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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237화 (237/248)

사실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용병 생활을 하다 실종된 어머니를 찾겠다고 열 살배기 아이가 사람의 목을 친 시점에서 비상식이었다.

평범한 아이라면 그대로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그대로 포기하고 체념한 채로 생활에 적응할 것이다.

그게 당연한 운명이었고, 그걸 거스른 대가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

처리하고 나서 물품을 뒤진 용병의 품에서 가족 사진이 나왔을 때,

도적단일지언정 가족과 같은 동료들을 방화로 소각시켰을 때에도,

예전에 같이 일을 했던 용병의 목을 찔러죽였을 때까지.

그들의 손이 자신을 수렁 속으로 잡아당긴다.

내가 한없이 사라지는 걸 원하는 것처럼.

악몽의 굴레가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젠 악몽에서 깰 수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밤에도 태양은 있었고.

해가 떠오르면 악몽이라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밤이 돌아와도 괜찮았다.

아무리 긴 밤이라도 새벽이 있고.

언젠간 태양이 뜰 거라는 걸 기대할 수 있게 됐으니까.

* * *

갑작스러운 고백들이 이어지자 아리아스필의 사고가 둔해진다. 레오에게 어두운 과거가 있는 건 몰라서는 안 될 정도로 확실했다.

하지만

저렇게도 분노에 찬 얼굴에서, 눈동자에 비친 혐오감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오히려 저 시선 속 혐오감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어졌어. 네가 네 입으로 그딴 소리를 한다는 시점에서.”

레오나르도는 흑빛의 검을 쥔 채로 아리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혐오가 상처를 내며 파고들어간 눈에는 실망스러운 진물이 흘러내렸다.

“...레오...”

아리아스필은 흘러내리는 눈물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용사의 의무를 지지 않더라도, 용사로서 각성해야 마왕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 말해야 하는데.

부스러기나마 남아있는 염치가 입을 틀어막는다.

“내 손으로 널 죽일 거야. 편히 갈 생각은 하지도 마. 아주 고통스럽게 살점 하나하나를 짓이겨 거 테니까.”

이윽고 레오는 차갑게 서린 검날을 집어든다. 검날에서 흘러내리는 건 뜨거운 핏물.

오러의 형태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크리스가 만드는 톱날 같은 오러보다 난폭한 순환 방식, 아마 제대로 맞는다면 용사건, 아리아스필이건 즉사한다.

푸욱...!

“레오나르도!!”

선혈이 터지자 모두가 일제히 경악한다.

수없는 전장을 거닌 그들조차 저 행동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방해꾼이... 끼어들면 쓰나.”

레오는 자신의 어깨죽지와 목죽지를 검은 돌로 일순에 베어 피를 흩뿌렸다. 아리아에게 낸 상처와 똑같은 위치와 형태인 건 우연이 아닐 거다.

핸디캡, 이런 상처를 내도 너 정돈 이길 수 있다는 도발이다.

“[제게는 죄업밖에 없습니다.]”

다만 도발만을 의도하고 자해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죄업은 제 피에 녹아있고.]”

이미 주변에 자국으로나마 피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아리아스필도, 다른 라인하르트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죄업은 세상을 감옥으로 만듭니다.]”

[성혈투술-붉은 성역]

검붉은 신성이 피를 머금은 대지에서 솟아나며 성스러운 결투장을 형성시킨다. 중심은 레오가 짙게 흩뿌린 선혈을 축으로 이루었다.

‘...몸이... 무겁...진 않네...?’

본래라면 붉은 성역은 마나를 뺏는 성질이 있을 텐데, 지금 아리아스필은 급격한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마나가 미약하게나마 줄어들고는 있었지만, 처음 저택 내부에서 사용했을 때보단 미미한 효과를 내보였다.

“뭘 안심해?”

콰앙!

도끼질로 시작된 폭발, 아리아스필은 황급히 몸을 굴려 피해냈지만 뜨거운 열기는 살갗을 따갑게 에었다.

