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이지만 20대가 50대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썩 짧지는 않다.
1살짜리 아기가 30대는 충분히 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니까.
[...그러니까 오해라고 했잖아. 콜드브루 군.]
그리고 눈앞에 있는 콜드브루, 지금 영상을 보는 이들보단 못할지언정 1회차의 세계에선 ‘마탄의 사수’라 이름을 날리는 전사가 되니까.
[...사이비 새끼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데?]
[눈깔에 납덩이 박혀서야 제대로 대화할 기회를 얻다니, 수지타산이 거지같네.]
[그럼 부모 욕을 하지 말든가...?]
콜드브루를 포함한 모두가 잠시 레오의 눈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모인 이유는 분명 레오의 눈에 부상을 입혀서였다.
[...멍밖에 안 들었어...?]
레오나르도의 눈은 멍밖에 없었다. 안구에 직접 닿은 줄 알았을 때, 탄환은 눈가에 부닥치며 찌그러진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른 이교도들은 죽이는 경지에 이른 암살무구는 레오에게 직격했음에도 박히지도 못했다.
“...어떻게...”
[피하면서 눈가에 오러를 집중했지 뭐. 새로 보는 무기여서 한번 맞고 싶었어.]
광기어린 방식과 이유에 콜드브루를 포함한 모두가 잠시 입을 벌렸다. 사는 게 힘들어도 그런 도박을 택하는 건 이미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사이비라지만 단단히 미쳤구만.]
[오해하면 곤란해. 난 종교는 안 섬기는 주의여서.]
[그럼 그 꼬라지는 뭔데!]
지금 레오나르도는 그 광신도와 똑같은 예복을 차려입고, 그 위에 이단 성기사로서 인정받은 갑옷까지 입고 있었다.
그런 레오의 위장을 보고 이 교단이 연관이 없다 생각하는 옹이눈깔을 지닌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이건 설명하자면 긴데, 이런 핏구덩이에서 말하긴 그러니까 오붓한...]
콰앙!!
이번에는 폭발이 이어졌다. 콜드브루는 작은 폭탄의 핀을 빼내며 레오에게 집어던졌다.
[해치웠나?]
[보통 그런 말을 하면 확신이 없다는 거지.]
장문의 조언과 동시에 폭발을 뚫고 연막 속에서 레오의 팔에 콜트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확신이 없으면 대부분 살아있어. 내 나름의 지론이니까 참고해두라고.]
[...끄악...]
1회차 레오나르도의 실력은 현세대의 인물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콜드브루는 아메리에겐 미안한 평가이었으나.
‘...생각보다 약하네.’
예상 외로 반항 한번 못한 채 그대로 레오에게 제압당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지닌 무기조차 제대로 응용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목을 졸리고 있었다.
[...근성은 있네. 버둥거리는 게 예사롭지는 않아.]
그런 실력에도 레오는 나름의 칭찬을 날리며 쥔 목 그대로 콜드브루를 들어올렸다. 손목에 약간 스냅을 주면 저 목은 그대로 꺾여 영구적인 척추 손상을 줄 것이다.
[잘했구나!! 로지온!! 당하신 교황님도 네 공을 높게 살 것이다!!]
뒤늦게 온 다른 신도들은 침입자를 제압한 로지온(레오)를 보며 찬양을 이어갔다. 아마 이대로 죽이면 마도교단에서 한 자리를 든든히 차지할 수 있을 테지.
[그러면 살려야겠네.]
[...뭐어...?]
영상을 보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레오의 말을 반응했다.
[네놈!! 기억상실과 팔의 마비를 낫게 하고 싶다면서 간청하던 널 거둬준 교단의 자비를 배반...]
