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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244화 (244/248)

퍽, 퍽, 퍽.

일정한 박자로 소리가 울린다.

둔탁한 음색으로 아리아의 방벽이 연이어 두드려진다.

아리아스필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벽에 연이어 머리를 박았다. 새하얗게 질린 그녀의 표정은 어제에 있었던 실언의 후회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아리아스필 님? 괜찮으신가요?”

노크를 아무리 해도 아리아가 답이 없자 루미네는 조심히 방문을 열었다. 마탑에서 잠시 묵을 방을 내준 거였지만, 여성의 방인 만큼 예절을 지켜서 나쁠 건 없었다.

“...루미네 성자님? 아인이도 왔네...?”

사람들이 들어오자 정신줄이 끊어질 것만 같은 아리아스필의 눈에 초점이 약간 돌아왔다.

하룻밤 사이에 아리아스필은 눈가에는 짙은 다크서클가 드러누웠고, 조금씩 자란 중단발의 머리는 이미 백색임에도 새하얗게 질린 것처럼 힘이 없었다.

단 하룻밤 사이에 건강한 처녀는 병상에 누워야할 정도로 쇠약해져버렸다.

“...안 괜찮으신 것 같네요.”

아침은 고사하고 점심이 되는 시각에도 식당에는 코빼기도 나오지 않은 채로 방에 틀어박힌 시점에서 괜찮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저 정도로 타격이 클 거라곤 루미네는 물론 아인조차 예상치 못했다.

“...괜찮아요. 조금 피곤해서 그렇지...”

“어제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리아스필의 하얀 거짓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인은 대놓고 본론으로 질문했다.

평소 아리아를 친엄마처럼 따르는 아인은 그날따라 싸늘한 시선으로 절망에 빠진 19세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아...그건...”

{힘든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저흰 그런 이유에서 용사님과 함께 동행하는 거니까요.}

루미네를 가르친 초대 성녀는 그리 말하며 아리아의 경계심을 풀어내었다.

현자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덕에 그녀의 컨디션은 아리아와 대조되게 최고조로 상승해있었다.

“...사실 어제 일 때문이 맞아요. 제가 실수한 탓에...”

“...아... 그건...”

아리아의 표정에 루미네는 어제 일을 떠올린다.

레오나르도와 아리아스필이 서로 엇갈린 채 설명한 관계.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와 본인을 연인이라 생각했고, 아리아스필은 그런 영광을 상상치도 못한 채 주종 관계라 믿고 있었다.

그게 엇갈리자 서로의 얼굴에는 어색한 절망만이 남았다.

처음에는 아리아스필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걸 깨닫고 황급히 정정하려고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이미 체념한 채로 방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 후의 이야기는 지금과 같다.

“저도 어머니께서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와 달리 아인은 아리아의 자책을 말리지 않았다.

본디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등하게 공경한다 학습한 아인이었으나, 사역마로서 레오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지금 아리아를 옹호할 수는 없었다.

“...아인아...”

“외람된 말씀이오나 어머니의 말은 아버지에게 크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지만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출신을 콤플렉스로써 생각하고 있었다.

평민 출신이 스스로의 성장에 크게 발목을 잡는다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천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 아리아스필과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도 놓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리아스필은 레오가 자기최면처럼 말한 전속기사로서의 주종관계를 다시 상기시킨 것이다.

“지금 아버지는 내색하지 않을 테지만 많이 신경쓰고 계실 겁니다. 연인 관계를 강조하셨던 건 어머니일 테인데,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아인이 조목조목한 지적과 매도에 아리아의 표정은 점점 우울하게 굳어갔다. 자신의 딸이기에 더더욱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루미네와 앤젤라조차 아인의 말에 동의하는지 차마 말리지 않는다.

어째서 아리아가 주종 관계라 한 건지 그들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게... 그러니까...”

아리아스필의 시선은 오갈데 없이 흔들렸다.

이 이유를 말한다면 자신은 정말 쓰레기 같은 변태로 매도당할 것이다.

감히 레오나르도에게 그런 음험한 생각을 가져 상처를 주다니.

자신이라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제가...”

하지만 설명치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딸에게 저리 차갑게 경멸당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종이에요...”

“네?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악의없는 아인의 질문에 아라이의 얼굴은 완전히 수치심으로 붉게 익어버렸다.

자신이 목소리가 작은 탓도 있겠지만, 이 상황 자체가 그저 원망스럽게만 느껴진다.

자신의 딸과 성인들 앞에서 이런 음험한 욕망을 드러내야한다니.

“...레오가 주인이고 제가 종 역할이에요!”

부끄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아리아스필은 큰 소리로 자신의 추잡스러운 욕망을 드러내었다.

아인은 이해하지 못해 잠시 의문스럽게 굳었고, 루미네는 그 의미를 듣자마자 이해해버려 굳어버렸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유일하게 아리아스필과 동등한 수준의 성욕을 지닌 앤젤라는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해에 루미네는 새삼 자신 주변에 정상적인 여자가 없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레오가 오해했을까요?”

