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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240화 (240/248)

마왕

인간이 태어나고 인류라는 시대가 성립된 시점에서 가장 적대적이며 강대한 만악.

초대 현자와 성녀는 기억하고 있다.

그 존재가 움직였을 때, 세계의 어둠이 움직였다.

달의 보이지 않은 바다가 잠시 동안 세계에 드러났다.

그때의 공포는 생전에 악몽으로도 자주 나타났다.

그런 공포의 제왕이.

[네가 마왕을 꼬셨다고?]

용사 아리아스필의 연인인 레오나르도를 유일한 사랑이라 칭했다.

감정도, 성별도 존재하는지 의문인 개념적 존재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지금 생각해도 토악질이 나오는데.”

당연하게도 레오나르도는 그 행위가 순수한 사랑이나 호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 존재만으로 수없는 생명이 타락하고 죽어 나갔으며.

자신의 인생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그런 걸 사랑이라 칭한다면 아마 강간마나 살인귀들은 사랑의 수호자라 칭해질 테다.

[그 자식이 지능을 갖춘 것도 나한테는 충분히 경악스러운 일인데... 참...]

{...사랑이라니... 사랑이 정말 무어인지는 알고 운운하는 걸까요.}

현자와 앤젤라 모두 의문스러운 역겨움을 느꼈다.

루벤과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어둠 의 근본이 순수한 애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아, 아리아?”

이내 시리카는 아리아의 안색을 살폈다.

평범한 여성이 레오에게 대놓고 고백해도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 사람이 아리아스필이었다.

지금은 정신의 성숙도와 레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광적인 질투로 자중하는 편이었지만.

“마왕 죽인다 마왕 죽인다 마왕 찢는다 마왕 죽인다 마왕 태운다 마왕 죽인다 마왕 죽인다.”

상대가 마기의 왕이라면 아리아스필도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건실하고 제대로 된 미인과 레오와 이어지는 걸 상상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은데 마왕이면 어떻겠는가.

‘...감히...! 감히...! 아무리 레오가 매력적이여도 넘볼 게 넘봐야지...!’

아리아스필은 레오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마왕 죽인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레오에겐 아무 죄가 없다는 건 자신이 알고, 하늘이 알고, 성검조차 알고 있었다.

나쁜 건 그런 레오를 제대로 홀리려 하는 마왕이라는 이름의 도둑살쾡이 뿐.

‘...적어도 마왕만큼은 안 돼...!’

레오나르도가 아리아 자신을 선택하지 않아도... (정말 슬프고 가슴이 아프고 인생의 의미가 사라질 정도지만) 괜찮았다.

자신은 그래도 쌀 만한 짓을 수없이 해왔고.

레오는 그런 비수를 영혼이 깎일 정도로 꽂혔으니.

응당한 대가라 생각할 수 있었다.

마왕만큼은 레오와 이어지면 안 된다.

아리아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도 동의할 만한 의견일 것이다.

“...그럼... 마왕이 레오나르도 님을 좋아해서 기억을 되돌려줬다는 겁...니까?”

내용을 직접 요약한 크리스 본인도 잘 납득이 안 되는지 의문스러운 기색으로 질문했다.

아무리 레오나르도가 의식 없이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마성의 인물이라고 해도, 마왕이라는 미지의 존재마저 홀리는 게 가능한 이야기란 말인가.

하지만 여태까지의 레오나르도의 행적을 생각하면 아니라는 즉답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왠지 악의 없이 많은 여자를 울렸을 거라는 생각이 단순한 망상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런 거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그런 의도가 아닌 게 눈에 보이고, 이런 의도라도 불쾌하긴 하다’는 의미였다.

절대 마왕의 사랑을 원하다는 감정은 추호도 없었다.

“...”

하지만 아리아스필의 눈은 그 한 마디에 순식간에 생기가 없는 시체의 것이 되었다.

예전처럼 ‘좋아? 좋냐고?’라고 하면서 질투를 보이는 것조차 하지 못한 채.

