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는 우선 마탑에 다시 남기로 결정했다.
과정이라고 해도 적탑주가 된 이상, 적탑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적탑에 직접 있는 편이 가장 효율적일 터.
거기에 신성과 마법에 전투적 조화가 아직 ‘완전치’ 않을 걸 조정하기 위해서라도 레오나르도의 적탑이 머무를 필요가 있었다.
적탑은 제인 나르샤가 저지른 비리에 대한 기록만이 아닌 전투 마법이 정수가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아리아스필도 그에 따라 마탑에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단지 레오나르도와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가 아닌, 연인이 되기 위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기술들에 비해 미숙한 수준인 정령술을 제대로 숙련하기 위해 마탑에 남기로 했다.
분명 마왕을 퇴치하기 위해서 정진하는 훌륭한 모범이었다.
분명 그럴 터였다.
“으아...!”
레오나르도는 일어나자마 이불을 연이어 걷어찼다. 이미 하루나 지났으나 레오나르도는 그날의 수치심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그래서 좋네.’
자신이 첫사랑이자 라이벌에게 했던 느끼하고도 오글거리는 말투가 꿈 속에서 연이어 나온다.
‘항상 아리아 네가 내 목표였던 건 잊진 않았지?’
죄책감을 이겨내기 위해 분위기를 타고 취해버린 자신이 한 행동이 계속해 메아리친다.
“끄아아악...!”
무슨 생각으로 그딴 정신나간 짓거리를 벌인 거지.
이불이 찢어지다 못해 침대 다리가 부러질 기세로 레오나르도는 스스로에게 수치를 느꼈다.
좀 더 멋있고 세련되게 말할 방법이 있지 않은가.
왜 그 타이밍에 가슴에 묻은 그라탕을 핥을 생각을 한 것이냐.
‘...이래선 다늙은 노인네가 주제도 모르고 꼬시는 것 같잖아...!’
마왕의 그릇이기 전에 자신의 나이는 100살이 넘어간 지 오래다. 이런 욕망에 함부로 휘둘려서는 안 되는 나이란 말이다.
가장 한심했던 건.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꿈을 왜...’
자신이 아리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꿈을 지금 꿨다는 점일 뿐.
다행히 재빠르게 몸을 통제해 수면 도중의 불상사는 막았으나, 빳빳하게 서있는 ‘혈기’는 최고령 정신 연령을 지닌 레오나르도를 수치스럽게 하기 충분했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레오나르도가 기상을 수치로 시작할 때 즈음, 아인이 눈을 비비며 같이 아침을 맞이했다.
잠옷차림으로 수면모자를 쓴 아인은 깊은 잠을 자다 일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단지 눈을 감고 뇌를 식히고 있던 것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무표정이 약간 흔들리고 당황한 눈치를 보인 건, 평소 항상 침착하고 여유로운 레오나르도가 뒤늦게 사춘기가 온 청소년처럼 날뛰었기 때문.
아인마저 당황할 정도로 레오는 기묘하며 민망한 추태를 내보였다.
“...아...응... 괜찮지. 미안, 너무 시끄러웠지?”
레오나르도는 방금보다 더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빠르게 무마하기 위해 침대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지금 여기서 더한 반응을 보인다면 자신은 이제 아인에게도 얼굴을 들 수 없는 한심한 부모로 전락할 것이다.
“괜찮습니다. 현자님이 더 시끄럽습니다.”
[왜 날 걸고 넘어져? 그리고 딱 봐도 저 녀석이 더 병신 같구만.]
레오나르도의 추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던 현자는 팔짱을 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기껏 아인에게 얻어맞으면 둘만의 시간을 내줬는데, 정작 저 목석 덩어리는 그 기회를 걷어차 날린 것마냥 추하게 이불에 발차기나 날리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을 이런 한심한 꼬맹이의 꼴로 만든 것도 아직 용서하지 못했는데, 지렇게 지랄로 이단옆차기를 하고 있으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었다.
“아버지께 무례한 말씀은 삼가시죠. 현자님이 더 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인은 소년 현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꿀밤을 내리찍었다. 형태만 꿀밤이었을 뿐, 충격은 영체에 한해서는 망치로 내리찍는 수준의 고통을 내줄 것이다.
이미 아인은 레오의 도움없이도 홀로 주파수를 계산해 연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우선 두 사람 다 그쯤하고 식사나 하죠.”
[애들 대하듯이 말하지 마라.]
“애보다도 못하잖아요.”
눈앞의 아인보다도 철이 없는 현자에게 일침을 꽂아넣으며 레오나르도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일어났다.
현자의 헛소리 덕에 몸에서 날뛰던 혈기가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지금까지 젊은 몸에 날뛰는 성욕을 잘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자의 징글징글한 언행 덕이었다.
“그라탕 데워줘도 괜찮을까? 아니면 따로 또 먹고 싶은 건 있어?”
“아버지의 요리는 전부 맛있다 자부할 수 있습니다.”
