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서클 마법사의 환생 1-400 완[]자리 H님 1부 작업
# 1
프롤로그
인간 최초로 8서클의 경지를 이룬 제국의 대마법사, 헨리 모리스가 처형장 위를 걸었다.
그의 손에는 엘프의 마력도 차단한다는 블랙 미스릴로 만든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제국 십검들 중 두 명의 최상급 소드 마스터가 동행했다.
두 사람은 헨리를 끌고 가지 않았다. 그것은 한때 제국의 정점이자 마탑의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렸던 남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였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헨리를 응시했다.
어떤 이는 긴장 때문에 마른침을 삼키고 싶었지만 감히 그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섣불리 울대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꼴깍.
오늘은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제국의 대마법사이자 대륙의 현자라고 불리던 그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후…….”
시린 겨울, 헨리의 차가운 숨이 허공에 부서졌다.
걸음을 딛는 내내 숨이 가빴다. 그러나 결코 그의 육체가 연로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원인은 어제 들이켠 맹독에 있었다.
‘빌어먹을 맹독 같으니.’
아무리 8서클의 경지에 이른 그랜드 마스터라지만 그 또한 인간이었다.
이름도 모를 맹독은 헨리의 오장육부를 좀먹어 갔고, 평생을 순환시켜 온 마력의 혈류를 수챗구멍 막듯이 틀어막아 버렸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맹독을 마시지 않으면 자신이 보호해야 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우습구나, 참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친구이자 전우였던 선대 황제, 골든 잭슨 에드워드의 위대한 핏줄을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큰 착각이었다.
현 황제, 실버 잭슨 에드워드.
그는 운 좋게도 아버지가 이뤄 놓은 대륙 통일에 발가락만 걸친 끝자락 세대였다.
그야말로 축복받은 세대였다.
게다가 전쟁에서 얻은 마왕의 저주로 선대가 일찍 죽게 되자, 그는 황제의 자리 또한 손쉽게 물려받을 수 있었다.
‘어쩌다 저리되었을까. 분명히 어릴 때는 총명했었는데.’
선대는 어질고 용맹했으며 모든 이종족들의 은총을 받았던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아비가 이뤄 놓은 업적을 이용해, 권력의 삶에 도태되었다.
무예를 익히지 않고 학문 또한 증진하지 않으니 그에게 남은 것은 쓸모없는 아집뿐이었다.
그야말로 위험한 전조였다.
아집에 빠진 그는 시야가 좁아졌고 의심이 늘었다. 또한 성격이 예민해지고 자그마한 일에도 쉽게 분노했다.
그러나 ‘중앙귀족’들은 이를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집에 빠진 폭군만큼 다루기 쉬운 칼은 없었으니까.
그들은 습자지에 물을 적시듯이 아주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그런 다음 눈엣가시 같았던 적대 세력인 개국공신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죄명은 반역죄.
아주 오랫동안 시간을 들인 만큼,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전쟁 영웅들은 손도 쓰지 못한 채 수급을 내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영웅, 헨리 모리스가 단두대 앞에 서게 되었다.
“죄인은 무릎을 꿇어라!”
쿵!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다리에서 힘을 거두자 속절없이 무릎이 무너졌다.
일순간 처형장의 공기가 무섭게 가라앉았다.
이윽고 처형관이 목청껏 소리쳤다.
“대역죄인 헨리 모리스는 들어라! 죄인은 제국의 가장 현명한 지혜임에도 불구하고 황실에 대한 반역을 꾀하였음을 인정하는가!”
관중석에 앉은 수많은 시선들이 일제히 헨리에게로 모였다.
하지만 헨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는 그 어떤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헨리에게는 엄청난 모욕이었기 때문이다.
집행관의 말이 계속되었다.
“반역을 도모한 자는 일족을 멸하고 관련된 자를 모두 잡아들여야 하나,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넓은 아량으로 그 죄를 헨리 모리스 하나에게…….”
그 순간, 헨리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분명히 맹독으로 몸이 망가졌을 텐데도 매서운 안광이 사위를 가로질렀다.
