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간으로서 무언가 망가졌다는 걸 알고 있다.
10대가 되기 전부터 스스로가 인간으로서 이질적이라는 건 알아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계기가 명확지 않았을 뿐.
검을 들고 싸우며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확연했다.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존재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양지의,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감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3살 때, 그 애를 만나고 나서야 난 멈출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구원받았다 생각한 건.
* * *
[...그래서 이게 무슨 상황이라고?]
현자는 진심으로 납득이 안 되었는지 연무장에 서선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데이트라는 걸 몇 번이고 부정하긴 했지만 분위기상으로나, 내용상으로도 완벽한 데이트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대련하려는 거... 아닐까요?”
[그걸 누가 몰라?]
물어본 현자도, 대답하고 있는 루미네도 연무장에 선 성검의 용사와 마왕의 그릇을 보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도리개질을 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으레 있던 일이기도 했다.
분명 데이트로 시작했는데 마무리는 항상 부부결투로 끝맺는 기이함.
격정적으로 싸우면 싸울수록 둘은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결투와는 지금 상황은 무게가 달랐다.
{...두 분의 눈동자가... 정말 상반되었군요.}
눈빛을 따지기 전에 시선부터 서로 엇갈렸다.
아리아스필은 평소와 달리 눈을 지면에 깐 채로 상대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평소 아리아스필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물며 결투라면 더욱 레오의 눈을 마주쳤을 텐데.
차마 왕족에게 시선을 못 마주치는 평민처럼 아예 고개마저 수그렸다.
[...저런 식으로 보면 나라도 눈 깔 것 같긴 해.]
레오는 아리아의 시선회피가 납득될 정도로 집요히 그녀를 노려보았다.
살기는 없었다. 단지 텅 비어있는 공허한 동공으로 아리아를 직시했을 뿐.
그뿐임에도 공포는 존재했다. 저 눈의 수면 아래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예상되지 않았다.
레오의 시선은 한 번의 미동도 없이 아리아를 직시했다.
사냥하고자 하는 짐승을 넘어 맹목적으로 적을 죽이고자 하는 맹수의 눈빛이었다.
“...꼭...”
아리아는 죄악감에 시선이 압박되는 걸 체감했다.
나들이를 즐기던 레오는 아리아의 제안 한번에 성격이 뒤집힌 것처럼 귀신의 눈으로 그녀를 정색으로 대했다.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본질을 눈치챘다면 일방적으로 구타해도 할 말이 없다.
레오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희생했다.
자신의 제안은 그 희생을 기만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싸워야 하나요? 대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싸울 수가 없었다.
레오와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어. 싸워야 해.”
단답이었다.
차가운 어투였다.
얼음장처럼 딱딱하다는 의미보다는
차갑게 벼려진 금속처럼 날카로운 한기가.
지금 레오에게는 있었다.
“네 말대로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해결되는 문제라면.”
승부을 통제하는 심판 따위는 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는 연무장을 선택한 건, 둘을 격전을 그나마라도 버틸 수 있는 장소가 라인하르트의 연무장이기 때문.
본래 라인하르트 일가조차 보지 않았으면 했을 싸움이었다.
레오 자신이 이긴다면 정말 끝까지 할 테니까.
“칼 뽑아.”
“...그 레이널드 님...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는데 왜 갑자기...”
이 결투는 리오스를 포함한 다른 가족도 당황스러운 사태였다.
나가기 전만 해도 웃으면서 아리아의 사정과 고민을 들어주겠다 했던 사람이 일순에 냉정히 뒤바뀌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고생 끝에서 간신히 돌아온 딸아이를 제대로 쉬게 해줄 틈도 받지 못한 시리카는 엄마로서 걱정의 동요가 배가 되었다.
“모르면 끼어들지 마. 가주 권한으로 명령하는 거다.”
가주라는 말까지 덧붙이자 이 자리에 있는 직계 일가도, 신전의 성인과 마탑의 현자마저.
