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서클 마법사의 환생-4화 (4/522)

# 4

헨리를 건드리면 아주 (1)

“도련님! 다녀왔습니다요!”

부쩍 충성스러워진 코홀은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더 빨리 심부름을 다녀왔다.

그가 헨리의 방에 메고 온 자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도련님, 말씀하신 것의 대부분은 구할 수 있었지만 딱 한 가지만은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가지? 그게 뭔데?”

“여기 제일 밑에 적힌 녹까마귀꽃입니다.”

“왜 못 구했지? 나온 매물이 없었나?”

“그게…… 약재상의 말로는, 교역로에 꽤 큰 무리의 도적 떼가 출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역상들이 영지에 들어오지 못한 지 벌써 보름이라고 합니다.”

“보름? 아버지는 이 사실을 모르시나?”

“이미 몇 차례나 토벌에 나서셨지만 워낙에 신출귀몰한 놈들인지라…….”

코홀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내놓자 헨리는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준남작씩이나 되는 자가 고작 도적 떼 하나를 처리하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무능력한가?

헨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코홀, 나갈 채비를 해라.”

“예? 지금 말씀이십니까?”

“나는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교역로인지 뭔지에 다녀올 테니, 말 두 필을 준비하고 너도 나갈 채비를 해라.”

“도, 도련님! 그건 안 됩니다! 혼자서 거길 가시는 것도 위험할뿐더러 파악된 도적 떼의 숫자만 해도 서른이 넘는다고 합니다!”

“혼자라니, 나는 너와 둘이서 가는 건데?”

“예. ……예?”

“그리고 그런 건 너에게 묻지 않았다. 나는 녹까마귀꽃이 필요하고 그 도적 떼는 나를 방해하고 있다. 그러니 얼른 준비해라.”

“도련님…….”

충성스러운 코홀은 금방 울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주조차 잡지 못한 도적 떼를 헨리가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그러나 헨리의 의사는 완고했고, 코홀은 어쩔 수 없이 말을 준비해야 했다.

코홀은 마구간에서 헨리의 전용 말을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데리고 온 말은 헨리가 타던 군마에 비해 골격도 엉성하고 털도 듬성듬성 빠져 있는 것이, 영 상태가 좋지 못했다.

말을 살펴보던 헨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른 말은 없느냐?”

“예, 이 녀석이 도련님의 전용 말입니다.”

“돌아오는 대로 마구간지기부터 혼내야겠군.”

중얼거리는 헨리를 뒤로하고 이윽고 두 마리의 말에 안장이 채워졌다.

“코홀, 너는 가서 쓸 만한 검 한 자루를 가지고 와라.”

“다른 건 더 필요 없으십니까?”

“살고 싶으면 네 목숨 부지할 것들이나 챙겨 오든지.”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으나 코홀은 헨리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윽고 코홀이 사라지자 헨리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말 앞으로 다가가 섰다.

“너도 고생이 많았겠구나.”

주인이 무능하면 그 고생은 주변이 한다는 말이 있다.

현재 헨리의 말이 딱 그 짝이었다.

“너의 이름은 오늘부터 제이드다.”

제이드는 헨리가 전생에 타던 말의 이름이었다.

공간 이동을 배운 후론 거의 말을 타지 않아 자연스럽게 수명이 다해 죽었지만, 헨리는 그 전까지 제이드를 끔찍이 여겼었다.

푸릉.

새 이름을 받은 제이드는 낮게 호흡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다시 태어나게 해 주마.”

일부러 검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헨리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오른쪽 검지 끝을 깨물어 피가 나오게 했다.

그런 다음 제이드의 얼굴과 몸뚱아리에 룬어로 이루어진 주문들을 가득히 적기 시작했다.

‘됐다.’

곧 핏빛 주문들이 제이드의 몸에 가득 찼다.

헨리는 필기를 마친 뒤 나지막이 명령어를 읊조렸다.

“명마 개조술, 발동.”

파바밧!

명마 개조술.

마탑의 생물학파에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군용 마법들 중 하나로, 당나귀도 군마로 만들어 준다는 생물학파의 비술이었다.