그 기세에 눌린 것은 집행관뿐만이 아니었다. 형을 구경하던 황제와 나머지 귀족들까지 모두 창백하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듣자 하니 내 귀가 썩을 것 같군. 같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그냥 죽여라!”
헨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거친 일갈을 날렸다.
그러자…….
“저, 저, 저놈을 죽여! 당장! 어, 어, 어서!”
황제는 덜덜 떨리는 손길로 헨리를 가리키며 괴성을 질러 댔다.
헨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언제나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던 노현자의 눈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 눈빛이 참 두려웠다.
그의 눈빛 속에는 먼저 죽은 아버지를 닮은 강렬한 경멸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 경, 미안하오.”
제국 십검 중 제일검이자 기사왕이라고 불리는 바할드의 검이 하늘로 치솟았다.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의 검이 헨리의 목으로 떨어지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헨리는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내 죽어서도 절대 너를 용서치 않으리.’
* * *
처형장 위로 늙은 수급 하나가 떨어졌다. 솟구치는 피와 함께.
왕은 마법사의 시체를 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라 명했다.
소식을 들은 헨리의 사람들은 눈물을 훔치며 분개했다.
이로써 통일 대륙력 20년 만에 인류 최초의 8서클 대마법사, 헨리 모리스가 긴 생을 마감하였다.
같은 이름, 다른 삶 (1)
“헉!”
그는 악몽을 꾼 사람처럼 짧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주위는 몹시 어두웠고 눈앞에 켜진 몇 개의 촛불이 이곳을 밝히는 유일한 불빛이었다.
“대체 어떻게?”
분명히 바할드의 검에 의해 목이 잘려 나갔음을 기억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형장은커녕 어느 이름 모를 방 안에서 눈을 뜬 것이다.
‘이건?’
놀라기도 잠시, 헨리는 자신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목이 잘린 암탉의 사체와, 낡아서 표지가 해진 고서였다.
‘강령술?’
훼손이 심하여 알아보기가 힘들었지만 책자에 적힌 단어는 분명히 ‘강령술’이었다.
강령술.
피의 대가를 통해 죽은 혼령을 현세에 강림시킬 수 있는 흑마술의 한 종류.
‘내가 강령술에 휘말렸다고?’
헨리는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알아챘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상황을 달리 설명할 수가 없을 테니까.
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비출 만한 것을 찾았다.
마침 방 한쪽에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었다.
헨리는 얼른 거울 앞으로 다가가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맙소사…….”
짤막한 감탄사.
거울에 비친 얼굴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는 80년이라는 세월의 풍파가 휩쓸고 지난 얼굴이 아닌 탱탱하고 싱그러운 젊은 얼굴이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헨리는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이어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았다.
선명하게 아린 볼살의 감각. 결코 꿈이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이미 죽어 버렸지만 구사일생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씨를 말렸던 흑마술에 의해서 말이다.
헨리는 형언할 수 없이 겸연쩍은 기분에 싸여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는 것도 잠시, 헨리는 곧 빠른 속도로 이 상황에 적응해 나갔다.
‘그나저나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강령술은 흑마술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헨리가 놀란 것은 흑마술로 인해 부활한 자신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이 씨를 말려 버린 흑마술서를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해서, 그것도 하필 자신을 강령시킨 것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나저나…… 술사는 어디 있지?’
강령술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한 술사 또한 존재해야 할 터.
헨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술사는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술사가 보이지 않자 가능성이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몸뚱아리의 주인이?’
헨리는 추가적인 단서 수집을 위해 바닥에 떨어진 마술서를 집어 들고 재빨리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실패했군.’
예상이 맞았다.
현재 헨리가 강령되어 있는 육체의 주인이 강령술을 부린 술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는 실패했다.
헨리는 강령술 실패의 원인으로, 심하게 훼손된 반쪽짜리 마술서와 부족한 술사의 경험을 꼽았다.
‘나로서는 호재인 건가.’
그러나 헨리는 그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자신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맹독 때문에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듯했다. 또한 모든 귀족들이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헨리는 그때 느낀 치욕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정보가 필요하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헨리는 곧바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기연으로 다시 한 번 얻은 목숨, 귀하게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헨리는 먼저 주변 환경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못사는 놈은 아닌 것 같고.’