지금 레오가 다른 어떤 때보다 냉혹히 결투에 임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소름이 돋는다.
“칼 뽑으라고.”
레오의 재촉에 아리아는 기운이 억눌린 상태로 손에 성검을 쥔다. 성검의 날은 아리아의 감정을 대변하듯 탁한 백색으로 햇빛을 반사했다.
“시작한다.”
“네... 알겠습니다...!”
카아앙!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검날을 부딫치며 울렸다. 시작을 통보했고 인지했음에도 기습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레오의 검격이 난무한다. 예상하기 힘든 각도로 칼날이 치고 들어오며 절묘하게 절제된 보법이 아리아의 공방을 난해하게 꼬아낸다.
이미 레오나르도는 성혈투술을 사용해 신체능력을 상승시킨 뒤였다.
‘...나도...’
의욕이 고갈되던 아리아도 반격을 해가며 성혈투술을 맞수로 사용한다. 레오와의 결투에서 건성으론 임할 수 없었다.
이 이상으로 레오의 감정을 능욕해서는 안 되었다.
타앙!! 파앙!!
그런 생각마저 오만하다는 걸 2합을 더 맞대자 이해할 수 있었다. 레오의 검류는 유려한 곡선을 유지하면서도 예리하게 아리아의 약점을 찍어눌렀다.
이미 내부 구조를 알고 있는 성을 공략하듯, 철저하고 처절하게 공격이 방어를 뚫어낸다.
레오에게 아리아의 검술, 무술, 육체 하나하나를 이미 정보로서 전부 정독한 지 오래였다.
자신이 직접 만든 성혈투술을 가르치기 위해 변화한 그녀의 전투 방식과 성품마저 분석해 교육시켰기에.
‘...생각을 엿보이는 느낌이야.’
다음 수를 내는 즉시 아리아에겐 최악, 레오에겐 최선의 검격이 흘려쳐진다.
레오가 휘두르는 검은 돌은 수시로 모양을 바꾸면서 아리아에게 적응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검술로 반격을 시도하면 장검으로 검격을 전부 흘려냈다.
속도로 승부하고자 하면 세검로 연속해 찔러대었다.
완력으로 눌러대고자 하면 대검으로 맞받아쳐 밀어냈으며.
마나 총량으로 밀어붙이면 방패를 들어 체력을 낭비시켰고.
방어적으로 테세를 취하면 육중한 망치와 도끼가 아리아의 성검을 난타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외부에 있지 않았다.
“내가 너랑 해본 싸움 중 가장 실망스러운 결투야. 아리아스필.”
아리아스필의 정신은 이미 용사이기 전에 본인의 정신이 금이 가있는 상태였다.
죄책감은 정신의 검신에 녹을 먹였고, 혐오감은 감정의 검날을 무르고 무디게 깎아내었다.
그런 만신창이의 내면이 레오에겐 보였고.
“진심으로 싸우는 않는 네가 진심으로 역겹다.”
진심으로 용사의 나약함에 경멸했다.
수직으로 내리쳐진 레오의 검격이 아리아를 무릎 꿇린다. 성검은 불괴의 무구로서 충격과 무게를 견뎠지만 아리아의 다리는 달랐다.
아무리 강골이라고 해도 관절이 혹사키고 중심을 잃은 상태에선 맥없이 힘에 밀릴 수밖에 없다.
‘반격을...’
“날 쓰러뜨릴 생각이 전혀 없잖아!!”
뒤늦은 반격을 질책하듯 아래에서 올려치는 폭렬의 도끼, 아공간에 갑작스레 등장한 폭탄으로 만들어진 도끼가 폭발한다.
“꺄아악!!”
갸날프고 고통스러운 비명, 오러를 본능적으로 모아 어깨를 보호하지만 폭발 너머로 날아오는 날을 피해낼 재간은 없다.
“아리아!!”