천천히 동사해가는 조난객처럼 갈 곳 없이 시선은 떨리고 있었다.

“아뇨! 아뇨!! 사실 이것도 전혀 안 좋죠!!”

[아는데 왜 누가 추궁한 것마냥 호들갑 떨어.]

현자의 눈치 없는 지적에 레오는 홀로 항변한 게 민망하게 헛기침을 내었다.

그래도 자신의 정정 덕에 아리아스필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

“...분명 다른 의도를 두고 한 행동입니다.”

마왕이 말하는 사랑은 아마 자신의 그릇이 될 존재로서 사랑한다는 의미가 중점일 터.

아예 정신이 연결됐음에도 정신적 사랑은 고사하고 성욕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제가 기억을 되찾은 걸 촉매로 어떤 짓을 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의 태도가 돌변해도 이상할 게 없다.

기억이 변형되어 행동 패턴이 달라질 수 있고,

최면 같은 게 적용되어 일행들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으며,

‘...아예 내가 전원을 죽여버려도...’

자신이 모든 기억을 지닌 채로 자신의 동료들을 몰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내가 조금 더 빨리 결단을... 내렸어야했는데.]

그런 레오의 감정을 이해했는지 현자는 드물게 허리를 숙이며 공개적으로 사죄했다.

만약 자신이 대가에 망설이지 않고 기억을 복구했다면 레오는 마왕에 대한 근심을 조금 덜을 수 있었을 텐데.

생길 책임이 두려운 나머지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찾아내려고 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거다.

“괜찮아요. 아직 상황적으로 보면 피해보단 이득이 큰 편이잖아요. 위험성만 잘 배제하면 오히려 잘 된 거죠.”

단지 현자를 위로하기 위해서만 한 말은 아니었다.

기억과 함께 마법적 지식이 돌아온 지금, 현자가 말하지 않았던 방법과 대가가 자연스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예측에 대가까지 똑같다면 차라리 지금 기억이 되돌아온 것은 아직 악재라 평할 순 없었다.

{아뇨. 레오나르도 님은 아직 용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화를 내실 필요가 있죠.}

앤젤라는 그렇게 말하며 소년 모습의 현자를 쏘아보았다. 어린 모습이든, 늙은 모습이든 할 것 없이 현자는 이런 점이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중요한 문제는 감추고 홀로 생각하죠. 자신만이 가장 유능하고 현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게 동료로서 얼마나 굴욕적인지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리고 항상 열받게도 그가 그러는데에는 항상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홀로 고민해야할 정도로 무겁고 난해한 문제, 그걸 유일하게 함께 고민했던 인물은 용사 루벤 뿐이었다.

자신조차 의지하지 않은 채로.

[...반성하고 있어. 미안, 앤젤라.]

현자는 다른 때와 달리 변명 없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그건 현자가 이 상황에 대해 얼마나 큰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설명하는 방증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런 얼굴로 진지하게 사과하는 건 반칙이잖아욧...!!’}

귀여우면서 의젓한 소년의 모습으로 진중하게 보인 사과는 앤젤라의 가슴을 부풀어오를 정도로 두근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미소년의 귀염성과 미노년의 무게감.

이건 못 참는다.

[근데 레오, 이제 서클 쓸 수 있지?]

앤젤라가 침을 닦으며 입맛을 다시는 사이, 현자는 사과를 마무리하고 본론으로 되돌아갔다.

“쓸 순 있어요. 약간 굳은 감은 있지만 마법은 이제 쓸 수 있을 거예요.”

그 증거를 보여주듯 레오나르도는 손바닥을 펴 그 안으로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다.

1서클 마법이더라도 마법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형성됐다는 점에서 이미 마법은 제 실력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 소탑주 마검사의 귀환인데요!”

“검만 쓰는 건 아니지만요. 리오스 님.”

