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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242화 (242/248)

“그래서 우선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돌려놔.]

“현 마탑에선 적탑이...”

[돌려놓으라고!! 새꺄!!]

고양된 흥분을 진정하고 대화를 진행하려는 레오에게 현자는 분노어린 명령과 시위를 내보였다.

몇 번 무시하고 넘어가려던 레오도 이젠 못 참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본인이 자조한 일인 줄도 모르고 불평을 지껄이는 꼴이 흑역사가 들추어진 회귀자의 분노를 자극했다.

“아, 그러게 누가 그딴 거 틀면서 비웃으래요?!”

[알 바야?! 지도 할 짓 다하고 내뺀 주제에!!]

현자는 뻔뻔하게 억울함을 표출하며 짜리몽당해진 팔과 다리로 버둥거렸다. 소년 모습으로 변한 현자의 쌩떼는 연기가 아니라 정말 그 나이 또래의 철없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저 배은망덕한 자식을 아주 그냥...흐으읍읍...!!]

{자자, 현자~ 조금 진정하시죠~! 레오나르도 님은 잘못이 없잖아요.}

현명한 떼쟁이를 성녀는 풍만한 가슴으로 자애롭게 껴안았다.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해서 발버둥쳐도 소용 없다.

체격으로서 현자는 이미 성녀에게 밀렸고, 지금 현자의 떼는 앤젤라에게 포상으로서 작용해 활력으로 치환되었으니 이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이어서 진행할까요?”

“아, 네. 그러죠.”

“...어...네.”

레오와 루미네는 저런 둘의 유치한 싸움이 전혀 놀랍지 않게 행동했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에일린과 아메리는 대위인들의 여과없는 추태에 차마 자연스레 수긍할 수 없었다.

평소 현자에 대한 존경을 자신있게 드러내던 아메리마저 저 모습에는 외면할 정도였으니까.

“우선 몸의 정밀검사는 하루 안에 끝낼 수 있는 걸로 간결하게 진행해보죠.”

마탑의 최신 장비를 사용하면 하루가 아니라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몸상태는 판별할 수 있다.

하지만 마왕의 수작질을 고려해 하루 정도로 여유를 잡았을 뿐, 더욱이 지금 마탑에 퍼진 음해를 생각하면 일처리는 빠르고 조용할수록 나았다.

“알겠네. 준비 부분에선 걱정하지 말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에일린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초대 현자와 성녀의 싸움만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본인과 대화하는 것도 에일린에게는 고역으로 다가왔다.

레오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지금까지 레오나르도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실리를 위한 연기였다는 걸 생각하니 지금의 레오를 차마 평소처럼 대할 수가 없었다.

책망할 순 없었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인간 관계는 어차피 가면을 써 속이고 구슬리는 촌극과 같다.

그건 에일린의 지론이자 템페리우스의 암묵적인 가훈이었다.

레오는 자신을 속였을지언정 실질적으로 큰 이득을 주었고 직접적 피해는 거의 끼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멋대로 준 마음이 쓰라릴 뿐.

“...얼른 가지. 할 일이 많으니 빠를수록 좋을 테니까.”

“아, 에일린 선배님. 선배님껜 다른 일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내 레오의 말에 에일린은 울적하게 입꼬리를 떨 수밖에 없었다.

선배라는 호칭, 예전엔 그 호칭이 정말 달갑게 느꼈으나 지금은 이보다 쓰라린 말은 따로 없었다.

이미 정신적으로 100살을 넘긴 레오에게 저 말은 썩 의미가 없는 표현의 일종에 불과할 테니까.

“...뭐지? 말해보게.”

“제가 검사받는 동안 다른 마탑주님을 소집해주셨으면 합니다. 마탑 건과 적탑으로 그분들게 해야할 말씀이 있거든요.”

“알았네. 지금 상황에선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

빈말이 아니라 생각보다 간단한 부탁이었다.

흑탑주 베르난 베르데인은 거의 병석에만 있는 채로 반쯤 시한부 인생을 보내고 있지만 통신 장비를 사용하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다.

흑탑주만이 아니라 다른 마탑주들 또한 현 상황에 대한 판단은 물론, 기억을 되찾은 레오와 대화를 하고 싶을 테니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하네요. 에일린 선배. 피곤한 와중에도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굳이 선배라 부를 필요는 없네.”