아인에겐 입맛이나 취향 같은 개념이 더할나위 희박한 존재였다. 애초에 식사가 필수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만큼 감각적 취향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아인은 관계적으로 레오나르도의 요리가 ‘맛있다’ 생각했다.
신선도가 높은 재료를 사용하며 요리책에서 나온 조리법을 본인 방식대로 소화하는 정성.
그에 느껴지는 정의 맛은 분명 어떤 요리도 진미로서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오히려 내 쪽에 부끄럽네.”
아인의 무표정에서 나오는 자부심에 레오나르도는 썩 싫지 않았는지 피식 웃으며 조리를 준비했다.
“그럼 분발할게. 아주 맛있게...”
“어머니와는 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헤헤헥...! 푸그악...!”
혹시 그라탕이 쉬었나 싶어 간을 보던 레오는 아인의 직구에 바로 사례가 들렸다.
어제 했던 자신의 추행이 떠오르고, 방금까지 꿨던 음몽을 떠올리니 도저히 음식을 목구멍 뒤로 넘길 수가 없었다.
음험한 현자가 물었다면 바로 욕을 박았을 테지만, 순수한 아인이 물었는데 무시하는 건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딸로 삼은 만큼 이런 부분만큼은 자신이 책임져야할 문제였다.
“...괜찮으십니까? 냉수를 떠드릴까요?”
“..아...아냐. 그냥 놀라서 그래.”
레오나르도는 황급히 그라탕 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자신의 침이 튈대로 튀어 그라탕은 먹을 걸로 내줄 수 없이 더러워졌다.
[자기 딸이 엄마와 아빠가 동생 만드는 걸 물어봤으니 오죽하겠냐?]
안 그래도 아까운 그라탕을 버려야하는 때, 현자가 옆에서 깝죽거리니 레오의 화는 아인에게 전달될 만큼 화가 넘쳤다.
콰지직
[쿠헤에엑... 으억...!]
“아버지와 어머니를 희롱하지 마십쇼.”
아인의 철권은 부모를 모욕하는 악령을 응징해내었다.
악령은 레오가 사례가 들렸을 때보다 더 심한 소리로 숨을 헐떡이며 영체가 지직거렸다.
현자의 몸은 어려진 형태로 변형된 만큼 물리적인 충격에는 더욱 약해졌다.
게다가 아인의 주먹은 이미 용인화로 강화된 만큼 마나로 이루어진 영체를 부서뜨리는데 탁월했다.
[...쿠헉... 야... 따지고 보면 내가 널 만든 거거든! 그러면 내가 부모...!]
“만들어놓고 방치해놓으셨죠?”
딱히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단지 부모이기엔 현자가 하자가 많은 인물이라는 팩트를 전한 것일 뿐.
아인은 부모 자격도 없는 현자의 구타를 끝내며 손틀 털었다. 격투 솜씨는 레오의 것에 못지 않았다.
“아인아, 그만하고 우선 머리 정리부터 하자. 요리는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나보다 요리하고 정리가 중요하냐...?]
“예. 당연한 거잖아요.”
짐승보다 사람을 구하는 게 더 먼저이고.
악인보단 마인을 죽이는 게 더 먼저이듯.
당연한 순리에 현자는 전혀 현명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이런 배은망덕한 자식들.]
“전 현자님의 자식이 아닙니다.”
덤덤히 돌직구로 정신마저 구타하며 아인은 그대로 수면모자를 벗었다. 잠을 자는 행위를 위해 누운 몇 시간 동안 아인의 머리는 부스스하게 뒤엉켜있었다.
“머리 정리를 받는 건 좋습니다만, 혹시 제 질문에 답변해줄 수 있습니까?”
“...그건...”
화제가 돌렸다 생각한 레오나르도는 또다시 굳어버렸다. 차라리 현자가 다시 깝죽거려 주위를 돌려주기를 바랄 정도로 레오는 곤란을 느꼈다.
하지만 현자는 아예 구타로 삐졌는지 말도 하지 않은 채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땐 참 한결 같이 애보다도 못한 늙은이다.
“...대답하기 부담스럽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관계가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호기심으로서 발전한 거일 뿐이었습니다.”
현자에 비해 나이에 맞지 않게 몹시 의젓한 아인은 레오의 심리를 고려해 배려하는 말솜씨를 내보였다.
겉모습은 둘 다 어린아이였지만 성격만큼은 정말 천지 차이였다.
내용물까지 생각한다면 더더욱 자신의 딸이 자랑스러울 밖에 없었고.
“어제 방을 나가던 어머니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기에 좋은 대화가 오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랬어?!”
아리아스필이 좋아했다는 말에 레오나르도는 사례를 들렸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놀랐다.
분명 돌아갈 때는 웃고 있었지만 행여나 자신이 한 행위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짐짓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 좋아하셨습니다. 바로 방에 돌아가지 않고 연무장을 빌려 훈련을 시작하신 건 경위가 묘하지만 표정에는 생기가 있었습니다.”
“...훈련이라...”
어제 했던 ‘계약’의 조건 중 하나.