“의미 자체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하대하거나 비하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닌 건 이해했습니다.”

아직 눈치와 특정 지식이 부족한 아인은 아리아의 성인적 욕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어머니에게 악의가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좋은 딸은 그런 어머니를 도와야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있어서야 해결되는 건 없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아버지와 푸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렇지. 아인이 말이 맞아.”

아인의 논리정연한 말에 아리아스필은 새삼 자신의 딸이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이리도 못난데도 아인은 꿋꿋하고도 똑똑하게 자라왔으니까.

한심한 건 자신 뿐이다.

“제가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아버지도 상처받았을 뿐이고 분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될까? 난 사실... 네 엄마가 될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

“그건 아닙니다.”

아인은 어린 아이처럼 싱긋 미소를 지으며 아리아의 손을 잡았다.

“엄마께서 엄마여서 전 정말 행복하거든요.”

“아인아!!”

그런 기특한 딸을 끌어안으며 아리아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이런 딸이 와준 것에 자신은 진심어린 감사를 느낀다.

“고마워어...! 엄마가 진짜 잘할게...!”

“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더 잘하겠습니다. ”

아인은 덤덤히 말하며 흔들리고 있는 19세의 어린 어머니를 쓰다듬었다.

그 아름다운 모녀를 보며 루미네는 작게 중얼거린다.

“저희보다 성인 같네요...”

{...}

아인을 바라보며 앤젤라는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용사를 위로하는 모습이며.

어린 나이에 정체성의 기로에 놓여져 있음에도 가족을 이해하는 저 모습은.

아인의 모습은 자신보다도 더 성녀와 같았다.

“큰일이야!! 레오나르도와 적탑 마법사들하고 결투를...”

노크도 없이 호외를 전하러 온 리오스는 잠시 입을 다물고 그들에게 몰입했다.

리오스가 순애 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육아물이었으니까.

* * *

결투 장소는 적탑 중앙의 광장.

전투 마법을 많이 개발하고 연구하는 적탑인 만큼 중앙 광장은 주로 결투장와 연무장으로서 자주 애용되었다.

“하... 기가 찰 노릇이군. 적탑에 소속되지도 않은 마법사가 적탑주를 자처할 줄이야.”

“하암...”

“전대 적탑주가 당신에게 피해를 줬다한들 공과 사는 구분해할 줄 알아야하는 건...”

“하아암...”

눈앞에 모인 여덟 명 정도의 적탑주 후보가 설전을 부리는 와중, 레오나르도는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한 채 하품을 내기 바빴다.

평소 레오라면 설전에 밀리지 않도록 논리적인 반론으로 농락할 테지만, 지금 레오는 그런 걸 할 만큼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어제 일 때문에 힘든 건 알겠는데, 하품 좀 그만해라. 쟤들이 멍청해서 도발로 알아들어서 망정이지.]

<누가 아리아 때문에 힘들데요. 그냥 최근에 일이 많아서 그렇지.>

[난 아리아 때문이라고 한 적 없는데.]

현자의 예리한 지적에 레오는 평소처럼 쏘아붙이지도 못한 채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사실 어제 그 엇갈린 대화 이후로 레오나르도는 방에 돌아가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손톱을 깨물기 바빴다.

아리아스필이 어째서 다시 주종관계라고 말한 것일까.

분명 자신에게도 호감이 있다 생각했는데...

그건 오만한 착각이었나.

‘...아니면 마왕의 그릇 때문에...’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합리적이다.

아리아스필은 라인하르트의 장녀로서 아이를 낳아야할 책임이 있다. 마왕의 그릇으로 변질된 자신의 피가 섞이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불안할 터.

하물며 그저 연인이 되는 것도, 몸을 섞는 것도 자신의 불안정한 정신 때문에 거리를 두고자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내가 그런 식으로 아리아를 대했으니...’

[근데 아리아스필 까놓고 바퀴벌레 수인이여도 가능할 걸?]

“개소리 하지 마세요.”

“...뭐?”

축적된 정신적 피로와 현자의 깐죽으로 인해 레오나르도는 진짜 입으로 저들에게 대답했다.

적탑의 마법사들은 한숨과 하품으로 일관하던 레오가 거친 언성로 대응하자 짐짓 위축되었다.

“...우...우리 의견이 심하다 하여 그렇게 저속한 표현을 쓰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적탑의 마법사들은 말과는 달리 벌벌 떠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는 하나 상대는 레오나르도, 적탑주 제인 나르샤를 직접 죽이는데 일조한 천재 소탑주였다.

본래라면 이런 식으로 기선제압을 해 협상을 판도를 가져올 생각이었지만.

‘...저 눈빛... 저 말투...’

지금 레오나르도의 눈빛과 어투는 적탑 마법사들에겐 진심으로 공포를 자아내었다.

