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9화 (9/522)
  • # 9

    첫 번째 각성 (3)

    “윽.”

    맛은 생각보다 비렸다.

    하지만 헨리의 울대는 멈추지 않았다.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신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모두 마셨을 때였다.

    “큭.”

    목구멍부터 화끈해지기 시작한 원액은 곧 위장을 포함한 몸 전체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뜨겁게 달구어진 몸은 곧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몸이 축축이 젖었다.

    헨리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창문을 열었고, 차가운 바람이 유입되자 몸에서 수증기가 나기 시작했다.

    “후우우…….”

    헨리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큭!’

    몸속에 완전히 흡수된 미러클 블루가 드디어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한 마리의 폭룡을 연상케 하는 무지막지한 움직임!

    헨리는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집어삼키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래, 바로 이런 힘을 원했다.’

    8서클에 비하자면 감히 비교할 바가 못 되는 양이다.

    하지만 한동안 푼돈 같은 마력을 쥐고 살아왔던 헨리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넘치다 못해 폭주하는 마력을 마주하게 되자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더 날뛰어 봐라, 더!’

    거대한 파도와 같은 움직임, 하지만 익숙했다.

    이 정도 폭주는 8서클로 각성했을 때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다.

    헨리의 집중 상태가 금방 무아지경에 다다랐다.

    몸 안에 퍼진 원액은 기사 집안의 순수한 몸뚱아리를 탐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헨리는 불청객처럼 찾아온 손님을 귀빈처럼 받아들이며 천천히 몸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공손하지만, 이 몸의 주인은 나라는 집주인의 의식을 갖고서.

    헨리와 미러클 블루의 사투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원래대로라면 한 컵보다 더 적게 마셔야 할뿐더러 희석된 용액을 마셔야 했으니 이 정도 사투는 당연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뜨거웠던 몸이 조금씩 식어 가며 제자리를 찾아 가는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음?’

    헨리의 집중력은 마력을 총괄하는 심장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원액을 거의 소화해 갈 때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상 징후가 느껴졌다.

    ‘설마, 서클이 생겨나고 있다고?’

    선명한 감각이었다.

    3개의 고리 위에 그려지는 네 번째 푸른색 고리.

    그것은 네 번째 단계인 4서클이 확실했다.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서클의 탄생은 곧 마법사의 깨달음을 의미했다.

    마법사가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가진 마력을 바탕으로 다음 경지의 문을 여는 과정이 바로 서클의 생성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서클이 자생한다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런데 놀라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서, 설마, 문이 2개나 열린다고?’

    하나의 선명한 고리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네 번째 고리가 완성된 직후 그 위로 또 하나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허어, 이런 경우가 다 있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4서클부터는 마탑에서도 인정하는 한 명의 완전한 마법사였다.

    말인즉슨 제국의 큰 전력임을 인정받고 준남작 이상에 해당하는 파워를 지닐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미러클 블루는 4서클에 그치지 않고 그 위 단계인 다섯 번째 고리를 그려 내고 있었다.

    기대 이상의 효과였다.

    희석액이 아닌 원액을 섭취한 만큼 뛰어난 성과를 낼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한 번에 문이 2개나 열릴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전생이었다면 마탑에 발표하고도 남았을 일이다.

    마탑 역사상 미러클 블루의 원액을 통째로 집어삼킨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헨리는 이 위대한 발견을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에 참으로 비통해했다.

    이윽고 다섯 번째 고리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벌써 마도사인가…….”

    5서클의 영역.

    누군가는 평생을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영역이 바로 5서클이었다.

    마탑에서는 5서클에 달한 마법사들에게 마법사가 아닌 마도사라는 호칭을 주었다.

    마도사는 일당백 이상의 무력을 갖고 있으며 소드 마스터에 준하는 권위를 가지게 된다.

    헨리는 혹시 모를 추가적인 고리를 기대했으나 애석하게도 고리의 생성은 2개가 전부였다.

    ‘하긴 6서클부터는 말도 안 되는 양이 필요했으니.’

    서클을 증진시키려면 마법적인 깨달음도 필요했지만 그 밑바탕이 되는 마력 또한 굉장히 많아야 했다.

    헨리는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그래도 3서클에 머물던 마력량이 단숨에 마도사급이 되어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미러클 블루의 소화를 끝낸 헨리는 눈을 뜨고 가부좌를 풀었다.

    그런 다음 식은 몸을 덥히기 위해 창문을 닫았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그런데 창문을 닫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 때문에 미간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킁킁, 내 냄샌가?”

    냄새의 원인은 자신이었다.

    헨리는 처음에 자신이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싶었다.

    그러나 지독한 악취를 몇 번 더 맡아 본 끝에 불현듯 어떠한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순간, 어떠한 사실이 떠오른 헨리는 얼른 옷을 벗어 안감의 상태를 확인했다.

    누렇게 눌어붙은 땟자국, 이것은 결코 땀 따위로 생길 수 있는 땟자국이 아니었다.

    “라이트.”

    헨리는 서둘러 방 안을 밝혔다. 그런 다음 입고 있는 옷들을 전부 벗어 상태를 확인했다.

    모두가 똑같았다.

    분명히 클린 마법을 통해 세탁한 의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복 전체가 몇 년이나 빨지 않은 것처럼 누런 때에 절어 있었다.

    알몸이 된 헨리는 서둘러 거울 앞에 다가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성했구나!’

    거울에 비춰진 선명한 근육. 그리고 재조립된 골격과 투명한 피부, 마지막으로 케빈보다도 작던 키가 그를 훌쩍 뛰어넘는 길쭉한 체형으로 변해 있었다.

