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235화 (235/248)

시내에는 화창한 날씨를 축복하는 사람들이 북적하게 거리를 채우고 있다.

지금까지 뛰어들었던 전장과는 아예 다른 평화로운 풍경에 그리운 평온을 느낀다.

어쩌면 레오나르도에겐 이 풍경이 그리운 걸 넘어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당연스레 떠있는 푸른 하늘조차 1회차에선 볼 수 없는 경치였으니까.

“여긴 변함없네.”

레오나르도는 가벼운 감탄사를 내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감동의 눈물 같은 건 취향이 아니라는 듯 킥킥대며 그리운 추억을 체감한다.

“...많이 들뜨셨네요?”

소침해져있는 아리아는 미소로 얼굴을 가린 채 그렇게 물었다,

비꼬는 의도로 묻는 건 아니었다.

1회차로 기억이 되돌아간 후로 레오가 보인 웃음의 대부분은 광소였다. 마치 조롱의 바람잡이 같은, 광대의 연극과 같은 웃음만을 레오는 고집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2회차가 자주 보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감정을 내보였다.

그 미소가 사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혐오스러운 자신이 비치는 거울 같았다.

레오는 그런 지옥을 겪었음에도 인간에게 원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좀 들뜰 수도 있잖아. 볕도 좋고, 좋은 음식도 먹으러 가는데.”

평범한 사람이 그런 곳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모든 게 혐오스러워 참을 수가 없을 텐데.

레오나르도는 나들이에 가는 것이 순수하게 즐거웠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시내를 즐기고 있다.

이 자리에는 세상을 배신한 마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왜, 넌 별로 안 좋아?”

“아, 아뇨! 좋죠! 오랜만에 쉬는 건데요!”

지금까지 보였던 연기가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아리아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사색에 빠진 나머지 레오의 질문에 당황스럽게 대답해버렸다.

“무슨 반응이 직장상사가 눈치준 거 대답하는 것 같냐?”

“...아...죄송합니다.”

어떻게 보면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지금은 레오가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니 상사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사과하니 또 머쓱하네.”

“...아...죄...”

또다시 사과를 입에 담으려 하자 아리아스필은 겸연쩍게 입을 다물었다. 민망한 탓일까, 얼굴은 붉게 익어갔다.

레오도 아리아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지 마찬가지로 멋쩍은 웃음을 내었다.

“예전에 종종 이렇게 같이 시내에 나오곤 했었는데.”

“...그랬죠.”

2회차 아리아 자신과 공유한 추억은 아니다. 레오가 경험했던 1회차는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망쳤기에.

레오 혼자만 과거를 기억해야한다.

“...1회차에 넌 종종 바가지를 써서 내가 진짜 따끔하게 말해주기도 했었는데.”

“저한테도 그랬어요. 어머니께 드릴 꽃을 살 때 사기라면서 점주에게 멋있게 지적했죠.”

“멋있긴, 가난뱅이 출신의 본능이지.”

분명 같은 사람이 서로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에 대해 공유된 추억은 없었다.

마치 하나였던 필름을 잘라내어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붙인 것만 같다.

등장인물은 같지만, 서사와 이야기의 진행은 다르게 되어버렸으니까.

“이 가게도 오랜만이네.”

“예전에도 자주 오셨나봐요.”

“마찬가지면서 왜 그러셔. 딱딱하게.”

“오...! 너희들이구나! 어서 오렴!”

아이스크림을 운영하는 노인은 익숙하다는 듯 아리아와 레오를 맞이했다. 그 반응에 두 사람 다 약간 놀란 눈치였다.

아리아와 레오는 신성술로 사람들 사이에 인식저해를 사용한 후였다. 아마 전문 기사와 흑마법사조차 눈썰미가 어지간히 좋지 않은 이상 알아맞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4년은 훌쩍 넘겨서 그런가, 많이 변했어.”

하지만 노인에게는 그런 추리력보다 확실한 직감이 있었다. 많은 손님을 접객하며 일궈낸 눈의 감각은 노안이 오더라도 또렷히 상대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가? 시간은 금방 흐르는 법이니까.”

“4년이니... 그렇구나. 그때 먹던 걸로 줄까?”

4년 전 일임에도 아이스크림 집의 할아버지는 저 둘이 먹는 맛이 기억났다.

그때는 소년 쪽이 존대하고, 소녀 쪽이 편하게 말했지만 둘의 기류는 썩 바뀌지 않았다.

분명 많은 게 바뀌었지만 본질은 그대로인 느낌이었다.

“난 상관없는데... 아리아 넌?”

“저도 상관없어요.”

할아버지는 콘에 아이스크림을 듬뿍 퍼담아 레오와 아리아 손에 군것질거리를 쥐어주었다.

아리아는 다크초콜릿, 레오는 화이트초콜릿, 항상 서로의 머리색과 같은 빛깔의 이 두 맛이 먹는 게 지금도 인상에 남아있었다.