방 안의 인테리어를 미루어 보았을 때 아무래도 평민이 사는 집은 아닌 것 같았다. 더불어 몸에 걸쳐져 있는 가운 또한 재질이 고급스러웠다.
헨리는 죽은 암탉의 사체를 발로 밀어낸 후 다시금 거울 앞에 섰다.
그런 다음 켜진 등불을 가까이 가져온 뒤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었다.
“음.”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헨리는 새로운 몸 곳곳을 살폈다.
마른 곳이 없는 게, 영양 상태는 무척 훌륭했다.
하지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모양인지, 근육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었다.
‘기사는 아닌 것 같고…… 그럼?’
헨리는 혹시라도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마법사들은 근육을 키울 필요가 없었으니까.
옷을 다시 입은 헨리는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그런 다음 온 정신을 심장에 집중시켰다.
몸뚱아리의 주인이 마법사라면 심장에 서클이 그려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없어?’
그 간단한 1서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헨리는 거지의 밥그릇처럼 텅 빈 심장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서클도 없고 몸도 형편없고,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영양 상태만이라도 온전한 게 다행일 정도였다.
헨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피둥피둥 살만 찐 몸뚱아리를 보고 불현듯 누군가를 떠올렸다.
바로 자신을 죽이라 명했던 황제, 실버 잭슨 에드워드였다.
‘으득, 빌어먹을 애송이 같으니.’
부활했다는 사실에 잠시 동안 잊고 있었다.
헨리는 부러질 듯이 이를 갈며 황제가 자신에게 저지른 만행들을 하나둘씩 떠올렸다.
특히 인질들을 내세워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맹독을 마시게 한 것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놈. 내가 만약 기사였더라면 그깟 맹독쯤 능히 견디고도 남았을 텐데…….’
그는 한 번도 자신이 마법사임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마법은 효율적이고 우월했다. 특히 강함으로 따지자면 소드 마스터 수십을 단신으로 상대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하지만 그 강함도 한 줌의 맹독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나약한 육체. 그것이 마법사의 약점이자 유일한 오점이었다.
만약 헨리가 최상급 소드 마스터급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까짓 맹독 따위, 드럼으로 몇 통을 마셔도 멀쩡했을 것이다.
‘죽은 뒤에야 기사 놈들을 인정하게 될 줄이야…….’
헨리는 지독한 마법 우월주의자였다. 살면서 마법으로 이루지 못했던 일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육체를 단련하는 기사들을 한심하게 여기곤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깨달아 봤자 망자의 넋두리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 내가 할 일은 정해진 것 같군.’
뜨거웠던 분노가 자기반성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반성을 마칠 때쯤, 헨리는 전생에 불렸던 현자처럼 몹시 냉철해졌다.
‘우선은 서클부터 만든다. 정보 수집은 그다음이다.’
기사와 같은 강인한 육체는 당장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기본적인 마법부터 갖추기로 했다.
무슨 일이든 밑천이 두둑해야 했으니까.
헨리는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런 다음 마법사 특유의 호흡법을 구사하며 심장에 첫 번째 서클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재능이 없는 몸이라도 1서클 정도는 그릴 수 있다.’
자신은 무려 8서클 대마법사이자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였던 몸이다.
한 분야의 정점에 달했던 인물이니, 그 어떤 고물을 가지고 와도 멋진 보검으로 탈바꿈시킬 정도의 재주는 가지고 있었다.
“큭.”
그러나 기본이 전혀 잡혀 있지 않은 몸에 무작정 서클을 만들려고 하니 힘이 부쳤다.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이 가장 힘든 법.
헨리는 입술을 깨물어 가며 최대한 튼튼하고 섬세하게 자신의 첫 번째 서클을 그리기 시작했다.
* * *
“휘유…… 이만하면 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헨리는 긴 한숨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목표로 했던 첫 번째 서클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 정도로만 해 두자.’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폐관 수련에 몰두하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가진 육체가 너무나도 연약했다.