부탁과는 별개로 에일린은 레오에 대한 감정을 닫으려 했다. 레오에게 배신당한 건 아니지만 마음 속에 있는 기대에는 냉혹히 배반당했다.

“어차피 레오나르도 님께서 경험도 더 많지 않으신가요. 저에 대해서도 저보다도 더 잘 아실 테고.”

그 원인이 존재하지 않은 미래에 있다 생각하니 체념의 기미는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이젠 반말로 대화하기도 어려웠다.

“...에일린.”

그 반응을 보자 레오나르도는 에일린이 어떤 심리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에일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기억이 되돌아왔어도 그들은 죄책감 때문에서라도 평소와 같이 레오를 대할 수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지금도 네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

그 직설적인 화법에 에일린의 가슴이 비수가 꽂히는 것만 같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직접 듣는 건 감정이 아려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널 선배로 부른 건 단순히 아부나 빈말이 아니야. 내가 20살이든, 100살이든 마법사의 길을 걸었다면 널 선배라고 불렀겠지.”

하지만 에일린이 아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예상과는 사뭇 다른 말에 에일린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마저 놀란 눈치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난 널 성격적으로 싫어할지언정 인간과 마법사로서 존경하고 있어. 그건 누가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겠지.”

애초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번 정도는 말하고 싶은 사실이었다.

“1회차의 인생은 너희에 있어 존재하지 않는 과거고 미래일 거야. 나에겐 아니겠지만 적어도 너희들은 그렇겠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인정한 영웅들이었다.

“...레오나르도 님이 없었다면 분명 다가올 일이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이들이 책임감을 가질지언정 적어도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말았으면 했다.

“분명 난 너희들의 실패와 몰락을 봤어. 세상이 처잠히 무너져내리는 걸 내 두 눈에 단단히 새겼지.”

아직 이들은 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우린 아직 실패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성공할 테니까. 고개 들고 당당히 있자고.”

앞으로 이겨나갈 테니까.

“영웅이잖아? 너희들은.”

자신이 이기게 만들어줄 것이다.

조금이라도 영웅들이 합당히 행복해질 수 있도록.

“가시죠. 여러분, 할 일이 산더미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출구로 앞서 나가려 했다.

“그럼 레오 님은 은인이에요.”

아리아스필의 말에 방 바깥으로 나가려는 레오의 발걸음이 잠시 멈춘다.

아리아스필은 때때로 자신의 의표를 찌른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번 찌를 땐 아주 날카롭게 정곡에 닿는다.

“은인이라...”

다른 사람이라면 레오나르도도 마찬가지로 영웅이라 격려하거나 위로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본인은 스스로 영웅이라 자격이 없다 생각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선 레오는 분명한 영웅이니까.

“네, 레오나르도 님께서 영웅이 아닐지라도 분명 은인은 맞아요.”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알고 있다.

레오나르도가 단순히 영웅을 자칭하지 않는 건, 죄책감만 아니라 책임감에서도 나오는 문제라는 걸.

아리아 본인도 용사로서 그 감정을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쁘지 않은 칭찬이네요. 영웅보다 좋은데요?”

레오나르도는 이 격려에 한해서는 겸손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레오가 스스로를 악당이자 2인자라 생각하는 건, 자학만이 아닌 하나의 방어기제일 테니까.

* * *

검사 자체는 하루라는 제한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최신 장비뿐만이 아니라 검사하는 사람 또한 마법사 중에서 일류에 해당하는 인재들.

기본 신체 검사부터 마나 구조 심화 검사까지 받을 수 있는 검사는 전부 받아냈고.

“정상이네요오...?”

“완벽할 정도로 건강한 신체입니다. 선배님.”

검사진들조차 당황스러울 정도로 레오나르도의 몸은 건강했다. 마인은커녕 근간이 너무나 평범한 인간의 것이여서 역으로 놀라게 되었다.

“당장은 괜찮다는 거군요. 검사를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네요.”

레오나르도는 검사복을 갈아입으며 4시간 동안 검사로 굳은 몸을 기지개로 펴내었다.

당장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완전히 안심한 건 아니었다.

천천히 신체 변화가 오는 케이스일 가능성도 있고, 육체가 아닌 정신의 심층심리를 건드린 고도의 최면일 가능성도 놓칠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이 검출되셨습니다. 선배님. 조금은 쉬시는 편이...”

“오브,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나한텐 더 스트레스인 거 알잖아.”