마법을 쓰는 감각이 퍽 나쁘지 않았는지 레오나르도는 이내 1서클 기본 원소를 마법을 번갈아 사용하며 기억의 힘을 즐겼다.

[하... 다행이네.]

서클과 마법의 작동을 보자 현자는 만족스럽게 안도를 드러내었다.

기껏 10년 동안 문외한 기사를 제대로 된 마법사로 만들어놓은 게 허사된 기분은 참담하다 못해 절망 그 자체였다.

지금이라도 회복이 된 것이 불행 중에서도 가장 큰 다행이었으리라.

[그럼 이제 원래 모습도 복구가 되겠어.]

게다가 이런 작달막한 임시용 소년의 몸뚱아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어느 때보다 다행이었다.

“아, 그렇겠네요. 제 서클을 응용하면 가능하겠어요.”

현자는 어디까지나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영체다.

그런 현자가 마나를 사용하고 물리력을 가할 수 있는 건, 레오 체내에 있는 서클을 연동시켰기 때문.

고로 서클 구동에 대해선 아예 문외한이었던 ‘레이널드’로서는 영체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 역량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레이널드 뿐만이 아닌 마법사이기도 한 레오나르도에겐 그런 역량은 차고도 넘쳤다.

{자...! 잠깐만요!!}

그런 대화에 황급히 끼어들어 저지한 인물이 있었으니.

“...앤젤라님?”

그리 놀랄 것도 없이 앤젤라였다.

현자의 모습이 되돌아간다는 이야기에 저지할 의견을 낼 인물은 그녀 외엔 없었다.

{...구, 굳이 되돌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그 모습도 충분히 좋고 정감이 가는...}

[어, 그건 아니야.]

방금까지 진중했던 현자는 속보이는 앤젤라의 주장을 경박히 무시했다.

이내 구동된 서클은 현자의 영체를 흡수하며 본래의 모습으로 재구성시켰다.

[히야~ 역시 이 모습이 진정된단 말이지.]

다시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네로 돌아온 현자는 호탕한 웃음을 내었다.

{...내 행복... 내... 빛... 내 삶과 희망이...}

[뭘 또 그렇게 오버를 하고 난리..]

{저렇게 늙고 못생기게...}

[때린다.]

절망한 앤젤라는 말다툼할 여력조차 없었고, 늙고 못생겨진 현자는 그러건 말건 궁시렁대며 성녀에게 더한 절망감을 선사했다.

분명 소년이었을 땐 포상이었는데.

노인일 땐 포만감보단 절망감을 체감시킨다.

“...그... 그럼 레오나르도 님, 기억 자체에는 문제가 없나요?”

차마 두 전설들의 추태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루미네는 황급히 주제를 진중한 본론으로 전환시켰다.

이젠 썩 놀랍지도 않았지만 현자와 성녀의 말다툼이 길어지면 항상 페이스가 다른 길로 새서 처박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네, 루미네 님. 중요한 정보부터 일반적인 일상까지 다 기억해냈어요. 오히려 평소보다 기억력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요.”

마왕을 칭찬하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기억에 장난질친 구간이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계 능력에는 기본적으로 버틸 수 있었고, 각종 파훼법도 알고 있었기에 넘겨짚은 건 아니었다.

[그럼 레이널드였을 때 했던 짓은 기억나냐?]

“...”

그 한 마디에 병석에서도 유창하게 말을 이어가던 레오나르도는 일순에 벙어리가 되었다.

레이널드로서의 행동과 기억, 그건 아무리 합리화시켜도 별개의 인물이 한 행동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술을 잔뜩 먹고 한 주정을 부린 채, 다음날 아침이 되고 이불을 차면서 자신의 추태를 떠올리는 정도가 지금 레이널드와 레오나르도의 간극이었다.

“...아, 아무래도 그 기억은 정보로서 가지고 있지만 제가 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네요. 1회차와 2회차가 분리된 감각이라... 표현하는 게 맞을 거예요.”

그래서 우선은 잡아떼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 이건 억울한 기분이 제법 들었으니까.