[대신 갖은 굳은 일은 몇 달 동안 해야했잖아. 병신 같은 경전, 새벽부터 읽는 건 또 어떻고. 차라리 진짜 성경이나 300번 더 읽는 게 유익했어.]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콜드브루를 엎은 채로 팔목에서 와이어를 발사시켰다. 창문을 깨뜨린 와이어의 갈고리는 그대로 틀에 걸리며 레오를 끌어당겼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주신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죽음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얼른 죽으세요!!]
괴상한 말을 내뱉으며 탈출하는 꼴은 레오나르도 본인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폐한지 우습게나마 설명이 가능했다.
“...괜찮으...”
“말 걸지 마.”
현실의 레오나르도는 피폐한 정신에 더한 상처를 입어 그대로 쭈그려 앉아있었으니까.
그러건 말건 영상은 빠르게 핀집되기라도 하듯 이미 안전한 장소로 피신한 것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니까 당신도 나처럼 교단을 쳐부수러 왔다는 거지? 내 이름은 아는 건 부모님 지인이여서 그런 거고?]
[처음에 흥분한 것치고는 순순히 이해하시네?]
이미 둘은 서로에 대한 사정을 설명하고 나름의 타협점을 찾은 눈치였다. 말내용은 아직 거칠었지만 분위기는 제법 누그러지고 침착해졌으니까.
[부모님 가지고 X드립 쳤으니까.]
[죄송합니다. 그건 미필적 실수에 의한...]
[됐어. 댁이 안 죽인 걸로도 퉁치면 돼. 당신 실력이면 날 죽이고도 남았잖아.]
그건 다른 라인하르트들도 이미 눈치챈 사실이었다. 레오나르도가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발포할 시간 없이 오체분시로 토막냈을 게 눈에 선했다.
[난 댁이 아는 대로 콜드브루, 그냥 콜트라고 불러. 그쪽이 익숙해.]
[성은?]
[몰라. 댁이 애비할 거 아니면 묻지 말라고.]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와 처음 만났을 때 비숫한 말을 한 것이 기억났다. 콜트와 레오가 겹쳐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럼 난 로지온, 가명이지만 그렇게 부르라고.]
[본명은?]
[내 본명은 비싸. 아마 알게 되면 목숨값을 걸어야 할 정도로.]
협박스러운 말처럼 보였지만 자조적인 기색이 엿보였다. 레오나르도의 본명을, 특히 별명으로 부른 사람들은 살아남은 이들이 없었다는 자책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협력할 건가? 괴상한 궁수 친구.]
레오는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고.
[...안 하면 죽일 거잖아. 그리고 석궁 같은 게 아니라 총이라고 하는 거야.]
콜트는 툴툴대며 레오의 손을 잡았다.
[죽이다니, 아저씨를 뭐로 보고.]
“이렇게 협력해서 복수는 잘 했지.”
자신의 기억인 만큼 레오나르도는 본인이 직접 나레이션을 넣었다. 모든 기억을 일일이 볼 수 없는 만큼 보충 설명은 필수적이었다.
[이단들이여, 여기까지 몰아붙이셨군요.]
[교황...! 당신은 분명...]
교황은 미간에 탄환에 박혀들어갔음에도 살아있는 상태로 레오와 콜트를 마주했다. 사실 동일인물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심하긴 했다.
[...당신도 마인이었군. 교단이라는 이름이 아깝지도 않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겁니다. 지금 파멸해가는 세상에는 성검이 필연적이니까요.]
어느새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부색은 뒤바뀐 교황의 손에서는 백색의 검이 들려있었다.
그 검의 형태는 아리아스필이 쓰고 있는 성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재현치 못한 건 아리아가 드러내는 압도적인 신성의 빛 뿐이었다.
[그 정령하고 신도 혼합육 합금이 성검이라고?]
[로지온, 당신은 신도 중에 저를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이해해준 거긴 하지. 그 젖소녀에 대해 너무 환상을 품고 있길래 불쌍했어.]
“딸꾹...”
젖소녀라는 발언에 레오나르도는 이젠 기침할 목도 없었는지 딸꾹질을 해대었다.