물론 완벽한 개조술은 아니었다. 완벽한 개조술을 펼치려면 적어도 4서클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헨리는 아쉬운 대로 한 단계 레벨을 낮추어 개조술을 사용했다.

푸힝! 푸흥! 푸헝!

“미안하다.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해서 마취는 하지 못했다.”

개조술에는 약간의 고통이 뒤따랐다.

물론 그 약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마구간에서 조용히 풀을 먹고 있던 제이드에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으리라.

그리고 얼마 뒤였다.

푸릉.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헨리는 전에 비해 덩치가 커지고 골격이 두툼해졌으며 갈기까지 세련된 모습으로 바뀐 제이드를 어루만져 주었다.

이제 제이드는 비루먹은 말이 아닌,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한 마리의 군마가 되었다.

그때 코홀이 돌아왔다.

“도련님, 검을 가지고 왔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다. 그럼 이제 앞장서라.”

“어? 도련님, 그사이에 말을 바꾸어 오셨습니까?”

“아니, 내 말이 맞다.”

“아닌 것 같은데요. 분명히 이런 말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럼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냐?”

“아니, 도련님, 그게 아니라…….”

“다시 한 번 묻겠다. 아까 전에 본 말과 다른 말이더냐?”

“……같은 말입니다.”

“그래, 그럼 됐다. 빨리 앞장서라. 시간이 없다.”

대답을 한 후에도 코홀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제이드를 다시 살폈다.

그로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의 사족은 주인을 화나게 할 뿐이었으니 잠자코 그의 말에 동의하기로 했다.

“아까 일러둔 것들은 챙겼느냐?”

“예…… 근데 이거 주인마님과 주인님께서 아시면 정말 큰일 날 텐데 말입니다…….”

“훔치는 것도 아니고 잠시 빌리는 것인데 왜 큰일이 난단 말이냐?”

“그, 그래도…….”

“스읍.”

“예, 알겠습니다…….”

코홀은 헨리의 지시대로 저택의 보물 창고에서 한스와 모리 부인의 보물들을 잔뜩 챙겨 왔다.

챙겨 온 것들은 대부분 금붙이나 보석으로 이루어진 장신구였다.

“잘 챙겨야 할 것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니.”

“예, 예! 알겠습니다!”

코홀은 지금이라도 이 미친 짓에서 발을 빼고 싶었다.

혼자서 도적 떼를 토벌하러 가는 것도 무진장 말리고 싶은데, 그 도적 떼를 꾀어내기 위해 저택의 보물들을 잔뜩 훔쳐 왔으니 말이다.

코홀은 앞장서서 교역로로 안내하는 내내 아련한 눈빛으로 헨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헨리는 냉정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승마술을 펼쳤다.

* * *

얼마 뒤, 두 사람과 두 마리의 말이 어느 정도 교역로에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라.”

“예…… 알겠습니다…….”

본격적으로 교역로에 들어가기 전, 코홀은 헨리의 명령에 따라 말에서 내린 뒤 챙겨 온 보물 가방을 열었다.

그런 다음 챙겨 온 보물 장신구들을 자신에게 치장하기 시작했다.

“좀 더 많이 걸어, 귀걸이도 한 번에 2개씩 하고. 그래야 도적들이 탐낼 것 아냐.”

“하, 하지만 전 귀걸이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스읍.”

“예…… 알겠습니다…….”

코홀은 헨리의 명령 덕분에 태어나서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부귀영화를 한꺼번에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윽고 치장이 끝났을 때였다.

“그 정도면 됐다. 출발하자.”

“예…….”

코홀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기운 없는 목소리와는 별개로 그의 몸에는 온갖 금붙이들이 햇빛을 받아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 교역로에 진입했다.

일명, ‘삼거리 교역소’였다.

각 영지에서 출발된 교역로들은 이곳 삼거리 교역소에서 하나로 모였는데, 이렇게 모인 교역로는 수도로 향하는 커다란 길목으로 연결되었다.

두 사람은 삼거리 교역소를 지나 수도로 향하는 길목에 진입했다.

“이제부터는 속도를 늦춘다. 우리의 목표는 도적 떼의 표적이 되는 것이니까.”