저 일격은 치명적이다. 신속히 치료하지 못하면 아물어도 후유증이 남을 중상임에 틀림없다.
가족들이 일제히 아리아의 이름을 외치자.
“꺼지라고 했지.”
레오나르도는 그런 그들에게도 경멸을 내비치며 말만으로 제압한다. 시선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 무관심이 역으로 압도당하게 만든다.
“...하아...콜록...”
광전사와 싸울 때조차 이렇게 혼란스럽고 나약하게 당하지 않았다. 그때는 순전히 적을 처부순다는 생각만 할 수 있어 모든 신경을 동원해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은 도저히 레오와 싸울 수 없다.
싸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베여죽고 싶었다.
레오가 죽이고 싶다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
자신이 죽는다면 레오도 용사로서 살 수 있게 된다.
퍼억!
“이제 됐어.”
레오의 발길질이 아리아의 얼굴을 걷어차버린다. 그대로 바닥으로 구르며 아리아는 흙구덩이로 몸이 더러워진다.
“내가 널 끝낼 테니까. 마왕보다도 먼저.”
아리아스필은 성검을 제대로 쥐지 못한 채로 다가오는 레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망칠 의사조차 내비칠 수 없다.
죽겠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레오를 위해서.
“기억할 가치도 없어졌다고.”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검을 다시 들어올린다.
그래, 기억하지 않은 게 나을지도 모른다.
레오가 날... 영원히...
“이럴 줄 알았으면 회귀 따윈 안하는 게 나았는데.”
카앙!
섬광 같은 일순이다.
깜빡이는 순간 보인 찰나에는.
“...어...?”
아리아스필은 성검을 쥔 손으로 레오의 검을 막아내었다.
본능이었을까?
우연이라고, 반사적으로 했다고 하기엔 아리아의 손은 레오의 검과 마찰하며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팔의 힘은 굳세게 레오의 오러와 체중을 견디고 있다.
“왜 그래? 너 죽고 싶었잖아.”
막은 건 분명 본능이라 변명할 수 있었다.
10년을 넘도록 검을 휘두르며 생긴 습관이라 말해도 위화감은 없었다.
“...레이...널드 님...”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천천히 힘을 주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검을 맞부딪치는 와중에도 몸을 일으키는 건 습관이라고 둘러댈 수 없는 자의였다.
“막상 죽을 것 같으니까 이제 와서 꼬리를 만 거야? 생각보다 더 추하네.”
레오나르도는 그리 말하며 아리아스필의 배를 밀어찬다. 얼굴을 찼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각이다.
아리아의 복근이 잘 단련된 건 알고 있지만, 이 타격감은 분명 오러와 신성을 불어넣은 감각이었다.
“...추한 건 맞아요.”
아리아스필의 눈에는 약간이나마 생기가 돌았다.
정말로 죽음으로 몰아졌기 때문일까.
목죽지와 어깨죽지 사이에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가 아리아의 몸을 자극시킨 건가.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납득이 되기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귀 따윈 안하는 게 나았는데.’
단지 레오를 위하는 행동을 하는데, 레오가 후회한다는 말을 듣는 게.
그 말을 듣는 것 자체가 가슴이 아파서.
그 아픔에 본인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이윽고
“...그래도 전... 레이널드 님께서, 레오나르도라는 사람이 용사가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리아스필은 숨기지 않고 지금 생각을 표현했다. 홀로 꾹꾹 눌러뒀던 고민을 털어놓는다.
바로 앞에 있는 레오도, 멀찍이 있는 다른 가족들도 그 이야기에 눈빛이 바뀐다.
지금 고민은 그만큼 홀로 해결하기에 어렵고 무거운 고뇌이었다.
“왜?”
레오나르도는 이유를 질문했다.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저 표정, 저 어투, 말내용까지.
비꼬는 어투가 아니라 진심으로 의문스럽게 이유를 묻고 있었다.
어투가 예고없이 가벼워지자 아리아도 덩달아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당황에 흔들릴 만큼 지금 의지는 무르지 않았다.