    헨리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각성했음을 확신했다.

    “두 서클 증진도 모자라서 각성까지 이뤄 내다니…….”

    각성.

    마력을 다루는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신체가 가지는 한계 이상의 마력이 결집될 경우 신체가 더 많은 마력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진화하는 현상.

    이는 사람마다 진화의 종류가 달랐지만 대부분은 골격이 재조립되고 근육이 증가하는 등 더욱 튼튼한 육체를 가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쓸 만하군.”

    전생에서 헨리는 총 두 번의 각성을 경험했다.

    보통은 평생 동안 한 번 경험하기 힘든 것이 각성이었지만 헨리는 두 번의 각성을 통해 또래보다 훨씬 더 튼튼한 육체를 가질 수 있었다.

    헨리는 그제야 자신의 몸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악취의 원인은 각성을 통해 몸에서 빠져나온 노폐물이었다.

    “클린.”

    악취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동시에 누렇게 변질되었던 의복 또한 깨끗하게 세탁되었다.

    기분 좋은 청소였다.

    이후, 헨리는 옷장에서 새 옷을 꺼내 입으며 달라진 옷태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흐흐흐, 한동안 체력 단련으로 고생할 일은 없겠군.”

    이로써 헨리는 한 명의 마도사이자 각성까지 이뤄 낸 모리스 가문 최초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 * *

    다음 날 저택은 난리가 났다.

    소년 같은 이미지였던 헨리가 하루아침에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알리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던 코홀도, 부엌에서 마주한 모리스 일가도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헨리는 그들의 의문에 물음표를 내비칠 뿐이었다.

    “어, 어떻게 된 일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했다고 하니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시종, 코홀만이 약간의 단서를 잡았을 뿐이다.

    ‘설마 그때 준비한 재료들이?’

    멋진 추리였다.

    훗날, 이 추리를 바탕으로 입신양명을 꿈꾼 코홀은 몇 년간 모은 돈을 전부 쏟아부어 미러클 블루의 재료들을 구매했지만 제조법을 몰라 그냥 생으로 씹어 먹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헨리의 몸을 살펴보던 베른이 말했다.

    “그저 놀랍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셔서 그런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갑자기 성장할 수는 없는데……?”

    “뭐가 됐든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체력 단련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끄응, 운동 강도를 좀 더 높일 필요가 있겠지만 이젠 보법 수련에만 몰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각성은 희소식들만 물고 왔다.

    헨리는 베른의 허락하에 체력 단련의 시간을 줄이고 보법 수련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났다.

    * * *

    헨리는 뒷산에 올랐다.

    모리스 영지의 뒷산은 산세가 험하고 들짐승들이 많아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뒷산에 오른 까닭은 수련을 위해서였다.

    “역시 정상 공기가 좋아.”

    정상에 도착한 헨리는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였다.

    길이 험한 뒷산이었지만 각성을 한 덕분에 이 정도 산행쯤은 준비운동 축에도 들지 않았다.

    “그럼 내려가 볼까?”

    헨리는 정상 뒤편에 펼쳐진 까마득한 절벽을 향해 가볍게 몸을 내던졌다.

    휘이잉.

    아찔한 높이였다. 그러나 헨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중력을 받아들였다.

    “페더 폴.”

    낙하 속도를 줄여 주는 마법.

    페더 폴을 사용하자 마치 깃털처럼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착지에 성공한 헨리는 이어서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런 다음 연달아 주문을 시전했다.

    “쇼크 웨이브.”

    무속성의 충격 마법.

    곧 엄청난 충격포가 담긴 수많은 구체들이 헨리의 주위로 떠올랐다.

    헨리는 응축된 대기구들을 방금 전에 뛰어내린 절벽을 향해 던졌다.

    콰광! 콰과광! 콰과과광!

    수십 개의 충격파가 굳건한 절벽을 몰아쳤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라도 몰아치듯 굉장한 크기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 이게 무슨 소리여?”

    폭음에 놀란 것은 산짐승들뿐만이 아니었다.

    산에서 약초를 채집하던 어느 이름 모를 약초꾼도 무너지는 절벽 소리에 놀라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벼, 벼락이라도 내려쳤는감?”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내려친 줄 알았다.

    그래서 애꿎은 마른하늘을 쳐다보았지만 하늘이 대꾸를 할 리 없었다.

    쿠구구구-!

    폭격을 받은 절벽에 수십 개의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동시에 수백 가닥의 균열이 일어나면서 유례없는 산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프로즌 필드.”

    쩌저적!

    그러나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도 잠시, 헨리는 마법으로 그것들을 전부 얼려 냈다.

    장관이었다.

    쏟아지는 흙무더기가 순식간에 결빙되어 보기 드문 장경이 연출되었다.

    “이 정도면 쓸 만하겠군.”

    마치 파도를 연상케 하는 고드름 떼였다.

    헨리는 이어서 다시 한 번 쇼크 웨이브를 시전했다.

    쾅!

    하나의 충격파가 거대한 고드름을 박살 냈다.

    박살 난 고드름은 수백 개의 파편이 되어 헨리를 향해 날카롭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얼음 조각들.

    중력에 의해 지상으로 떨어지는 얼음 조각들 사이로 헨리의 몸뚱아리가 춤추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콰직!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파편 사이로 헨리의 몸이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제국 검술의 보법, 서클 스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파편들이 쏟아졌을 때 헨리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도전해도 되겠지?”

    바닥에는 무수한 얼음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헨리의 몸에는 자그마한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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