“도련님!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그놈들에 대한 소문이 얼마나 흉흉한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설사 내가 죽더라도 별수 있느냐, 시종인 너도 같이 죽어야지.”

“도련니임…….”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니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더불어 이렇게나 많은 금붙이를 가지고 있으니 설사 도망친다 하더라도 도적 떼가 끝까지 따라와 자신을 죽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뒤의 일이었다.

“거기 잠깐.”

얼마나 걸었을까?

헨리의 예상대로 도적 놈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빨리도 나타나는군.’

사실 어느 순간부터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헨리는 필시 그들의 정체가 도적 떼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미행자의 정체는 도적 놈들이 맞았다.

‘생각보다 조심스러운데?’

시간을 들여 미행한 까닭은 뒤쫓아 오는 호위대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안전하다고 판단을 마친 도적 떼는 그제야 위풍당당한 척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하핫! 너네 뭐냐? ‘우리 좀 잡아가 주세요~.’ 하고 광고하는 거냐?”

도적들 중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어깨에 짊어진 거구의 도적이 헨리를 조롱했다.

“니가 우두머리냐?”

“그렇다면?”

“금붙이가 어지간히도 탐났나 보군, 우두머리가 직접 나올 정도면.”

“크흐흣, 보물을 마다할 도적이 있을까? 자, 그럼 가진 것과 입은 것, 그리고 타고 온 말을 내려놓고 간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전형적인 도적 두령의 대사였다.

이에 코홀이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헨리의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

“도, 도련님, 이제 어떡합니까. 척 봐도 스무 명은 넘어 보이는데요.”

“코홀.”

“예, 예?”

“한숨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이다.”

“예? 그게 무슨…… 켁!”

털썩.

헨리는 조용히 마법으로 무장한 다음 손날로 코홀의 뒷목을 쳐 그를 기절시켰다.

그러자 코홀이 몸에 걸친 보물들과 함께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제이드,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야 한다.”

푸힝.

“옳지.”

코홀을 기절시킨 헨리는 이어서 말에서 내렸다.

그런 다음 코홀이 타고 온 말의 고삐를 제이드에게 묶은 뒤 제이드에게 대기를 명령했다.

그 모습을 본 도적 두령이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보면 몰라? 주차하잖아.”

“말한테 주차라고? 어디 모자란 놈이 분명하군. 어이, 가서 죽여 버려.”

두령은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부하들에게 턱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산적들이 각자 검을 빼 들고 천천히 헨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스물다섯 명. 이게 다야?”

“곧 죽을 마당에 그런 게 궁금하다니, 역시 미친놈이 분명하군.”

“그래, 어차피 도적 놈들은 대가리만 치면 되니까.”

딱!

도적 떼의 수를 파악한 헨리는 말을 마친 뒤 손가락을 튀겨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도적 떼 전체의 얼굴에 커다란 물방울들이 생겨났다.

“푸흡! 푸흐흡!”

“고작 도적 몇 놈 처리하는데 피를 묻힐 순 없지.”

생겨난 물방울들은 헬멧처럼 머리에 달라붙었다.

도적들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물방울에 의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씩 질식사하기 시작했다.

털썩, 털썩.

“빨리빨리 죽어라. 내가 좀 바쁘다.”

제법 질긴 놈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래 봤자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아가미라도 달려 있지 않은 이상 물속에서 호흡하기란 불가능했다.

“끄윽…….”

마침내 마지막 놈까지 쓰러진 직후였다.

헨리는 시체들이 완전히 죽었는지 확인한 다음 마법으로 시체를 한군데로 모았다.

“파이어.”

화르륵!

머리가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들은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올랐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헨리는 시체가 알맞게 익어 갈 때쯤 불을 거두었다.

“나머지는 들짐승들의 몫이다.”

뒷처리를 마무리 지은 헨리는 여전히 기절해 있는 코홀에게 다가가더니 발로 걷어차 그를 깨웠다.

“컹, 컹! 도, 도련님? 도적 놈들은요?”

“전부 죽은 것 같은데?”

“네에?”

“시끄럽다. 아무튼 도적들이 죽었으니 이제 돌아가자. 잃어버린 물건 없나 잘 확인하고.”

잠에서 깨어난 코홀은 이번에도 꿈을 꾼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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