마왕의 그릇이라는 소문이 이젠 음해의 대상이 아니라 레오의 공포를 증폭하는 악명이 되어주는 순간이었다.

“...그런 훈계는 이기고서 하시죠? 아까부터 뭐하는 거잖는 겁니까? 마법의 힘을 경배하는 적탑의 마법사들이 결투로 증명하진 못할망정.”

대충 말한 것임에도 적탑의 마법사들에겐 반박할 여지가 없다.

해봤자 추하게 예의로 꼬투리를 잡는 것 뿐.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알겠다. 하지만 결투는 오늘 안에 시행하기로 명시했으니 우리 전원과 차례로 결투하도록 하지!”

어느샌가 모인 관중은 적탑의 비겁한 전략에 웅성거리며 몇몇 이들은 야유도 보내었다.

인원이 8명인 적탑주 후보들은 본인들을 버림패 삼아 천천히 레오의 체력을 깎아낸다는 술수를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이 전략을 채용하면 자신들 간의 분쟁이 더 커질 테지만, 지금은 가장 큰 장애물인 레오나르도 본인을 배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시든지요. 아니...”

레오나르도는 이내 당황하며 적탑 후보들 너머에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 이제와서 꼬리를 말 생각인가?”

“아니, 좀 비켜...!”

“결투를 먼저 신청한 건 너다! 순순히...”

적탑주 후보는 드디어 레오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생각했지만, 레오나르도가 관심을 가지고 긴장한 방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리아잖아...! 아침부터 안 보이던데 왜 지금...!’

[남자한테 뭔갈 적어주고 있는데?]

그 말대로 루미네와 리오스까지 함께하고 있는 아리아스필은 한 건장한 남자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주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냉정히 별일이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레오는 불안감과 피로도에 짓눌리고 있는 상황.

갖은 생각이 머릿속에 흘러넘친다.

그런 와중에도 적탑주 후보들은 눈치없이 레오를 자극한다.

“결투가 두렵다면 기회를 주...”

“하... 그럼 한꺼번에 덤비시죠!”

레오나르도는 진심으로 흥분한 기색으로 적탑주 후보들에게 외쳤다.

지금 일일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뭐...뭐라고!?”

“어차피 졸렬한 수작에 시간 낭비할 바엔 빨리 끝내고 가고 싶거든요. 얼른 시작하죠.”

레오나르도의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한다.

겉보기엔 패기있는 발언처럼 보이겠지만.

내용물은 질투심에 사로잡힌 한 동정이 있을 뿐이었다.

“네...네놈 아주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잠시만 참여해도 되겠습니까?”

이윽고 아리아의 옆에 있던 아인은 결투가 시작되기 전에 난입했다.

“전 레오나르도 님의 사역마입니다. 마법사에겐 사역마란 지팡이와 같은 도구이니 참여해도 문제는 없겠죠?”

“그게 무슨....!”

“여러분께서 그리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아인의 말대로 적탑의 몇몇 마법사들은 아인을 그런 도구 정도로 판단하고 해부해야한다 주장했다.

적탑주 후보들도 8명 전부 아인에 대해 배타적인 의견을 내비쳤으니 반박할 여론은 없었다는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결투를 끝내고 싶어하는 것 같아 난입했습니다.]

<아냐, 고마워. 근데... 조금 물어볼게 있는데...>

전음으로 대화하고 있는 레오는 이내 슬며시 아인에게 질투심의 질문을 내었다.

<엄마가 아까 남자한테 뭘 적어주셨어?>

[...어머니의 주요 인적정보를 적어주셨습니다.]

아인의 거짓말은 아닌 설명에 레오나르도의 손에 검은 대검이 쥐어졌다.

적탑의 마법사든, 그 같잖은 놈팽이든 간단히 썰어버릴 수 있는 크기와 무게였다.

[아인아, 아빠가 많이 급해서 새로운 기술하고 강한 기술을 많이 쓸 텐데 괜찮을까?]

<괜찮습니다. 저도 마침 새로운 유전 정보를 실전에서 실험해볼 때였습니다.>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레오나르도의 양손에는 신성과 마법이 번갈아 번뜩였고,

아인은 이윽고 용의 발톱 파편을 자신에게 박아넣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건의 전말]

“아...아리아스필 용사님 맞죠?!”

“...아...네. 그렇죠?”

“혹...혹시 싸인 가능할가요!? 저번 적탑주 사태 때 용사님 덕분에 살 수 있는데... 다시 만나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아리아스필은 싸인을 따로 만들어둔 것이 없기에 정자로 종이에 이름을 적은 채 남자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제대로 만들어둔 게 없는지라...”

“아뇨아뇨! 이것도 아주 멋진걸요!! 감사합니다! 소탑주님과 예쁜 사랑하세요!”

그러곤 남자는 가버렸다.

마지막 말에 아리아는 약간 기운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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