“넌 어째 간식 먹는데 어째 그런 쓴 걸 좋아한다?”

레오는 편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당을 목적으로 한 디저트에 굳이 쓴맛을 추구하는 이유가 있는지 지금도 의문이 들었다.

이런 과자 같은 디저트는 달콤한 것이 제격 아닌가, 그런 생각을 품으며 흰 아이스크림을 베어물었다.

“의외로 맛있거든요. 쓴맛이 단맛을 질리지 않게 해줘요.”

최근에 컨디션 때문인지 밥맛이 많이 쓰게 느껴졌는데, 그에 비하면 오히려 이 다크 초콜릿은 달콤하다 못해 혀가 얼얼할 정도였다.

아리아스필은 거친 단발을 귀 뒤로 넘기며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부드럽고 붉은 혀가 잠시 레오의 시선을 빼앗았다.

‘...쟨, 왜 항상 저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어! 이상한 생각 들게...’

미인계를 계속 봐왔던 레오는 알고 있다.

저건 평소에 보이던 유혹이나 변태 기질 같은 게 아니다.

평범한 습관일 뿐, 그 습관이 아리아의 미모가 곱해져 극한의 매혹이 된 것이다.

“레...이널드 님께서는 항상 화이트 초콜릿을 드시네요. 맛은 그냥 초콜릿보다 느끼하지 않아요?”

화이트 초콜릿은 초콜릿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음식이다. 카카오버터만 쓸 뿐, 매스나 파우더는 아예 넣지 않으니까.

아마 단맛으로 치자면 보통 초콜릿보다 몇배는 달고 느끼할 것이다.

“그게 매력이지. 이 가게에서만 파는 전문 메뉴이기도 하고, 혈관 막히는 맛이지만 먹다 보면 중독된다니까.”

“푸흡...”

혈관 막힌다는 비유에 아리아스필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항상 레오와 있으면 기분이 편해지고 자주 웃음이 나왔다.

홀로 저택이나 신전에서 있을 때에는 어떤 행사나 축하가 있을 때 시선을 신경쓰며 억지로 웃어야만 했는데,

레오와 있을 때는 웃고 싶지 않은 기분에서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진다. 항상 그랬다.

‘그래서... 멋대로 의지하고 어리광을 피우게 됐지...’

결국 자신은 그런 레오에게 의존했을 뿐이다.

스스로의 성장은 전혀 이루지 못했다. 몸만 커진 어린 아이, 용사 놀이에 취한 소녀에 불과했다.

“예전에 훈련 끝나면 가끔 사먹고 그랬지. 지금 먹어도 맛있네.”

“몸이 더워졌을 때, 달고 찬 걸 먹으면 항상 기분이 좋았죠.”

이내 그런 감정을 감추며 아리아는 미소를 지으며 레오의 말을 경청했다.

자신의 아픔은 레오의 것에 비해 별 볼일 없다.

힘들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투정이다.

“그럼 그거 한입 먹어봐도 되냐?”

“...예? 그건...”

레오의 제안에 아리아스필은 아이스크림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자신이 핥은 아이스크림의 부분은 침이 베고 약간 얼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간접키스가 부끄럽긴 했지만 결코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벗은 몸으로 절을 하고 해달라고 해도 부족할 포상이었다.

‘...또또...! 음란한 생각...!’

혐오스럽다. 레오나르도 님은 자신을 위해 깨끗이 헌신하고 있는데, 자신은 레오에게 추잡스러운 욕정이 독했다.

보통은 남자가 육욕이 심하기 마련이거늘, 자신은 조신해야할 여자이자 용사인데도 이다지 음탕했다.

반성해야한다.

“...아... 혹시 내가 먹는 게 좀 그래? 내 걸 네가 먹는 건... 아 이것도 좀...”

라고 하기엔 너무 엄청난 포상이었다.

진짜 죽고 싶다. 레오는 순수한 선의로 저런 제의를 한 것인데, 지금 자신은 어떻게든 레오가 베어문 부위를 핡고 싶어 혀를 풀고 있다.

최악이고 저질이다.

“...그럼 어디...”

서로 아이스크림을 바꿔쥐며 한입씩 베어문다.

먼저 제의한 레오는 다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베어문다. 제법 큼직하게 먹어서 입 안에서 녹이는 그 모습은 달달하기 그지없다.

이런 장관을 반찬삼아 아리아스필도 레오의 아이스크림을 핥아 베어문다. 감정의 달콤함과 아이스크림의 단맛이 화음을 이룬다.

베어문 만큼 서로의 타액이 각자 몸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하니 행복해서...

행복해져서...

‘...결국... 나만 행복한 거네.’

또다시 자신의 욕심만을 채웠다.

레오의 순수함을 이렇게 짐승처럼 채우는 이 악한.

지금 자신은 용사라는 직함이 아까운 변녀였다.

레오는 자신 때문에, 자신에게 종속되어 여자 한번 제대로 만나지 못했는데.

자신은 레오를 더더욱 옮아매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내가 용사를 할 자격이...

