 뜻이 아니지 않으냐!”

“저는 이미 뜻을 굳혔습니다. 내일 아침, 바로 영지를 떠날 터이니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겠군요. 그럼.”

그다지 설득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헨리는 가문의 적자 같은 알량한 감투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찮은 놈들.’

헨리는 짧은 묵례를 마친 후 방을 벗어났다.

당황한 한스와 베른을 뒤로하고서.

* * *

헨리의 파격적인 발언 이후, 저택의 수많은 이들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헨리는 남들의 수군거림 따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헨리는 여느 때와 같이 일과를 마친 후 저녁 식사를 생략하고 곧바로 헥터의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러다 새벽이 깊어 갈 때쯤, 헨리는 그제야 수련을 중지했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휴. 오늘 치 할당량은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군.”

헨리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친 뒤 클린을 사용하려던 직전이었다.

“처음 보는 검법이구나.”

“……아버지?”

모두가 잠든 새벽이라 아무도 없을 줄로만 알았던 단련장에 영주, 한스 모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얼른 예를 갖추었다.

“거두어라, 둘밖에 없는데 예는 무슨. 그나저나 처음 보는 검법이던데 대체 무엇이냐? 듣기로는 네가 직접 창시한 것이라고 하던데.”

“그냥 제국 검술을 제 입맛대로 개량한 것뿐입니다.”

두 가지 검술을 익히다 한 가지 버릇으로 섞이게 되었으니 아주 거짓말은 아닌 셈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를 잘못 알고 있었구나.”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시치미 떼기는. 케빈 그놈을 두들겨 팰 때부터 진작 알아봤거늘. 그래, 그동안 힘을 숨긴 이유가 무엇이냐?”

“숨긴 적은 없습니다.”

“그럼 내가 둔한 것이겠구나.”

“아닙니다. 딱히 드러내지 않았으니까요.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칭찬이나 하자고 이 새벽에 자신을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헨리는 그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지 궁금했다.

“유약하던 녀석이 많이 어른스러워졌구나. 그래, 본론부터 얘기하자면, 네 뜻을 존중키로 했다.”

“그 말씀은?”

“마물의 숲으로 떠나도 좋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헨리는 감동한 척, 허리를 굽혀 보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밤새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네 말이 맞다. 나 또한 전쟁 무공으로 준남작이 된 몸. 하지만 이까짓 껍데기뿐인 작위가 무슨 소용이겠느냐. 그러니 너라도 이곳을 벗어나 네 뜻을 한번 펼쳐 보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서 말인데, 이것을 너에게 주려고 한다.”

“이건……?”

그의 품에서 두 장의 편지가 나왔다. 바로 지원서와 추천서였다.

“과거에 인연을 맺은 사람이 현재 마물의 숲에 주둔 중인 군대, 칼리번 요새에서 꽤 높은 지휘관으로 지내고 있다 들었다. 이건 그 사람에게 줄 추천서와 입대를 위한 지원서다.”

“혹시 그분의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셀란이라고 한다. 처음 내가 소년병으로 징집됐을 당시 소대장을 맡고 있던 인물이었다.”

칼리번 요새의 이셀란. 전생의 기억 속에는 없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닌가 보군.’

헨리가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고 한들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을 순 없었다.

편지를 건네받은 헨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절대 아버지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래. 너는 똑똑한 아이이니 분명히 잘해 내리라고 믿는다.”

이어서 한스는 준남작을 뜻하는 신분 패 등 출가에 필요한 물건들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정말 내일 떠날 생각이었느냐?”

“예.”

“어쩔 수 없구나.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었는데 당장 내일 떠난다고 하니 술은 다음에 마시도록 하자꾸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끝으로 한스는 단련장을 벗어났다.

‘귀여운 녀석.’

헨리는 건네받은 물건들을 보며 한스의 부성애를 칭찬했다.

그래도 아주 눈치가 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추천서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물건을 챙긴 헨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향했다.

* * *

챙길 물건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입대를 하게 되면 웬만한 물건들은 모두 군대에서 지원해 줄 테니까.

헨리는 긴 여정에 필요한 물품으로 자신의 말인 제이드와 약간의 경비를 요구했다.

“정말로 말 한 필이면 충분하겠느냐?”

“충분합니다. 괜히 마부나 마차까지 대동했다간 나중에 회수만 힘들어질 뿐입니다.”

