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11화 (11/522)

# 11

검왕의 재래 (2)

반인반수, 1미터가 채 안 되는 크기.

소환된 스칼은 인간의 몸을 하고서 두꺼비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연계가 아닌 이계에 소속된 정령으로, 마탑의 표기법을 따르자면 ‘특수과’에 속하는 특수 정령이었다.

“오랜만이군.”

헨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스칼이 감은 눈을 부릅뜨며 헨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오랜만? 언제 봤다고 알은체야?

퉁명스러운 대꾸였다.

외모가 바뀌었으니 저런 태도를 취하는 것도 당연지사.

헨리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술식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는데 혹시 보지 못했나?”

-그래, 맞아! 어떤 놈이 감히 그 이름을 사용하는지 낯짝이 궁금해서 나온 거였지! 너는 누군데 감히 그 이름을 사용하는 거지?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스칼은 더욱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법진의 끝에 술자의 이름으로 헨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헨리가 말했다.

“크크, 항상 새침한 척하더니 감히 그 이름이라고 칭하다니, 아닌 척하면서도 나를 참 좋아했던 모양이군.”

-뭐, 뭐야?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네놈!

“날세. 마탑주, 헨리 모리스.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네가 아는 그 헨리 모리스가 맞아.”

-뭐, 뭐라고? 그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웬드라고라 성체.”

-뭐?

“웬드라고라 성체와 벼락 맞은 나무를 교환하지 않았던가? 설마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 그걸 어떻게?

“그뿐인 줄 아나? 팬텀라이거의 송곳니와 운요의 피리도 교환했었지.”

이후에도 쭉, 헨리는 전생에서 스칼과 교환했던 거래 내역들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의 거래 내역이 추가적으로 공개됐을 때쯤, 스칼은 두꺼비 특유의 커다란 입을 쫙 벌리며 놀라움을 표했다.

-어, 어떻게? 하지만 그 녀석은 이미 죽었는데? 너 이 자식! 네가 진짜 그 녀석이라면 마력패를 꺼내 보여라! 그 녀석의 마력패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이었으니까!

마력패.

마법사들의 마력과 개성은 지문처럼 모두 다 다른 특징들을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마력패’라는 자기 증명 마법을 통해 고유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헨리는 스칼의 요구에 피식 웃음을 지어 보이며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그런 다음 주먹을 쥔 후 천천히 손가락을 펴 보였다.

화르륵.

천천히 손바닥을 펼쳐 보이자 손안에서 푸른색 불꽃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 푸른색 불꽃 안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헨리의 마력패, ‘드래곤’이 있었다.

-드, 드래곤!

식물과 짐승의 형상을 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역사상 그 누구도 드래곤을 마력패로 가진 사람은 없었다.

딱 한 명, 헨리를 제외하고 말이다.

헨리의 푸른 드래곤을 확인한 스칼이 그제야 호들갑을 떨며 헨리에게 말했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자, 자네!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5서클이라니? 그리고 그 꼬락서니는 뭔가, 대체?

“사연이 좀 길어. 아무튼 다시 보게 되어 반갑군.”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언데드로 부활한 녀석은 봤어도 이런 식으로 환생한 인간이라니! 자네는 어떻게 죽어서도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가?

“놀라게 만들려고 부활한 것은 아니네만…… 아무튼, 인사나 하려고 자네를 부른 건 아니네.”

-아차차, 너무 반가운 나머지 추태를 보였구만. 그래! 부활한 나의 오랜 친구이자 손님이여, 원하는 것을 말해 보게.

늙은 두꺼비 스칼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여느 때처럼 자신의 본분을 이행했다.

교환의 정령, 스칼.

그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과 욕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등가교환의 법칙’을 바탕으로 하는 정령이었다.

사실 스칼을 정령이라고 정의한 것 또한 마탑이었다.

이전까지는 악마나 신쯤으로 불리던 녀석이었으니까.

게다가 최소 5서클은 되어야만 부를 수 있을 만큼 까다로운 놈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스칼의 능력은 월등했다.

그는 인간계를 훔쳐보는 이계의 존재이니만큼 인간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헨리가 말했다.

“혹시 검왕 헥터 마이어를 기억하나?”

-당연히 기억하고말고! 그 골든을 유일하게 무릎 꿇린 사내이지 않은가?

“알고 있다니 얘기가 편하겠어. 아무튼 지금 그의 유품이 필요한데, 구해다 줄 수 있겠나?”

-유품? 이상한 것을 요구하는군. 그의 제사라도 지내 줄 참인가?

“비슷하다고 해 두지. 아무튼 구해 줄 수 있겠지?”

-나 스칼, 교환을 위해 태어난 놈인데 이 세상에서 구하지 못할 것은 없네. 하지만 지금 자네의 행색을 보아하니 나를 만족시켜 주지는 못할 것 같은데?

스칼은 거래의 대가를 요구하되 솔직하게 헨리의 행색을 평가했다.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호오, 뾰족한 수가 있는가? 나는 오랜만에 만났다고 해서 봐주거나 하지 않는데?

스칼은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검왕의 흔적이 얼마나 진귀한 것인지에 대해 열띤 설명을 늘어놓았다.

‘후려치는 건 여전하구만.’

하지만 헨리는 알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등가교환을 원칙으로 하는 정령이라지만 그를 태어나게 해 준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욕심이라는 것을.

따라서 저것은 값을 부풀리려는 호객 행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대가야 자네의 흥미를 자극할 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역시 잘 알고 있구만. 그럼 어디 한번 들어나 볼까? 어떤 패를 가지고 있길래 이리도 자신만만한지 말이야.

탐욕스러운 두꺼비가 손을 비비며 본격적인 흥정에 돌입했다.