헨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켜 세운 뒤 하나밖에 없는 문으로 향했다.
끼이익-.
침묵 속에서 문이 열렸다.
헨리는 문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시종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근처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종까지 둔 걸 보니 평민은 아닌 게 확실하군.’
이제는 완전히 평민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신도 잠시, 헨리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시종을 보며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시종은 주인이 언제 무엇을 요구할지 몰라 잠귀가 밝은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헨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헛기침을 해 보았다.
“흠흠.”
“커엉, 컹, 어, 어…… 도련님……?”
코 먹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깬 남자는 헨리를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이로써 남자의 신분은 더더욱 명확해졌다.
“하아아암…….”
그런데 잠에서 깬 시종이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무릇 시종이라 하면 주인 앞에서 절제된 그림자처럼 살아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몰매를 맞고 쫓겨나는 것이 보통이니까.
그러나 시종으로 추정되는 이 남자는 하품과 기지개도 모자라 느지막이 자리에서 일어나 짝다리를 짚어 보였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결국 참지 못한 헨리가 말했다.
“지금 이게 무슨 행동이지?”
“뭐가요?”
“……뭐가요?”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혹시 잠이라도 덜 깨신 겁니까?”
결정타였다.
헨리는 더 이상 이 버릇없는 시종의 만행을 두 눈 뜨고 참아 줄 수가 없었다.
“잠은 네가 덜 깬 것 같다.”
“예?”
빡!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시종의 불손한 태도에 화가 난 헨리가 시종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찬 것이다.
시종의 다리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헨리의 몸에 아무리 근육이 없다지만 이까짓 시종 하나에 쩔쩔맬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이번엔 얼굴을 향해 발등을 날렸다.
그러자 턱관절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시종의 고개가 회까닥 돌아갔다.
시종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헨리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쯧, 대체 어떤 쌍놈의 집안이길래 시종 교육을 이따위로 시킨 거야?’
황제 때문이었을까, 헨리는 더 이상 어떠한 치욕도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예민하게 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허, 이놈 보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종이 눈에 힘을 주고 헨리를 노려보았다.
헨리는 그런 시종의 태도가 기가 막혀 황제에게 그랬던 것처럼 차갑게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얼마 뒤, 시종은 자연스럽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 뭐지?’
다시금 고개를 숙인 시종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흡사 범의 눈을 연상케 하는 압도적인 위압감.
그 위압적인 눈빛은 평소 자신이 모시던 흐리멍텅한 주인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일깨워 주고 있었다.
이윽고 주제 파악을 마친 시종은 납작 엎드려 잘못을 빌기 시작했다.
“주, 죽을죄를 졌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시종은 고개를 처박고 목숨을 구걸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번에는 턱관절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라.”
헨리의 명령에 시종은 두려움에 떨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마치 호랑이와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한 번만 더 그러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때는 정말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예, 예!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헨리는 그제야 노여움이 가시는 듯했다.
자신의 존재를 두려워하며 한없이 어려워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종의 본분이자 기본적인 자세였다.
이윽고 헨리가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더냐?”
“6, 6일입니다!”
“스읍.”
“죄, 죄송합니다! 오늘은 제국력 20년 7월 6일입니다!”
눈치 빠른 시종이 재빨리 새로운 대답을 내놓자 헨리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겨우 하루가 지났다고?’
시종이 말한 날짜는 처형이 이루어진 바로 다음 날이었다.
말인즉슨 헨리는 죽은 지 하루 만에 부활한 셈이었다.
날짜를 파악한 헨리는 다음 질문을 건넸다.
“그렇군. 그럼 내 이름이 무엇이냐?”
“헨리 모리스 도련님이십니다.”
“……뭐라고?”
“헨리 모리스 도련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시종의 대답에 헨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내 아버지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더냐?”
“한스 모리스 준남작님이십니다.”
‘한스 모리스!’
오해는 금방 풀렸다.
그러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시종의 대답은 가히 엄청난 우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술사와 자신의 이름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운명도 이런 운명이 있을 수가.’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운명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온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떨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종은 자신의 주인이 왜 웃는지 알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