모두가 헨리의 단출한 요구에 어이없어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마물의 숲은 무려 대륙의 서쪽 끝자락에 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대륙의 끝과 끝인데…….”

그들의 걱정은 사실 매우 타당했다.

이곳 모리스 영지가 대륙 동쪽 끝자락에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매우 어리석은 준비가 분명했다.

‘괜히 마차니 뭐니 있어 봤자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헨리가 보통의 검사였다면 무모한 준비가 맞았다.

하지만 헨리는 무려 한 번의 각성과 마도사의 힘을 손에 넣은 대륙 최초의 마검사였다.

“끄응,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힘든 여정이 될 것이다. 부디 몸조심하거라.”

“도착하면 편지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끝났다.

저택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웅을 나왔고, 개중에는 코홀과 베른 또한 섞여 있었다.

헨리는 잠시나마 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곳도 이제 안녕이군.’

술사에게는 고향이겠지만 헨리에게는 고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먼 길을 떠나는 여정임에도 콧잔등이 시큰거리지는 않았다.

헨리는 고삐를 바로 쥐었고, 기합 소리와 함께 제이드를 출발시켰다.

“가자!”

히히히힝!

명령을 받은 제이드가 힘차게 울부짖었다. 전보다 훨씬 굵고 위압적인 울음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전보다 더욱 성장한 제이드를 보며 헨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직후, 제이드에게 반쪽짜리 명마 개조술이 아닌 진짜 비술을 사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그닥! 다그닥!

털빛이 검게 변한 제이드가 힘차게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헤이스트!’

헨리는 미친 듯이 질주하는 제이드에게 속도를 향상시키는 주문을 걸었다.

흡사 질풍과도 같은 속도였다.

그러나 헨리는 고급 마차를 탄 것처럼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제이드 위에 올려진 안장에 편안한 승마감을 위한 마법 처리를 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헨리를 태운 제이드는 한참을 내달렸다.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달려야 했으므로 아무리 짧게 잡는다 해도 한 달은 족히 걸릴 거리였건만, 희대의 명마가 되어 버린 제이드는 산이나 들, 심지어 강조차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질주에만 몰두했다.

‘일주일이면 도착하겠군.’

전설적인 기수가 와도 이 정도 속도는 못 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초월된 경지에 이르고 난 후에는 공간 이동 마법만 사용해 온 탓인지 어지간한 이동 수단은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눈치 보지 않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이유였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속도감 덕분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해가 지고 달이 솟았다.

그러나 헨리의 질주는 멈출 줄을 몰랐다.

다시 한참을 달리던 끝에 드디어 헨리가 말을 멈춰 세웠다.

‘이쯤이 좋겠군.’

몇 개의 산을 지나 어느 이름 모를 산 중턱에서 헨리는 캠핑을 준비하기로 했다.

물론 침낭이나 조리 도구 같은 것은 챙기지 않았다. 대신 헨리가 준비한 것은 이것이었다.

“스톤 하우스.”

쿠구구구!

주문을 외우자 집채만 한 동굴 하나가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그 안에는 침대만 한 크기의 평평한 암석 한 덩이가 놓여 있었다.

“라이트.”

주위가 밝아졌다.

돌 앞에 선 헨리는 차례대로 그것을 청소하고 푹신하게 만든 뒤 따뜻한 온돌로 탈바꿈시켰다.

“클린, 소프트 스톤, 웜.”

훌륭한 침대 하나가 만들어진 셈이었다.

‘쯧, 6서클만 됐어도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건데.’

전생이었다면 이 모든 과정들을 손짓 한 번에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정이 어떻든 캠프 하나가 마련된 것은 사실이었다.

마법사들은 이것을 ‘마도사의 캠프’라고 불렀다.

훌륭한 캠프였다.

수면에 방해되는 모닥불을 피울 필요도 없었고, 동굴이 외풍을 막아 주었다. 또한 푹신한 잠자리까지 마련되었으니 그야말로 자연 친화적인 캠핑이었다.

“제이드.”

푸르릉.

부름을 받은 제이드가 헨리에게로 다가왔다.

“알아서 밥 챙겨 먹고 푹 쉬거라.”

푸르릉!

완벽한 개조술 덕분에 이제는 사람의 말을 완벽하게 알아듣는 경지가 된 제이드였다.

이후, 헨리가 잠자리에 들자 온종일 허기를 참았던 제이드의 무자비한 사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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