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7화 (7/522)

# 7

첫 번째 각성 (1)

목검을 받아 든 헨리는 케빈을 상대했을 때처럼 기본적인 마법 무장을 시작했다.

“선공은 양보하겠습니다.”

베른은 당연하다는 듯이 선공을 양보했다.

헨리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기꺼이.”

타닥- 슈슉!

헨리는 한결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베른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런 다음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목검을 창처럼 내질렀다.

그러나 베른은 몸을 젖히는 것으로 헨리의 공격을 완벽하게 회피해 냈다.

그리고 회피와 동시에 무릎을 올려 복부를 공격했다.

퍽!

헨리는 무릎 공격을 손으로 막아 냈다.

꽤나 묵직한 대미지였다. 만약 마법 무장이 아니었다면 속절없이 쓰러졌을 공격이었다.

‘음?’

공격이 막히자 베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자신의 공격을 이리도 쉽게 막아 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우연이겠지.’

그러나 겨우 첫 합을 막아 냈을 뿐이다.

베른은 팔불출처럼 후하게 점수를 매기지 않기로 했다.

이어서 베른의 공격이 이어졌다.

부웅!

베른은 일부러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대신 파괴력은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뻔하디뻔한 이번 공격으로 헨리의 대처 능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검이 상단 베기로 크게 휘둘리자 헨리는 상체를 살짝 숙여 목검을 피했다. 그런 다음 곧바로 빈틈을 파고들었다.

‘오?’

이상적인 판단이었다.

큰 동작은 빈틈을 파고들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였으니까.

빈틈을 포착한 헨리는 곧바로 대각선으로 검을 쳐올렸다.

딱!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쳤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서로 상반되어 있었다.

‘도련님의 검이 이렇게나 묵직하다고?’

순수한 감탄 속에는 확연한 의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헨리의 몸은 척 보기에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몸. 그런 몸에서 자신의 부하들과 같은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베른은 점점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의아함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짙은 호기심이 공존했다.

‘대체 뭐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베른은 케빈을 포함해 영지의 수많은 남자들을 가르친 몸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좀 더 밀어붙여 봐야겠어.’

덕분에 베른의 호기심에 강렬한 불이 붙었다.

적당히 실력이나 파악하려고 했던 목적은 잊은 채로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공법을 취하되 속임수를 섞어 순간적인 기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진짜 실력은 공격이 아닌 수비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붕!

검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목검은 방향을 비틀어 오른쪽으로 뻗어졌다. 최소한의 동작과 최대한의 힘이 섞인 베른의 진짜 공격이었다.

그러나…….

딱!

꽤나 예리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헨리는 목검을 쳐올려 그것을 비스듬하게 비껴 쳐 냈다.

‘허어, 이걸 막는다고?’

방금 전의 공격은 케빈도 버거워하는 속임수였다. 그런데 그런 공격을 헨리가 막아 낸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지휘대장이란 건가.’

놀란 것은 헨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베른의 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왜 이런 실력을 가지고 촌구석에서 썩고 있는 거지?’

헨리는 평가의 기준점을 황실의 기사들로 책정했다. 수십 년을 보아 온 무인들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러의 양은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헨리가 원하는 것은 순수한 검술.

그렇기 때문에 베른의 실력은 더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딱!

합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합이 길어질수록 헨리는 자신의 밑천이 드러나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진짜배기한테는 안된다는 건가.’

케빈을 상대할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헨리는 베른의 공격을 막는 것에 급급했고 혹시라도 공격을 시도하면 가볍게 회피당하기 일쑤였다.

이후, 몇 번 정도 합을 더 나누던 두 사람은 베른의 중지로 대련을 멈추었다.

베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놀랍군요.”

“뭐가 말인가?”

“왜 여태껏 이런 실력을 숨기셨습니까?”

“그냥 어깨너머로 본 것을 몇 번 따라 해 본 게 다일세.”

‘어깨너머로 본 게 이 정도라고?’

확실히 헨리의 실력은 뛰어났다. 자신의 애제자인 케빈을 비웃을 만큼.

그러나 그것은 ‘검술’이 아닌 뛰어난 ‘실전 감각’을 뜻했다.

‘확실히 검술에 기초한 움직임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본 전투 센스가 이 정도란 말인데…….’

베른은 어쩌면 헨리가 숨겨진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모든 상황들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기대 이상이네요.”

“예, 예?”

헨리의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베른이 당황했다.

“혹시 경어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검술을 가르쳐 주실 스승님인데 하대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니까요.”

“아, 그, 그렇습니까?”

케빈에게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존대였다.

하지만 헨리는 이것이 합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무릇 제자란 스승을 섬겨야 하는 법이니까.

‘눈치도 제법 쓸 만한 것 같군.’

베른이 느낀 대로 헨리는 뛰어난 실전 감각의 소유자였다.

살아생전 평화로웠던 날들보다 전쟁 통에서 살아온 세월이 훨씬 더 길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국 제일검이었던 선대 황제의 검술을 매일같이 옆에서 보아 온 그였다.

그래서 말 그대로 어깨너머로 보아 온 기초였기에 겨우 흉내 내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헨리에게는 더더욱 진짜 검술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했다.

“혹시 스승님이 사용하시는 검술도 제국 검술입니까?”

“예. 제국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제국 검술을 배우는 것이 보통이지요.”

제국 검술. 헨리가 아카데미를 포기한 이유이기도 했다.

제국 검술은 선대 황제인 골든 잭슨이 만든, 검술의 정석과도 같은 기본적인 검술이었기 때문에 아카데미 또한 제국 검술밖에 가르치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어딜 가나 제국 검술이 기본이군.’