“아리아!!”

“아리아스필 님!!”

바보가 아닌 이상 레오가 진심으로 아리아스필을 죽이고자 하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레오의 움직임은 백수의 제왕 자리를 놓고 일기토를 벌이는 맹수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팔의 움직임이...’

아리아스필은 처음 도끼로 입은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상황이다.

상처가 자체가 깊은 것도 있었지만, 검은 신성과 폭발의 열기가 일으킨 복합적 피해는 쉽게 치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레오의 어깨죽지와 목부위의 상처가 아예 문제가 안 되는 듯 육중한 도끼를 쾌속으로 움직었다.

‘검은 돌로 상반신 절반을 봉합했어...!’

간발의 차로 피했을 때 아리아는 확실히 보았다. 들고 있던 검은 장검은 기사의 갑주이자 환자의 깁스처럼 레오의 부상을 보호해주었다.

아마 저 상태라면 평소보다 더 나은 움직임으로 공격해도 납득할 수 있다.

“이제 와서 가족 도움은 바라지도 마. 혼자 해결하려고 했잖아?”

외부에서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의 생사결을 막고자 하는 일행은 붉은 성역의 장벽 앞에 가로막혔다.

붉은 성역의 효과가 약한 건, 외부여서가 아닌 성역 결계의 강도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네 가족들 앞에서 토막토막 썰어줄게. 그래야 내 기분도 좀 풀릴 것 같으니까.”

레오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건 혐오였다.

도움을 요청할 가족이 있음에도 홀로 떠안으려는 멍청이에게 진심으로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왜 도망쳐? 죽고 싶다며. 내가 죽여줄게.”

아리아스필은 덜 회복된 몸으로도 레오와의 거리를 넓게 벌릴 수 있었다. 붉은 성역으로 인해 완전히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사 시도해도 그 전에 레오에게 당할 테지.

‘...차라리...’

레오의 입장과 심정이 이해되고 있음에도 죽는다는 선택지는 여전히 아리아에게 남아있다.

용사의 의무를 행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마왕의 수렁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뿐.

자신의 죽음으로 보상받을 수가 있다면.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도망만 칠 건데?”

레오나르도의 말에 그런 잡념이 깨진다.

복구한 팔에는 무한히 장전할 수 있는 활이 쥐어져있다. 화살촉에는 레오의 피가 살짝 묻어있다.

쐐애액!! 화살들은 붉은 유성우처럼 도주하는 아리아스필에게 쇄도한다.

아무리 도망쳐도 성혈투술을 적용한 화살은 추적은 멈추지 않는다. 결계가 쳐진 지금, 더는 도망칠 곳은 없었다.

“같잖게 책임이나 떠넘기고, 자기 마음만 편하게 도망치려고 하는 겁쟁이년.”

매도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전투만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제대로 싸우라고!”

레오는 자신의 태도 그 자체를 경멸하고 있다.

용사로서 마왕과 직접 싸워나가야할 책임에서.

레오의 노력을 제대로 응대해야할 책임으로부터.

죄책감, 죄의 책임에서 자신은 죽음으로서 도망치고자 했다.

레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이미 깨달아놓고선.

합리성을 빙자해 레오의 의사를 무시했다.

레오의 반려를... 아니 노예를 자처해놓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꼴이었다.

“나...최악이네.”

지금 자신은 레오에게 경멸당해도 싼 여자였다.

자신 위선 안에 내재된 악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

퍼억! 퍽! 퍼퍽!

아리아스필은 날아오는 화살들을 전부 정통을 맞았다.

당당하게 맞선 것처럼 보이기 할 정도로 성검으로 튕겨내지조차 않았다.

인피니보우로 형성된 화살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고 그대로 폭발되어 아리아의 육체 관절을 망가뜨린다.

특유의 강골과 몸에 두른 오러 및 신성이 아니었다면 분명 신체 부위가 떨어져 나갔을 위력이었다.