내가 잘못해서 난 일도 아니고, 나만 잘못한 것도 아니잖나.

“...죄송해요. 기억이 안 난다는 핑계를 대는 것 같아서...”

“아니에요! 아니죠! 그럴 수 있어요! 저도 비슷한 걸요!”

일부러 불쌍하게 사과하자 아리아스필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레오나르도를 전혀 책망치 않았다.

비겁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반쯤 억울하게 망신 사는 것보단 훨씬 모두에게 나은 선택지일 것이다.

[아, 그래? 그럼 기억을 좀 되새겨줄까?]

현자는 처음에 악의를 가지고 질문한 것이 아니었지만, 레오의 표정을 보니 장난기가 샘솟았다.

“...예? 그건...”

[예라고 했다.]

의견 존중은 어린 모습과 함께 버린 현자는 그대로 손가락을 튕기며 한 영상을 재생했다.

[자, 쇼타임이다.]

쇼타임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덮어두려한 2회차의 흑역사가 시작된다.

[넌 뭐야. 내 기억에는 너 같은 꼬맹이는 전혀 없거든.]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한 어린 딸에게 모진 말과 상처를 낸 것.

[이 암캐야, 서큐버스 퀸 정도가 아니고서 이정도로 날 따먹고 싶어서 미친년은 본 적이 없어.]

자신이 제일로 사랑하는 용사이자 여성을 저급한 암캐인 몽마에 빗댄 것.

[새끈한 천사인데, 의외로 머리가 나쁘시네.]

그리고 주변인들을 성적인 부분까지 희롱한 것까지.

모두 본 레오나르도의 소감은 하나의 행위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그 레오나르도 님...? 저흰 정말 괜찮은데...”

“아... 다행이네요. 죄송해요. 잠깐 기억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바람 좀 쐬겠습니다.”

“...거기... 창문인데요?”

레오나르도는 창문을 열어 창틀에 발을 올린 채 바람을 낙하 방식으로 쐬려했다. 그 행동에 일제히 모든 사람들이 레오를 붙잡았다.

“우선! 우선 진정하시고...!!”

“놔요!! 죽을 거야!! 으아아아아아!!”

레오나르도가 발버둥치는 와중.

그 행도에 아리아는 짧은 정색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레오의 동작에는 몹시 어색한 위화감이 존재했다.

“잠시만요!”

이내 가느다란 팔에서 나온 괴력은 실랑이를 부리는 레오의 몸을 바로 잡아당길 수 있었다.

“아, 아가씨!”

레오의 힘이 아리아에 비하면 못할지언정 1초도체 버티는 건 분명 이상했다. 완력에선 지금 레오도 나름 뒤지지 않았으니까.

“웃옷 좀 벗길게요!”

아리아스필은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레오의 겉옷을 벗겨내었다. 손날에 단추는 후두둑 떨어지며 맨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건...”

[...젠장...]

레오나르도의 등판을 바라본 사람들은 이내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금제가 남아있어.]

신성의 금제, 레오를 속박하는 금제가 몸에 남아있었다.

자결 방지의 속박이 아직 레오를 지배하고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환장의 커플]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반신을 벗는 채 있는 건...”

“아...! 죄송해요!! 너무 급하게 놀라서...!”

황급히 아리아스필은 레오의 아공간 망토를 가져와 반나체인 그의 몸을 덮어주었다.

‘...으으... 어떡하지... 이런 핑계로 또 사심 채운 것처럼 보이면... 그래도 1초만 더 봤으면 진짜 못 참았을지도오....’

아리아스필은 스스로의 변태성을 자책하며 억누르고 있었고.

‘...아가씨... 평소라면 혹시 모르니 확인 더 하면서 얼굴을 붉힐 텐데... 역시 레이널드 때 있던 정나미가 다...’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의 감정이 자신의 문제로 식은 건가 심히 전전긍긍했다.

환장할 노릇이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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