“레이널드 님께서... 저보다 경험도 많으시고...”
“경험은 많은 게 어쨌다는 건데?”
“정신력보다 저보다 강하시고...”
“정신력이 강할지도 몰라서 어쩌라는 건데?”
비꼬는 어조였지만 레오의 진심은 어째서인지 조롱이 아니라 의문으로 보였다.
“...레오나르도 님만큼 용사에 가까운 사람은...”
“그럴 리가 없잖아!”
혐오감에 레오나르도는 짧게 일갈했다.
용사, 영웅
그런 인물로 추앙받은 기억이 있었다.
“용사? 너 내가 설마 영웅 같은 머저리라고 생각해?”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추악한 모순 덩어리가 그 단어의 본질인데.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구하셨...”
“사람을 구해? 내가?”
레오는 진심으로 기가 찼다.
선인이니, 영웅이니.
그런 단어는 듣기도 싫고, 불리기도 싫었다.
“...너, 내가 용병으로 살았을 때 뭘 하면서 밥을 먹었을지 생각해봤어?”
“...그건...”
대답할 수 없었다. 어렴풋이 알 뿐이었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몰라서 대답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만약 이 편견적 생각이 사실이라면 레오에겐 가장 깊은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었으니까.
“열 살배기의 아이로서는 마물을 쉽사리 죽일 수 없어. 하물며 마나조차 제대로 깨치지 못한 애송이라면 거물 마수는 더더욱 힘들어.”
알고 있다.
레오가 마나를 깨친 건 라인하르트에 들어오고 나서였다.
그렇다면 용병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제대로 인정받기 힘든 어린 아이라면.
“...사람을 죽였어. 정보를 얻기 위해, 밥을 먹기 위해, 장비를 사기 위해 사람을 죽여댔지.”
대상에 용병, 도적들이 많았을지언정.
거기에 과연 무고한 사람이 한명도 없다 말할 수 있을까.
나조차 명목상 용병의 자식이었는데.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어쩔 수 없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내 고향을 보고도?”
레오의 고향에서 레오를 거부하는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배척하는 기미가 있더라도 대부분은 온건히 마을에서 친구 없이 홀로 큰 소년을 맞이해주었다.
“난 내 의지로, 내 선택으로, 내 욕심으로 사람들을 죽였어.”
죽이고 죽였다.
사람이 어찌 되든 상관없이 베어넘겼고.
목숨이 무게 따윈 냉소로 비웃어넘겼다.
그래야 조금은 내가 버틸 수 있었으니까.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용병 길드장님께 상담을 받은 적도 있었지.”
정면승부, 독, 방화, 이간질, 함정, 이런 방식으로 100명 정도를 죽였을 때.
그때 그는 말했다.
‘정말 그랬다면 너 아주 천재로구나.’
비꼬는 의도가 아니라는 건, 어린 아이였기에 더욱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학습해나갔다.
가족을 찾기 위한 모험에서, 다른 이의 가족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베어나갔다.
모두가 내 재능을 높게 샀다.
어린 아이가 저렇게 할 수 있는게 대단하다고.
“근데 한 마을에서 한 여자애가 말했어.”
태양으로 착각할 만한 소녀가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너, 거기 서.’
지금도 기억난다.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짓이야.’
1회차, 2회차든 상관할 것 없이.
‘그런 짓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아.’
아리아스필이라는 소녀가 레오나르도라는 소년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었다.
회귀로 갈라지지 않았던 첫만남.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가 날 멈춰줬어. 그건 틀렸다고 꾸짖으면서.”
처음으로 빛을 본 순간이었다.
“살인귀나 다름없는 미친놈에게 아주 올곧게 말이야.”
바른 길이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본편을 조금이라도 빨리 내기 위해 후기를 오늘은 빼도록 하겠습니다.
밤늦게 고기집 가면 이쑤시개나 박하사탕 떨어질 때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