“...멍청한 년, 포기한 거냐?”

레오나르도는 바보가 아니다.

방금 그 눈은 포기한 눈동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고 아리아스필에게 돌진했다.

이대로 끝낼 수 있기에,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반격할까 기대되었기에.

원거리에서 숨통을 조이는 건 그만두었다.

근거리에서 대검으로 마무리해 아리아를 끝내버리는 게 극상일 것이다.

카앙...

“...뭐야?”

그리고 레오는 이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충격으로 무릎 꿇은 아리아스필은 성검으로 레오의 검은 대검을 막아내었다.

검은 돌로 만든 대검을 막는 것 자체는 가상하다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너무 약하잖아!”

막아낸 힘이 너무 비실거렸다. 한손으로 막아내고 있어도 방어 기술 자체도 너무 허접했다.

‘...결국 이딴 식으로 포기하는 거야?’

실망스러운 기색이 여실히 드러낸다. 대검이 그대로 성검을 찍어눌러 아리아의 반대쪽 어깨에 다른 상처를 냈을 때.

그 한심한 작태에 레오는 진짜 아리아를 죽여버리는 상상까지 해버렸다.

“진짜 시시하네. 상대할 가치도 없어.”

“...레오, 그거 알아?”

대검이 점점 어깨를 눌러 상처를 깊게 내고 있음에도 아리아스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두려움에도, 망설임에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레오는 항상 상대를 방심시키는 걸 잘하잖아?”

제대로 싸울 거니까. 어떻게든 이걸 테니까.

카앙!!

“그래서 나도 따라해봤어.”

남겨둔 힘을 한꺼번에 분출하며 아리아는 성검으로 레오의 대검을 튕겨낸다.

방심한 레오의 망토 안으로 아리아스필의 반대팔이 들어간다. 아공간을 그대로 헤집은 손은 레오의 장비 하나를 끄집어낸다.

파지직!!

갑작스러운 돌변 탓일까, 레오나르도는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하고 전격에 몸을 물러세운다.

아리아스필의 손에는 뇌격의 창 풀고르가 쥐어져 있다.

“...재밌네. 용사 대신 도둑고양이라도 하려고?”

그런 실책에도 레오는 분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걸 기다렸다는 것처럼 눈빛에 생기가 돋는다.

“이기려면 뭔들 못하겠어.”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레오는 만족하고 있었다.

탈태 같은 성장을, 극적인 각성을 기대했다.

“하지만 네가 천재여도 창술로 나한테 덤비는 건...”

“적을 걱정하는 거야?”

애초에 창술을 목적으로 가져온 게 아니었다.

아리아스필은 풀고르를 그대로 몸에 꽂아넣는다. 성혈투술로 이미 과부하에 다다른 몸에 전격으로 신경을 억지로 일깨우고 있었다.

“너 미쳤...!”

레오나르도조차 실행할 생각조차 없고 실행할 수도 없는 광기, 자신이라도 저걸 하면 즉시 죽거나 기절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제대로 맞서고 죽을 거야.”

아리아스필은 더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대로 풀고르의 충전에 힘입어 아리아는 연격으로 맹진한다. 1회차 전성기 아리아스필조차 저런 속도는 내지 못했다 자신할 수 있다.

몸에 있는 상처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속도로 풀고르로 지져 이여붙여놓은 상태였다.

“...나도 마찬가지거든...!”

레오나르도도 각오로는 만만치 않았다.

속도로도, 힘으로도 밀리고 있지만 아리아스필은 이미 마나도, 신성도 대부분 소진한 뒤였다.

아무리 힘을 짜내도 평소 자랑하던 광선도 한번이 한계일 터.

설사 안 쓰고 난격을 이어간다해도 아리아의 지구력으로서는 20초 정도가 한계일 터.

“...방심하지 말라고.”