아리아스필은 민망한 눈치로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도 묘했지만 젖소라고 표현할 만한 크기일지도 몰랐다.
[...아리아스필 님을 그렇게 표현한 건 아니길 바...]
[걔 말고 젖소라고 말할 만한 거유가 있나? 안 그래?]
[음담패설에 나 끌어들이지 마. 아저씨.]
콜트는 영상 속 레오에게 고개를 돌렸고, 레오 본인도 마주보기 싫어 딸국질을 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 괜...”
“차라리 화를 내면서 찢어 죽여줘.”
[안 되는 거 알잖아.]
안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못 한다는 단언에 가까웠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합심해 덤비지 않는 이상, 레오를 죽이는 건 성공할 수 없는 과업이었다.
[...언제까지 그 거짓된 광기가 계속될까요?]
그 예고와 함께 마인화된 교황은 위작 성검을 휘둘렀다.
풍압과 함께 뿜어지는 고밀도의 마나, 정령을 갈아넣었다는 의미가 본대로 납득되었다.
“...정령을 죽여서 만든 건가요?”
“죽였다기보다는 봉인한 채로 충전제로 쓰는 거지만.”
“...더 끔찍하네요.”
이 자리에서 직접 정령술을 쓰는 아리아는 그게 얼마나 끔찍한 행위인지 알고 있다.
마나로 이루어진 정령을 충전제로 쓰는 건, 인간을 피주머니로 쓰는 개념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콜트, 여기는 나한테는 맡겨라. 저 애송인 잠입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거든.]
[당신만 재미볼 생각...!]
[재미?]
그때 레오나르도의 눈은 2회차의 예의범절이 있는 형태도, 1회차의 광기어린 눈빛도 아니었다.
마치 목표만을 감지하는 기계, 살의조차 아닌 살해목적만이 드러나는 시선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는 유인책이야. 외부 쪽에도 추가적인 적이 대기 중이야. 그건 연사를 잘 할 수 있는 네가 적격이잖아.]
이내 다시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온 레오는 평소처럼 유쾌하게 콜트를 설득했다.
살기에 떨떠름해하던 마총사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출구 쪽으로 뛰어갔다.
[보내셔도 되는 겁니까? 당신 혼자서는...]
[충분하지. 애초에 너, 내가 아는 아리아보다도 약하거든.]
부정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아리아스필이 저곳에 있었다면 저런 노인네 따위는 광선으로 바로 소각될 것이다.
[아, 혹시 ‘난 한팔만으로도 강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장애가 있음에도 투철하시군요.]
[장애라면 장애긴 해. 근데 그 말에는 다른 의미도 있지.]
영상 속 레오나르도는 단숨에 한 팔에 감겨진 천을 풀어내었다. 안정적으로 돋아나는 용의 비늘들, 그 변화만으로 일순에 교황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내가 양손을 쓴다면 정말로 ‘괴물’이 된다는 소리거든.]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돼...! 어둑시니... 넌... 죽었을...]
[나 보고 싶었어?]
어둑시니는 검은 가면을 쓴 채로 용의 팔을 휘둘렀다. 가짜 성검으로 교황은 공격을 막아내지만, 검술조차 변변치 않은 그로서는 반동에 버티는 것조차 벅찼다.
[끄아아아악!!]
붉은 화염이 레오의 비늘에서는 뿜어져 나왔다.
엄숙한 심정으로 기억을 관찰하고자 했던 크리스는 용의 본능이 깨어나는 걸 간신히 억눌렀다.
‘...멋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손에서 검은 화염이 나가는지 상상하지 말자.’
교황은 레오나르도의 공격에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맨손이 아닌 대검을 용의 팔에 쥔 채로 휘두르자 생명을 갈아만든 성검조차 그 폭쇄에는 견디지 못했다.
[...어...어떻게...! 이런 말도...!]
[아니, 무슨 앵무새야? 같은 말만 쫑알거려.]