“...괜찮아?”

“예!? 예예! 당연히 괜찮죠!”

레오가 상냥히 걱정하는데, 자신을 더 걱정되게스리 당황스럽고 어색히 대답했다.

도움과 동정을 구걸하는 꼴이여서 자신이 역겹기만 하다.

“...당연은 무슨, 아까부터 상태 안 좋은 것 같던데?”

레오는 항상 자신의 상태를 바로 눈치챈다.

자신이 둔하게 회귀에 대해 몇 년 동안 모르고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둔하다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항상 그래주었다.

“...정말 괜찮아요. 아이스크림이... 약간 제 취향이 아니여서 그래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변명이었다.

레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해결해야할 문제로 레오에게 짐을 주기는 싫다.

아니, 주어서는 아니된다.

레오는 이미 인간으로서 받아야할 악의를 넘어서면서까지 버티고 있으니까.

“그래? 네 머리색이랑 아주 똑같은 색인데도?”

“에이, 그게 맛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치면 다크 초콜릿도...”

‘레이널드님의 머리색하고 똑같잖아요.’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다.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레오나르도의 머리색은 진한 검은빛이 아니었다. 전부 타버린 잿더미처럼 머리카락의 빛깔이 새하얗게 새어버렸다.

들어본 적 있다. 인간은 한번에 허용량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아예 백색으로 질려버린다는 걸.

레오의 경우에는 그것 뿐만 아니라 아예 체질 자체가 라인하르트에 가까워지는 증거이기도 했다.

“...야야야! 아이스크림!!”

“아...! 죄송...!”

당황하는 사이에 아이스크림 뿐만이 아니라 아리아스필 본인도 무게중심을 잃었다.

“괜찮냐?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레오는 넘어지기 직전의 아리아의 손을 잡으며 천천히 끌어올려주었다. 전속기사로 일할 때와는 다른 결의 배려, 저 거친 말속에서 손길까지 부드러운 존중이 느껴진다.

“...우선 어디에 앉자. 저기 벤치 있네.”

“아...네...”

자신을 이끌어준 레오는 그대로 편안히 벤치에 앉을 수 있도록 한다. 벤치 뒤에는 분수대가 있어 사람들도 많이 모여있다.

“...숨 좀 돌리자고. 너무 신경을 쓰니까 그래.”

“...네. 고칠게요.”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지금 자신은 용기를 내긴커녕 두려움에 빠져 망설이고만 있다.

자신에게만 신경을 써 레오가 곤란해하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너무 부담 갖지 마. 긴장은 해도 되지만 너 혼자 부담감 가질 필요는 없어.”

...그럴지도... 모른다.

날, 용사를 대체할 사람은 있으니까.

“가족들도 걱정하고 있으니까 편히 말해도 돼. 그 양반들이 네 고민 하나 못 들어줄까.”

아닐 거다...

잔인하고 역겨운 말이지만 자신은 레오와 달리 그들과 혈연이 있다.

만약 자신이 죽어야 해결되는 문제가 있다면, 가족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을까.

그것도 아주 화목한 가정이라면.

레오는 그것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했는데.

“나도... 네가 좀 덜 부담 가졌으면 좋겠다. 사실 용사라는 것도 불합리한 거고, 부담 가지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용사라는 책임을 꼭 한 명이 다 떠안을 필욘 없잖아?”

“...그러네요.”

맞는 말이다.

자신 한 명이 아니여도 된다.

“그럼... 만약...”

조심스레 입을 열린다.

“...제가 아닌...”

레오에게 최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다른 사람이 용사를 한다면 어떨까요?”

자신이 매듭지어야할 부분만 확실히 전달한다.

“...글쎄...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

다른 때와는 달리 레오나르도는 기억상실 이래 가장 부드러운 어투로 대답했다. 2회차의 기억이 있던 때보다 부드러운 배려와 존중가 배여있다.

“그럼 만약...”

이제 본론이다. 만약 여기서 레오가 긍정한다면 자신은 선택할 수 있다.

각오를 다지고 자신을 베어낼 수 있다.

그게 레오에게 올바른 포상이자 무능한 자신에 대한 벌이 될 테니까.

“레이널드 님이 용사가 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차갑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에 흘렀기 때문일까.

분수대의 물방울이 목덜미에 튀었기 때문일까.

아니, 확실히 알고 있다.

지금 이 냉기는 한 남자에게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윽고 레오나르도는 대답했다.

“너 죽고 싶냐?”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건 분노가 두려웠기 때문었을까.

정곡을 제대로 찔렀기 때문었을까.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레오나르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리아스필과 아이스크림을 쓰던 중 치명적인 오타를 발견했기 때문에 수정하느라 좀 시간이 더 지체됐습니다.

아이스크림 아리스크림 아리아크림 아리아크림...

아리아크림이라면 쓴 단어가 한 두개 아니더군요.

레오라면 아이스크림보다 더 좋아할 테지만... 오타는 오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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