아리아는 레오의 얼굴을 향해 풀고르를 투창한다. 얼굴을 스치고 날아가는 뇌전의 창, 그대로 솟아올라 아예 결계 천장에도 구멍을 낸다.

“네가 하는 거 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격전.

일말의 존중만이 있는 결투.

“그럼 보여줄게.”

아리아스필은 그대로 성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저 자세, 혼신의 일격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광명이 인다. 지면이 갈라지며 붉은 성역이 아예 부서질 정도로 폭파, 그 폭발이 빛 한 줄기마다 뿜어져 나오면서 엮어져 하나의 기둥을 이룬다.

“...이래서 널 미워할 수가 없어.”

레오나르도는 검은 돌을 방패삼아 정면에서 받아낸다. 손에 꺾이며 타는 것 같지만 지금 만족감에 있어선 아깝지 않은 손해다.

자신은 이런 걸 기다리고 있었다.

마왕조차 이런 처절한 행복을 내주지 못할 것이다.

아리아와 싸우는 순간, 살아있다는 직감을 가장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때였다.

“...하지만...”

질 순 없었다.

이미 이 싸움은 자신의 승리로 끝났다.

아리아스필은 전력을 다했지만 그 때는 너무 늦어있었다.

섬광의 기둥이 사라지고 탈진해있는 아리아는 승패를 가르는 증명이 되어주었다.

“나름 만족스러웠어. 죽이기 아까울 정도로.”

“...”

아리아스필은 아무 말이 없다. 이젠 말할 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합격점이다. 적어도 죽겠다는 멍청한 소리는 안 지껄이겠지.

쿠르릉...

그렇게 확신할 찰나, 하늘에서 천둥 소리가 울린다. 맑은 하늘에는 어느새 먹구름이 뒤덮였다.

정확히 이 부근만.

“...정령...?!”

변형된 붉은 성역 안에서도 몇몇 정령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거대한 적란운을 즉시 만들어낸다는 건 전문 정령술사조차 불가능했다.

‘...설마 일부러 풀고르를...’

공중에 풀고르를 던져 정령들에게 마나를 추가적으로 공급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그런 식으로 작은 먹구름이라도 만들려고 한 건.

“...내리쳐.”

번개를 만들기 위해서.

명령에 따라 정령의 힘 아래에 번개가 내리친다.

콰르르르르릉!!

성검과 유사한 위력, 분명 피하지 못하고 직격했으면 분명 자신이라도 쓰러졌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이미 자신도 탈진하기 직전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 생각한 걸 역으로 이용해 몰아붙이다니.

천재라는 존재에 다시 경외를 느낀다.

이젠 죽겠다는 거에 화내기도 뭐한 상황이다.

가급적이면 원만하게...

“...아직...”

파직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아리아스필은 목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소리가 울린다.

“...말도 안돼.”

레오 본인이 직접 그 말을 입에 담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만큼 아리아는 예측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성검에 번개를...”

번개는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성검에 부족한 마나를 보충해 신성을 만들기 위해, 그걸 위해 정령과 자연까지 이용했다.

가짜 성검의 방식, 그걸 진짜에 덧대내었고.

“안 끝났어어!!”

아리아스필의 성검은 낙뢰 같이 일순에 광선을 휘둘렀다.

레오에겐 더는 피할 힘이 없다.

막을 힘도 있을 리가 없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내가 졌네.”

성검이 레오를 휩쓴다.

분명한 패배, 그럼에도 불쾌하진 않았다.

승리를 위해서 맹목적인 달려온 레오에게도.

‘상쾌하네.'

만족스러운 패배란 존재했다.

그렇게 눈을 감았을 때.

<그렇게 공허하면서 그렇게나 만족스럽나?>

마왕이 나에게 나타났다.

그러곤 말했다.

기억을 되돌려주겠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몸이 덜 회복됐더군요.

이 전개를 조금 더 빨리 넣어야했는데, 빌드업 및 개연성 때문에 고민하느라 많이 미뤄버린 점.

정말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즐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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