[이 성검은 아리아스필 님이 쓰는 것과 필적할 거란 말이다!! 분명 인류에게도 희망이 될 거란...!]
레오나르도는 용으로 변화한 팔째로 교황을 붙잡아올린다. 마인화된 꼴이 우습게 그는 버둥거리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아까부터 왜 자꾸 아리아스필 이름을 들먹이지? 누가 보면 아리아스필이 억지로 시킨 줄 알겠네. 그 젖소년 억장 무너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들려.]
경박한 말내용과 달리 상황은 어느순간 깨져도 이상할 게 없는 살얼음판과 같았다.
영상 뿐임에도 살기와 분노가 동작마저 드러나있었다.
[...신이 두렵지... 않나...!]
그렇게 말하며 사이비 교황은 그대로 레오의 어깨에 성검을 꽂는다. 백색의 검신은 이미 잿빛으로 점차 무채색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신?]
이 상황이 모두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단어였다.
[그런 시시콜콜한 관찰자에 대해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초저녁에 접었어. 계속 되는 밤 동안 내가 생각한 건 한 가지 뿐이었지.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하는가?]
레오의 손이 교황의 오른쪽 팔을 뒤틀어놓은다.
[내 주변 사람들은 재밌게도 내가 없는 사이에 죽어. 시체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행운이지. 못 찾으면 끝도 없이 상상하게 되거든.]
레오의 발이 교황의 왼쪽 정강이를 가격해 부러뜨린다.
[어떻게 죽었을까? 절단, 분신, 병사, 독사? 죽기 직전에는 어땠을까? 강간을 당했을까? 아니면 살려달라 빌었을까? 숭고히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갖은 상상이 내 머리를 채우지만 현실은 언제나 답을 감추지.]
그대로 성검이 빠지며 레오의 가면을 살짝 깨뜨린다.
[난 차라리 용사든, 마왕이든 날 죽여주길 바랬어. 그런데 둘 다 이 세상에는 없더군. 난 지옥이라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윽고 레오는 날이 죽어가는 가짜 성검을 집어들어 교황의 좌반신을 잘라낸다.
[신이라고 했나? 신은 확실히 날 죄수로서 가두었지. 완벽한 솜씨였어. 하지만 무너뜨렸다고 생각하면 더할나위 없는 착각이야.]
교황은 아직 살아있다. 벌레처럼 출구를 향해 기어갈 뿐.
[난 아직 내가 원하는 걸 무엇 하나 하지 못했거든.]
엄숙함만이 외부를 감돌았다. 기억이든, 현실이든 아무도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지금 레오와 저 레오가 같은 인물이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입을 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 본인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저씨?]
[오, 콜트. 벌써 정리했어?]
[다섯 명밖에 없는데 벌써는 무슨. 저...건 뭐야? 교황이야?]
[어, 막타는 네가 쳐야할 것 같아서 살려뒀는데 어떡할래?]
방금까지 검은 감정을 토해내던 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평범한 대화가 이어졌다.
평소 자신들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이미 죽었는데?]
[뭐? 그러네?]
[뭐가 그러네야!]
[그... 좀 미안하네. 너도 원한은 만만치 않을 텐데.]
[됐어. 어차피 결과적으로 죽였으니 됐지.]
콜트는 툴툴대면서도 미묘히 레오나르도의 안색을 살폈다. 레오나르도는 이미 가면을 벗은 채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일이나 끝났는데, 같이 밥이나 한끼 어때? 지금 지인이 픽업할 참인데?]
[밥? 이런 때 밥 얘기가 나와?]
[이런 때여도 밥은 먹어야 사니까. 그리고...]
레오나르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에 검집을 잡아쥐었다.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 녀석들 딸내미가 나오는데...!
[어둑시니 님.]
[레오 아저씨~?]
이미 늦었다. 레오나르도의 뒤에는 두 미친 녀석들의 딸내미가 나타난 뒤였다.