“궁금하지 않나? 내가 어떻게 부활하게 되었는지 말이야.”

헨리가 꺼내 든 패는 다름 아닌 부활이었다.

그리고 헨리의 패를 확인한 스칼의 콧구멍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부, 부활! 크, 크흠! 확실히 궁금하긴 하지!

“하지?”

-그렇지만 무려 검왕의 유품인데…….

승패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꺼비가 부활의 비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역사상 부활에 성공한 이를 본 적이나 있나?”

-어, 없지…….

“그래, 그럼 됐네. 대가는 물건을 받은 뒤에 치르도록 하지.”

-이런…… 역시 자네는 못 당하겠구만.

스칼은 두꺼비 주제에 못 당하겠다는 듯이 이마를 짚어 보였다.

조건이 충족된 스칼이 이내 곧 양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그 후 특유의 커다란 입에서 자그마한 반지 하나를 뱉어 냈다.

-검왕의 약혼반지일세. 그가 공주와 약혼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이네. 약혼반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군.”

헥터는 공주와 왕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헨리의 동료가 되라는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러니 그의 약혼반지만큼 강렬한 감정이 깃든 것은 없을 것이다.

스칼은 침이 잔뜩 묻은 반지를 자신의 옷자락에 닦은 뒤 헨리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본 헨리가 주문을 외웠다.

“클린.”

-거참, 깔끔한 척하기는.

“아무리 그래도 침은 좀.”

이윽고 반지가 새것처럼 반짝였다.

반지를 챙긴 헨리는 이어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말을 잇기 시작했다.

“흑마술이었네.”

-뭐가?

“부활의 비밀 말일세. 처형장에서 처형당하던 그날, 갑자기 눈이 떠지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웬 낯선 방 안이더군.”

-그,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무릎 위에 강령술서와 죽은 암탉 사체가 있더군. 이 몸은 강령술을 시도했던 술자의 육체야. 아무래도 강령술에 실패한 모양인지 자신의 영혼을 날려 먹고 대신 나를 불러들인 것 같아.”

-그, 그게 가능하다고?

놀란 두꺼비가 눈망울을 끔뻑이며 헨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중에 강령술서를 완벽하게 복원해서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지만 내가 경험했던 그런 내용은 아니더군. 아무래도 그때는 단순한 기연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끝이네.”

-뭐?

“어느 풋내기 흑마술사의 실수 덕분에 부활하게 된 것. 그게 내가 알고 있는 부활의 비밀 전부일세.”

헨리가 말을 마치자 스칼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맞는 말이었지만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 너 이 자식! 이번에도 또!

“왜 그러나? 나는 솔직하게 말한 것뿐인데. 혹시 거창한 비밀이라도 기대했던 건가?”

-후우…… 너무 오랜만에 만난 나머지 네놈이 어떤 녀석인지 잠시 잊고 있었군.

“크크, 그러게 왜 그런 실수를 했나.”

-시끄러워! 역시 본성은 죽다 살아나도 고칠 수가 없는 것이었어.

“흐흐,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또 알아 가는구만.”

스칼은 헨리를 잠시 동안 노려보더니 바닥에 침을 퉤 뱉은 후 모습을 감추었다.

“귀여운 녀석.”

살아온 세월로 따지자면 스칼이 더 오래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아이와 노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스칼이 사라진 후 헨리는 챙긴 약혼반지를 꺼내 들어 보였다.

“악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검왕의 말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죽임을 당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니 이제 남은 문제는 혹시라도 가지고 있을지 모를 망자의 앙금을 잘 달래는 것뿐이었다.

검왕의 약혼반지를 손에 넣은 헨리는 그를 불러내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클린.”

헨리는 스칼의 마법진을 지운 후 새로운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헨리는 마법진을 완성시킨 후, 몇 번이나 틀린 곳이 없는지 검사했다.

이윽고 검토가 끝났을 때 헨리는 마법진 중앙에 검왕 헥터의 약혼반지를 올려 두었다.

그리고…….

“큭.”

마법으로 손톱을 날카롭게 만든 헨리는 자신의 팔뚝에 긴 상처를 만들었다.

뚝. 뚝뚝.

긴 상처는 많은 혈액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처음 강령술에 의해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손에 죽은 암탉이 들려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오탈자가 많아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훼손된 강령술서에는 강령술의 대가로 필요한 것이 ‘술자의 피’가 아닌 단순히 그냥 ‘피’라고만 적혀 있었다.

만약 술자가 암탉이 아닌 자신의 피를 대가로 사용했더라면 현재의 헨리는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많이도 필요하군.’

제법 많은 양의 피를 흘렸다.

필요한 만큼의 피를 짜낸 헨리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서둘러 지혈을 끝낸 뒤 다음 순서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였다.

“후…….”

이제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마법진이 발동될 것이다.

주문을 외우기 전, 헨리는 긴장되는 마음에 스스로를 다독였다.

흑마술을 처음 사용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아무리 죽은 혼령이라고 한들 명색이 검왕이었으니까.

이윽고 심호흡을 마친 헨리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dks skdhaus cjemfdjrksek znd Wkfk znd Wkr.”

위이잉!

주문을 외우자 헨리의 피를 머금은 선홍빛 마법진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꿀꺽.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헨리는 한 발자국 물러난 다음 떨리는 눈빛으로 마법진을 응시했다.

그리고…….

휘이이잉!

창문을 닫았음에도 방 안에 거친 강풍이 몰아쳤다.

헨리는 다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난 다음 마법진을 주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보름달에만 열리는 명계의 틈이 벌어지며 칠흑 같은 어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이 명계의 문!’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2개의 붉은색 점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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