바로 마탑주 간에 회의에 참여할 레오나르도를 보며 오브라이언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눈빛만큼에서는 선배를 존경하는 후배의 우려가 여실히 드러났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레오나르도에 대한 각종 음해를 잔류한 적탑 일행과 평소 레오를 시샘하던 이들에게 들었던 참이었다.

타인인 자신조차 이리 열불이 나는데 레오나르도 본인은 오죽하겠는가.

“...전 그런 소문 따위를 믿기보다 선배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검사 결과도 안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반은 사실이니 대놓고 부정할 순 없지. 그리고 너무 날 믿진 마.”

검사지의 확인을 끝낸 레오나르도는 말그대로 딱 한숨만 돌리고 바로 회의장으로 출발했다.

“나도 날 못 믿겠으니까. 그러니까 너흴 믿는 거고.”

“선배님...”

“레오나르도 님.”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검사장 바깥으로 나갔다.

“...근데... 이건 좀 이상하네요오...?”

“예? 뇌파 검사 말씀이신가요? 정상 수치일텐데요?”

아메리는 의문스러운 기색으로 뇌파 검사 결과를 살폈고, 오브라이언은 그런 아메리의 의문에 의아해했다.

검사상 수치는 정상이다 못해 오히려 좋은 상태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너무 활성화된 상태인 게 걸려요. 컨디션이 좋다고 오를 수치가 아닐 텐데...”

나쁜 현상은 아니었지만 왠지 마음에 걸렸다.

분명 기억력의 향상과 두뇌 회전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뇌파가 활성화됐음에도, 어째서인지 걱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우연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 * *

또다시 마탑 최정상층에는 모든 마탑주가 집결했다.

아니, 사실상 모두라 할 순 없었다.

굴욕적이게도 마탑은 공개적으로 적탑의 자리가 가장 불미스러운 형태로 공석이 되었다.

“...베르난... 너...”

청탑주는 그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씻을 수 없는 부상을 입은 자신의 친우를 바라보며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통신으로 얘기하거나 의체로 오는 것보단 본인이 직접 오는 게 좋지 않겠...나?]

베르난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몸으로 자동 휠체어에 의존하며 굳은 성대 대신 마도구로 말을 꺼내었다.

“...미안, 베르난. 내 치료로는 그 영역에선...”

[어차피 내 몸으론 언젠가 경험해야할 수순이었어. 아스피 자네가 책임을 느낄 일은 아니야.]

베르난은 그리 말하며 휠체어로 흑탑의 자리에 착석했다. 어차피 마도구에 한해서는 아메리에게 자신의 지식을 완벽히 전수했고, 그녀는 제작에 한해서 이미 뛰어넘은지 오래다.

다른 때라면 아직 인지도가 낮은 아메리에게 대리를 맡겨야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직접 오고 싶었다.

“오랜만입니다. 베르난... 흑탑주님.”

[이젠 흑탑주가 아니지. 오랜만일세. 레오나르도, 건강해보여서 다행이군.]

자신의 양자로 삼고 싶었던 레오나르도, 자신과 같이 밑바닥에서 시작한 레오가 괜찮은지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이건 레오 본인을 위해서만이 아닌, 베르난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애초에 그는 외부에 나와서 좋을 상태가 아닌 시한부 환자였다.

“적탑에 관한 겁니다.”

“...그들이 음해하는 것에 관한 거라면 당연히 조치를 취해야지.”

의외로 청탑주 쪽에서 가장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마법사라는 작자들이 지식인으로서 근거를 확인치 않고 선동에 놀아나는 건 같은 마법사으로서 굴욕이었다.

“애초에 현자님의 제자라면 신뢰할 수밖에 없잖아? 그걸 공표하면 바로 잠재워지긴 할텐데...”

가만히 있어서야 레오와 함께 있는 현자에게 뵐 낯도 없었다.

“아뇨.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분명 이렇게 호의적인 건 레오나르도에게 감사한 일이었지만, 레오 본인이 바라는 건 그런 해명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가 적탑주가 되게 허가를 내려주십쇼.”

레오는 아예 적탑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둘 생각이었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비밀을 알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직접 죽인 적탑주의 자리를 가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약제]

[내가 아리아스필 용사님과 자네의 결혼식 주례를 시켜준다면 바로 허락하지.]

“성황님께서 예약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냥 허락하겠네.]

베르난은 시무룩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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