[...어, 왜 너희들이 오냐? 난 너희 부모를 불렀는데? 루미네와 에일린은?]
저때 레오나르도는 지금보다 눈치가 상실해있었다.
[...그전에 할 말 없지 않습니까?]
[그래, 4개월 만에 만났으니까 할 말이 있는 게 정상이겠지.]
[...어, 오랜만에 만나니까 되게 반갑네?]
퍼억!!
[이 혼전순결 바람둥이!! 문자만 보내면 단 줄 알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전화기가 꺼졌으면 당신도 저승으로 꺼지십쇼!!]
[야야!! 악! 고생한 사람 때리고 난리야!! 콜트 니가 해명 좀 해라! 해명!! 이 나이 먹고 이렇게 맞고 살아야해!?]
두 미소녀를 낀 채로 쳐맞는 꼴을 보면서 콜트는 말문을 잃은 듯 멍하니 레오를 바라보았다.
“...어...음...”
그 시선은 레오를 제외한 이 영상을 보는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작용했다.
미지근하면서도 사무적인 시선.
“...아리아... 내가... 그게... 그러니까...”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언변 능력이 10분의 1로 급감한 걸 체감했다. 바가지 긁은 남편의 감정이 이런 감정이었을까.
다른 사람들도 아리아스필이 괜스레 폭발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눈치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네? 영상 끄시려 한 거 아닌가요? 날도 저물었는데.”
“...응?”
아리아스필은 이 자리에서 가장 태연히 레오에게 말했다.
“시간도 늦어서 검집 작동을 멈추려는 거 아니었나요?”
“...그렇긴 한데... 뭐... 괜찮아...?”
“레이널드 님이 괜찮다면야 저도 괜찮죠.”
아리아스필은 그리 말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그...그래? 그렇지.”
레오나르도가 영상을 끄자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본 내용을 제대로 논의하는 건 시도하지도 못했다.
고작 시청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체력이 소모될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으니까.
다만.
“루미네 성인님.”
용사 아리아스필은 루미네를 잠시 불러세웠다.
“아, 아리아스필 님? 하실 말씀 있나요?”
루미네는 행여나 아리아스필이 질투로 폭발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하며 말을 이어갔다.
“...보셨죠?”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그런 유치한 감정에 시달릴 틈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머리에는 여러 추측들이 휘몰아치며 확신으로 이루어진 태풍의 눈을 형성하고 있었으니까.
“...네? 뭘...”
“...레이널드... 레오나르도 님의 눈이요.”
루미네는 움찔하는 기미를 내보였다.
이에 대해 대답해도 되나 온감각이 갈등하고 고민했다.
쉽게 판단할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푸른색으로 변한 것 말씀이신가요?”
하지만 루미네는 용사를 보좌하는 성인, 개인의 판단으로 거짓을 고할 수 없었다.
“...예. 분명 제 눈처럼 파랗게 변했죠.”
가짜 성검에 찔렸을 때조차 눈은 파랗게 변색되어있었다. 찰나였지만 분명 가면 사이로는 푸른 벽안이 내보였었다.
“...그렇습니다만... 저도 그게 어떤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고 있다. 아리아스필이 보기에도 루미네는 이 현상에 대해 알만한 단서를 쥐지 않았다.
하지만.
“앤젤라 성인님.”
{...예. 부르셨습니까? 용사님?}
앤젤라라면 다를 것이다.
이윽고 아리아스필은 질문했다.
한 시대에 두 명의 용사가 존재할 수 있는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근데 넌 왜 쟤네들이 여자로 안 보이는 건데?]
"그냥 나이 차가 나는 거면 몰라도 기저귀 갈아준 적까지 있는 친구 자식을 건드는 게 상식적으로 맞아?"
[노벨피아잖아.]
"....그게 뭔데?"
[불리할 때만 제 4벽 지키지 마라.]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요새 몸이 자주 아프더군요.