아리아스필이 스스로를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직접 건 조건이 훈련이었다.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될 텐데 아리아스필은 약속한 직후부터 바로 스스로를 단련시킨 거였다.
“혹시 제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을까요?”
“아니, 없을 거야.”
레오나르도는 아인의 머리를 빗겨주며 로브에 들어가기 쉽도록 가르마를 고르게 잡아주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머리부터 얼굴까지 자기 엄마를 쏙 빼닮았다.
“아빠가 엄마를 많이 좋아한다고 말했거든.”
[야! 진짜!? 그럼 빠구...!]
퍼억...!
“죄송합니다. 대화에 방해되는 것 같아 그만.”
“아니, 아주 잘했어. 저런 사람들은 항상 맞아야 말을 듣거든.”
[너희... 정말...! 됐다! 아주 차라리 앤젤라랑 있는 게 백배 낫겠네!]
그렇게 삐친 채로 나가는 현자를 보며 아인과 레오는 전혀 죄책감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죠?”
“엄마하고... 연인이 되기로 했어. 아인 너도 부모가 관계가 애매하면 곤란할 테니까.”
“곤란하지는 않으나 맞는 말씀입니다.”
아인은 자신의 입꼬리가 어째서인지 간지럽다는 걸 느꼈다.
용인화가 있더라도 몸에 이상은 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입술이 간지러워 히죽거리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자, 다 끝났어. 이제 밥 준비할게.”
“언제나 감사합니다. 저도 잠옷을 로브로 갈아입겠습니다.”
머리 정리를 끝낸 아인이 일어나려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누구신가요?”
“...아... 여기 레오나르도 방이었지 참...!”
땀투성이가 된 몸, 흙먼지와 검댕마저 묻어있는 꼴은 전장으로 뛰어들고 돌아온 아리아의 모습은 열정적이면서 피로하게 느껴졌다.
모습만 봐도 어제 수련했던 걸 오늘 아침까지 이어서 진행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조...죄송해요! 예전에 마탑에 있을 때 여기서 잤던 게 생각나서 그만...! 올 때마다 방이 바뀌어서...”
“우선 씻고 나서 이야기하시죠. 옷도 더러우니 세탁하시고 마침 아침 준비하던 와중인데 드시고도 가시죠.”
당황해하며 곤란해던 아리아스필에게 레오나르도는 온화한 미소로 대접했다. 고된 밤새 훈련으로 지친 아리아스필에겐 정말 최고의 비타민이 따로 없었다.
“...저... 정말 고마워요...! 주...”
“어머니, 좋은 아침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리아스필은 아인이 로브 외에 다른 옷을 입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관찰할 수 있었다.
어째서 시리카가 드레스나 하늘하늘한 옷을 입으라 강경하게 밀어붙였지 어머니가 돼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인아!! 엄마 지금 더러우니까 씻고 한번 껴안아도 될까?”
“물론입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스필은 욕실로 빨리 뛰쳐갔다. 레오는 아리아의 심정을 이해했는지 급한 마음에도 개지 못한 그녀의 옷을 차례로 집어들었다.
욕실에는 허물처럼 넝마가 되어간 옷들이 줄줄이 늘어놓여있었다.
“빠는 것보단 아예 새로 사는 게 나을 정도...”
하지만 이내 그 형태에는 위화감이 존재하는 걸 레오는 깨달았다.
‘...옷이 이렇게 다양하게 걸레가 된다고?’
상의 겉옷은 바람에 찢긴 것처럼 헐어있었고, 바지는 불가에 그을린 것처럼 타있는 부분까지 있었다.
“...스타킹에는 아예 얼음조각까지...”
아무리 아리아스필의 정령술이 미숙해도, 이정도로 마법을 통제할 못할 만큼 허접한 솜씨는 아니었다.
오히려 천재인 만큼 평균은 넘을 터인 아리아의 정령술이 이런 식으로 자해와 같은 형태를 내보이는 건 기묘할 수밖에 없었다.
“...얼음에 흙하고 풀 냄새까지...”
스타킹에 느껴지는 위화감을 확인하기 위해 레오는 이내 아리아의 타이즈를 코에 천천히 가져다대었다.
음험한 욕망이 있는 게 아니라 행여나 아리아가 무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확인해보고자하는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죄송한데...! 혹시 목욕물도 좀 받아도...”
그때 레오와 아리아의 시선은 교차했다.
반라인 아리아와 스타킹에 코를 댄 레오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오...오해...”
“...아...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그...”
이내 아리아스필은 잠시 욕실문을 닫더니 부스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필요하시면 편하게 쓰세요... 더럽혀도 되니까...”
아리아가 준 작고 부드러운 ‘천’은 따뜻하고 축축했다. 가장 깊고 중요한 부위를 계속 보호하고 있는 만큼 열기와 땀을 듬뿍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나로도는 그 행복한 배려에 죽고 싶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리아스필은 레오를 이해했습니다.
지금 본인도 레오가 이 샤위기 앞에서 알몸으로 씻은 걸 상상한 것만으로 무의식적으로 쾌락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