그렇기 때문에 스승만 잘 만난다면 천편일률적인 제국 검술쯤이야 누구에게든 배울 수가 있었다.

그럼 검술 아카데미에서 제국 검술을 배우는 학생들은 모두 바보가 아니냐?

그렇지는 않다. 아카데미는 아카데미만의 장점이 있었으니까.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다는 것 이외에도, 아카데미의 가장 큰 장점은 아카데미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연줄이다.

이른바, ‘학연’이었다.

명문 교육기관으로 알려진 검술 아카데미에는 뛰어난 선배들이 수두룩했고 대다수의 기사단들은 이곳의 졸업생들을 견습 기사로 많이들 데려갔다.

그렇기 때문에 출세하고 싶은 자들은 앞다투어 값비싼 학비를 지불해 가며 자기 자식들을 검술 아카데미에 보냈고, 명문 귀족들은 자식의 커리어를 위해 자식들을 아카데미에 입학시켰다.

“그럼 스승님, 수업은 당장 오늘부터 시작입니까?”

“이거 원, 호칭이 영 어색하군요. 뭐, 어찌 됐든 수업하는 것이야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만. 그럼 이것이 첫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묻겠습니다. 현재 도련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베른은 여느 스승처럼 제자 스스로가 고민하게 만들었다.

헨리는 그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더니 금방 대답했다.

“체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죠?”

“무엇이든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니까요.”

가장 기초적이고 정석적인 답변이었다.

이에 베른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체력도 맞습니다. 체력이 굳세어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 방금 전의 대련에서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없습니까?”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야말로 새하얀 도화지 같은 상태니까요.”

“맞습니다. 하지만 좀 더 디테일 하게 알려 드리자면, 모든 검술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보법’입니다.”

보법.

헨리는 베른의 입에서 보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제야 검술의 기초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맞아, 골든 그놈도 똑같은 소릴 했었지. 모든 것의 시작은 발에서 비롯된다고.’

깨달음은 곧 다시금 호기심이 되었다.

‘근데 겨우 보법 하나가 그만한 영향을 끼친다고?’

선대 황제도 분명히 똑같은 말을 했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보통 부족한 무언가는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당시 헨리는 그 말을 부정했다.

“표정을 보니 별로 납득이 안 가시는 것 같군요. 그럼 직접 그 차이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베른은 쥐고 있던 목검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멀찍이 걷어찼다.

“이제부터 저는 방어와 회피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련님께서는 자유롭게 저를 공격해 보십시오.”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군요.”

“이것도 수업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업의 일환이라고는 하나 헨리는 이것을 스승의 도발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대련을 나누었을 때처럼 마법 무장을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무장을 마친 헨리는 목검을 바로 쥐었다.

그런 다음 가볍게 묵례를 끝낸 후 쏜살같이 베른에게 달려들어 검을 내뻗었다.

슉!

바람이 갈라지며 제법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그러나 베른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가볍게 공격을 회피했다.

슉! 슉! 슉!

공격은 계속됐다.

그러나 처음에 대련을 나누었을 때와는 달리 헨리는 단 한 번도 유효 타격을 먹이지 못했다.

그렇게 수십 차례의 시도가 이어졌을 때였다.

쿡.

헨리의 검이 명치를 향해 날아들어 왔을 때, 베른은 이번에도 그것을 가볍게 회피해 낸 뒤 검지 손가락으로 헨리의 뒷목을 찔러 보였다.

“이제 그만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욱, 후욱, 휴…….”

마법 무장을 했음에도 주어진 신체가 워낙에 둔치라서 숨이 가빴다.

더불어 이번에는 온전히 공격에만 몰두하느라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숨을 헐떡이는 헨리를 보며 베른이 말했다.

“도련님, 발밑을 보십시오.”

베른이 아래를 가리키자 헨리의 시선 또한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연무장의 모랫바닥에 찍힌 무수한 숫자의 발자국들이 보였다.

“도련님의 발자국과 저의 발자국을 비교해 보시겠습니까?”

두 사람의 발 사이즈가 달라 구분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헨리는 베른의 말대로 두 발자국을 비교해 보았다.

“……음?”

한참을 비교하던 끝에 헨리는 두 발자국이 가지는 차이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베른이 물었다.

“차이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행동 범위가 다르군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여기 제 발자국은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것에 비해, 도련님의 발자국은 몹시 불규칙합니다.”

“하지만 공격을 하다 보면 당연히 불규칙해지는 것이 보통 아닙니까?”

“아닙니다. 공격 또한 탐색을 끝낸 후에야 하는 것. 상대의 행동반경을 파악해야만 어디에 어떻게 공격할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두 사람이 동등한 힘을 지녔다면 누가 더 관찰을 잘하느냐로 승패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마법이랑은 달라도 너무 다르군.’

마법 또한 관찰이 필요했다.

하지만 관찰보다는 마력을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지어졌다.

아무래도 새로운 성질의 무력을 받아들이려면 그에 대한 탐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하여 제국 검술의 보법은 ‘서클 스텝’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도련님께 필요한 것은 체력과 보법이니, 한동안은 이것에만 몰두하도록 하겠습니다.”

“체력은 그렇다 쳐도 보법은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

“하하, 마음이 조급하시군요. 수련에는 끝이 없지만,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련님이 보법으로 제 몸에 손을 댈 수 있을 때, 그때부터 검술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스승의 귀여운 도발에 헨리는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설레기도 했다.

항상 절대자로 군림해 오던 그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헨리의 눈동자에 의욕과 자신감이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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